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금수저 이야기-9화 (9/143)

〈 9화 〉 모험가 길드 ­ 1

* * *

“다음 안건은…….”

넓은 회의실.

상석에 앉은 아버지는 평소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나와 아이단 형님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병사의 모집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음.”

귀족의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병사가 굳이 필요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정상이다. 실제로 나도 물어봤고.

실제 전쟁 자체는 이전 세계의 전쟁과 변함은 없다. 병사들로 막고, 기사로 후려친다.

병사들이 보병 부대라면 기사들은 기갑 부대이자 포병 부대이자 방공 부대.

귀족은?

대기한다.

일종의 핵전력에 가깝다.

특히 가문의 이름을 달고 있는 직계 귀족이 가진 힘은 약간 과장을 넣어서 이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핵병기.

만약 전쟁이 불리해졌다고 하여 나서는 순간, 이쪽도 전력으로 나서도 되는 명분이 된다.

특히 전쟁 중 평민 같은 민간인에 피해가 발생해도 책임은 먼저 나선 가문에게 주어진다.

이 경우, 왕족이 나서도 막을 방법이 없다.

이걸 침해하는 것은 귀족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 단순히 전쟁과 관련된 가문이 아닌 다른 귀족 가문도 참견할 이유가 된다.

알기로는 다른 이유도 많은 것 같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내가 전쟁에 나갈 것도 아니고.

미쳤다고 군대에 들어가나.

물론 이등병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번 안건은 추가적인…….”

그것보다 지금 제일의 큰 고민은 다른 것도 아닌 바로 성욕이다.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난 고문을 당하고 있다.

샬롯부터 시작해서 네리아까지.

은밀한 곳의 접촉을 몇 번이나 했는데 이쪽은 아직 바지조차 벗지 않았다.

레나에 금지당했기 때문이다.

“절대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레나의 시선은 철벽 그 자체.

이 일로 아버지에게 전권을 이양받은 레나에 나는 반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엊그제부터 지금까지 인내심을 시험받는 부처가 될 것 같았다.

차라리 혼자서 해결하는 것도 생각해봤다.

“자위행위도 금지입니다. 아기씨를 낭비하는 건 귀족으로 불명예입니다.”

“그런…!”

나보고 죽으라는 건가.

결국, 성욕을 해결하지 못한 채 오늘까지 왔다.

기본적인 교육과 주로 맡는 업무 등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밤에는 성교육을 받는 생활을 이어졌다.

며칠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지.

“그럼 전에 말했던 대로 몇 가지 안건은 차남 레오릭에 맡긴다. 다들 잘 수행하도록.”

“네.”

이야기가 끝났다. 어느새 시선이 모여지는 것을 느끼고 아버지의 말에 자연스럽게 일어섰다.

가신들의 시선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내리깔자 그들이 허리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잊지 말아라, 레오릭.

귀족은 철저한 갑이며, 가신들이라고 불린 저들도 결국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 * *

적당한 크기의 집무실.

딱 봐도 질 좋은 고풍스러운 책상과 의자.

주변의 책장에는 아직 몇 가지 물건밖에 없었다.

“좀 채워야겠는데.”

당분간 계속 이용하는 집무실로 쓰기에는 썰렁했다.

뭐, 이걸 준비한 아버지도 그대로 쓸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뒤로 돌아보면 입구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두 명이 있었다.

샬롯과 네리아였다.

“샬롯.”

“네, 도련님.”

샬롯과 네리아는 그 날 이후 내 직속 시종이 되었다.

직속이라고 해봤자 여태까지 한 것처럼 허드렛일을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 날 이후 날 졸졸 따라다니며 보필하기 시작했다.

집무실이 생긴 지금은 별일이 없는 한 계속 기다리겠지만.

“하인들을 시켜서 내 공부방에 있는 책들을 옮겨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네리아.”

“네.”

한 번 방을 싹 훑어봤다.

그리고 창가에 비치된 문을 열자 펼쳐지는 정원.

이 시간에 이 햇빛. 남향의 발코니. 환하게 보이는 풍경. 딱 좋군.

“여기에 어울리는 테이블을 구하고, 찻잔 세트도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둘은 내 말이 끝나자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방을 빠져나간 둘은 곧바로 종종걸음으로 물러났다.

펄럭이는 치마. 그 속에 있는 스타킹으로 감싼 다리.

최근 밤에 자주 봤던 둘의 나신이 떠올랐다.

“아,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하구나.”

여태까진 형님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아서 참았지만, 이제 참을 필요도 없어졌고.

요 며칠 일어난 교육으로 이 건강한 육신은 폭주하기 직전이다.

막, 하반신에서정자가 우글거리며 태어나는 감각이 느껴졌다.

조금 더 지나면 몽정까지 하겠는데. 젠장.

“도련님.”

“응?”

어느새 준비가 끝났는지 창가 근처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가 마시는 차가 적당한 온도로 끓여진 채로 준비되어 있었다.

“고마워, 네리아.”

“천만에요, 도련님.”

발코니의 의자에 앉아 네리아가 차와 과자의 세팅을 끝냈다.

이것도 다 기술이란다.

아마 네리아가 하녀 일을 끝내면 성 아래 사람에게 일등 신붓감이 되겠지. 어쩌면 고위 기사나 상인의 아내가 될 수도 있다.

