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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35화 (35/143)

〈 35화 〉 교섭 ­ 3

* * *

­달그락!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릇들이 떨리면서 생기는 소음을 시작해, 방의 물건들이 덜커덕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보다 빨리.

순식간에 몰아치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의 전조를 눈치채고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아이단 형님이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의 짙은 금빛 눈동자에 아른거리는 금색 마력. 그로부터 시작되는 아지랑이 같은 마력이 아버지의 몸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단 형님의 말에 아버지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한다.

그 행동 하나에, 방 안에 가득 찬 마력으로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나와 형님은 괜찮지만. 실제로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 하나 있다.

“크윽……!”

압도적인 밀도. 무게가 없어야 할 마력의 흐름에 거의 반실신 상태로 소파에 쓰러진 트레인 뮐러의 상태를 살폈다. 소파에 쓰러진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지만, 다행히 몸에 문제는 없어 보였다. 조치를 해줘야 할까 고민했지만, 너무 손을 빌려주는 것도 민폐겠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에 가까이 다가가 커튼을 들어 밖을 바라본다.

올려다본 낮의 푸른 하늘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태양이 져서 생기는 저녁노을처럼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금빛으로 물들어간다.

그 노을이, 도시의 하늘 위에 펼쳐졌다.

황금 사자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황혼처럼 붉고 노랗게 물든 하늘에 한 마리의 황금 사자가 승리와 번영을 불러온다는 이야기.

금빛으로 물든 아버지의 모습은 옛 전설이나 신화에 나올 듯한 모습이다. 옛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신이나 신의 사자로 생각해 경외를 모아 신처럼 모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눈에 마력을 집중해 도시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니 가관이었다.

도시에 살아가던 모든 평민이 평범하게 보내는 일상이 멈췄다. 모든 활동을 멈추고 무릎을 꿇어 빌기 시작한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지금 이 현상이 누가 일으켰는지를.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자신들의 주인의 것인 것을. 공포와 경외심을 품어 나이가 든 노인들은 이미 없어진 황금 사자의 기도문을 외우며 그저 이 분노가 사라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

망했구먼.

“아버지. 진정하십시오.”

“……후우.”

한 번 더 부른 후에야 한숨을 쉬며, 아버지가 마력을 가다듬었다.

그때가 돼서야 노랗게 물든 하늘이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는다.

아직 장남 쪽의 가신이 성에 있을 텐데.

뭔가 눈치챌 수도 있겠군.

“순간 열이 났군. 미안하네.”

“쿨럭, 큭…! 아, 아닙니다…!”

최대한 태연한 척 트레인 뮐러가 정신을 차리며 답했지만,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공포심이 느껴졌다.

사실 나도 아버지의 진심을 보는 건 오랜만이다. 역시 대단하네. 아버지를 바라보면 일단 진정하신 것 같았다.

형님을 바라보고 회담의 장소를 가리켰더니, 고개를 저었다. 과거도 아니고 일단 사신으로 영지에 찾아온 이상 몸의 안전은 보장해줘야겠지.

쓴웃음을 짓고 아직도 화를 내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귀족다운 것을 선호한다.

아주 먼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지키며 영지를 다스리는 삶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아버지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핏줄에 대해 엄청난 자긍심을 품고 있다.

아버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귀족에 대해서 그 나름대로 존중을 해준다. 설사 격이 떨어지는 상대라고 할지라도, 아버지 나름의 예의를 갖춘 행동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만이 아닌, 아버지 자신의 몸에 있는 프란츠 가문의 혈통에 대한 자긍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혈통의 자긍심을 높이 사는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행위가 바로 스스로 그 격을 떨어트리는 행위.

인간 목장, 강제 교배, 품종 개량…… 등등.

“아직도 그딴 짓을 하는 놈이 있다니.”

아버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과거, 전쟁의 시대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패배할지언정 가문에 대한 명예를 지키는 귀족이나 상대의 가문 아래로 숙이는 귀족이 있었다면, 명예와 체면을 모두 버리고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자들.

아버지가 제일 혐오하는 타입이다.

“……그 일이 일어난 후, 본격적으로 내분이 시작됐습니다. 가주님도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고 그 이후 후계자 자리를 박탈했습니다. 문제라면 그 후, 병의 증세가 심해져서 곧바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타이밍에서 갑작스럽게 죽었다.

이것도 의심스럽지만, 증거 같은 건 없겠지. 애초에 설명으로만 들은 장남 티르손 뮐러는 신경 쓰지 않을 것 같고.

