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여기사? 3
* * *
마력의 폭풍이 몰아쳤다.
정중앙에 떨어진 태양처럼 빛나는 마력으로 구성된 검이 내려치는 것으로 시작된 마력의 압박.
기사들이 그 테스트를 상대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버티거나, 흘리거나.
털썩!
“크윽!”
“말도 안……!”
“흡!”
버티는 자가 한 명, 두 명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맷집과 체력, 마력에 자신이 있는 자들은 버티는 것을 선택했다.
체내의 마력의 양이 전부가 아니다. 마력을 어떻게 운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어디인가. 사람의 자질에 따라,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전 등으로 지금 눈앞에 있는 기사들조차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럼 흘리는 것을 선택한 기사들은?
“꺄아아앗!”
“우와아아아악!”
휙! 쿵!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마력의 압박. 그것을 흘리기 시작하는 기사들은 버티는 것이 목적인 기사들보다는 많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압박해온 마력이 점차 물결이 치듯이 출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몰아치는 마력의 폭풍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폭풍에 휩쓸려 나가는 기사가 하나둘씩 나타났다.
그들도 조금 더 선방했을 뿐, 거대한 흐름 앞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휩쓸리기 시작했다.
“호오.”
아이단은 아직 버티는 기사들보다, 이 테스트를 시행한 동생을 보고 감탄을 일으켰다.
귀족의 혈통을 떠나서 동생의 테스트는 제법 훌륭했다. 중앙에 내려찍은 태양의 검의 강대한 마력보다, 그 압도적인 마력으로 내려찍는 것만이 아니라 기사들 전부 균등하게 분배해 같은 압박을 느끼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 강제로 흐름을 난폭하게 조작해서 버티는 법과 흘리는 법 두 가지 방법으로 수비하는 기사들을 전부 시험에 빠지게 했다.
동생, 레오릭의 실력은 알고 있었다.
하녀들이 레오릭의 편안하게 대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평상시 티 끝 하나 흘리지 않고 체내의 마력을 제어한 것부터 시작해, 가끔 한 번씩 아버지 앞에서 견학했을 때부터 알았지만…….
어쩌면 마력의 제어 하나는 자신보다 뛰어나지 않을까?
‘정말로 골치 아픈 경쟁자가 됐을 수도 있었는데.’
혈연으로 맺어진 인생의 대적자. 그것도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잠깐 레오릭을 바라보던 아이단은 피식 웃고는 앞을 바라봤다.
남아있는 자는 극소수의 기사들이 아직 버티고 있었다.
저기서 남은 기사들은 제법 쓸만한 놈들이라는 소리겠지.
아이단은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기로 했다.
* * *
“호오.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느셨군요. 둘째 도련님.”
“하하하. 이정도는 별것도 아니죠.”
조금 힘을 쓰긴 했지만, 이정도는 한스 할아범도 할 수 있다.
뭐, 제어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심심할 때 마력을 운용하는 것으로 놀았던 적이 있었으니까.
사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다시 태어나니 몸속에 있는 신비한 기운이 가득 있으면 궁금해서라도 써보지 않을까?
그 때문에 말도 못 할 나이였을 때부터 마력을 쓰고 날아다녔던 적도 있었다.
순식간에 추락해서 난리 났었지만.
그건 그렇고.
아까 날 보던 형님의 시선이 신경 쓰이네. 오한이 들어서 닭살 돋을 뻔.
모르는 척하고 기사들을 바라봤다.
거의 반 이상이 탈락했다.
반이나 남았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해야 했나?
“제법 버티네요.”
“일단 그래도 제가 나름 뽑은 자들이니까요. 오히려 금방 떨어진 저 덜떨어진 놈들은 당분간 지옥 훈련입니다.”
아쎄이...!
불쌍한 놈들. 쓰러지고 날아간 기사들에겐 마력을 거뒀지만, 아직 부들부들 떨고 있다.
내 테스트의 충격보다는 지금부터 일어날 지옥 훈련 때문이 아닐까?
자기들 운명이니 넘어가고.
“헤에.”
극소수로 남아있는 사람 중 특히 제일 눈에 띄는 건 중앙에 있는 여기사였다.
