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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8화 (18/143)

〈 18화 〉 비서 ­ 1

* * *

­또각, 또각!

“…….”

영주성 근처 기사들의 숙소에 또각거리는 신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 복도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은빛 머리카락을 땋은 채로 기사 정복을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후우.”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클로에는 불안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주변을 둘러봤다.

작은 키와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엄밀히 말해 클로에는 이미 성인이며 기사였다.

당연히 기사 정복을 입고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게 치마라고 할지라도 이 땅의 주인을 모시는 처지에서는 그만한 예를 갖추기 위해 입는 것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휴.”

그러니 아무 문제도 없다. 이상한 점은 없다. 그렇게 애써 침착한 척을 했지만, 찬바람이 불면 느껴지는 치마 아래의 느낌에클로에는 얼굴을 붉히며 자기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아래로 쭉 펼치기 시작했다.

썰렁한 복도를 걸을 때 갑자기 부는 찬바람에 무의식적으로 치마를 붙잡고 다리를 오므렸다.

누가 봐도 이상한 태도다. 오히려 이런 태도가 더 위험하다.

클로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색한 느낌에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릴수 밖에 없었다.

“클로에!”

“세, 세린.”

코너를 도는 순간, 맞은 편에 같은 동료 기사가 나타나자 곧바로 평상시처럼 등을 쫙 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그런 클로에의 생각은 어쨌든, 세린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둘째 도련님의 기사가 되었다면서? 축하해!”

“아니, 아직 햇병아리인데. 이제부터야. 실수 없이 해내야지.”

“에이, 클로에도 참. 언제나 진지하단 말이야. 오늘만큼은 즐겨야지! 아, 치마를 입었네? 이제부터 도련님 곁에서 지내는 거야?”

흠칫.

세린이 순간 치마를 보고 말하자 클로에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괜찮아. 들키지 않았어. 큰 문제는 없다. 스스로 세뇌하듯이 다짐했다.

“오늘은 언제 끝나? 당분간은 그래도 어느 정도 자유가 있지 않아? 아니면 벌써 훈련하나?”

호위 기사가 됐다고 해서 바로 일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클로에의 상황은 조금 특별했다.

현재 자신의 상태에 눈치채지 못한 세린에게 안도의 한숨을 참으며 클로에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오늘부터 곁에서 모실 것 같아.”

“어머! 벌써?”

“응.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이제부터 도련님… 아니. 레오릭님의 호위 일만 아니라 보좌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어머. 완전히 최측근이잖아. 부럽다. 나중에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

세린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비서 일이라는 게 보좌하는 거와 마찬가지니까 틀리진 않네.

잠깐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더 늦으면 다른 것보단 클로에 자신의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세린? 나 당장 필요한 것만 챙긴 거라 금방 가봐야 해.”

“어머. 진짜로 바쁜가 보네.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응. 고마워, 세린.”

아쉬워하는 세린에게 애써 웃으며 클로에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느껴지는 인기척에 점점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가는 걸 느끼면서 급한 마음에 걸음이 빨라지는 건 둘째치고, 치맛자락이 어떻게든 날리지 않게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 좀 전에 일어난 대화가 떠올랐다.

“뭐,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레오릭님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괜찮다는 듯이. 조금 전까지 말한 엄청난 대화가 자신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인 듯.

“이러한 걸 하지 않아도 그만한 공을 세우면 성은을 내릴 거야. 성의 사람들 대부분 대충 아는 것 같던데, 난 다른 귀족보다는 성욕도 꽤 있는 편이라 공만 세운다면 성은은 확실히 내려줄 거야. 그게 아니더라도 날 호위하면서 내 곁에 머물면 그런 기회가 언젠가 생길 수도 있어.”

“……그럼 어째서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클로에는 여성 답지 않은 자신을 노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조차 품었다.

“재미있기 때문이야.”

“재미…….”

어떤 의도일까. 높으신 분들이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클로에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눈치도 빠른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뭐라고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말했잖아. 거절해도 된다고.”

“……그, 그럼 만약 제가 그걸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떻게 되다니?”

그 비서라는 것을 한다면.

클로에는 바닥을 바라봤다.

만약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기사가 아니게 됩니까?”

그런 치태를 보이면서, 100점이 되기까지 일어나는 일들이 만약 그러한 일들이라면. 클로에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느끼자 가슴을 억눌렀다.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던가.

한 번 섬기기로 한 이상. 그것이 명령이라면 따르겠지만…….

만약 기사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녀들이나 할 일들, 일반 평민이나 노예에게 바란 모습이 최후라면, 그게 자신의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응? …………아! 아아! 아냐, 아냐 그런 거.”

“네? 그, 그런가요?”

