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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3화 (3/143)

〈 3화 〉 가족 회의 ­ 2

* * *

하녀를 건드는 건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이 세계의 귀족은 완벽한 갑. 천룡인. 실제로 알아보면 높으신 분이 평민들을 건드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유모의 딸이라던가, 하녀라던가. 자주 있는 일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런 교육도 있다고 하고. 내가 여태 그걸 참아온 이유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것도 있었고.

“흠. 표정을 보니 관심은 있나 보군.”

“크흠.”

하지만 막상 말하려고 하니 딱히 할 말이 없다. 근처의 여자라면 하녀들뿐이고. 머릿속에 얼굴이나 몸이 좋은 하녀들 몇 명이 스쳤다.

“하녀 중에 마음에 드는 여자는 없고?”

“괜찮다고 생각한 여자 시종들이야 있긴 있습니다만….”

침대 시트를 정리하는 걔라던가, 매일 아침 환기를 하러 오는 걔라던가. 사실 평소 호감도 작업을 조금 해놨지.

여기의 귀족들은 하녀는 말 그대로 물건 취급하니깐. 이름을 외워주고 웃어주기만 해도 인기 만빵이다. 더군다나 내 얼굴도 아버지와 형님처럼 잘 생겼으니깐.

“그레이스의 시종들도 괜찮지만, 말없이 건드리는 건 그녀에게도 폐가 되니 미리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레이스에게 직접 물어볼 테니.”

“아, 네. 괜찮습니다.”

그레이스는 형님의 아내다.

풍성한 금발에 푸른 눈동자. 언제나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정원에서 다도를 하는 것이 취미인 귀족의 여자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박아놓은 매력적인 여자다.

처음 형수님을 봤을 때 역시 판타지 세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보랭의 이니스 역시 이쁘긴 했다. 인형처럼 귀여웠긴 했지만, 그때는 어렸고. 지금은 많이 컸겠지.

“스벤도 모르는 걸 보니 아직 하녀들을 건드린 적이 없는 건 사실이고. 유모에게 딸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아쉽게도 레오릭의 유모는 아들뿐이었지?”

“네, 네.”

쌍둥이 형제가 하나 있다. 젖형제로 내 시종으로 직속 가신에 가깝다. 아직 교육 중인 몸이긴 하지만. 차남이라는 입장 상 대놓고 가신을 모집하는 건 형님 눈치도 보여 내 가신이라 할 수 있는 애들은 거의 없다. 게네들이 내 최측근이다.

그놈들도 요즘은 훈련 때문에 바쁘다고 했던가.

“자식을 낳는 건 귀족의 의무다. 관심은 있어 보이니 다행이긴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좀 전에 말했다시피 귀족의 피 자체가 병기 중 하나다. 마력 보유자가 많을수록 그 영지의 강함을 알린다.

그렇다면 마력 보유자가 귀족들뿐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성은이라는 이름으로 귀족이 하급 귀족. 특히나 준 귀족 취급인 기사들이나 평민에게 성은이라며 자식을 품게 하는 일이 있다. 귀족들의 성욕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라 적긴 하지만.

귀족과 귀족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대부분 마력을 가진 상태로 태어나지만, 평민과 하면 그 확률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미리 교육하는 셈 치고 평민들 특히 귀족의 경우에는 유모의 자식이나 하녀들 상대로 성교육을 겸하면서 자식을 보게 하는 경우가 있다.

기사들 역시 충성의 증거로 성은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력이 있다면 여자도 기사가 되는 환경이니 여기사의 경우에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에게 성은을 받는 것이 최고의 상이고, 그렇게 태어난 자식은 자기보다 더 마력이 강할 테니 그렇게 점점 마력의 격이 높아지면 귀족 가문이 될 수도 있고.

남기사 역시 자신의 처나 첩에게 성은을 받게 해서 자신의 자식과 결혼시키는 방식으로 가문의 힘을 키운다.

가끔가다가 부모 둘 중 하나의 핏줄에서 격세유전 같은 느낌으로 강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긴 하는데, 그런 상황에도 대부분 기사급 정도나 혹은 귀족이라고 해도 말단. 간혹가다가 정말로 희미한 확률로 강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도 딱히 경계할 이유는 없다.

이 세계도 근친의 위험성에 대해 알려진 것 같았다. 문제라면 마력이 거의 만능에 가까운 힘이라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지만. 어쨌든 새로운 핏줄은 기존의 귀족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니깐.

말로 보면 귀족이 힘내면 모두가 행복할 텐데. 최대의 단점이 바로 귀족의 성욕이 적은 것이 있다.

딱히 교육으로 그걸 막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성욕이 적다. 아버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라고 하고. 형님의 경우엔 유모의 딸과 지금의 결혼 상대인 그레이스님과 그레이스님의 젖자매인 시녀 한 명이 전부라고 했던가.

“레오. 처음이라면 첫날밤에 실수할 때도 있다. 그럼 그 탓에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 심하면 발기부전이 될 수도 있어.”

“네, 네.”

알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자신 있게 외치는 것도 그렇고 얌전히 듣고 있자.

그렇게 듣고 있다가 조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형님이 아버지를 바라보자 아버지의 고개가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레오. 이건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들었으면 좋겠어.”

