〈 46화 〉 검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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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영화나 소설, 만화나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 클리셰가 몇 가지 있다.
“사실, 숨겨둔 비밀이 있다.”
“지금 네가 알기에는 아직 이르다.”
“아직 조사 중이야. 확실해지면 그때 말해줄게.”
아니! 미리 말해라고! 그렇게 질질 끌다가 뒤통수 당해서 죽거나, 숨긴 의미도 없게 대처가 늦어서 사건이 터진다거나, 질질 끌다가 결국 후반부가 돼서는 별로 큰 비밀이 아니게 되거나.
전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진작 말했으면 해결됐을 상황이 질질 끄다가 결국 사건이 터지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뭐…. 작가로선 일단 떡밥을 뿌려둔 거고 나중에 자기 입맛에 좋게 적당히 수거할 수 있으니 좋은 클리셰이긴 하다. 어쨌든 초반에 굴릴만한 떡밥이 아니기도 하니까.
지금 내가 할 거는 그 장면과 다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힘이 없거나, 세력이 없는 다른 작품과는 다르다. 질질 끌거나 할 필요도 없다.
“애들 집합시켜.”
“네.”
금빛 눈동자에 서린 마력이 미리 던져둔 마정석과 연결해놓고 마정석을 통해 아주 먼 거리에도 노예 상단을 지켜볼 수 있는 마력 기술을 이용하여 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히 시간을 질질 끌어봤자, 일이 터지면 이쪽만 짜증 나니…, 빨리 끝내자.”
“알겠습니다.”
클로에와 세린이 곧바로 움직였다.
그걸 본 채 시선을 돌려서 마정석을 영사기로 활용하여 원격 감시 시스템의 확인을 지켜봤다.
현대… 원래 세계로 치면 별거 아닌 기술이었다.
원리는 다르지만, 결국 카메라를 설치해서 인터넷이나 그에 따르는 연결 방식을 통해 원거리로 지켜보는 거니까.
다만 이 세계에서 이런 식의 마력 제어법은 없다. 거의 드물다.
발상의 문제다.
예를 들면 이전에 사용했던 주변의 시야를 차단하는 마력 제어법. 카모플라쥬나 스텔스 같은 느낌의 마력 제어법은 존재하는데, 이건 몬스터 중에 카멜레온 같이 주변의 환경과 동화하는 놈들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발상을 가지고 와 마력으로 비슷하게 구현화 시킨 것이 그 제어법이며, 이 제어 방식은 꽤 많이 퍼져 있었다.
이처럼 현대의 과학 기술과 비슷한 혹은 똑같은 다른 제어법도 많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고, 찾아봤다.
엄밀히 말해선 존재한다. 대륙 어딘가, 마력을 다루는 가문이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존재하긴 하지만, 그 대부분이 가문의 비전으로 끝난다. 주변의 시선을 차단하는 방법같이 자연이나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발상은 대부분 공유되어 있거나, 혹은 구현이 어려워서 포기하거나 말했던 것처럼 소수의 가문에서 성공시켜, 자신의 비전으로 삼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특수한 마력 기술을 사용하고 싶다면 똑같이 발상을 얻거나, 다른 가문이 사용하는 걸 보고 나름 독자적으로 연구하는 것 정도로 그 방법은 자유지만, 결국 어떤 방법이든 시간이 걸리고, 애초에 정보 공유가 일어나지 않으니 결국 다시 그걸 목격한 소수의 인원만 연구하고 자신들이 독점하는 것으로 끝난다.
언젠가 그런 마력 기술이 퍼질 수는 있지만,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
어쨌든 중요한 건 발상의 문제다.
이 세계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넘치겠지. 귀족들은 정치 싸움도 하고, 상인들은 한 푼 두 푼 이득을 얻기 위해 치밀하게 머리를 굴린다.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 문화의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나보다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들과 나의 차이라면, 바로 내가 전생의 기억이 있다는 것.
전생에서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의 문제. 과학의 발전으로 어떻게 만드는지, 그 원리에 대해선 나도 모른다.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과학의 결과물만은 알고 있다.
반도체에 대해 잘 몰라도, 결국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전자 제품들을 알고 있다.
인터넷이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 몰라도 된다. 결국, 연결된 무언가로 아주 멀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지만, 그 구조 역시 수많은 과학적 이론으로 디자인이 되어 있을 거다.
드론이 배터리와 모터로 하늘을 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몰라도 된다. 단지 무언가를 하늘에 띄어 그것으로 정찰할 수 있다는 것만 알면 되니까.
굳이 과학으로 끝나는 이야기도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혹은 게임에서 나왔던 전 세계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면서 꿈꿔왔던 상상의 구현물들. 그런 결과물만 알면 충분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런 발상이 부족한 것뿐이며. 그 발상만 충족시켜준다면 내가 모르는 원리로 알아서 발전한다.
지금처럼.
“프로젝트 카메라 시작합니다. 레오릭님에게서 마력 인계합니다. 셋, 둘, 하나…! 인계 완료.”
“마정석과 연결 확인. 이제부터 모든 마정석을 카메라로 칭합니다. 체크.”
“체크. 1번 카메라 연결됐습니다.”
“체크. 2번 카메라 확인. 위치 고정했습니다. 스텔스 제어 시작….마력 차단 완료.”
