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22화 (22/143)

〈 22화 〉 창관 ­ 1

* * *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미안하긴 하니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레오릭님. 차를 드시겠습니까?”

“음. 부탁하지.”

덜컹거리는 마차 안, 신기하게도 꽤 편안한 승차감을 주는 마차 내부에서 네리아가 타는 차를 마셨다.

입안을 간질이는 달콤함을 즐기면서 창밖의 도로를 살폈다.

깔끔하게 정리된 건물이 점점 화려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도착하는 건가?”

“네. 조금 더 가면 목적지입니다.”

맞은편에 앉은 지크가 불편한 표정으로 답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 번 정도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저기… 저는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겁니까?”

“하하하.”

이자벨은 마차로 길을 가던 도중에 만났다.

정말로 우연히 마주쳤다.

보아하니 오늘은 휴일이었나 보다.

모험가 길드에서 봤던 활동적인 복장이 아닌 가벼운 일상복이었다.

“오늘은 휴일?”

“……네.”

“어디 가는 중이었어?”

“…………시, 시장이요.”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 봉투가 보였다.

내가 시선을 바라보자 몸을 움찔거리며 봉투를 숨기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멈춰 섰다.

네리아, 지크, 클로에의 시선이 이자벨을 향했다.

그 시선에 이자벨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 봉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클로에가 잠깐 고민하더니 곧바로 나에게 넘겼다.

싱글벙글.

일단 허락은 받은 거니 봉투를 펼쳐서 내부에 있는 물건을 꺼냈다.

­부스럭.

“오.”

작은 곰이 그려진 하얀 팬티가 보였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고급스러운 옷감. 폭신폭신한 감촉. 살짝 핀 팬티의 엉덩이 부분에 그려진 귀여운 곰처럼 생긴 그림.

그나저나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여기는 중세가 아니라니까. 이 정체불명의 과학 기술은 대체 뭐지.

이자벨을 힐끔 보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벨루티네요.”

“벨루티?”

“속옷 브랜드입니다.”

속옷에 그려진 곰의 그림을 가리키며 네리아가 말했다.

“귀여운 속옷으로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죠.”

“아하.”

평민들도 살만한 가격으로 나쁘지 않다고 한다.

자주 구입해서 입는 건 힘들어도 용돈이나 품삯을 모아서 승부 속옷으로 입는다고.

“하아.”

지크가 보기 싫은 것 봤다는 얼굴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자벨도 얼굴을 붉히며 푹 수그렸다.

클로에와 네리아만이 같이 팬티를 보고 있었다.

“클로에도 이런 거 입나?”

“…….”

나를 노려다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지금도 치마를 입고 있는 클로에의 하반신은 노팬티 상태였다.

웁스.

“네리아는?”

“부끄럽게도, 성에서 준비된 속옷을 입고 있습니다.”

머리끈부터 시작해서 성에서 준비한 용품만 사용할 수 있다. 개인 용품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시종들만.

“그래?”

“보여드릴까요?”

살짝 치마를 들친 네리아에게 클로에와 이자벨이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지크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다.

“아냐, 됐어.”

조금 실망한 얼굴인 건 내 착각일까.

클로에가 한숨을 쉬더니 아직도 내 손으로 펼쳐진 팬티를 가리켰다.

“너무 그렇게 적나라하게 보는 거 아닙니까?”

“웁스. 미안.”

내가 팬티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자 클로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무 오래 보고 있었나. 손에 든 팬티가 헝클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봉투 안에 넣었다.

암. 팬티는 소중해야지.

다시 봉투를 포장한 후 이자벨에게 넘겨줬다.

얼굴을 붉히고 있는 이자벨이 조심스럽게 봉투를 받은 후, 다시 품에 안았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이젠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이자벨에게 웃으면서 목적지를 말했다.

“지금 가는 곳은 창관 거리야.”

“창관 거리? ……치안 업무 때문입니까?”

이자벨의 표정이 모험가의 그것으로 변했다.

이 마을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업무를 맡게 된 지금 관리 지역은 총 3가지다.

첫 번째는 모험가 길드.

여러 길드가 있지만, 주로 마력을 보유한 채로 여러 지역을 떠도는 모험가들을 관리하는 장소다 보니 지역 치안에 위험이 되는 요소 중 하나다. 그러니 전에 이자벨을 만난 것처럼 내 관리 하에 들어오게 된 것.

두 번째는 성문.

일종의 군대 위병소 같다.

판타지 소설에 자주 나오는 성에 들어갈 때 짐을 검사하거나, 신분증을 확인하는 것으로 자주 묘사되는 장손데, 때로는 주인공이나 악당들에게 자주 털리는 입장으로 나와서 슬픈 존재들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없다.

신분 확인을 하면서 마력 보유자나 범죄자를 확인하는 곳이다 보니 병사들부터 시작해서 현대 군의 장교와 비슷한 직위인 기사들이 번갈아가면서 근무하는 곳이라 어느 의미 성 내부보다 안전한 곳이다.

나 역시 가끔 가다가 그 근처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마지막 세 번째는 창관 거리.

일반 시민부터 시작해서 여행객, 모험가등 각종 사람들이 자주 찾는 유흥의 거리.

