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형수님 1
* * *
솔직히 말해서 긴장하고 있는 건 숨길 수가 없었다.
첫경험이니 뭐니 둘째치고, 상대는 형님의 아내. 형수님이었으니까.
“도련님.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음. 레나. 고마워. 수고했다.”
여기까지 안내한 레나가 허리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수고의 말을 전하고 앞을 바라보자, 그레이스님이 결혼을 할 때 따라온 그레이스님의 유모의 딸이자 시녀인 사렌이 있었다.
그레이스님의 시종인 사렌이랑은 지금처럼 대면한 적은 거의 없다.
그레이스님과 스치면서 가끔 봤을 때도 뒤에서 대기 중인 모습만 봤었다.
갈색 머리카락의 갈색 눈. 잘 다듬어진 표정으로 조용히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오늘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란츠 성은 몇 가지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중앙의 내성을 중심으로 둘러싸는 모양으로 되어있는데, 성의 입구부터 내성까지는 문관과 무관이 일하거나 훈련하는 건물부터 시작해 하인, 시종들의 숙소까지 있는 허락을 맡은 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내성의 뒤에는 프란츠 혈족조차 제대로 드나들 수 없는 금지 구역이 몇 군데 있다.
기본적으로 가문의 주인인 아버지와 어머님이 지내시는 건물부터 시작해 그 가족. 즉 나와 형님이 따로 나눠 쓰는 건물과 그 가족이 지내는 건물이 있다.
나는 아직 결혼 상대나 아이가 없으니 내 건물 대부분은 비어있지만,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매일 정리는 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때 서로의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선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형님도 예의를 지킬 때는 그레이스님의 건물에 들어가려면 사전에 하녀를 통해 연락해야 했다. 물론 그냥 들어가도 솔직히 그걸 지적할 사람이 없긴 했지만.
기껏해야 아버지나 어머니 정도가 귀족답지 않다고 꾸짖는 정도지만.
어쨌든 기나긴 복도를 조금씩 걸으면서 건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아이단 형님이 지내는 곳은 몇 번 들어간 적이 있어도, 그 건물 옆에 있는 형님의 가족이 지내는 이곳에는 한 번도 향한 적이 없었다.
사렌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안쪽 구석에 있는 고풍스럽게 장식된 문 근처였다.
주위에는 호위 없이 몇 명의 하녀와 시녀들만이 있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음.”
혀가 조금 말라오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레이스님의 모습이 생각났다.
나와 형님의 관계는 그레이스님 역시 알고 계셨겠지. 아무리 친한 형제 사이라고 해도 후계자 문제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상 미묘한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그레이스님은 나에게 잘 대해주신 것 같았다.
“……형님은?”
“오늘은 밀레느가 상대합니다.”
달을 바라봤다.
달은 다행히 현대의 달과 별 차이가 없는데, 보름달부터 시작해 주위에 보이는 별들은 비교할 수 없게 아름답게 밤하늘을 꾸미고 있었다.
미신이 하나 있다. 미신이라고 하기에는 효과가 있어서 미신이라고 하긴 그런데, 보름달이 되면 임신하기 쉽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주변 마력의 밀도가 살짝 높아지는 특성이 있어 마력 보유자가 흥분하기 쉽기도 했다.
진짜 아주 미묘한 효과지만, 그래서 오늘로 날을 잡은 거겠지.
아직 형님이 이 성에 있는데 형수님과 관계를 맺게 되다니.
미묘한 감정이 솟구친다.
동시에 저열한 성욕도 느껴지는 것은 변명하지 않겠다.
화사한 금발과 보석 같은 푸른 눈동자.
언제나 상냥하게 미소 짓는 모습. 오직 차세대 귀족의 자식을 낳기 위해 교배되어 그것이 삶의 기쁨이라고 교육되는 귀족의 여성.
그것도 엄밀히 말해 내 여자가 아닌 형님의 여자. 형수님이다.
“그럼 들어가지.”
“네. 준비하겠습니다.”
* * *
처음 방에 들어갈 때 느낀 건 화려하게 꾸며진 방 안의 풍경은 둘째치고, 성교육 때 느낀 그 향이 느껴졌다.
성교육도 다 이날을 위해서였네.
귀족의 성욕은 없는 건 아니지만, 강하지도 않다. 나처럼 개인의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뭐 때문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얇다.
아마 레나 역시 그걸 대비하기 위해 3일 내내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 향에 익숙하게 느끼게 해서 성적으로 흥분하기 쉽게 만든 거겠지.
이런 거 없어도 이미 흥분 만땅이지만.
그 향을 느끼면서 이 방 중심에 있는 거대한 침대를 바라봤다.
한 송이의 꽃이 있다.
언제나처럼 품격있는 모습이지만, 입고 있는 옷은 아주 얇은 란제리. 그 속에 보이는 풍만한 가슴과 가는 허리. 아래의 팬티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멍하니 바라봤지만, 크흠.
“오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시선을 피하지 말라고 했는데, 일단 몸을 쭉 봤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아, 아닙니다. ……레오릭님. 오늘은 불민한 저를 위해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침대 위.
