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창관 4
* * *
클로에의 호통에 방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베아트리체는 인상을 굳히며 클로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클로에와 지크 역시 앞으로 나섰다. 서로 마주친 눈빛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말하고자 하는 건 혼란스러운 뮐러의 치안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그게 문제다. 우리가, 프란츠의 군이 겨우 뮐러 영지 정도의 작은 땅의 치안 유지도 못 할 거로 생각하는 건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하시겠죠. 다만 뒷골목의 치안이 그렇게 쉽게 유지되는 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애초에 뒷골목의 일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클로에와 지크, 베아트리체가 서로 섞여 열렬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베아트리체도 참 담도 크구나.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베아트리체의 등 뒤에 서 있는 니냐와 시선이 마주쳤다.
처진 눈매가 매력적인 여인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눈웃음을 쳤다. 간단한 제스쳐이지만 창관에서 일하는 여성답게 색기가 흘렀다.
나 역시 살짝 웃어준 뒤 지금도 시끄럽게 떠드는 3명을 가리켰다.
“안 말려도 되나?”
“음……? 글쎄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니냐는 미소를 지었다.
“뭐어, 괜찮지 않을까요? 레오릭님이 괜찮으신 듯하니.”
“하하하. 그런가?”
베아트리체의 말은 조금 생략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딱히 특이한 것도 없었다. 창관을 오픈하면 당연히 그 땅의 주인에게 신고하고 관리받아야 한다. 그걸 미리 말하고 신고하는 거겠지. 거기에 그 땅이 지금 전쟁을 준비 중인 땅이라서 예민한 것도 있을 거고. 그걸 저렇게 열심히 토론하는 걸 보니 조금 신기하긴 했다. 아마 입장의 차이려나?
기사 출신인 클로에도 그렇고, 귀족 혈통을 이어받은 지크도 그렇고 창관의 주인에 불과한 베아트리체에게 현재 상황을 지적 받는게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다른 이유가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독립한다고 그랬던가? 그럼 가게의 상호는 지금처럼 똑같이 붉은 꽃의 화원인가?”
“네.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럴 생각입니다.”
사샤가 끼어 들어왔다.
사나운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귀족 앞에 그런 얼굴은 또 처음이라 조금 놀랐다.
니냐는 잠깐 한숨을 쉬더니 사샤의 어깨를 툭 쳤다.
“사샤. 떽! 또 얼굴이 무서워졌어요.”
“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레오릭님. 사샤 얘는 예전부터 얼굴을 꾸미는 것을 힘들어해서……. 지금도 무척 긴장하고 있는데 배운 대로 미소를 지으려고 하는 게 잘 안돼서 그런 거예요.”
“아니, 그거라면 괜찮지만.”
꾸벅.
사샤가 허리를 숙였다.
다시 허리를 편 후 얼굴을 살펴보니 차가운 미소가 사라졌다.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 붙은 사나운 얼굴은 그대론데. 어딘가 낙담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얘도 참. 언니들에게 그렇게 교육을 배웠는데도, 아직 남자 앞에 서면 얼어붙어서…….”
“니, 니냐. 그런 이야기를 레오릭님 앞에서는…….”
조금 당황한 낌새로 이야기하긴 하는데, 얼굴은 여전히 차갑다.
으음, 과연. 그런 캐릭터인가.
어쨌든 이야기를 되돌려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별일 없다는 건?”
“창관에서 일하는 저희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전쟁을 한다는 건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겠죠? 어머니도 당연히 프란츠의 승리라고 확신을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아직도 떠드는 3명을 내버려 두고 이쪽도 3명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 시작 전에 테이블 위에 있는 잔을 하나 들었다.
“괘, 괜찮은 건가……?”
눈치 있게 어디서 준비한 술병을 든 채로 니냐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아서 테이블을 정리하며 내가 든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나도 여기서 자중 시중을 받으니 한 행동이지만, 그거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다가와 잔에 술을 따라주는 니냐의 행동에 현역인가 싶기도 했다.
사샤는 당황하는 걸 보니 그건 아니겠지만. 결국, 사샤도 목각 인형처럼 걸으면서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앉은 건 좋지만 그렇게 얼어붙어서는……. 귀엽긴 하다.
쪼르륵!
“새로운 주인이 된 영주님의 원래 고향인 프란츠에서 제일 유명한 창관이 분점을 차렸다! 그거 하나만으로 뮐러에서 상당한 주목을 얻겠죠.”
잔에 채워지는 붉은 와인의 향을 느꼈다.
술맛은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지. 지구에서도 회식이나 친구랑 만날 때 마시긴 했지만,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음, 이거 향이.
“벌써 내 취향까지 조사했나?”
“헤헤.”
귀엽게 웃으면서 얼버무리는 니냐 말고 사샤를 바라봤다.
힐끔힐끔하면서 아까부터 날 보는 사샤와 눈동자가 마주쳤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게 외치진 않아도 괜찮아.”
듣기론 내가 마시는 찻잎에 대해서 이미 퍼진 것 같으니까.
잔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쓴맛보다 달콤한 맛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도수도 약하고.
“……흠. 그렇군. 기존의 조직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소리인 거지?”
“네. 뒷골목의 일이야, 레오릭님이 신경 쓸만한 일은 아니지만, 전쟁이 끝나고 진정된 상태에 괜히 소란이 일어나는 것도 민폐니까요. 미리 허락을 받으려고 했죠.”
