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16화 (16/143)

〈 16화 〉 여기사 ­ 2

* * *

­쿠웅!

영주성 옆에는 적당한 크기의 평지가 있다.

기사들이 마력을 사용해서 실시하는 훈련 장소를 가까이 두면 당연히 그 소리나 여파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영주성에 기사들의 업무나 기숙사를 겸하는 작은 건물이 있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메인으로 삼는 거처가 따로 존재했다.

“여기까지 오는 건 처음인데.”

“그래?”

따라오는 하녀들은 내버려 둔 채, 형님과 둘이서 걸어왔다.

딱히 공사 하지 않았지만 하도 기사들이 자주 다녀서 넓혀진 길 너머로 평평해진 공터가 보였다.

내가 알기론 여기도 예전에는 작은 언덕이었다고 들었지만.

“자주 찾아오지 그랬어?”

“귀찮습니다. 기사를 가신으로 삼을 생각도 없었는데요.”

“그래도 귀족이라는 놈이 호위 기사도 없이 다니는 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들었어. 모험가 길드에 문관이랑 둘이서 갔다면서?”

“책으로만 봤던 곳이라 궁금해서 갔죠. 그리고 문관도 어느 정도 마력이 있잖아요?”

“하아. 너란 놈은.”

거기에 딱히 위험할 일이 일어날 리는 없다고 생각했고. 기본적인 방어는 했었고.

실제로 모험가의 수준이나 어느 정도 장비 수준인지 확인했고.

근처에서 탐지했던 마력으로 봐서는 대부분 기사급도 안되긴 했지만, 길드 마스터였던 이자벨은 기사급의 마력에 마력을 컨트롤하는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내 마력을 파악하기 위한 응용도 좋았고.

“길드 마스터인 이자벨은 제법이던데요? 아버지 근처 기사급 정도는 됐던 것 같은데.”

“이자벨? 흠. 길드 마스터가 확실히 그런 이름이었던가. 하긴. 그 나이에 모험가가 그 정도면 재능있긴 하지.”

형님의 애매한 말투를 보니 분명 길드 마스터와 마력만 기억할 거다.

평민, 아니. 엄밀히 말해 이자벨 정도면 형님도 이름을 외울 텐데. 여기 사람이 아닌 것도 있어서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게 분명하다. 형님도 참.

­쿠웅!

잠깐 잡담하는 사이에, 진동이 강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맞서는 특유의 파동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열심히 하는군.”

“우리가 오는 걸 알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사단장 오면 빡세게 청소하는 거.

시발. 아직도 생각만 하면 욕 나오네.

“그건 당연하지 않나?”

형님은 오히려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이래서 위에 있는 게 당연한 사람은.

* * *

­힐끔.

시선이 느껴졌다.

내 생각보다 더 많네. 기사가 많으면 나라 망한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또 판타지 설정이 일하는 거겠지. 신경 쓰지 말자.

“오셨습니까. 아이단님. 레오릭님.”

한스.

기사단장. 아버지가 처음으로 삼은 최초의 호위 기사.

흰 머리카락과 굵은 수염. 수많은 상처의 흔적들을 보며 얼마나 전장을 경험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한스 할아범. 자주 찾아뵀어야 했네요.”

“둘째 도련님. 건강하셨습니까. 후후. 지나가면서 들리는 풍문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나저나 최근 활동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잘 됐군요. 둘째 도련님이라면 잘 해내실 겁니다.”

“하하. 한스 할아범에 실망하게 하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슴을 펴며 답하자 날 보는 한스의 시선은 마치 손자를 보는 것으로 변했다.

아버지와도 나이 차가 나니 할아버지와 손자뻘이긴 하다. 오히려 이 세상의 빠른 임신으로 생각하면 더 차이 날 수도 있다.

마력의 양부터 시작해서 할아버지 밑에서 시작해 아버지와 함께 전장에서 다닌 공만 계산해도 새로운 혈통을 창시하거나 혹은 다른 귀족 가문과 귀천 상혼을 해도 될 정도의 공을 세웠으니까.

“하하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늙은이는 이제 은퇴가 코앞입니다. 부탁드릴 상대는 아니죠.”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단장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정정하기 짝이 없다. 뒤에 있는 다른 기사들도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스. 준비는 끝났나?”

“네.”

아이단 형님의 말에 한스의 시선이 한쪽에 서 있는 집단을 향했다.

아까부터 날 훔쳐보던 시선의 주인공들이다. 전부 젊은 나이의 청년들이었다.

“쯧.”

아까부터 힐끔거리는 시선은 나도 알아차렸다. 역시 한스 할아범도 알아차렸겠지. 그들을 보는 시선이 매섭다.

젊은 기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직 병아리들입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솔직히 저로서는 부대장급을 인선하고 싶습니다.”

한스 할아범의 걱정이 크다.

여기에 나왔다는 건 젊은이 중에서도 한 실력 하는 놈들일 텐데.

아이단 형님도 피식 웃었다.

“부대장들은 전부 바쁘잖습니까.”