준비를 끝낸 네리아는 한 발자국 물러난 상태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네리아. 책상 위에 서류 좀 줄래?”

“그, 그런…….”

내 말에 네리아가 잠깐 머뭇거리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하녀인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서류 같은 물건은 보통 하인이 만지는 것이 아니니까.

“음. 네리아도 알겠지만, 공식적으로 근무하게 됐는데 당분간 일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조금 난처한 표정의 네리아도 재미있지만, 한 번 더 말하자 결국 서류를 챙겨 왔다.

그러고 보면 네리아는 글을 읽을 수 있던가?

“글을 읽을 수 있어?”

“네? 아, 네. 브람스 어라면.”

브람스 어. 이 나라의 언어지만 원래 예전부터 이곳저곳이 섞인 탓에 언어도 뒤죽박죽이다.

여기 남부 지방은 오래전부터 브람스의 지배를 받은 지역이니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래? 알겠어.”

“네.”

인사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대기하는 네리아에 한 번 웃어준 뒤 서류를 살폈다.

……해야 할 일이라고 해봤자 별 건 없다.

어차피 중요한 일은 아버지가 처리할 거고, 전쟁 중에 아버지가 자리를 비워도 돌아가는 시스템이니까.

내가 하는 일은 형님이 하던 일 중 몇 개를 이어받아서 하는 일.

대표적인 것이 도시 내 치안 관리.

그 중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몇 개 있었다.

“모험가 길드라.”

판타지 세계 또 왔네?

* * *

“모험가 말입니까?”

내 일을 도와주기 위해 온 문관.

청색 머리카락을 짧게 친 남자였다.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래. 모험가. 개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지?”

“음. 그렇군요.”

이름이 뭐더라?

체, 체…. 체코?

푸른 머리카락의 청년은 잠깐 고민을 하더니 이내 생각이 정리됐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심부름꾼 같은 겁니다.”

“심부름꾼? 모험가라면서. 재미없네.”

“하하.”

꽤 실망한 걸 느꼈는지 체코도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모험가라는 이름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네. 대산맥 탐색은 꽤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성공한 모험가도 있죠.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사기꾼이나 마찬가집니다.”

뭐, 그렇겠지.

지구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모험가라고 해봐야 무뢰배들뿐입니다만, 쓸만한 곳이 없는 건 아니긴 하죠.”

예를 들면 호위, 경비, 몬스터 토벌. 그리고 전쟁 용병.

다른 영지에선 간혹 손이 부족할 때 정찰병 대신으로 고용하기도 하지만, 프란츠 백작가에선 없는 일이고.

“몬스터 토벌이라.”

“저희가 하는 일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래?”

꽤 단호한 표정으로 체코가 말했다.

그 말 속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기껏해야 소형 몬스터죠. 모험가들이 가진 마력은 기사들의 발끝에도 못 미치니까요.”

이 세계의 모험가 역시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마력.

쥐꼬리만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없는 사람과 차이는 크기 때문에 말단조차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체코의 말처럼 귀족은커녕 기사들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간혹 유명한 모험가의 경우 기사급이 없는 건 아니라고.

“마력을 가진 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건 불만입니다만, 애초부터 그 정도 마력 수준이라면 필요 없긴 하죠. 더군다나 다루는 방법도 투박하기 짝이 없으니.”

체코의 입가에 비웃음이 그려졌다.

거, 살벌하네.

마력 차별이 기본적인 인식으로 깔린 세계다. 하긴 그게 기반인 신분 제도가 만들어진 세계니 당연한 건가?

“그럼 형님이 맡으셨던 모험가 길드의 관리는 무슨 일이지?”

“아, 그 부분은 간단합니다.”

어쨌든 마력을 가진 자들.

그들이 날뛰면 기사들이야 금방 진압할 수 있다고 해도 평민이나 일반 병사들의 피해는 심할 수밖에.

그런 것을 방지하려는 방법의 하나가 모험가 길드다.

“기본적으로 성문에서 검사하긴 하지만, 자잘한 것까지는 힘들죠. 그 때문에 길드에서 관리합니다.”

“흠. 길드는 프란츠에만 있는 건 아니지?”

“네. 정확히는 길드 자체는 전 대륙에 걸쳐서 존재합니다만.”

체코의 말에 따르면 길드 자체는 대륙에 걸쳐서 존재하긴 하지만 딱히 서로 연결된 건 아니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서 각 영지에 있는 길드는 그 영지 귀족의 지배를 받는다.

“엄밀히 말해서 길드라는 이름만 공통으로 쓰는 것뿐, 따로 이어진 건 아니라는 거군.”

“네. 모험가 증표와 그 모험가의 이력에 대해서만 서로 정보 공유를 할 뿐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거의 한 지방에서만 이루어지는 정보 교환.

인터넷 같은 건 없으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리고 그 길드를 관리한 사람이 바로 형님이라는 거지.

그 외 다른 길드도 있지만….

상업에 관련된 부분 같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은 어차피 최종적으로 확인만 하는 정돈가.

“그럼 한 번 가보자.”

“네?”

“모험가 길드에 한번 가보자고.”

궁금하긴 해.

판타지 세계의 모험가라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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