“네.”

이게 진짜 본론인가?

조금 긴장한 채로 형님을 바라봤다.

“너만 괜찮다면 그레이스는 어때?”

“……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형님?

* * *

제정신인가 형님.

나도 모르게 아이단 형님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미리 이야기가 끝난 건가.

“형님.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이게 태연히 말해도 되는 이야긴가?

익숙해졌다 싶으면 또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기존의 상식 때문인지 역시 판타지 세계의 상식을 완전히 파악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음. 별로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아이단 형님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

귀족 사이에 아내를 빌려주는 일이 드문 건 아닌가?

판타지 세계의 상식이란. 더 공부해야겠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실제 경험도 어느 정도 있다. 그레이스라면 첫 상대로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그레이스님은 형님의…….”

“아, 과연. 그게 망설이는 이유였구나. 하지만 난 괜찮아.”

지구에서도 이미 죽은 형제의 처를 첩으로 삼는 일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지금과 상황이 다른 것 같은데.

“같은 핏줄의 귀족이라고 해도 이런 경우가 없긴 하지.”

“그, 그렇죠?”

뭐야, 역시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잖아. 난 또 나중에 내 아내가 생기면 형님이 한 번 안아보자 할까 봐 쫄았잖아.

“다만 형제들 사이에 약간 문제가 생기면 조금 달라진다.”

“문제요?”

아이단 형님의 말로는 좀 전에 이야기한 형제 중 한 명이 죽을 경우가 있다. 이때 남은 처나 혹은 자식이 있다면 그것을 챙겨주기 위해서라는 것.

두 번째는.

“너도 알겠지만…. 슬프게도 나와 그레이스 사이엔 자식이 아직 없지.”

“형님….”

그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부터 노력했지만, 그레이스는 물론이고 밀레느와 사렌. 모두에게 아이가 생기고 있지 않다.”

“그, 그렇긴 하지만 애초에 자식이 생기는 건….”

“위로해주는 거니? 고맙구나. 네가 하녀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도 이게 이유 중 하나겠지.”

입을 다물었다.

하녀를 함부로 건드려도 되는지 잘 몰랐던 것도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형님이 아직 자식이 없다는 것도 있었다.

아이단 형님은 유능하다. 실제 아버지도 후계로서 아이단 형님을 정했고, 가신들에게도 별말은 없었다.

남은 문제라면 단 하나. 후계자 문제. 아직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에 대해서 슬슬 소문이 돌 때가 됐다.

하지만 확실히. 3명을 상대로 하는데 셋 모두 아이가 아직 안 생긴 건 문제가 있다. 물론 제일 좋은 건 그레이스님에게 자식이 생기는 거지만, 일단 시녀 2명이 임신을 하면 씨 문제에서 벗어나니깐.

“그레이스를 탓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대로 계속 자식이 없다면 나나 그레이스 모두 힘들어지겠지.”

“으음.”

잘못하면 그레이스님은 친가로 돌아갈 일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취급이 절대 좋지 않겠지.

“나도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고, 그레이스에 대해선 아직 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너에게 부탁하는 거야.”

“저에게 말입니까.”

“음. 너라면 어찌 됐든 프란츠 백작가의 혈통을 잇는 아이가 태어나니깐 문제가 없지.”

어찌 됐든 혈통의 유지가 되면 괜찮다는 건가.

이 세계의 귀족의 무서운 점 중 하나가 이거다. 자신 개인보다 가문을 중시하는 성향이 조금 짙다. 이거 혹시 성적 욕구가 그런 쪽으로 가는 거 아닌가.

“그리고 나 역시 아직 포기할 생각은 없다. 네가 그레이스를 상대하는 동안 난 밀레느와 사렌을 상대할 생각이니깐.”

“아, 그렇죠. 아직 확실하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밀레느는 유모의 딸이며, 사렌은 그레이스님의 유모의 딸. 그레이스님이 결혼하면서 여기로 올 때 따라온 몇 안되는 시종. 그레이스님이 신뢰하는 상대라 결혼 첫날밤에도 함께 했다고 했던 가.

하지만 진짜인가.

그 그레이스님과 임신 섹스?

형의 아내에 내 자식을 낳는 임신 섹스…… 땡기기는 하는데.

“그레이스를 위해서라도 부탁하고 싶구나.”

“하아.”

결혼한 여자가 임신 소식이 없다는 건 이 세계에서도 큰일이고, 그 여자는 진짜 큰 상처를 받겠지. 형님은 자신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여자를 탓하는 일도 많고.

“그럼 그레이스님은…….”

“물론 그레이스도 승낙한 일이지. 그녀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깐. 그래서 레오. 네가 좀 도와주지 않겠니?”

형님을 바라봤다.

평소처럼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는 미청년. 정말로 괜찮아 보인다. ……그렇다면야.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레이스님 같은 분을 상대로 첫 경험을 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겠죠, 형님.”

“그래.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고맙구나.”

툭 하고, 형님이 어깨를 두드렸다.

머리가 아니라 어깨를 두드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한 사람의 남자로서 인정한다는 이야기려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형수님과 섹스하게 되었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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