일반적으로 어둠의 거리 같은 느낌이지만 여기서는 영주 직속 관할이다.

뭐, 실제로 그런 형님들이 운영하는 뒷골목 집단이 주로 가게를 영업하긴 하지만 불법은 아니다. 제대로 된 정식 가게라는 소리. 창녀들도 불법은 아니고 세금을 내는 정당한 직장이다.

그런 곳을 왜 직접 관리 하냐면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역시 제일 큰 이유는 성병이다. 성병이란 게 한 번 유행하면 걷잡을 수 없고 감염 경로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특히 상인이나 모험가는 여러 지방을 떠도는 일이 많으니 한 번 퍼지면 지역 자체가 마비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

거기에 치유 방식도 막대한 마력을 쏟아 부어야 하니, 기사급이나 가능한데 기사급 마력을 가진 자들을 치료에 인력을 쏟는 건수가 제한되어 있고, 귀족이 힘을 쓰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거기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은 주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하며 그들을 관리하는 조직들 역시 엄밀히 관리를 받고 있다.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건 자유지만 그것이 선을 넘으면 직접 징벌하기도 하고.

두 번째로 큰 이유는 마력 보유자다.

반 이상의 손님이 모험가다 보니 간혹 마력 보유자들이 태어날 때도 있다. 피임은 창녀의 자유로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책임만 진다면 막지 않는다. 거기에 모험가의 피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마력 보유자들을 노리는 건데, 그런 아기가 태어나면 조직은 무조건 영지에 보고해야 한다.

만약 그걸 숨기고 자력으로 키워서 조직의 힘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반역죄에 해당하니 꽤 청결하게 운영되고 있다.

“저희들이 가도 됩니다만.”

지크의 말도 그런 의미다. 중요하긴 하지만 내가 직접 갈만한 곳은 아니다. 문관이나 무관들이 가끔 시찰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창녀가 궁금하신 것은 아니시겠죠?”

클로에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어보자 지크와 네리아의 시선이 느꼈다.

그리고 구석에 박혀 있는 이자벨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니, 그런 건 아니라니까?”

호기심이 전부가 아니다.

반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뮐러에 가면 창관 거리를 한 번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한 번은 보는 것이 좋지.”

진짜인가.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줄래?

특히 클로에.

넌 갈수록 내 취급이 안 좋아지는데?

“이제 곧 도착합니다.”

밖을 보던 지크의 말에 나 역시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조금 더러워진 거리가 다시 깔끔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호화롭다고 해야 하나.

“꽤 투자한 모양인데.”

“창관 거리는 세금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병사들도 자주 다니는 편이고.”

하긴. 지크의 말처럼 여기서 얻는 세금도 상당하다. 무시할 정도는 아니지.

“모험가들은 얼마나 자주 다니지?”

이자벨을 바라봤다.

“삼류 모험가라면 하루 먹고 남은 잔돈으로 창관에 오고, 이류 모험가라면 장비를 구할 돈을 제외하고 남은 잔돈으로 창관에 오고, 일류 모험가라면 거기서 저금을 하고 난 후 남은 잔돈으로 창관에 오죠.”

“모험가라면 전부 창관에 온다는 소리구나.”

하루살이 그 자체네.

하반신으로 살아가나?

…클로에. 넌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니.

“모험가는 여자들도 많을 텐데?”

“적진 않지만 있긴 있죠.”

“그들도 창관에 오나?”

“여자 모험가를 대상으로 하는 가게도 많습니다.”

그렇군.

……이자벨을 보고 있으면서 대화했을 뿐이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지?

“전 한 번도 안 갔습니다.”

“…아니 별 말 안 했는데.”

투덜거리고 싶은 걸 참았다.

잠깐 침묵이 마차 안을 감돌자 곧바로 마차가 덜컥거리며 멈추기 시작했다.

“도착했습니다.”

지크의 말에 마차의 창문 너머의 풍경을 봤다.

이 거리 근처 제일 큰 조직.

붉은 건물이 인상적인 인테리어의 건물이 있었다.

이 근처에서 제일 큰 고층 건물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대규모 상회나 거리의 유지들이 자주 찾는 창관. 모험가들조차 여자 하나 사기엔 일류의 모험가 중 몇 명만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가게.

붉은 꽃의 화원.

어느새 조용해진 거리, 수 명의 기사들만 호위 목적으로 엄중하게 마차 주변을 지키는 곳에 마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환영합니다.”

건물의 입구, 수많은 여인들이 반겨주고 있었다.

전부 다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들 중 무엇보다 화려하고, 그러면서 천하지 않는 한 여성이 다가왔다.

가슴 윗부분이 그대로 드러난 드레스를 입은 금발이 인상적인 여자. 눈가 근처의 점이 매력적이며 듣기로는 30대를 넘어 40대에 가깝다고 알려졌으면서도 아직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외모. 하룻밤을 원해도, 이제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알려진 화원의 마담.

“붉은 꽃의 화원의 마담, 베아트리체입니다.”

“화원에서 제일 아릅답고 매혹적인 여인이라고 알려진 그 유명한 화원의 꽃이구나. 반갑다. 레오릭 프란츠다.”

좋은 밤이 되겠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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