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28화 (28/143)

〈 28화 〉 창관 ­ 3

* * *

이전 세계에서 본 무협지에 하오문이란 곳이 있었다.

도둑, 소매치기, 도박사, 기녀, 점소이 같은 사회의 하부 계층들이 모여서 만든 문파.

도시의 뒷골목 어디에도 그들의 눈과 귀가 있어서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하는 조직이다.

기루에서 술 마시면서 입이 가벼워진 간부들이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듣는 기녀들이 보고하는 내용도 있다고 들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얼마나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까?

현대 영화에선 국회의원이나 대기업 회장이 술집 여자를 부르는 장면도 있다. 즉 그런 상황에 정보를 수집하는 건 일종의 클리셰라는 느낌이 있다.

“과연 그런 정보는…….”

내 말에 베아트리체가 쓴웃음을 지었다.

붉은 꽃의 화원, 최상층에 있는 집무실.

지금 보면 모험가 길드와 비슷한 구조인 것 같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인테리어가 더 고급스럽고 화려하다는 것?

베아트리체의 취향인지 붉은색 위주로 꾸며진 넓은 집무실에서 본래 베아트리체의 자리로 보이는 곳에 앉은 나는 그녀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방에는 나의 옆에 서 있는 클로에와 지크와 맞은 편에 앉아있는 베아트리체와 두 명의 여자. 그리고 구석에 이자벨이 차를 마시면서 앉아 있었다.

“역시 힘들지?”

“네. 물론 그런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오문 같은 시스템을 어떤 서적에서 봤다고 이야기했더니 나오는 반응이었다.

주로 상회의 사람들이 거래 이야기할 때 몇 가지 듣긴 듣는다고 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정보가 대부분이라는 것. 지역 간에 걸리는 이동 시간도 길고, 전서구 같은 것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이 쓸만한 것도 아니다.

“다만 아예 정보가 없는 건 아닙니다.”

“호. 그렇단 말이지?”

베아트리체가 뒤의 여자에 시선을 주자, 뒤에 서 있던 여자 한 명이 근처 책상에서 서류를 몇 장 꺼냈다.

클로에가 나서서 그것을 받아냈다.

“……뮐러 영지에 대한 정보입니까?”

천천히 살피면서 읽어보던 클로에의 말에 베아트리체를 바라봤다.

“솔직히 신뢰성은 떨어집니다. 애초에 상인이라는 족속들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없으니까요. 술이 들어갔고, 거래를 위해 자신을 과장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걸 고려하더라도 이렇게 준비했다는 건 그럴싸하다는 말이지?”

“네. 각종 자재의 가격이 폭등했다고 하고, 실제 밑에 사람을 시켜서 확인해본 결과 그 상인이 준비한 물건의 양이나 종류도 평소와 달랐다고 합니다.”

클로에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서류를 넘겨줬다.

대충 살펴보니 확실히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분은 확실하네.”

“네.”

아버지가 말했으니 허튼소리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시세까지 요동친다는 건 내분이 표면화되기 직전이라는 뜻이겠지.

그리고 눈치 빠른 자라면 슬슬 눈치챈다는 소리고.

서류를 한동안 살펴보다가 베아트리체를 바라봤다.

“언제부터 준비했지?”

이 내용을 내가 찾아온다고 해서 그때부터 준비한 것은 아니었겠지. 물론 차남인 내가 이제부터 관리한다는 것은 이전에 미리 연락받았다고 해서 그 낌새를 눈치채는 건 힘들 텐데.

점잖게 조용한 자세로 나를 보는 베아트리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조직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지만, 노하우라는 게 조금 있습니다.”

“노하우라.”

그녀가 말하는 것은 일종의 통계였다.

“주로 이 시기에 찾아오는 손님의 직업. 이 거리에 새로운 가게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일이 없는데도 찾아오는 손님이 적다. 모험가의 수가 늘어난다, 줄어든다. 그런 정보들. 거기에서 얻은 게 몇 가지가 있습니다.”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베아트리체를 바라봤다.

작은 미소를 띠면서 태연하게 말하는 듯하지만, 긴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계속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전쟁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지요?”

“전쟁이라.”

모험가 길드의 장, 이자벨을 바라봤다.

“말한 적 있나?”

“아닙니다. 없습니다.”

딱 잘라 말하는 이자벨.

뭐, 내가 모험가 길드를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을 거고, 사실 조금 수상한 조짐은 많이 있으니 알아차리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 뮐러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역시 그렇군요. 그럼 저희를 찾아온 것은…….”

“뭐, 사실 별 이유는 없다. 치안 담당으로 관리하게 된 지역인 창관 거리를 한번 보자는 생각도 있고. 그리고 이제는 알겠지만.”

“네. 성병에 관한 이야기겠죠.”

베아트리체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검사는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그럼 그 주기를 조금 더 좁혀라. 상황을 보아하니 슬슬 소문이 일어날 것 같고, 눈치채도 별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갑작스럽게 성병 검사 주기가 빨라진다. 그런 사소한 것도 정보가 된다.