그 얇은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예의에 맞게 고개를 숙이는 그레이스님.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출렁거렸다.
하늘거리는 란제리에 잘 보이지 않지만, 끝부분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에 애써 정신을 차렸다.
살짝 뺨을 붉힌 채로 나를 바라보는 그레이스님의 모습에 다행히 싫은 모습은 없어 보였다.
솔직히 강제로 하는 건 조금 그랬다. 아니, 형님이 미리 허락을 받았다고 하지만 강제는 좀.
“……아버지와 형님이 말했지만, 그레이스님께서는.”
“후훗.”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려는 찰나, 그레이스님이 살포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웃는 그레이스님의 모습이 있었다.
“아, 그…….”
“아, 죄송해요. 역시 아버님과 아이단님의 말씀이 떠올라서요.”
“네?”
형님과 아버지가?
당황하고 있자 그레이스님이 고개를 흔들었다.
“레오릭님은 정말로 다정하시네요.”
내가 다정하다고?
……딱히 하인들을 도구 취급하거나 하진 않지만, 그건 현대에서 살던 상식이 있어서다.
그것도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받들며 사는 갑이라는 입장이 크기 때문이겠지.
전혀 상냥하지 않았다. 그저 이쪽 사람보다 허용해주는 선이 더 큰 것뿐이 아닐까.
“저는 괜찮아요. 사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 렇습니까.”
“네. 아이단님은 제 탓을 하지 않았지만….”
그레이스님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으니. 마음고생이 있었겠지.
그에 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자 그레이스님이 날 보며 웃어줬다.
“괜히 신경 쓰이게 해드렸네요.”
“아닙니다.”
그레이스님의 다정한 말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조금 쭈뼛거리자 그레이스님이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레이스님의 갸날픈 손이 벌리며 가슴이 드러났다.
란제리에 가려졌지만, 네리아보다 더 큰 가슴이 내 앞에 나타났다.
“언제까지 레이디를 홀로 내버려 두실 건가요?”
“……그럼.”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슬슬 나도 참기 어려웠다.
얼굴을 붉게 물든 그레이스님을 보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당신에게 제 아이를 임신시키겠습니다.”
“……이런 강렬한 프로포즈는 처음이에요.”
어? 이게 프로포즈야?
* * *
“……하아.”
달짝지근한 그레이스님의 숨결이 느껴졌다.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푹신한 침대 위에 옷을 벗고 올라타, 그레이스님의 앞에 다가섰다.
“보기 흉하시진 않으신가요? 저도 이제 나이가…….”
“흉하다니요. 누가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제 눈에는 누구보다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애초에 나이가 많다고 해봐야 이제 20대 초중반 아닌가.
음. 이 세계 기준으로 치면 조금 있는 편인가. 그래도 그레이스님 역시 마력 보유자. 몇 년이 흐르더라도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질 리가 없다.
“아,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다니…. 부끄러워요.”
이렇게 가까워지자 평소 보지 못한 모습이 보였다.
그레이스님의 새하얀 피부. 살내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살짝 떨리는 가느다란 속눈썹.
천천히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뻗은 손이 긴장감에 떨리는 것을 봤는지 그레이스님이 천천히 내 손을 감싸며 끌고 가셨다.
“레오릭님….”
“그레이스님!”
참지 못하고 밀어붙였다.
내 손길에 기다렸다는 듯이 저항 없이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그레이스님.
털썩.
내 손길에 침대 위로 쓰러진 채, 촉촉해진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여자의 위로 몸을 올렸다.
눈앞에 보이는 붉은 입술에 나도 모르게 입을 가져다 댔다.
“아, 키스는….”
“안되는 건가요?”
“그건….”
살짝 망설이는 그레이스님.
나에게 호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이다.
컨셉을 바꿔야 한다. 듬직한 남자는 형님이 이미 했겠지. 나는 첫경험도 아직인 동정에 순진한 남자. 소년의 마음가짐을 품어라! 레오!
오네쇼타…! 오네쇼타…! 쇼타는 아니지만!
“그레이스님…, 아니 그레이스 누나!”
“읏!”
내 말에 몸을 움찔 떠는 그레이스님.
“오늘 밤만이라도 좋아요.”
“그런……, 레오릭님. 그러한 언동은 안됩니다. 저희는…….”
“레오라고, 불러주세요. 그레이스 누나.”
“…….”
“오늘 이 방에 있는 건 저희 둘 뿐이지 않습니까…!”
내 간절한 말에 시선이 흔들리는 그레이스님을 바라봤다.
평소 연심을 숨기고 있는 동생이 그것을 밝히면서 정열적으로 바라보는 상황! 금지된 관계에서 오는 불장난! 먹힌다. 먹혀.
흔들리는 시선이 멈췄다.
쪼옥!
입술만 살짝 부딪히는 귀여운 키스. 아니, 뽀뽀라는 레벨.
하지만 그 행동에 나는 눈을 반짝였다.
붉어진 얼굴, 살짝 흥분해 떨리는 눈빛.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작은 정열을 놓치지 않았다.
“오늘 밤만이에요. …레오.”
“네. 누나.”
……과연 오늘 밤만일까?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