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검문 1
* * *
“으음.”
언제나 느끼는 푹신한 침대의 감촉에 눈을 떠야 했지만, 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손을 들어봤다.
따스한 체온을 가지는 사람이 내 품 안에 있었다. 눈을 뜨고 내려다보자, 천사가 있었다.
“으음…, 레오. 벌써 아침이에요?”
“네, 그렇네요.”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에 인상을 찌푸린 그레이스 누나의 눈썹을 손가락으로 풀리도록 어루만졌다. 내 손길에 얼굴을 가슴에 묻으며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더니 그대로 내 품에 안겨 왔다. 그런 누나의 허리에 손을 얹어 꽉 껴안으며 누나의 따뜻한 몸을 만끽했다.
완벽한 밸런스로 솟아오른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그리고 다시 엉덩이까지. 완벽한 라인을 그리는 몸매에 손을 올려서 천천히 어루만졌다.
“일어날 준비를 해야 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계속 내 가슴에 묻는 거 보면 그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사실 이대로 있어도 큰 문제는 없으니 상관은 없지만.
내 가슴에 기댄 채로 누운 누나의 허리를 붙잡고 내 위로 올렸다. 그 상태로도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내 품에 안긴 누나의 엉덩이를 붙잡았다. 내 가슴에 풍만한 가슴이 압박하고, 내 정액으로 더럽혀진 누나의 다리 사이의 감촉이 내 허벅지를 문지르며, 내 종아리를 누나의 두 다리가 얽혀 들어왔다.
“사렌… 물….”
“사렌은 없는데.”
“사렌이 없어요? 왜요……?”
어젯밤 몇 번이나 가버리게 해서 그런가. 꽤 피곤했나 보다. 아직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다들 일어날 시간인데 아직도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잠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 날엔 곧바로 일어나서 한 판 더 하고 그대로 헤어졌으니, 이런 누나는 처음이다. 긴장이 풀린 모습을 보이는 건 이제 나에게 긴장을 풀렸다는 뜻일까.
“그야 형님 따라 밖에 나갔으니까요.”
“왜에요? 나 내버려 두고….”
그레이스 누나의 뺨이 내 가슴에 비비적거린다.
“그러게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으응… 레오가? 그렇네요, 레오가 있었네요.”
누나의 팔이 내 목을 감싸며 올라왔다. 누나가 웃으면서 눈을 서서히 떴다. 푸른색 보석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며 날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한가하게 보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중요한 건 미리 끝냈고, 나머진 가신들이 알아서 할 거예요.”
프란츠 가문과 비슷하지만, 좀 더 화사한 느낌의 금발. 누나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줬다.
“그보다, 인사는 없어요?”
“레오도 참.”
내 말에 그레이스 누나는 웃으면서 입술에 키스했다.
가볍게 입맞춤을 나누고 천천히 떨어진다.
“어머나.”
누나가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랐다. 뭐 때문에 놀랐을까.
엉거주춤, 자세를 바꾸더니 입가에 미소를 그리면서 날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속에 뭐 숨긴 거 있어요?”
다 알면서 요망하게 웃는 이 유부녀를 어떻게 할까.
피식. 나도 웃으면서 껄떡대는 내 물건으로 누나의 다리 사이를 툭툭 건드렸다.
“음, 딱히 숨긴 건 없는데. 누나가 맞춰보세요. 이게 대체 뭔지.”
“정말, 레오도 심술궂다니깐.”
눈웃음을 그리며 누나가 천천히 이불을 덮어썼다.
내 몸 위에서 이불로 얼굴만 남기고 감싼 누나는 날 보며 웃으며 바라봤다.
“그럼 뭘 숨겼는지 알아봐야겠네요.”
“그럼, 잘 숨겨야지.”
그렇게 말한 누나는 곧바로 이불을 덮고 아래로 내려갔다.
* * *
“여기 차입니다.”
“으음. 고마워.”
클로에가 전해주는 차를 마셨다. 네리아가 차 담당이긴 한데, 다른 일도 있고……. 업무 중에는 클로에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기도 했다. ……음?
“이거 그 차가 아닌데?”
“피로 해소에 좋은 차입니다.”
……윽. 쓴 냄새가 난다.
인상을 찌푸리자, 클로에가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옛날 엄마가 줬던 흑마늘 진액이 떠올랐다. 그것보다 덜 하겠지.
“으음.”
조금 쓰다.
아니 많이 쓰다. 으엑. 혀를 내밀었다.
“다, 단 거….”
“여기 있습니다.”
결국, 클로에가 준비한 쿠키까지 먹었다. 입안이 아직 씁쓸한 것 같았다. 껄끄러운 입안에 쿠키를 하나 더 먹으며 서류를 보다가 문득 시선을 느껴서 고개를 돌리니 내 모습을 클로에가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아침부터 건강하시더군요.”
“음, 그렇지.”
아침부터 점심까지, 결국 질리도록 했다.
아니, 사실 아직 안 질렸다. 더 하자면 할 수 있지만, 아무리 사이가 좋다고 해도 가꾸는 시간을 주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라며 그레이스 누나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래도 이제부터 자주 만날 수 있겠지. 어쩌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함께 자도 문제없을 거다.
첫날엔 성교육을 받았다지만, 제대로 했는지 레나에 확인도 해야 할 겸 그렇게 쫓겨났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없고.