하나로 묶은 채로 땋은 은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 화장기 없는 얼굴이지만, 화장만 한다면 귀족 영애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녀린 체격과 아름다운 외모. 내 마력의 압박에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내뱉지만, 눈동자에 담긴 지기 싫다고 주장하는 고집 센 의지까지.
털썩!
자신의 마력으로 중심을 잡고 흘릴 수 있는 것까지 최대한 내 마력을 흘려내며 버티고 있는 자들도, 이제 한 명, 두 명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 여기사는 제법 버텨내고 있었다.
부들부들한 채로 떨리는 다리가 사슴 같아서 귀엽네.
“읏, 큿……!”
이제 한계려나?
쏴아아아아!
퍼트린 마력을 전부 회수한다.
그대로 날려버려도 되지만, 남은 애들도 날아가 버릴 것 같고.
회복 속도야 빠른 편이지만 아깝고.
털썩!
“허억……!”
숨이 탁! 풀려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남아있는 기사들을 바라봤다. 거의 한 손에 뽑을 정도. 갑작스럽게 사라진 압력으로 그들도 결국 쓰러졌다.
쓰러진 채로 숨을 몰아쉬는 기사들을 보면서 그중에서 제일 잘 견뎌냈다고 생각한 기사를 바라봤다. 물론 여기사로.
“너, 이름은?”
“허억, 허억……! 크, 허억! 크!”
“아니……. 좀 더 천천히 숨 쉬어.”
쓰러진 채로 힘들게 고개를 치켜든 채로 날 바라보는 여기사를 바라봤다. 식은땀과 짧은 시간에 소비해버려서 탈진 상태에 직전까지 간 상태로 어떻게든 정신 차린 채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끈기도 제법.
뒤에 있는 한스 할아범을 바라보니 만족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허억, 허억……. 후, 하아, 제, 제 이름은…….”
그녀의 청색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그만큼 날 빤히 바라보는 여기사는 아직 숨이 차오른 주제에 조금이라도 기다리게 하는 걸 싫다는 듯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제 이름은 클로에 트리스탄입니다!”
“좋아. 클로에. 내 가신이 되어 주겠나?”
“네! 영광입니다!”
아직 쓰러져있지만, 눈동자 하나는 빛이 났다.
마음에 들었다.
손을 뻗었다.
“영광입니다, 도련님……, 아니. 레오릭님!”
* * *
“그래서 이름이 클로에 트리스탄이라고?”
집무실에 도착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나와 클로에 둘뿐.
좀 전의 훈련복이 아닌 제대로 된 정복을 입은 클로에는 가녀린 체구와는 다르게 듬직한 면이 있었다.
그래 봤자 나보다 작긴 하지만.
“네. 클로에 트리스탄입니다.”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바른 자세로 서 있는 여기사.
겨우 내 가슴에나 머리가 닿을 정도로 작은 신장에 가녀린 체구.
아무리 마력이 있어도 체력이나 정신력도 필요한 것이 기사다. 실제로 꽤 단련된 흔적은 있었다.
마력의 양은 기사로 치면 평균보다 조금 아래인가. 좀전의 실력을 보면 마력 운용이 특기라는 소리겠지.
“트리스탄이라, 트리스탄.”
들어본 적 없는 가명인데.
“내가 들어본 적 없는 가명이다만. 신흥인가?”
“네. 과거 저희 큰아버지가 공을 세웠으나 끝내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때마침 제가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성을 물려받았습니다.”
흠. 과연.
아직 1대라는 거네.
그렇게 치면 저 마력의 양은 이해되네.
클로에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혈통을 남기며 다른 핏줄과 결합하여 혈통 자체의 격을 올려야겠지.
1년, 2년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50년, 100년이 걸리는 시간.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 가신이 되는 것에 불만은 없나? 강제는 아니다. 지금이라면 무를 수도 있지. 불이익은 절대 없게 손 쓰지.”
“아닙니다. 레오릭님을 지키기 위한 검이 된 것은 가문의 영광입니다.”
부담스럽네.
