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36화 (36/143)

〈 36화 〉 교섭 ­ 4

* *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트레인 뮐러와 장남이 보낸 사신도 떠난 후, 가신들이 정리해서 올라온 보고서를 확인한 후, 셋만 남은 집무실에서 형님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변한 건 없겠지.”

서류를 살펴본 아버지가 바뀌는 것은 없다며 그렇게 말했다.

뭐, 트레인 뮐러나 장남의 사신이 보낸 거나 프란츠 가문에서 뿌린 사람들이 들고 온 내용이나. 각자의 관점에서 나오는 차이는 존재하지만, 내용은 그다지 바뀐 것은 없었다.

티르손 뮐러가 강압적인 정책을 내고, 그에 반발한 티르우스 뮐러와 내전이 일어났다.

“우리가 할 일은 바뀌지 않았다. 우리의 군은 뮐러를 짓밟을 것이다.”

전쟁 자체는 일어난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군은 소집되었다. 직업 군인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란츠 가문의 사병과 기사들의 준비는 이미 끝났다. 이제 움직임을 숨길 필요도 없으니 보다 신속하게 출병 준비가 끝나가며 당장 출병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

다른 영지가 움직인다 해도 이젠 늦었다. 보랭 가문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차남의 세력은요? 이용할 가치는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자작급 마력 보유자가 들어오는 거니, 가치는 있겠지.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내 질문에 형님이 고개를 저었다.

자작급 마력, 티르우스 뮐러의 힘은 분명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적을 얕보며 방심하는 것도 멍청한 일이지만, 머릿속의 적을 미지와 공포로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것도 더욱 미련한 짓이다. 장남과 차남의 세력이 하나가 되든, 서로 따로 나와 각개격파를 하든, 우리 군이 할 일은 하나뿐이다.”

아버지가 집무실 구석에 배치해 놓은 와인을 꺼내왔다.

항상 마력으로 온도를 유지한 채로 보관 중인 와인을 한 잔 따르며 음미한다.

평상시 우리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진 않지만, 오늘은 조금 기분이 바뀌었나 보다.

“그들은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조아리고 있으면 된다.”

전력을 다한 뮐러 영지도 아버지의 군세와 비교하면 차이가 난다. 그들을 얕보는 게 아니라, 워낙 그런 기질이 강한 곳이라 그렇다. 뮐러도 약한 편은 아니겠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아버지와 형님이라고 해도 등 뒤의 일격은 위험하니까.

술을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형님과 함께 지켜본 뒤, 마지막 용건을 말했다.

사실 지금 일어난 일은 나랑은 별 상관없었다. 전쟁이니 항복이니 하는 건 뭐, 전쟁에 나서서 군대를 지휘하는 아버지와 형님이 알아서 할 일이고. 솔직히 전력을 다하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도 아니니 내가 신경 쓸 것도 없고, 중요한 건 트레인 뮐러가 마지막에 낸 조건이었다. 차남 티르우스 뮐러의 딸, 트리아나 뮐러를 첩으로 맡기고 싶다는 이야기다.

내 말에 아버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려운 이야기군.”

“역시 그렇습니까?”

귀족에게 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자식이 2명 정도 된다면 굳이 첩으로 삼지 않아도 되었다. 거기에 나는 보랭 가문의 딸인 이니스 보랭과 각 가문의 주인인 아버지들 사이에서 이미 약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상태다.

거기에 전에 이야기 한 뮐러의 성을 계승 받는 이야기가 있었다. 딱히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 일이긴 한데, 내 생각엔 뮐러의 땅을 그대로 얻은 후, 이니스 보랭에 뮐러의 성을 물린 후, 그대로 결혼시키는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

이니스 뮐러 보랭같이. 미들 네임에 뮐러의 이름을 계승시킨 후 그녀와 결혼해서 차후에 일어날 계승 문제를 없애고, 다른 가문들에게 명분을 주지 않으려는 목적.

“그렇다면 명분을 위해서라도 뮐러의 핏줄을 전부 없애야 합니다.”

옛날 지구에서 했던 게임이 생각났다. 없는 명분은 꾸며서라도 만들어낸다. 그런 기억에 보면 뮐러 가문, 특히 직계라면 차남의 딸, 트리아나 뮐러 역시 처리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흐음…….”

잠시 아버지가 입을 다문 채로 생각에 빠졌다.

조용해진 집무실에서 형님을 한 번 힐끔 바라봤지만, 형님은 어깨를 으쓱하고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생각이 끝났는지 아버지가 나를 바라봤다.

“레오릭. 요새 누구를 데리고 다닌다고 했지?

“예?”

멀뚱멀뚱.

아버지를 바라봤다. 누구를 데리고 다닌다니.

나에게 붙인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저의 측근에서 경호 겸 일을 보좌해주는 클로에 트리스탄. 그리고 형님이 붙여주신 지크 펠라스트가 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흠. 그 둘이 전분가?”

“네. 물론 다른 일을 도와주는 가신들도 있습니다만, 가까이서 저를 보좌해주는 건 이 둘입니다.”

“……지크?”

형님이 잠깐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지만, 사소한 일이겠지. 어쨌든 내 보고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신들을 제외하고는 누가 있지?”

