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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금수저 이야기-2화 (2/143)

〈 2화 〉 가족 회의 ­ 1

* * *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에 취직하고 그러다 교통사고로 죽고.

그런 과거의 이야기는 이제 와선 사소한 이야기다.

“도련님.”

“집사장. 무슨 일이야?”

프란츠 백작가의 집사장, 스벤이 찾아왔다. 평상시 성의 대부분을 관리하는 아버지의 최측근 중 하나. 차남인 나랑은 별다른 인연이 없어서 이렇게 직접 대화하는 건 드물었다.

정말로 사이가 나쁜 건 아니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면 아버지 관련의 일이고. 즉, 이번에도 그러한 이야기가 아닐까.

“주인님이 부르십니다.”

“아버지가?”

역시나.

그나저나 무슨 일일까.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설사 그렇다 해도 지금처럼 교육 중에 부르는 경우는 없었는데.

“알겠어. 그럼, 선생.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지.”

“네, 도련님.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음.”

중년의 남자는 조용히 허리 숙여 인사하고 방에서 물러났다. 그런 그를 힐끔 바라본 후, 스벤을 바라봤다.

“무슨 일로 부르셨지?”

“자세한 건 주인님에게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할 말만 하는 스벤.

누구에게나 저런 태도니 딱히 할 말이 더 생기진 않네.

책상 위 책을 덮었다.

불렀으면 가야지.

자리에서 일어나니 주변의 하인들이 뒷정리하는 걸 뒤로하고 방에서 나왔다.

스벤이 앞에서 앞장서며 안내를 시작했다.

“…….”

“…….”

정말로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진짜지?

아버지에게 스벤이 웃는 걸 봤냐고 물어봤을 때 웃으면서 자기도 못 봤다고 했으니 그냥 성격이 저런 거겠지.

숨 막히는 침묵을 못 참고 결국 고개를 돌려 정원을 바라봤다.

어머니의 취향으로 뛰어난 실력의 정원사들을 고용해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그 너머의 거대한 영지가 보였다.

여기는 프란츠 백작 가문.

지구의 평범한 남자였던 나는 이 야만의 세계에서 귀족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 * *

­똑똑.

방문들 두드린 후 스벤이 몸을 뒤로 빼며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후 방문 앞에 섰다.

“아버지. 레오릭입니다.”

“……왔군. 들어와라.”

중후한 저음이 문 너머에서 들렸다.

허락 없이 문을 열 수가 없다. 이런 예절은 옛날부터 철저하게 교육받았다.

스벤이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들어가자 곧이어 밖에서 문이 닫혔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집무실을 둘러봤다.

“형님?”

“왔어? 레오.”

잔잔한 미소를 짓는 금발 미남이 있었다.

프란츠 백작가의 장남이자 후계자. 아이단 프란츠. 형님이 거기에 있었다.

곧바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허리를 숙였다.

아이단 형님과 같은 금발을 깔끔하게 뒤로 넘겨 정리한 중년의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빈자리를 가리켰다.

“레오릭. 이제 나이가 몇이지?”

“이제 곧 성인입니다.”

“다 컸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아직 더 클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세계라면 다 큰 성인이나 다름이 없다.

애초에 어디부터가 미성년이며, 성인이라는 경계선이 희미한 세계긴 했다.

“레오의 약혼은 어떻게 됐습니까? 역시 보랭입니까?”

“일단 보랭 가문과 연락은 하고 있지만, 보랭은 이미 오래전부터 혈연을 맺어왔던 가문. 이 이상 그 피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남부 지방에서 저희와 격이 비슷한 가문은 보랭뿐이지 않습니까. 거기에 이 이상 약혼자가 없는 건 레오에게도 조금 심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흠…….”

무슨 일로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대화를 보아하니 약혼의 이야기려나.

아이단 형님의 말처럼 애초에 내 나이에 약혼자가 없는 건 귀족 세계에선 조금 드물긴 했다. 형님은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약혼하고 결혼까지 했으니.

일단 조용히 있을까.

“레오릭. 넌 어떻게 생각하지?”

“저요?”

갑자기 나? 차남의 의견이 필요한가.

원래 결혼 같은 가문의 피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버지의 선에서 이미 선이 끝난다. 이 종류의 이야기는 설사 형님이라고 할지라도 반론할 수 없다.

그나저나 약혼인가.

이 근처라면 좀 전에 대화에 나온 보랭 가문밖에 없다.

자주 파티에서 만나기도 했고, 사이도 나쁘지 않았지만.

“보랭 가의 이니스 양은 이전 무도회에서 춤을 춘 적이 있습니다.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

“하하.”

내 말에 아버지가 가만히 나를 보고, 아이단 형님은 웃었다.

보랭 가문은 이 일대, 남부 지방에서 프린츠 가문과 격이 비슷한 유일한 가문이다.

위에 말한 이니스는 그 가문의 딸로 이전에 봤을 때는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 있긴 했지만 미소녀였고.

두 가문 모두 후계자가 멀쩡하니 딱히 권력을 잡을 순 없고, 두 가문의 결속을 다지는 일이 되겠지?

“흠. 너는…….”

“네?”

아버지가 잠시 말을 멈췄다.

말이 많지 않고, 중요한 말만 하는 진중한 성격인 아버지가 말을 중간에 멈추는 건 드물었다.

“너는 권력에 관심이 없구나.”

“권력요?”

