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여기사 1
* * *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레이스 누나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에게 기대게 했다.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가슴팍에 손을 올린다.
거칠게 끝낸 행위로 풀린 다리가 내 다리와 엉켜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하룻밤이 지난 부부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진짜…, 하아. 듣던 대로네요, 레오.”
“들어요? 뭘요?”
하룻밤 지나도 향긋한 누나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머릿결의 감촉을 즐겼다.
내 말에 잠시 얼굴을 붉히던 누나가 날 올려보며 말했다.
“성욕이요.”
“성욕이라.”
하지만 이번이 처음인데?
자위는 최대한 참았다. 씨앗을 허비하는 건 귀족의 불명예란다.
“몽정으로 확인하잖아요.”
“아아, 그거.”
으음. 이 나이까지 참으니 당연히 몽정은 한다.
물론 시트 교환은 하녀의 일이지만….
“그거로 파악이 되나요? 부끄럽긴 한데, 당연한 현상이 아닌가요?”
“으음. 평민들은 그렇다고 들었지만…, 귀족에게는 드물어요. 아마 기사분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나 성욕이 없나.
그나저나 기사조차라. 이 세계의 사람들이란. 마력 때문인가? 평민은 평범하다고 들었는데.
누나의 손이 천천히 가슴을 쓸었다.
몸에는 자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은 받아 왔고,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는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 주의해야 하는 건 정신적인 피로나 충격.
“레오는 꽤…… 자주, 했잖아요?”
어젯밤 그리 흐트러진 모습이 거짓인 듯, 청순하게 얼굴을 붉혔다.
나 역시 누나의 몸을 어루만졌다.
“근데 그걸 누나도 알았어요?”
“네. 저도 이제 프란츠 가문의 사람이니까요. 어느 정도는 들어요.”
부끄럽긴 하네.
괜히 누나를 꼬집었다.
“읏…! 정말. 개구쟁이야.”
“하하.”
내 가슴팍을 툭 치는 누나의 몸을 끌어안아 키스한 후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제 슬슬 가야할 시간이었다.
“누나.”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킨 채로, 이불로 몸을 감싼 채 날 바라보는 아름다움을 조각한 듯한 여자를 바라봤다.
“전 제가 한 말은 지켜요.”
“……레오.”
마지막으로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방문 옆에 달린 종을 울렸다.
딸랑!
그러자 문이 열리며, 시녀들과 하녀들이 들어선다. 그들은 조용히 빠르게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물건을 챙겨들어왔다.
그리고 병풍으로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는다.
가로막히는 병풍에 마지막으로 시선을 교환한다.
“그럼 레오릭님.”
가로막힌 병풍을 바라보며 서 있자 어느새 레나가 나타났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자 평소 봐오던 하녀들이 나타나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전라의 나의 몸을 닦는 걸 느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병풍 너머에 들리던 소리가 사라졌다.
레오릭 프란츠. 그가 떠났다. 그걸 느낀 그레이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레이스님.”
“사렌.”
나의 자매, 사렌.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였던 유모의 딸.
마음만 먹었으면 기사가 되어 가명을 만들 수 있을 시종.
그레이스가 눈을 떠 사렌을 바라봤다. 걱정이 서린 다정한 갈색의 눈동자. 자매의 눈빛을 느끼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괜찮아, 사렌.”
“하지만…….”
“정말이야.”
사렌을 바라보며 그레이스는 웃었다.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아. 따뜻해.”
아직도 침대에 남겨진 그의 냄새를 맡으면 그의 품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봤을 때는, 아직 아이였을 때는 귀여웠다. 경계도 했지만. 얼마나 착한 아이였는지 금새 알아차렸다.
귀족답지 않다는 건, 무례한 말일까. 그 착하고 배려심이 강한 아이가, 어느새 이처럼 컸다.
이미 식었고, 그레이스 자신의 착각에 불과하겠지만, 그레이스는 천천히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몸을 웅크렸다.
배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그가 남긴 씨앗이 이 안에 듬뿍 들어가 있었다.
“그는 친절했어, 사렌.”
“그러신가요?”
“응. 정말로 행복한 밤이었어.”
아이단. 정략혼으로 맺어진 사람이었다. 나쁜 남편은 아니었다.
그레이스와 아이단. 둘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그 사실이 얼마나 상처였는지.
사렌은 잘 알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덜컹거리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리자 사렌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잠시 시간을…….”
“괜찮아. 사렌. 당연한 일인걸.”
조금 더 쉴 수 있는 시간을 원했지만.
사렌의 작은 불만은 그레이스의 만류에 한숨을 쉰 후 침대에서 물러났다.
병풍에서 나타난 건 레나였다.
“그레이스님.”
“레나님.”
레나의 언제나 딱딱한 표정은 어린 나이에 시집오면서 처음 이 저택에 들어올 때, 그레이스는 살짝 무서움을 느꼈지만, 이제는 편안해졌다.
그녀가 저런 모습을 누구에게나 보여준다는 걸 알고는 그 모습 또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만.”
“네. 알고 있습니다.”
레나의 말에 주변의 시녀와 하녀들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사렌이 고개를 끄떡이고 이불을 치웠다.
이불을 치운 후, 침대에 드러난 모습을 레나는 천천히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습니다.”
“네.”
레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리를 오므린 그레이스에게 사렌이 재빨리 침대를 덮어줬다.
