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검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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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부대장이 업무를 볼 집무실 책상을 차지한 채로 앞을 바라봤다.
주인이어야 할 세린은 각 잡힌 자세로 업무 보고를 하고 있었고, 내 옆에 클로에가 서 있었다.
……지금 클로에 엉덩이 주무르면 혼나겠지? 찌릿. 클로에가 노려보는 듯한 기분에 시선을 무시한 채로 보고를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큰 문제는 없습니다.”
검문소의 역할은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신분 확인과 범죄자는 그중에 없는지 확인하는 정도. 그 이외엔 통과하는 사람들의 짐을 검사해서 금지 물품부터 시작해 세금을 붙여야 하는 물건이 있는지 확인.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통행증의 확인이면 끝나고, 개인의 물품도 마정석 같은 물건들을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검사하지 않는다.
반대로 상인들의 경우 짐의 확인은 필수적이다. 세금을 붙이거든.
귀족들이라면 증명하는 서류만 확인하고 성에 보고하는 정도로 끝난다.
그 이외의 인물, 모험가라면 길드에서 배포된 서류를 통해 범죄 이력을 확인한다거나 다른 곳에서 사고 치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정도다.
“수배서는 매일 갱신하고 있고, 모험가 길드에서 전달받은 서류도 확인했지만, 이제까지 큰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떠난 지 하루 만에 세작을 잠입시키는 일은 없겠지.”
혹시 모르는 일이라 추가로 사람을 붙이긴 했지만.
“다른 특별 사항은…….”
잠깐 세린의 말이 멈췄다.
이어지는 말이 없자 쓱 바라보니 이걸 말해야 하나 말하지 말아야 하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음…….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 노예 상단이 찾아왔습니다.”
“노예 상단?”
노예.
인신매매.
딱 봐도 안 좋을 것 같은 단어들.
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현대랑 다르게 여기서는 범죄가 아니거든.
노예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관청에 신고해서 평민의 직위를 반납하고 노예가 된다. 그럼 다시 평민의 직위를 찾을 때까지 세금 면제가 된다.
그 세금을 주인이 대신 내지만. 주인의 의무도 꽤 상당하다. 식비부터 시작해 생활비를 지원해야 하고, 월급도 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모은 월급으로 다시 평민의 직위를 찾는 방식이다.
운 좋은 주인을 만난다면 금방 다시 평민이 될 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 뭐, 그러게 세금 좀 잘 내지.
물론 현대랑 마찬가지로 범죄 행위가 되기도 했다.
노예가 되기 위해 신고를 하는데, 이 신고를 하면 노예가 된 평민은 어쨌든, 주인은 노예 대신에 세금을 내야 한다. 물론 평민 때보다 그 금액이 낮긴 하지만, 그 세금조차 아끼기 위해 신고를 하지 않거나, 혹은 다른 영지에서 이미 신고했다는 식으로 문서 조작을 하는 등으로 구매에 필요한 세금을 탈세하는 때도 있다.
또한, 합법적으로 노예가 되는 게 아닌, 납치해서 노예로 삼는 일도 당연히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죄의 형량이 높은 범죄에 속해 있다.
유감스럽게도 태어나자마자 지문을 등록하고 주민등록 번호를 부여하는 디스토피아 코리아가 아니므로, 어디 멀리서 납치해서 노예로 만들면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다.
사람을 사고파는 직업이기 때문에 돈 자체는 꽤 버는 편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노예 상인이라는 게 말처럼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직업의 특성상 필요한 절차들도 일반 상인들보다 많고, 그만큼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
거기에 불법적인 사항이 하나라도 발견하면 말했다시피 죄의 형량도 다른 품목을 다루는 상인들보다 무거운 편에 속해 있다.
그 죄가 확실하다면 적어도 상단주 목이 날아가는 건 확실하고.
그러다 보니 굳이 노예 상인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적고, 하고 싶다고 해도 그만한 자금을 가지고 있어야 해서 노예 상인 자체는 적은 편이다. 물론 적다고 하더라도 희소하다고 할 것까지는 아니고. 여러 번 방문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서류는 전부 확인했고?”
“네. 이상한 점은 없습니다.”
“그럼 문제 될 건 없는 거 아닌가?”
“그, 그렇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특이하면 특이한 일이지만, 드문 편도 아니다. 노예 상인이라,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해야 할 일도 많고… 클로에에 다음 서류를 받고 대충 넘기려고 했다가 잠깐 멈췄다.
지금 내 꼴을 바라봤다.
형수님과 잠자기 위해 중요한 업무를 끝내고, 아침에 조금 빈둥거리긴 했지만, 계속해서 업무를 보고 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지?
다름 아니라 노예다.
이세계 판타지. 특히 미궁물이라면 노예를 구매해서 파티 동료로 삼고 노동력을 탈취하면서 나오는 보물은 모두 자기가 꿀꺽하면서 노예가 여자라면 꼬셔서 같이 섹스를 하는 대상인 그 노예?
나야 귀족으로 많은 사람이 날 시중을 들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거기에 여태까지 노예 상인이 찾아와도 굳이 나에게 말할 정도는 아니라 여태까지 한 번도 못 본 그 유명한 노예 상인을 일이 많다고 해서 포기한다?