“체크. 3번 카메라 무응답……, 아. 응답했습니다. 역시 이 정도로 거리가 떨어지니 제어가 힘들어집니다.”
“은밀 상태로 전환하고, 제어 해제하세요. 들킬 가능성이 큽니다.”
“네.”
“전에 레오릭님이 말씀했던 것처럼 마력과 마력을 이어주는 중계기를 설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중계기라……. 어떤 방식으로 설치해야 할지 연구해야겠네요.”
눈앞에서 클로에를 중심으로 마력을 가진 사람 중에서 나름 똑똑한 놈들을 데리고 온 팀이 있다.
일종의 연구팀이다.
“거리가 멀어지니 마력 구성이 약해집니다. 역시 우리들의 마력으로는 힘들군요.”
“일일이 레오릭님을 비롯한 귀족의 힘을 사용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조금 더 범용성을 늘려야 합니다.”
“마력 제어를 강화하는 방법이나 혹은 조금 더 구조를 단순화시켜서 내구성을 높이는 방식은 어떨까요?”
“그러면 옆에서 쉽게 탈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은밀의 문제도 있고……. 역시 이 정도가 되면 숨기기도 어렵군요.”
역시 공돌이는 갈아야지 잘 든다.
내가 그저 말만 적당히 흘리니 알아서 듣고 어떻게든 완성 시켰다. 물론 적용 거리나 화질을 비롯해 편의성은 현대의 기술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구리지만, 어쨌든 이 세계에서 원격으로 감시할 수 있는 카메라가 완성됐다. 실전에 써먹을 순 없지만. 그래서 이번 전쟁에도 아직 쓰진 않고, 계속 연구중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다른 방법도 가능하군요.”
“두 개의 마정석을 가공해, 서로에게만 연결하는 식으로 만들어 놓으면 아주 먼 거리에도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는 역시 거리와 은밀성이네요. 지금 같은 경우에는 무조건 들킵니다.”
“어렵군요.”
그거 휴대폰 아닌가? 아니, 아직은 무전기인가?
어쨌든 알아서 머리를 굴리는 거 보니 듬직하다.
그래도 현대랑은 다르게,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이 느낄 수도 없는데, 이 세계에 전파 역할을 하는 마력이라는 것이 마력 보유자에게는 뻔히 보이고, 감지하기도 쉬워서 그대로 발전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공돌이가 알아서 하겠지.
머리를 굴리는 연구팀에서 시선을 돌려, 화질이 구리긴 하지만, 식별하기 어렵지 않은 화면을 바라봤다.
솔직히 내 힘이라면 이걸 쓰지 않고도 볼 수 있지만, 일단 이들의 기술이 얼마나 쓸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하고….
뭐, 마력 기술… 혹은 마도 공학? 마법 공학? 아니, 마법은 아니지만. ……마과학? 통칭은 어쨌든 일단 시선을 돌려 화면을 바라봤다.
대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한 숙박 시설에서 짐을 풀며 밤을 준비하는 노예 상단을 바라봤다.
“어쨌든 감시하고, 밤 정각이 되면 그대로 기습한다.”
“무슨 목적인지 움직이는 걸 지켜본 후에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클로에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아버지나 형님이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지금 프란츠 영지에 있는 건 나 혼자다.
그렇게 지켜보다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면 내 입장이 나빠진다. 거기에 내가 그 사태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고 확신도 할 수 없고.
거기에.
“짐작일 뿐이긴 하지만, 우리 목적은 아닌 것 같은데.”
“네?”
말 그대로 짐작이긴 하지만.
어쨌든 클로에가 확인한 것처럼 서류 자체는 문제없었고, 이후 일정에도 곧바로 영지에 벗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 저들이 묵는 숙소도 곧바로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중요한 그것에도 계속 엄중히 경계하는 정도의 태도만 보였다. 만약 여기서 일을 벌인다고 해도 프란츠 내성에도 멀고,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다.
“목적은 보랭인가, 혹은 수도? 아니면 단순히 지나갈 생각인가?”
“그럼정말 우연히 여기로 지나왔다는 건가요?”
“그렇지 않을까? 멀리서 왔으니 자세한 사정은 몰랐을 거고, 알았다면 진작에 경로를 바꿨겠지. 거기에 출병 다음 날에 도착하는 건 정말 예상 못 했을 거고.”
강화된 검문은 저들에게 반가운 사실이 아니겠지. 거기에 이 근처에서 사정을 알았다고 해서 경로를 바꾸면 너무 의심스럽다. 금방 알아차리진 못했겠지만, 목격 정보는 어쨌든 들어왔을 거고.
뭐가 목적일까.
……잡은 후 고문하면 되겠지. 솔직히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크게 상관없을 것 같고.
잠깐 지켜보다가 옆에 서 있는 클로에를 바라봤다.
얼굴이 안 좋은 거 보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었나 보다.
“그나저나 좀 전에 몰랐었지?”
“…네. 죄송합니다.”
“아니. 저거의 방식이 생각보다 더 은밀할 뿐이니까.”
조금 전에 봤던 그것을 생각했다.
노예 상단이라고 노예만 장사하진 않는다. 그런 교역품들 사이에 있던 어떤 상자. 거기서 느껴졌던 묘한 기척과 은밀한 마력.
크기를 짐작해 보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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