자신의 주인을 다시 바라보자 그분은 천천히 클로에 앞으로 다가왔다.

키 차이로 인해 클로에는 그분을 올려다봤다.

“미안, 말투가 좀 심했나?”

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천천히 눈가의 눈물을 닦아줬다.

그 행동에 조금 전과 다른 방식으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붉어지면서 안색이 좋아지는 클로에를 보며 레오릭님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그냥 작은 내기에 불과해.”

“내기…….”

“물론 들키게 되면 꽤 창피를 당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에게 그만큼 총애를 받는 게 되지 않을까?”

“그,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게 그렇게 되나? 그렇구나!

클로에는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 소문대로 난 성욕이 많거든.”

그, 그건 클로에 자신도 알고 있었다.

공공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레오릭에 대한 정보는 은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그 성욕이 많다는 소문은 여기사들 사이에도 유명했다.

문제라면 처음 기사가 된 이후로 받는 명령이 속옷을 벗으라는 것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어때, 생각은 있어?”

자상하게 묻는 레오릭님의 말에 클로에는 잠깐 고민했다.

공을 세울 수는 있다고 진심으로 클로에는 믿고 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공을 세운다고 해도 그만한 사건이 있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이건 가문의 핏줄을 위해서며, 자신의 새로운 주인이 된 레오릭님이 원하시는 것이며, 그렇기에 먼저 제안한 것을 기사로서 거절하는 것은…….

“하, 하겠습니다.”

클로에는 각오를 정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자신은 이제부터 영광스러운 프란츠 백작가의 차남을 호위하는 일을 맡게 되는 거다.

걱정할 일은 없다. 레오릭님을 믿고 열심히 충성을 다하면 되는 일이다!

“그럼 치마부터 입어볼까?”

이런 레오릭님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 * *

“중요한 건, 둘만 있을 때는 사장님이라고 할 것.”

“사장님?”

클로에가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상회가 있으니 사장님이라는 뜻도 통한다. 왜 사장님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좋은 거다.

비서라면 당연히 사장님이나 회장님이다.

단, 회장님은 아버지가 생각나니 일단 사장님으로.

“그리고 일단 당장은 기사 정복을 입데, 내가 준비한 옷을 나중에 따로 건네주도록 하지.”

“오, 옷 말입니까.”

당연히 미니스커트. 그것도 딱 달라붙는 것으로 준비하고 있다.

미리 준비한 스타킹에 트임을 넣어 허벅지가 완전히 노출되는 특별한 옷으로. 물론 기사 정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 원래 스타일에서 약간만 바꾸는 거지만. 그때를 행복하게 기다리기로 하고.

“그리고 하나 더 있어. 샬롯.”

“네!”

집무실 밖에서 대기하던 샬롯이 내 목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손에 들린 작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놨다.

“이건…….”

“내 선물.”

클로에는 잠깐 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상자를 들었다.

가벼운 물건에 짐작하기 어려웠는지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이건.”

“음.”

“안경이네요.”

그래. 안경이다.

비서라면 안경이지.

갓경조아.

“저, 저는 기사로서 아무런 문제 없는……!”

잠깐 당황한 클로에가 곧바로 자기 시력 문제에 대해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도수는 없는 물건이다.

“중요한 건 안경테지.”

“안경테?”

내 말에 조심스럽게 안경을 살펴보던 클로에가 놀란 얼굴을 나타냈다.

“설마!”

“음. 마정석이지.”

그것도 내가 직접 만진 마정석이라 안경테에는 나의 마력이 봉인되어 있다.

클로에가 원하는 순간, 마정석에 담긴 마력이 클로에가 원하는 형태로 공격 혹은 방어가 이루어진다.

“위험할 때 비장의 한 수가 되겠지.”

“레오릭님의 마력이 담긴……. 가, 감사합니다!”

“아니, 사장님이라고 해야지.”

감동적인 표정을 짓다가 내 말에 멈칫거렸다.

조금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데.

뭐, 좋다. 어쨌든 호위 기사로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 비장의 한 수로 쓸만하겠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는 클로에를 웃으면서 이제 본론을 말하기로 했다.

“그럼 첫 번째 임무야.”

“네!”

“기사 정복을 입고 올 것. 당연히 치마로.”

“그, 그럼 좀 전에 말씀했던 것 같이 그……, 패, 팬티를 벗어야 합니까?”

클로에는 내 명령에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순식간에 빨개진 얼굴을 애써 숨겼다.

“내 명령은 말했다시피 강제가 아니야. 어디까지나 100점을 모아서 성은을 입는 것은 너의 자유야. 그거까지 강제하고 싶지 않은데.”

“네, 네…….”

내 말에 조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클로에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작게 묵례한 후 클로에는 집무실을 나섰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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