“음……. 일단 레나를 비롯해 직속 하녀인 2명이 저를 시중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출할 때에는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 이자벨도 눈치도 빠르고, 경험도 풍부한지 의외로 잡다한 지식이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라 자주 데리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 이외는…… 별로 없군요.”

창관 거리의 베아트리체 쪽은 같이 다닌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내 허락도 받았겠다, 뮐러 영지에서 가게를 낼 때를 대비해 사람을 뽑고 교육한다고 바쁘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그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적군.”

“그렇습니까? 나중에 쌍둥이도 찾아옵니다만.”

“그걸 합산해도 그렇다. 흠.”

형님을 보니 형님도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솔직히 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일을 돕는 건 클로에나 지크만으로 충분했다. 두 명이 알아서 가신에게 일도 시키고 있고.

“그럼 시녀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지.”

“트리아나 뮐러를 말입니까?”

“그래. 싫나?”

으음. 아버지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조금 꼴리지는 않는다. 여자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만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네가 성욕이 조금 덜하면 첩으로 삼는 것도 문제없겠지만, 네 성욕을 생각하면 이리나 보랭과 결혼하기 전에 아이가 생길 것 같고…. 하녀나 기사 상대로 생기는 건 별문제 없겠지만, 과연 자작급 마력 보유자 사이에 생기는 건 이후에 귀찮아지겠지. 그걸 제외한다고 해도 보랭 쪽에서 좋아하지 않을 것 같구나. 윌리엄 백작이야 신경 쓰지 않겠지만.”

으으으음!

그것도 그런가. 아버지에게 성욕 문제로 이야기의 주제가 되는 건 조금 그렇긴 한데. 변명할 순 없군.

“일단 티르우스 뮐러에겐 딸은 살려서 시녀나 첩으로 삼는 정도는 괜찮다고 전하고, 이후의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에 결정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네.”

아버지의 말에 형님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부우우우우우!

뿔피리가 울렸다.

전쟁을 고하는 신호.

프란츠 성 아래, 넓은 대로에 정렬된 군대가 있었다.

각 잡힌 프란츠의 군대가 마력으로 강화된 발로 땅을 박찬다.

­쿠우웅!

뿔피리와 함께 도시에 울려 퍼지는 거대한 소리.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영지민들이 동시에 꽃가루를 하늘에 뿌렸다.

“와아아아아!”

“황금 사자에 승리를!”

“전쟁에 영광을!”

“프란츠에 번영을!”

승리와 영광. 그리고 번영. 프란츠를 상징을 외치며 수많은 사람의 함성 속, 꽃가루가 가득 피어오른 하늘 아래의 군대의 모습은 마치 축제나 영화에서 본 듯한 모습처럼 장엄한 모습을 보였다.

그 군대의 선봉.

평소와 달리 무장한 모습을 보인 아버지와 형님의 모습이 보였다.

꽃가루가 뿌려지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프란츠의 군대.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레이스님. 괜찮으십니까?”

“…레오릭님. 오랜만입니다.”

누나니 뭐니 불렀지만, 과연 주위에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할 말은 아니다. 성벽에서도 더욱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물린 채 단둘이 서서히 멀어지는 프란츠 군대를 지켜봤다.

“알고 계시겠지만, 그리 큰일은 없을 겁니다.”

“후후.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버님과 아이단님을 믿고 있으니까요.”

그레이스 누나 역시 예복을 입은 채로 나타났다. 양산을 든 채로 가련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군대를 지켜보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결국, 임신은 안 됐군요.”

“네. 어쩔 수 없죠. 하룻밤뿐이었으니.”

쓴웃음을 지었다.

그 날 하고 나서 결국 그레이스 누님을 찾아가는 일은 없었다.

솔직히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아버지와 형님이 허락한 일이라고 해도 자주 찾아가는 건 좋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형님이 전쟁으로 떠나기 이전에 임신했으면 좋았을 텐데.

“유감입니다.”

“아니요. 무사히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떠나는 누나의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형님의 곁에는?”

“밀레느와 사렌. 전부 함께 떠났습니다.”

“사렌까지? 괜찮습니까?”

사렌은 그레이스 누나의 시녀일 텐데.

“그녀도 저와 같은 핏줄이니까요.”

아, 방계긴 하지만 그레이스 누나와 같은 가문 출신이었던가.

“혹시 모르죠.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사렌에게 생기는 게 그나마 나은 일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누나의 표정은 괜찮아 보이진 않았다.

조금 서글픈 표정에 나 역시 기분이 안 좋아졌다.

일단 난 그레이스 누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결국 전쟁 전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니까.

잠깐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오늘도 보름달이군요.”

“……그렇군요.”

내 말에 그레이스 누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그 날부터 한 달이 지났다. 임신이 그나마 잘 된다는 미신이 있는 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한 그레이스 누나가 날 흘겨봤다.

날 보는 시선에 굳이 여기에서 그런 말을 해야 하겠니? 같은 눈빛이긴 한데, 그런 누나의 눈썹이 살짝 휘어진 걸 보면 남 말할 처지는 아니다. 누나의 근처에 살짝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밤 찾아가겠습니다, 누나.”

“……나쁜 아이네.”

그렇게 말하는 누나도 슬그머니 웃었다.

남편이 전쟁으로 떠나는 날에 바람난 여자의 얼굴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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