“그럼…….”
“네. 레오릭님은 어젯밤 제대로 예의를 지키신 후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후 저를 걱정하신지 마지막으로 확인을 한 후 제대로 칭찬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그레이스는 어젯밤의 기억을 되살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격렬하고 따뜻했던 밤을. 그의 손길을.
이불 안에서 조심스럽게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따뜻했다.
* * *
“괜찮아?”
“형님.”
옷을 갈아입고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을 때, 형님이 찾아왔다.
괜찮냐고? 오히려 이쪽의 말이지만.
“……저는.”
“괜찮아. 나는.”
싱긋 웃는 아이단 형님은 정말로 괜찮은 듯했다.
형님의 속마음을 판단하는 건 좋은 행위가 아니다. 형이 괜찮다고 하면 동생은 그렇게 여겨야 한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좋은 첫경험이 됐습니다.”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하마.”
“……네.”
자주 만나도 된다는 일이겠지.
맞은 편에 앉은 아이단 형님에게 네리아가 천천히 차를 따랐다.
“여전하구나. 이 차는. 너무 달콤해.”
“그 달콤함이 좋지 않습니까. 너무 쓰고, 떫은 것보다는.”
시선이 마주쳤다. 프란츠 혈통 중에서 짙은 피에만 나타나는 증거.
황금색 눈동자와 그 눈동자 속에서 느껴지는 금빛 마력.
잠깐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가 서로 피식 웃었다.
“이제 너도 너의 가신을 모아야지.”
“네.”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여태까지 가만히 교육만 받은 이유는 별거 없다. 괜한 권력투쟁이 일어날까 봐.
실제 내분으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지만, 뮐러처럼 생기는 일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영지의 전력을 가지고 독립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것이 명분이 되어 차후에 전쟁이 되는 일까지도.
그렇기 때문에 숨죽여 있었다.
솔직히 머리가 좋았냐고 물으면 답하기 곤란했다. 그런 내가 정치? 내정? 답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니 적당히 먹고 살고 싶었고, 실제로 편안하게 살았다.
교육이나 훈련이 있다고 해도 그게 초중고대부터 시작해서 군대까지 포함한 현대의 삶보다는 여유로웠다.
판타지 특유의 법칙으로 인해 중세? 같은 시대임에도 정체불명의 발전으로 인터넷이 없는 것을 빼면 불편한 것도 없었고.
날 찾아오는 가신이 없지는 않았고,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로 몇 년 지내니 프란츠 영지는 평화로워졌다.
내 삶도 평화로워졌고.
그렇지만 이제 슬슬 움직이란다.
솔직히 귀찮은데.
“귀찮음이 느껴지네.”
“사람을 다루는 건 귀찮잖습니까. 보살펴 줘야 하고. 명령해야 하고. 보상을 줘야 하고.”
“하하.”
내 말에 형님이 웃었다.
“그게 귀족의 의무니까.”
“뭐, 알고 있습니다.”
달콤한 맛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가신이요?”
“그래. 네 눈이자, 네 귀자, 네 손이자, 네 발이 되어줄 가신.”
“흐음.”
머리는 스스로 해라, 이건가.
“지크를 비롯해 몇 명을 붙여주마.”
“지크?”
“……지크가 맞을 텐데?”
내가 갸웃거리자 형님도 조금 당황했다.
지크?
…….
아아, 파란 걔?
“체코가 아니었나요?”
“체코였나? 그…….”
“푸른 머리카락 걔 맞죠?”
“그래.”
“체코였을걸요?”
“그런가?”
형제가 동시에 고개를 비틀었다.
체코 아니었나?
“…….”
“네리아?”
“네, 네?”
“할 말 있어?”
“……아뇨.”
옆에서 조금 당황한 기색이 느껴져 바라보니 네리아가 머뭇거리던 모습이 보였다.
착각인가?
“……체코. 그래. 맞겠지. 체코는 괜찮지? 젊은 나이에 머리도 괜찮아. 나쁘지 않을 거야.”
“그렇군요.”
“체코를 비롯해 몇 명을 붙여주마. 다들 젊고 똑똑해.”
영지의 사정은 나도 알고 있다.
아마 체코가 가장 나이가 많지 않을까….
“일단 이들을 데리고 업무를 해봐. 별로 어려운 건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업무의 이야기를 진행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조심해야 할 일. 올바른 판단.
꽤 친절히 알려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위 기사도 필요하겠구나.”
“기사요?”
“그래. 최측근이자, 앞으로 널 보좌해줄 기사.”
아아. 무슨 뜻인지 알았다.
아마 뮐러에 가면 나 대신 아래 기사들을 지휘하겠지. 체코는 문관을, 호위 기사는 무관을 관리한다.
그런 체계가 잡히겠지.
“일일이 나설 수도 없잖니.”
“그렇죠.”
그런 문제도 있다.
무력이 필요한 일에 일일이 나서라니 귀찮음 이상의 문제다.
“내가 몇 명 알아보긴 했지만, 네가 직접 정하는 게 좋겠지. 전부 한스가 선별해서 실력은 괜찮다.”
“그렇겠죠.”
여기사가 있겠지?
있을 거야. 가끔 봤는걸.
아니, 있어야 해. 판타지 중세잖아? 없을 리가 없어.
“……뭘 기대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있을 거다.”
“아, 네.”
조금 형님의 시선이 아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