니냐가 자연스럽게 몸을 기대면서 얇은 드레스로 감싼 풍만한 가슴이 팔에 닿았다.
노린 것 같은데 본능적으로 스킨쉽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는 이유는 긴장으로 표정이 망가진 사샤도 어느새 달라붙어 부드러운 가슴을 나에게 밀어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으으.”
창백한 사샤의 얼굴을 보면 일부러 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일단 긴장도 풀 겸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팔을 벌리자 자연스럽게 두 여자가 그 사이로 들어왔다.
니냐는 그렇다 쳐도 사샤까지 들어오는 거 보면 조교 수준으로 교육을 했나 본데.
“아~”
“아~ 음.”
“힉!”
어느새 준비한 과일을 이쑤시개 같은 도구로 찍어 먹여주는 니냐에 고개를 돌려 과일을 받아먹고 벌린 팔 사이에 들어온 사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꽁꽁 얼어붙은 사샤의 노출된 어깨에 손이 올라갔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인 외모, 꾸준한 관리로 빛나는 피부의 감촉은 비단 같이 부드러웠다.
“그래도 내 앞에서 직설적으로 말한 건 베아트리체의 실수라고 생각되는데.”
“죄송해요.”
니냐가 꾸벅 숙이면서 서글피 말했다.
처진 눈매에 살짝 맺힌 눈물을 보니 이쪽이 나쁜 놈이 된 것 같다.
연기 수준이 장난 아니네.
“어머니가 그…….”
“그?”
조금 난처한 듯이 말하는 니냐에 사샤를 바라봤다.
사샤도 정신을 차렸는지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머니도 정령 신앙을 믿고 있으신데….”
“헤에.”
사업하는 사람이 제사 지내고 하는 그걸까?
내 반응에 괜찮다고 생각한 건지 니냐가 마저 답했다.
“황금 사자를 믿으셔서… 지금 조금 기분이 많이 높아진 상태에요. 저희 어머니가 참 주책맞죠?”
“황금 사자?”
그거 프란츠의 민간 신앙이었던가?
확실히 황금 마력을 사용하는 프란츠 혈통에 관련된 신앙이긴 한데.
“그거 이미 사라진 지 50년도 넘었지 않았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거의 안 믿죠. 근데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아, 그래서.”
베아트리체 정도의 나이면 아직 믿는 사람도 있다는 건가.
베아트리체가 나이 많다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어머니 정도면 아직 믿는 사람이 있었겠지.
“오늘 찾아온다고 해서 창관을 몇 번이나 청소했는지. 어쨌든 어머니 상태가 조금……. 지금도 분위기에 취한 채로 뭔가 장황하게 말씀을 하신 것 같아서……. 괜찮겠죠?”
태연한 척했지만 조금 불안하긴 했나 보다.
니냐의 시선에 사샤도 비슷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물컹!
으음. 괜찮지. 저들 3명도 어느새 뒷골목에 관한 토론으로 바뀌고 있고.
그나저나 손에 들어온 딱 만지기 좋은 감촉의 이것은……?
“읏…….”
“헤헤.”
내 손이 멋대로 니냐와 사샤의 가슴을 만지고 있었군.
이놈. 주인이 제대로 감촉을 느낄 타이밍에 만져야지.
으음, 이 정도 크기의 가슴. 누나와 맞먹는다.
감탄하는 동안 니냐가 더욱 다가와 그 자랑의 가슴을 밀착시켰다.
“후후, 어떠신가요? 참고로 아직도 크고 있답니다.”
뭐라.
이 가슴이 아직도 더 큰다고?
프란츠의 보물이 또 하나 나타났군.
“좋군. ……아니 그게 아니었지. 괜찮다. 이 정도야 뭐.”
“다행이네요.”
“후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나에게 기댄 무게가 조금 더 늘어났다. 니냐와 사샤 양쪽 모두.
“흠. 그럼 꽤 병력을 데리고 갈 생각인가 보군.”
“마력 보유자야 저랑 사샤 정도면 충분하지만요.”
“그래서 미리 허락을 받으려고 하는 거 였습니다. 마력 보유자 2명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도 갓 전쟁이 끝난 도시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으니까요.”
뒷골목의 혼란을 잠재운다, 세력의 균형을 맞춘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말은 나, 정확히는 프란츠의 일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어쨌든 그 이익은 이들이 취한다. 거기에 전쟁이 끝난 직후 활발하게 움직이는 준 기사급 마력 보유자는 이제 갓 도시를 차지한 입장에선 거슬리기도 하고.
그래서 미리 확인을 받으려 했다라.
“괜찮겠지.”
“정말요?”
“감사합니다!”
내 말에 기쁜 반응을 보이며 자동으로 애교를 부린다.
니냐야 어울리긴 하는데, 사샤는 관절 인형이 춤추는 것 같다. 조금 무서울 지경인데.
“우리 쪽도 새로 정리할 필요도 없고.”
내가 뮐러를 통치하게 되면 지금의 베아트리체처럼 대표 역할을 할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아랫놈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미리 아는 애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게 지연에 주연인가?
근데 이자벨 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딸꾹!”
얼굴을 붉힌 채 이쪽을 보고 있다.
……왜 저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