지, 지금까지의 나의 좌우명은 어떻게 된 거냐고. 유유자적하게 놀면서 생활하려는 나의 인생이…….
“레, 레오릭님?”
시무룩해질 때, 세린이 건넨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다!
“이럴 때가 아니야!”
“네?”
“……또 무슨 짓을 하시려는 겁니까?”
눈앞에 있는 서류들을 바라봤다. 지금 이게 중요한가!
쾅!
책상을 내려찍었다.
요즘 일을 너무 열심히 했다. 어제 형수님과 불태우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여태까지 매일 놀고 공부만 했는데, 요새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닌가?
“제, 제가 잘못했습니…!”
“어디서 왔지?”
왠지 모르겠지만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세린과 얼굴을 감싸고 있는 클로에를 바라봤다.
노예 상인이 어디서 왔는가! 그건 중요한 일이다.
“그 노예 상단이 어디에서 도착했지? 그 서류가 있을 텐데.”
“네, 넷! 있습니다!”
세린이 각 잡힌 자세로 곧바로 서랍을 뒤지더니 한 장의 서류를 꺼냈다. 그리 급하지 않지만, 어쨌든 빠릿빠릿한 움직임은 보기 좋군.
“그…… 여기! 여기 있습니다! 남, 남서부 지방의 해안 도시 그류튀스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류튀스!”
그 진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닌가?
진주 비스무리한 보석이 있다. 생긴 것도, 만들어지는 방법도 진주랑 비슷한 놈인데. ……진주가 조개에 생기는 것 맞지? 보석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
어쨌든 조개 같은 마력을 가진 몬스터가 체내에 품고 있는 건데, 그 몬스터 가진 마력이 상당하다. 상당하긴 한데…….
분류상으론 가진 마력이 아슬아슬하게 중형급이라, 중형급 몬스터로 분류되는 상당히 위험한 놈이긴 한데, 문제라면 물 밖으로 끌어 올리면 입을 다물고 움직이지도, 공격하지도 않는다.
한 놈을 낚아채서 끌어올린다고 치면, 죽을 때까지 껍질을 부숴서 체내에 있는 진주를 얻는 방식으로 알고 있다.
그 진주가 꽤 쓸만하다. 이쁘기도 한데, 그건 그거고, 마정석처럼 마력을 품고 있는 특성이 있다. 그런 보석과 각종 해산물로 유명한 도시…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어쨌든 지방이 아예 다른 곳이다 보니 자세한 정보가 손에 오지 않는다. 진주가 거기에서만 생산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브랜드 가치가 상당하다 보니 대산맥 아래쪽에 있는 우리 쪽에선 그류튀스 산 진주가 유명하다.
문제가 있다면 그류튀스는 브람스 왕국의 도시가 아니다. ……그래. 나라가 다르다. 국적이 다르다. 국경을 넘어왔다, 이 말이란 말이지.
잠깐 멈칫거렸다. 얼굴을 들어 올리자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짓는 세린과 갸우뚱거리는 클로에가 있었다.
“……아니. 거기서 왜 여기까지 왔지?”
“그, 글쎄요?”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잠깐 흥분했지만, 이 정보에 조금 침착해졌다.
그류티스는 뮐러 너머에 있는 대산맥에서 바다까지 흐르는 거대한 강, 라이니아 너머에 있는 해안가를 따라 길쭉하게 자리 잡은 일종의 섬 비슷한 국토의 작은 나라, 바흔 왕국의 도시다.
“노예를 데리고 여기까지 온다고? 세금이 장난 아닐 텐데?”
노예든 뭐든, 어쨌든 인적 자원이다.
이 시대에 사람의 수, 인구는 중요하다. 마력이 없는 일반 평민이라고 해도 단순 노동력이 된다.
“원래 바흔과 브람스 사이를 교역하던 상단 같습니다.”
“그런 놈이 여기까지 오나?”
바흔과 브람스 사이의 거대한 강이 있다. 그 때문에 예전부터 바흔에 침략하기 어려웠다. 강폭이 워낙 컸어야지. 군대를 이끌고 가기도 어렵고, 저쪽에서도 넘어오기 어려웠다.
거기에 바흔에 거기까지 정복할 가치가 있나 하면, 그 정도는 아니었고. 다만, 강폭이 크다고 해서 교역하는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라 예전부터 교류는 적지 않게 있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노예를 데리고 여기까지? 사람이라는 상품을 싣고 여기까지? 그동안에 드는 식비부터 시작해 소비되는 금액도 상당할 텐데.
“수상한데.”
“아직 대기소에 머물고 있습니다. 붙잡을까요?”
내 말에 세린과 클로에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한 마디면 그 상단 사람들을 붙잡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음.
“그렇군. 일단 가볼까.”
“직접 가시겠습니까?”
명령을 내리면 끝날 일이긴 하지만.
솔직히 궁금하다.
노예 상단이 몇 번 프란츠에 방문한 일이 있지만, 우리가 신경 쓸 사업도 아니고. 납치라도 했다면 모를까, 그런 놈은 없었다.
“응. 노예 상단은 처음이거든. 궁금하잖아?”
“그, 그런가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세린을 보고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수상하긴 하지만, 남서부 지방 사람들이 왔다는 소리는.
“남서부 지방에 미인이 그렇게 많다는데.”
“……하아.”
우효오오오! 바다의 나라에서 온 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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