형님 눈치를 보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형님이 있으니 만나기 어렵지만 이제 형님도 없겠다, 시간 날 때 자주 만나도 문제없고.
“내가 한 건강하잖니?”
“프란츠 백작 가문의 혈통에선 드문 일이라고 하네요. 이 정도로 활발하신 분은…….”
“다른 곳은 꽤 흔한가?”
듣기로는 막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듯한 그런 사람도 있긴 있다고 하더라. 단지 카더라 소문이고 확실히는 모르겠다.
성욕이 드문 건 사실이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고. 의무방어전 관련의 농담은 여기서도 통한다.
“글쎄요…. 저도 자세히는. 주변 동료의 말로는 프란츠 쪽 혈통이 좀 유별나게 성욕이 적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대가 좀 힘들었지.”
족보나 가문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보면 핏줄이 끊길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피 말리는 전쟁에서 어떻게든 혈통을 유지한 걸 보면 선조님들이 대단하긴 대단해.
애초에 핏줄에 마력이 유지된다는 것도…… 조금 수상하다. 프란츠야 혈통 자체가 얼마 없다고 해도 다른 곳에는 꽤 핏줄이 퍼졌을 건데. 물론 그래서 모험가들이 있는 거겠지만….
애초에 이 세계는…….
“아, 샬롯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아니랍니다. 상심 중인 샬롯을 네리아가 달래는 중입니다."
샬롯은 얼마 전에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잠깐 쉬었다. 혹시 임신일까 했지만, 아니었던 것 같았다. 사실 나와 함께 잔 사람에게 약간의 조짐이라도 있다면 곧바로 몸 상태를 확인한다. 마력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초기에는 마력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린다고. 만약 유산이라도 된다면 그 충격으로 내가 고자가 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없애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베아트리체, 니냐와 사샤. 그 세 모녀도 일단 평소처럼 활동하지만, 나와 관계를 계속할 거면 활동량을 줄이라고 했던가. 생기면 낳아도 되냐면서 기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그레이스 누님에게 몇 번, 샬롯과 네리아에도 했고. 베아트리체 모녀에게도 했고. 아직 아무도 임신을 안 했다. 딱히 피임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이제 슬슬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뭐, 임신이란 게 원하는 사람은 잘 안되더라도 갑자기 한 번에 되는 게 사람 인생이니. 언젠가는 되겠지.
그것보다 누나에게도 말했듯이 중요한 업무는 미뤄뒀다고 해도 슬슬 다시 시작할 때가 됐다.
아버지와 형님 모두 떠났으니 이제 내가 중요한 업무는 처리해야 한다.
대부분은 가신들이 알아서 정리하지만.
“그럼.”
가신들에게 받은 서류를 대충 확인하고 넘긴 후, 이후의 일정을 살펴봤다. 별다른 내용이 없는 거 보면 대충 싸인만 하고 넘겨도 될 것 같다.
“클로에?”
“네.”
문밖에서 대기하던 클로에가 들어왔다.
“남은 서류가 뭐야?”
“이후로는 있는 대부분 서류는 저와 지크님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
흠. 그렇단 말이지.
책상 위 서류를 훑어봐도 중요한 안건은 없고.
그럼 나갈까.
“마차를 준비해. 성문으로 간다.”
“성문 말입니까?”
“음. 순찰 한 번 돌자.”
어떤 간 큰 놈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 * *
프란츠 영지는 2개의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성과 내성이다.
거대한 성벽으로 구성된 외성의 밖에는 밭을 비롯한 거대한 토지가 필요한 시설들이 주로 설치되어 있고, 성벽 가까이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건물이나, 성문이 닫힌 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휴게소 같은 건물들이 몇 개가 모여있다. 휴게소 느낌이려나?
외성 자체에는 주로 병사나 경비대,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기사들이 숙식이나 훈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외하면 공성 무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자재들이 쌓여 있고, 그 안쪽에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가둬놓는 감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외성 안으로 들어오면 여기서부터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영지민들이 생활하는 공간이자 실제 프란츠가 통치하는 땅.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내성, 프란츠 성이 존재한다.
솔직히 이 넓은 도시를 다 돌아보는 것도 일이긴 했다. 현대라면 차로 돌아다니면 끝날 일이지만, 이 세계는 마차로 돌아다녀야 하니까.
아니면 마력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면 금방 끝나기는 하는데, 그건 나처럼 마력이 많은 놈만 되는 일이고.
달그락.
덜컹거리는 마차를 타고 외성으로 향한다.
마차에 그려진 문양, 깃발로 인해 이 마차가 프란츠의 핏줄을 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린다. 그리고 이 땅에 그런 사람은 딱 1명 밖에 없다.
“둘째 도련님이야.”
“어머, 정말로 밖으로 나오시네.”
“소문으로는 엄청난 미남이래.”
“귀족분들의 모임에서도 안 나가시는 분이라던데, 어떤 분일까?”
음.
달리는 마차에서도 강화된 청력으로 밖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솔직히 이것만 들으면 내가 무슨 히키코모리 같잖아.
“뭐, 틀린 건 아니잖습니까?”
“너무한데.”
클로에의 말을 부정했다.
밖을 잘 안 나가는 것뿐이지, 그래도 나가야 할 곳은 나갔다. 보랭 가문이 주체하는 연회라던가, 나라의 수도 브람스에 있던 연회라던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