아버지의 말에 아이단 형님을 바라봤다. 형님은 묘한 미소만 지으면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걸 보통 장남 앞에서 차남에게 물어보나? 단어 선택을 잘 해야겠는데….

괜한 권력 투쟁이니 뭐니 하는 걸 경험하고 싶진 않다.

“없습니다. 형님이 고생하는 거 보면 하기 싫고, 그냥 차남으로서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내 말에 두 사람 모두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아이단 형님이 백작이 된다고 해도 딱히 내가 찬밥 신세가 되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시스템도 아니고.

“너는 정말 특이하군.”

“제가 말했지 않았습니까. 레오는 믿을 수 있다고.”

“……그렇군.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이걸로 우리 프린츠 가문의 앞날은 밝겠군.”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이 타이밍에 이 문제…. 조금 걱정된다.

이 세계에서 귀족으로서 직위를 버리고 싶지 않다.

마력이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괜한 고생은 싫다. 백작이라는 직위는 그만큼 대단하고.

“굴란 산 너머의 뮐러 가문에 대해 알고 있지?”

“아, 네. 저희 근처의 작은 영지가 아닙니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자작 아니었습니까?”

최근에 작위를 계승했던 가문이었나? 딱히 생각나는 특징은 없는데.

그러고 보면 거기도 2형제였던가?

“그러고 보니 뮐러 가문도 저희와 비슷한 나이의 형제가 있었죠? 몇 살 더 연상이었던가?”

“그래. 그리고 내분이 일어났다.”

“내분?”

……헐.

내분이라니.

“잘도 했네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으면서 말하자 아이단 형님이 드물게도 소리 높여서 웃었다.

형님의 모습에 이상해서 아버지를 바라봤지만, 아버지는 그런 형님과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하하!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지 않나, 레오.”

“예에? 아니, 하지만 형님. 그래도 내분이라니. 굴란 산이라면 대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산. 귀족의 푸른 피를 가진 전력이 한 사람도 부족한데, 내분으로 가문의 힘을 무의미하게 소비시키다니.”

이 세계에서 귀족의 푸른 피란 말 그대로 푸른 피를 뜻한다.

인간을 초월하는 강대한 힘. 마력.

그 마력을 보유한 자는 체내에 품은 마력이 강대할수록 마력의 색은 점점 푸르게 바뀐다. 피에도 마력이 있어서 푸른 기가 들긴 하지만 진짜로 피가 파란색이 되는 건 아니다. 몸에 서린 마력이 푸른색이라 그렇게 부른 거고.

그리고 그런 마력을 가진 핏줄이 귀족을 뜻하며, 이 세계에는 그런 귀족의 비호가 없다면 살 수 없다. 그리고 마력을 없는 평민을 보호하며 지배하는 것이 귀족의 의무를 뜻한다.

한 가문에 귀족의 피가 짙고 많을수록 가문의 힘을 결정하며, 내분으로 서로 싸우는 것은 가문의 힘을 의미 없이 소비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뮐러. 자작 가문이었나? 그렇다면 가진 마력의 힘도 대체로 짐작이 된다. 자작 가문에서 서로 내분이라.

“으음. 귀족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 그런 일이 돼버릴 텐데요?”

“음. 그 말대로.”

아이단 형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는 절대 평화로운 세계가 아니다.

귀족의 의무가 백성의 보호일 때.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고 주위에서 생각되는 경우.

그것만으로 주변의 다른 귀족들에게는 전쟁의 명분이 된다.

“네 말이 맞아. 레오. 귀족이라는 자가 그렇게 했으면 안 됐지. 아니면….”

“주변 다른 귀족이 눈치채기 전, 혹은 눈치채더라도 군을 일으키기 전. 그 전에 끝내야 했지.”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군요.”

조금 오싹해졌다.

전쟁은 조금 무섭다. 경험한 적도 없고. 전투 훈련이야 했지만.

두 사람의 눈을 보면 아주 진지했다.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전쟁이라.

“해도 괜찮습니까?”

전쟁의 명분이 되는 건 다른 귀족도 마찬가지고. 반대로 이쪽이 약해졌을 때 노릴 수도 있다. 물론 이 경우 제일 경계할 곳은.

“보랭 가문과 약속을 했다.”

“흐음.”

역시. 진작에 이야기는 끝났었군.

“윌리엄 보랭 백작과 이야기는 이미 끝냈다. 우리가 직접 군을 일으키는 대신 주변 다른 가문을 견제하는 역할을 보렝이 하기로 했다.”

“윌리엄 보랭 백작님.”

그분이 과연.

이전에 만났을 때는 덩치가 큰 호탕한 남자로 기억했다. 술은 좋은 거라며 계속해서 권해서 숙취로 고생했었지.

“그리고 약혼의 이야기도 다시 했지만, 장남이 이번에 아이를 가졌다고 하더군. 굳이 무리하게 약혼을 진행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건 축하할 일이군요.”

“음. 축하 연회를 열 생각이라고 하더군.”

귀족의 피는 그 자체만으로 전략 병기.

귀족의 의무 중 하나가 바로 자식을 보는 것이다.

의무라고 칭해지는 것은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귀족은 자식을 보기 힘든 것도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귀족들이 서로의 결혼을 서둘러 하는 것 역시 이게 이유고.

“그래서 시간이 남았지만, 이제 너도 성인. 이제 슬슬 여자를 알아야 할 나이가 아니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더냐?”

여자!

그야 땡기지! 시벌. 내가 이 나이까지 얼마나 힘들게 참았는데!

곧츄가 단단해지는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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