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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42화 (42/143)

〈 42화 〉 검문 ­ 2

* * *

남부 지방은 프란츠나 보랭이 제일 큰 영지다.

대산맥 아래의 프란츠나, 수도로 향하는 길목을 차지하고 있는 보랭. 이 두 영지가 남부 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우리 말고 다른 영지도 꽤 있다. 더 아래에 내려가면 바다도 있고, 뮐러 영지 너머에도 큰 강이 있고.

다만 프란츠, 우리 같은 경우엔 영지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해도, 워낙 군사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던 성향이 있어서 그럴까, 항상 주변을 살피면서 언제나 빈틈을 노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적이 많다. 옛날부터 꽤 많았다. 아버지처럼 귀족의 전통, 명예를 중요시하는 귀족은 아직도 우리와 반 적대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을 정도니까.

아무리 백작급이라고 해도 한 손으로는 열 손을 막기 어렵다고, 쉽게 패배할 생각은 없지만, 영지를 가진 작위를 가진 귀족이 다수 덤벼든다면 우리라도 어렵다. 그나마 보랭 가문과는 할아버지 시대부터 여러 번 등을 맞댄 적이 있는 일이 많아서 꽤 친하게 지내고 있고, 윌리엄 백작님도 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서 믿을 만한 사람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한 적은 없지만….

그런 프란츠와는 다르게 보랭 가문은 주변과 친목을 많이 다지는 편이었다. 특히 가문의 특성이라고 해야 하나, 보랭 가문의 사람 대부분 활발한 사람이 많다.

보랭 가문은 친목을 다지거나 연회를 여는 것을 좋아하는 가문이라 남자나 여자 가리지 않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술도 강한 편이라 남부 지방에 예전부터 내려온 말 중 하나가 오죽하면 보랭 사람 앞에서 술 자랑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거기에 수도랑 통하는 제일 큰길을 차지하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아마 영지 자체는 남부 지방에서 보랭이 제일 크고 활발하지 않을까?

거기에 보랭 가문의 특성과 어울려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무도회나 연회를 열 정도고, 다른 귀족들도 자주 보랭에서 모임을 열 정도다.

지금 생각해서 깨달았지만, 프란츠랑 보랭은 완전히 아싸랑 인싸인데….

잠깐 딴생각을 할 때, 클로에가 조금 전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 외출 이야기?

“제가 알기론 4번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또 어디에서 들었데?”

“레나님에게서 들었습니다.”

으음. 하긴 클로에는 최측근이니 나에 관한 정보는 숙지하는 건 당연한가. 하지만 4번은 아닐 건데……. 아니, 맞다. 3번은 아니다. 작은 모임을 몇 번 갔다.

물론 그래 봤자 두 자릿수도 되지 않지만.

“보랭의 연회나, 수도에서 일어난 행사로 간 적이 있었지.”

“수도.”

잠깐 클로에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의왼데. 얘도 이런 데 관심이 있나. 하긴 젊은이들에게 수도는 일종의 핫 플레이스……는 어감이 이상한데. 수도니까 아무래도 서울 같은 거겠지만. 그래도 프란츠도 프란츠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난 이쪽이 더 좋은데.

수도는 사람이 많아서 머리가 어지럽다. 프란츠와 비교하면 인구 자체는 비슷하겠지만 행상인 같은 유동 인구의 수가 꽤 차이가 나지. 보랭도 그거로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니까.

“수도에서 천하제일 무도대회가 있다는 거, 사실입니까?”

“으응?”

그런 게 있어……나?

말문이 막혔다. 아니, 궁금한 게 그거야?

“모든 기사가 꿈꾸는 대회! 한스 기사단장님도 참가해서 우승했다는 사실로 유명합니다. 예전에 중지했다고 들었는데 다시 열린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 그래?”

눈을 반짝거리는 게 진짜로 거기에 관심이 있나 보네. 근데 무도대회면 마력 차이 때문에 체급 차이로 불리하지 않나? 내 말에 클로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물론 그런 경우를 대비한 규정이 있습니다.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같은 양의 마력이 저장된 마정석만을 이용해 참가자의 마력 제어 능력과 검술 능력을 다루는 규칙입니다.”

“아…. 그런 식으로 쓰는군.”

마정석을 그런 식으로 쓰네. 일단 쓰면 쓸수록 내구도가 심각하게 떨어질 건데. 수도에서 펼쳐지는 대회라 그런가?

“물론 무제한 룰도 있습니다!”

그건 좀.

작위 귀족이 참가하면 밸런스 붕괴겠네.

……말이 헛나왔네.

“어쨌든 레나가 말한 건 가문에서 여는 어느 정도 대규모 연회에 대한 것만 셈한 걸걸. 보랭에서 열리는 작은 모임은 몇 번 더 참가했어.”

“그렇습니까? 의외입니다. 그럼 친목을 다지는 귀족분이 있으십니까?”

이건 의외인 듯, 클로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봤다.

내 최측근까지 이런 생각 하고 있다니. 쇼크다.

물론!

“없지…….”

“하.”