“그놈들이 하는 일이라곤 매일 밥만 축내는 것뿐입니다. 내가 젊었을 시절에는……”

또 시작이다.

아이단 형님의 표정이 굳었다. 이 상태가 되면 아버지 빼고는 막을 수가 없었다.

형님의 시선이 한스 할아범의 뒤에 있는 기사들에게 향했지만, 그들 역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훗. 여기선 내가 나설 수밖에 없군.

“에이. 한스 할아범. 저 같은 애송이 밑에서 일하다뇨. 프란츠 가문이 자랑하는 기사단의 부대장들이 할 일은 아니죠.”

“둘째 도련님. 그래도…….”

“뭐어, 부대장님들의 이야기는 둘째치고, 그래서 여기 모인 기사들이 전부입니까?”

예상은 했지만.

쌍둥이는 없군.

“아아. 그 쌍둥이 말씀입니까?”

“네. 제 젖 형제입니다.”

한스 할아범의 표정을 힐끔 보니 나쁘진 않았다.

다행이네, 그 녀석들. 내가 아무리 원해도 재능이 없으면 기사로서 육성시켜줄 수는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권한이니까. 한스 할아범의 마음에 들었다면 기사가 되는 건 문제 없을 것 같네.

“제법 근성도 있고, 충성심도 있었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솔직히 그 녀석들이 제일 믿을만한 녀석들이라, 기사가 못 된다고 해도 데리고 다닐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사가 되는 것이 그들에게 나쁘지 않은 일이겠지.

“마력량이 쓸데없이 많아서 다루는 것이 아직 미숙하기는 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거고……. 기술적인 건앞으로 배워야 하는 것도 많아서 당장은 둘째 도련님 밑으로 보내는 건 어렵군요.”

“아, 그건 괜찮습니다. 계속 굴려주세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 권한까지 터치할 수는 없지. 더 고생하라고 하고.

쌍둥이 이야기는 됐고. 본론으로 가볼까.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는 병아리, 젊은 기사들을 바라봤다.

“흐음.”

“…….”

“…….”

“…….”

역시 군대는 군대. 각이 살아있다.

젊은 나이…라고 해도 나보다 연상이 대부분이겠지. 천천히 그들을 바라봤다.

대부분 남자이긴 하지만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

형님으로 착각할 것 같은 여기사부터 시작해서 상당히 가녀린 여기사까지. 꽤 수가 있다.

단련된 신체 차이는 있겠지만, 중요한 건 마력의 크기와 조작 능력. 그리고 응용력.

일단 마력의 차이는 별로 크게 나지 않네.

군데군데 보이는 여기사들을 훑어봤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훑어보는 건 내 특기지.

오, 재는 이쁜데? 은발이라. 은발 좋지.

“그럼 테스트를 해볼까요?”

“테스트? 둘째 도련님께서 준비했습니까?”

“네. 뭐, 간단한 거라 금방 끝납니다.”

별거 아닌 테스트 맞다. 웃음이 터지려고 하는 것을 참으며 앞으로 나섰다.

과연 어떻게 될까.

* * *

충성을 맹세하는 대상인 프란츠 가문의 둘째 도련님을 얕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저택에서 몇 번 외출하지 않는 비밀투성이의 둘째 도련님을 보는 것에 대해 상당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둘째 도련님. 레오릭 프란츠.

온갖 소문이 났다. 뛰어난 오성과 하녀들의 이름도 외우고 다니는 배려심, 프란츠 가문의 후계자로 명성이 높은 아이단님이 신뢰한다는 소문까지. 가지각색의 소문들.

드디어 그 주인공이 자신의 호위 기사를 뽑는다는 소문에 프란츠 가문의 많은 기사가 자신이 뽑히는 것을 기대했다.

부대장급 실력자조차 참가하고 싶었다는 소문이 날 정도니까.

그런 분의 가신, 그것도 최초의 호위 기사로서 최측근이 되는 가신이라는 단어는 기사로서 명예로운 일이었고, 앞으로 가문을 키우는 데도 엄청난 이득이었으니까.

혹여나 호위 임무나 전쟁 중 대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문의 앞날은 책임질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니까.

그렇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지금 눈앞에 있다.

태양처럼 찬란히 빛나는 금발.

신비롭게 빛나는 금색 눈동자.

입가에 미소를 살짝 걸친 그가 앞에 나타났다.

과연 프란츠 백작가의 도련님.

고귀한 품격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마치 태양처럼 전신이 빛이 났다. 아니 진짜로 빛이 나는 것 같은데? 도련님의 몸에 서린 금빛 마력이…….

“금빛 마력?”

클로에 트리스탄은 순간 멍하니 둘째 도련님을 바라봤다. 그토록 꿈꿔왔던 분을 앞에 두고 있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프란츠 백작 가문의 직계 혈통에만 내려온다는 최상위 마력의 색, 그 금빛 마력이 태양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한 직후, 레오릭 프란츠는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태양의 검이 떨어진다.

“큿!”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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