“알겠습니다.”

“검사 비용에 대한 배려는 해주지. 지크.”

“네, 알겠습니다.”

내 말에 지크가 끄덕였다.

원래 검사 비용도 창관에서 준비하지만, 영지 측에서 적당히 감면해주기도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검사하는 것은 자기 부담이지만.

내 말에 베아트리체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

“네.”

내가 먼저 말했지만, 어쨌든 베아트리체는 정보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충 낌새를 눈치채고 미리 말하는 걸 보면 원하는 것이 있다는 소리겠지.

“뭘 원하지?”

내 말에 베아트리체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창관 거리는 꽤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네. 현재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지크의 말에 베아트리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망하는 가게가 있고 새로 생기는 가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걸 관리하는 조직은 크게 안정되어 있습니다.”

“좋은 거 아닌가?”

내 말에 베아트리체는 틀린 말은 아니라고 했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포화 상태입니다.”

“포화 상태라.”

평화가 유지되고 인구는 늘어난다. 이유는 알겠지만, 프란츠의 땅은 넓다. 지금도 발전 중이고, 계획 중인 도시 개발에 대해서도 아직 여유는 충분하다.

“그렇게 부족할 리가 없는데.”

“그렇습니다. 뒷골목 전체로 따지면 그 정도는 아닙니다. 뒷골목에 사람이 차면 분쟁이 생기죠. 지금은 평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분쟁 일어나서 조직이 생기고 망하고를 반복하죠.”

“그런데?”

말로만 들으면 그다지 특이한 건 없다. 분쟁이라지만 겨우 뒷골목의 일. 양지까지 퍼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딱히 건들 이유도 없고.

“저희가 문제입니다.”

“너희들?”

“네.”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조직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일대 창관 거리를 비롯한 뒷골목의 최대 조직. 거리의 조직을 대표해서 지금 나와 만나는 것도 그걸 증명한다.

베아트리체는 쓴웃음을 지었다.

“창관을 운영하는 조직 중에 저희 위상이 조금 큽니다.”

“그래 보이는군.”

조사한 자료에도 이 창관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창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저희 조직에 몰리고 있습니다.”

“흐음.”

베아트리체의 말에 지크를 바라봤지만, 지크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까지 파악은 안 되고 있다는 건가.

그렇지만 그게 문제가 되나?

“사람이 늘어나고 조직이 커지면 독립을 해야 합니다.”

“조직을 더 키우면 되지 않나?”

“지금도 이 근처 일대의 최대 조직입니다. 저희가 아예 그런 쪽 조직이라면 모를까, 창관으로 시작된 이 조직을 이보다 크기를 더 키운다는 것은 저희에게도 부담이 됩니다. 저희가 뒷골목의 대표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이 위치를 유지하면서 일종의 조정자 역할도 겸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걸 어긴다면 주위에서도 좋은 시선을 보내진 않을 겁니다.”

흠.

그렇게 되나?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을 거라 해도 감당할 수 있어 보이지만.

“힘은 충분할 것 같은데.”

정식적으로 마력 보유자를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도 충분히 감당할 것 같다.

“저희에게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창관으로 시작된 조직. 창관에 집중하고 손님에게 보다 품질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베아트리체에게 진심이 느껴졌다. 프로 의식이라는 거겠지. 그렇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베아트리체는 잠깐 침을 삼킨 듯 목에서 꿀꺽이는 것이 들려왔다.

“뮐러 영지에 진출하고 싶습니다. 아니, 뮐러에서 독립하고 싶습니다.”

“뮐러에서? 분점을 차린다는 건가?”

내 말에 베아트리체가 옆을 바라봤다.

등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사샤. 니냐라고 합니다. 인사하세요.”

“사샤입니다.”

“니냐에요.”

두 자매 모두 금발에 선홍빛 눈동자를 가지고 베아트리체를 닮았지만, 각각 특징이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의 보브컷에 니냐는 처진 눈매에 상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고 어깨너머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사샤는 날카롭게 치켜뜬 눈매에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제 친딸입니다.”

“흠. 과연. 닮았다고 생각했다.”

베아트리체는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딸이지만 영특하고 어려서부터 뒷골목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새로 가게를 열어 혼란스러워진 뒷골목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과연 알겠다.”

포화 상태인 조직의 크기를 뮐러에 독립시키는 것으로 줄이겠다는 거군. 독립한다고 해도 그 정도로 거리가 떨어진다는 것은 사실상 따로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프란츠의 뒷골목 조직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고, 뮐러에서 딸들을 활약시킨다는 거겠지. 말하고자 하는 건 알겠다. 알겠는데.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클로에가 앞으로 나섰다.

“그래서 그걸 지금 말하는 이유가 설마 프란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아니겠지?”

클로에가 베아트리체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무서워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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