클로에의 차가운 눈이 마음을 쑤신다. 어차피 귀찮아서 그런 거겠지, 하는 눈빛이다. 너무하네. 아니, 귀찮은 건 맞지만, 그래도 귀족으로서 친목을 다지긴 다졌다고?

“일단은 이리나양이 열었던 모임에는 몇 번 참가했지. 아마 그때 만난 귀족이 몇 명 있긴 한데, 친하다고 할 수는 없고.”

겨우 영애가 여는 작은 모임이다. 열 명도 되지 않았던 작은 모임이다. 가끔 인원이 바뀌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적은 수였다. 참가하는 귀족 일원도 남부 지방에서 잘 나간다는 가문들의 직계였고. 나이도 비슷했지. 아마 내가 위에 속하는 편일걸.

지금도 생각나네. 그땐 아직 어렸지……. 그때는 귀찮아해서 잘 상대하지 않았던 게 기억났다. 그래도 나름 통성명은 했고. 이름도……. 음. 여자들만 기억나네.

“이리나양이라면, 이리나 보랭입니까?”

음. 이리나 보랭.

잠깐 딴 생각할 때, 클로에가 한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귀여운 아가씨지.”

언약이긴 하지만 가문이나 주변 상황을 봐서 거의 이리나 보랭과 약혼이랑 다름없는 관계였고 서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친분을 유지했었다.

보랭 가문의 사람들이 특성을 생각하면 피곤했다. 이리나양이야 당찬 아가씨라 오히려 귀엽게 바라봤지만, 윌리엄 백작님은……. 만날 때마다 술을 권해서 어렸을 땐 어떻게든 피했었는데 결국 잡혀서 술 마신 적도 있었다. 어린 몸에 곧바로 취해서 뻗어버렸고, 다음 날 숙취로 죽을 뻔했다. 젠장.

“이리나 보랭…….”

클로에가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약혼자……는 아니었죠?”

“엄밀히 말해선 아니지만….”

아버지도 보랭과 그렇게 급하게 결혼할 이유는 없으니 생각해보라고 했고. 근데 뮐러를 생각하면 아마 확실히 결혼할 것 같기도 한데.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안 만났나?”

“제가 어떻게 만나보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클로에도 기사가 된 지 얼마 안 됐고, 프란츠에서 쭉 있었으니까. 이리나양이 여기에 온 적도 없고.

“어떤 분입니까?”

“으음.”

클로에 말에 잠깐 고민했다. 몇 번 만나본 적 없긴 하지만, 일단 약혼자 비스무리라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했었다.

“나보다 어렸지만, 당찬 아가씨였지. 이제 많이 컸을걸? 푸른색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인상적인 아가씨야. 어린 나이에도 내 눈을 보고 또박또박 말하던 모습이 기억나네. ……잠깐 성인식이 있겠는데?”

씁. 생각해보면 성인식이 있다. 날짜 계산을 해야겠는데.

설마 전쟁 중에 하진 않겠지? 자리를 비운다고 크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 움직일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거다. 잘하면 이거 내가 대표로 갈 수 있겠는데?

우리야 성인식은 안 하지만, 어쨌든 사람을 초대하는 계기가 되고 자신들의 후계자를 소개해서 인맥을 다질 기회니까 다른 가문에서는 대부분 하는 편이다.

당연히 보랭이라면 무조건 할 거고.

“……아니, 아슬아슬한데.”

전쟁이 언제 끝날지가 문제군. 일단 작전에선 추수가 끝날 때쯤으로 생각하고 있긴 한데.

“참석해야겠군요.”

“하.”

클로에의 말에 한숨이 나왔다.

전쟁이 끝나면 형님은 뮐러에 남을 거고, 그러면 아버지는 돌아오겠지만, 전쟁을 직접 지휘하신 분에게 곧바로 또 나가라고 할 수는 없고. 내가 가는 건 확정이겠네.

보통이라면 편지랑 선물로 끝내거나, 아니면 형님이 참가하니까….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만? 약혼녀랑 만나는 기회인데, 짓는 표정이 조금 불쌍해집니다만…….”

클로에가 그렇게 말할 정돈가….

아니, 이리나양이랑 만나는 건 별로 상관없긴 한데. 오히려 미소녀랑 만나는 건 좋지. 문제라면 여행길이다.

솔직히 영지 밖을 나가는 건 불편한 일밖에 없어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시중드는 사람이 많으니 일반인들과 비교할 수도 없이 편안한 일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밖이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마차의 기술력이 아무리 좋아도 한계가 있고, 벌레도 나오고. 씻는 것도 목욕탕에서 못 씻고.

내가 전생에서도 등산이나 캠핑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했는데.

­덜컹!

이야기하는 사이에 덜컹거리는 마차가 슬슬 외성에 가까워져 갔다. 모험가 길드보다 더 먼 곳. 천으로 살짝 가린 창문 너머로 사람들을 바라봤다.

“아, ……성인식은 다음에 생각하지.”

“뭐, 저는 상관없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내가 가면 너도 가는데. ……뭐, 그건 그렇고.

­끼익!

“도착했습니다.”

“그래.”

클로에의 말에 밖을 바라봤다.

거대한 성문을 통과하는 수많은 인파가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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