“하지만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겠군요. 더군다나 선대 가주도 돌아가셨다고 하니.”

“네. 실제로 그 이후로 장남파와 차남파의 치열한 투쟁이 시작됐습니다. 물론 대놓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세력의 크기는 차남, 티르우스 뮐러 쪽이 더 컸다. 티르손 뮐러의 통치에 불만이 생기거나, 재산을 실제로 빼앗긴 쪽이 된 가신들이 차남파에 붙었다.

하지만 원래 티르손 뮐러가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력 때문이다.

“개인의 무력은 티르손 뮐러가 유리했습니다. 실제로 그 때문에 본격적인 내분이 시작되자 장남파로 넘어간 가신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예 대적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내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길어졌고, 아슬아슬하게 감췄던 영지의 분위기를 결국 프란츠가 알아차렸다.

프란츠의 행동을 눈치챈 뮐러는 장남과 차남이 각각 따로 사신을 보낸 게 오늘날의 이야기였다.

“과연. 잘 알겠습니다.”

트레인 뮐러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뮐러의 땅을 얻으려는 우리 관점에서 특이한 내용은 없다. 차남이 보낸 사람이 티르손 뮐러에 대해 좋은 내용을 말할 리가 없겠지. 적대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니 적당히 거르면서 들어도 충분했다. 차후 장남이 보낸 사신과 만난 가신이 올릴 보고서와 비교해서 사실 확인을 하면 되는 일이다.

문제라면 마지막 그 교배 일인데. 이 부분은 진짜라면 티르손 뮐러는 아버지의 손에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

그 이후의 일이 문젠데, 티르손 뮐러를 죽였다고 해서, 그럼 수고했다, 우리는 철수한다. 그럼 영지를 잘 통치해라. 그걸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티르우스 뮐러 역시 귀족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건 사실이니 명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티르우스 뮐러님을 비롯한 저희 차남파는 항복하고 싶습니다.”

“흠.”

항복.

그의 말은 간단했다.

“영지에 대한 소유권을 비롯한 모든 전권을 포기합니다.”

트레인 뮐러는 허리를 숙이며 항복 의사를 밝혔다.

가문이 가진 모든 재산을 넘긴다. 그 재산에는 영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가문은 그렇다 해도, 가신들의 반발은 어떻게 넘겼습니까?”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더 괜찮은 곳에 붙어야죠.”

트레인 뮐러는 쓴웃음을 지었다. 적어도 장남인 티르손 뮐러에게 거는 것은 죽어도 싫다. 그렇게 말한 후 그는 두 가지 원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티르우스 뮐러가 항복하는 대신 프란츠에게 확약받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는 티르우스 뮐러님을 지지한 가신들의 대해서입니다. 적어도 그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주인으로 자신을 따르는 가신에게 최소한의 충성의 댓가를 주고 싶다. 귀족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싶다. 티르우스님의 뜻입니다.”

“귀족의 긍지를 지키고자 하는 티르우스 뮐러의 뜻을 높이 사지. 단, 능력이 부족한 자에게 줄 장소는 우리 프란츠에는 없다.”

어차피 프란츠에서 인재를 보낸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쓸만한 능력을 갖춘 인재라면, 그대로 사용하겠다.

아버지의 말에 트레인 뮐러는 그 정도만으로 족하다면서 만족하는 표정을 지은 후, 마지막 조건을 말했다.

그리고 말하기 전, 그는 나를 바라봤다.

“두 번째는 뮐러의 피가 계속 계승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흐음.”

이거엔 아버지가 잠깐 고민을 했다.

뮐러의 피를 잇기를 바란다는 것은, 직계의 생존을 원한다는 뜻이다.

현재 뮐러 가문의 직계는 장남인 티르손 뮐러와 그의 아들이 한 명. 그리고 차남인 티르우스 뮐러와 딸인 트리아나 뮐러가 한 명씩 있다.

“티르우스 뮐러님은 자신의 목을 걸고 티르손 뮐러와 그 가족의 죽음을 원하십니다. 그 후, 남은 자식을 차남이신 레오릭 프란츠님의 첩으로서 피의 계승을 원하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 차후 반역에 대한 의심을 없앤다. 다른 영지에 명분이 될 원인부터 차단하겠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뮐러의 피를 가진 딸을 프란츠의 차남에게 넘겨 뮐러의 유지를 잇게 한다.

뭐, 예상은 했다.

아버지와 아이단 형님도 예상은 했다는 듯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대가로 뮐러 가문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트레인 뮐러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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