조용히 말하면서 두 눈 똑바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면 진심인 것 같다.
“내가 명령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나?”
“네.”
“그것이 명예롭지 못한 것이라도?”
내 말에 여태까지 즉답하던 클로에가 나를 바라보더니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 어떤 명령이라 할지라도, 저는 이미 당신에게 제 검을 바쳤습니다. 어떠한 명령이 있더라도 그것을 완수하는 것. 그것이 기사로서 제 명예입니다.”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릎을 꿇은 채 날 보며 예를 취하는 클로에를 보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괜찮은 놈을 구했군. 귀족이란 자, 충성을 맹세한 가신에게 그에 걸맞은 상을 줘야 한다.
“그럼 원하는 것은 있나?”
“기사가 된 자, 그러한 보답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무슨 소리를. 측근이 되는 가신에게 상을 주는 것 또한 귀족의 의무다. 괜찮아. 말해도 된다. 설마 주인이 보상하나 주지 못하는 귀족으로 만들지 않겠지?”
“그, 그럼….”
그 말에 잠시 멈칫거리던 클로에의 뺨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뭘 말하려고 얘가 이러는 거지.
“레, 레오릭님의…….”
“나의?”
“애, 애, 애, 애…………!”
이제 터질 듯이 빨개진 클로에를 바라봤다.
“애?”
“애기씨를 원합니다!”
“음.”
애기씨라.
* * *
터질 듯한 심장 소리를 억제하면서 클로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좀 전에 상은 필요없다고 말한 주제에, 애기씨를 원한다고 말하다니.
얼마나 상스럽나.
하지만 1세대 기사, 신흥 기사인 클로에는 정말 하루살이 같은 것이다.
기사라는 직위를 얻긴 했으나, 혈통부터 시작해 자산까지 모험가와 다른 점이 거의 없다.
마력이 있는 것으로 기사의 수행은 가능하나,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어려웠다.
핏줄에 쌓인 격이 높은 것도 아니며,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가 얼마나 마력을 이어받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문에 결혼하려는 상대도 거의 없다.
기사의 결혼은 같은 기사끼리 결혼하면 최고이지만, 차점으로 모험가 여성을 데리고 오는 기사도 드물지 않았다.
제일 좋은 것은 성은을 받는 거지만.
“아, 과연. 성은을 원하는 거군.”
“죄,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인 자신이 이런 말을 하다니.
클로에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기사가 된 날 여성스러움을 버리며 맹세했지만, 막상 이리 되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흠. 고개를 들어볼래?”
“……네.”
면목이 없어 아래를 보고 있던 클로에는 주군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이제부터 자신이 모실 둘째 도련님, 레오릭 프란츠의 시선에 심장이 쿵쾅 거렸다.
부끄러움 때문인가, 아니면…….
‘기사가 된 자가 그런 발칙한!’
잠깐 떠오른 생각을 부정하며 최대한 부동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찰나, 레오릭 프란츠가 입을 열었다.
“좋아.”
“네?”
클로에는 순간 들린 목소리에 멍하니 레오릭을 바라봤다.
“대신 지금은 아니야.”
레오릭은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내려다 봤다.
“내가 시키는 일을 완수할 때마다 점수를 주지.”
“……주군의 명령을 수행하는 건 기사로서.”
“아니, 그러한 명령이 아니야. 아주 특별한 명령이지.”
……특별한 명령.
혹시 암살 임무 같은 건가? 아니면 기사로서 직위를 버려야 하는 그런 임무? 설사 그러한 임무라고 해도 클로에는 최선을 다해 수행할 생각이었다.
잠깐의 침묵 사이 레오릭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기사 정복에 치마가 있지?”
“네.”
보통 바지를 입기는 하지만 약간의 격식이 필요한 자리에 여기사는 치마를 입고 나올 수도 있다.
레오릭은 천천히 클로에를 훑어봤다.
“치마를 입고.”
“네.”
“팬티를 벗어.”
“네?”
“그럼 하루에 1점이야.”
“네?”
“100점이 될 때마다 성은을 내려주지.”
“네?”
“넌 이제부터 내 비서로서 일한다.”
“…………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