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4)

08

집 안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녀를 침대에 앉힌 후 주방으로 사라졌던 정우가 보리차가 든 물병을 들고 나타났다. 은혜가 물을 한 컵 다 들이켜자 정우가 말없이 빈 잔을 다시 채웠다.

“병원 가자.”

그가 마침내 침묵을 깨고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괜찮아.”

은혜는 컵을 책상에 내려놓은 후 작게 속삭이며 고개를 저었다. 빙빙 돌던 머릿속은 차츰차츰 진정이 되었고 더 이상 땅이 얼굴을 향해 일렁거리지도 않았다. 다만 몸에 열이 나고 목이 타며 갈증이 사라지지 않을 뿐이었다.

“쉬어. 그럼.”

“오빠.”

방을 나서려는 정우를 은혜가 불러 세웠다. 머리를 거치지 않은 말이 저절로 입술을 비집었다.

“조금만 더 내 옆에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정우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호, 혼자 있기 싫어서….”

말을 더듬는 그녀의 눈에 아직도 용해되지 못한 불안과 두려움이 보였다. 제 방인데도 무릎을 모으고 쪼그리듯 웅크려 앉은 은혜의 어깨는 아직도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타인에 의해 단추가 다 뜯기고 엉망으로 구겨진 얇은 블라우스를 보자 정우의 몸속에서 다시금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당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옷을 당장이라도 벗겨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건조하게 내뱉었다.

“집 나간다며.”

은혜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랑은 같이 못 살겠고, 혼자 있긴 싫고. 그래서 만났던 게 고작 그따위였니.”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은혜의 가슴이 바늘에 쿡쿡 찔린 듯 아팠다.

“친구 핑계 대며 거짓말까지 하고 나가서 만난 상대가 고작, 여자한테 약 먹여서 강간하려던 개새끼였냐고 묻고 있어.”

정우의 낮은 목소리, 낯선 말투가 마치 칼날처럼 서늘해 두려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말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서러워지는 건 아이러니였다. 은혜가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그를 불렀다.

“오빠….”

“그래. 할 말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봐.”

정우가 팔짱을 낀 채 방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은혜를 바라보는 눈이 차가웠다.

“왜 내가 그런 좆같은 꼴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 했는지 네 입으로 한번 설명해 보라고.”

웬만해서는 그녀의 앞에서 험한 말을 하지 않는 정우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의 휴대폰에서 마지막 통화 기록이 누군지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샤워를 마친 그녀가 다른 이의 이름을 대며 그의 시선을 피했을 때부터 싸한 예감이 그의 머릿속에 스멀거렸다.

폭력적인 충동을 참을 수 없어 구겨진 명함의 번호로 연락을 했다. 조폭 회장은 그에게 주소와 사진 한 장, 그리고 받을 돈의 액수를 보내왔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이었다.

수금이 끝난 돈이 그대로 자신의 계좌에 돌아온 것을 확인했을 때는, 그가 공중화장실에서 피에 물든 손을 씻어 낸 후였다.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며 정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핏물이 번진 강에 두 발을 다 들이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침묵의 응대만이 되돌아왔다. 그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그녀가, 거짓말까지 하고 만난 상대에 대한 폭력적인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는 그녀의 위치는 고급 오피스텔의 이름을 말해 주었지만 방 번호까지는 알 수 없었다.

응답이 없는 휴대폰을 쥐고 건물에 들어섰을 때, 세입자의 정보를 일일이 알 수 없으며 안다 해도 그에게 말해 줄 수는 없다고 딱 자르는 젊은 경비원의 멱살을 잡았다. 정우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서 못 할 일이 없었다.

- 응. 갈 거야. 안 그래도 지금 정윤이랑 헤어지고 집에 가려고….

끝까지 거짓을 말하려 애쓰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정우는 위험을 읽었다. 읽지 못할 수가 없었다. 아홉 살 때부터 그녀와 함께한 그가 그녀의 목소리에 섞인 희미한 울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오피스텔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눈에 비쳤던 모습을 다시금 상기하자 심장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을 하든, 하지 않든 어차피 그 새낀 내 손에 죽어.”

이글거리는 목소리가 그의 성대를 비집자 은혜가 벌떡 일어났다. 은혜는 그가 농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석상처럼 서 있는 그를 꽉 붙드는 그녀의 눈동자를 채우는 감정이 뭐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정우는 은혜를 똑바로 보며 확실히 내뱉었다.

“한 번 들어갔던 곳, 두 번은 못 갈 거 없어. 대신 이번엔 나오는 데 꽤 오래 걸리겠지. 어쩌면 못 나오려나?”

“안 돼. 그러지 마, 오빠. 제발. 내가 잘못했어. 경솔했어.”

은혜가 발작하듯 고개를 마구 저었다. 두려움과 불안의 눈물이 뺨을 감싸며 흘러내렸다. 중학교 때 그녀를 괴롭히던 놈을 때린 결과, 정우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하자 그녀의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정수리가 쭈뼛거렸다.

“첨부터 쓰레기인 거 알았는데…. 그 집까지 따라간 내가 바보였어. 내가 다 잘못한 거야.”

“…알았으면 안 갔어야지.”

“그냥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어.”

“…그래서 도망친 게 거기야? 사람 보는 눈이 그따위로 없니?”

싸늘하게 내뱉는 정우의 눈에 시커멓게 불꽃이 튀었다. 그의 절망감을 보면서 은혜가 결국 목소리를 높이고야 말았다.

“쓰레기인 거 아니까…. 그래서 오히려 쉬웠어!”

“뭐…?”

정우가 귀를 의심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용하려고 했어. 그냥 아무한테나 몸 줘 버리려고 했어.”

“…이은혜.”

“어차피 누구라도 상관없었는데 착한 사람이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그래서… 그래서….”

“이은혜!!!”

정우가 한달음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자 제풀에 놀란 은혜가 침대에 나동그라지듯 도로 주저앉았다. 정우는 무릎으로 매트리스를 짚고 그녀를 자신의 팔 사이에 가두었다. 쾅! 하고 벽을 친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은혜는 벽에 몰아붙여진 채 얼굴을 엉망으로 찌푸리곤 그를 보며 울었다.

“너… 나 죽이려고 마음먹은 거야? 내 앞에서 네가… 네가 어떻게 감히 그딴 소리를 지껄여.”

정우의 얼굴은 이제 피가 완전히 사라진 잿빛이었다.

“아무한테나 줘 버린다고? 누구한테든 상관없다고!”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에 분노가 번뜩였다.

“오빠, 너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는 거 알아 몰라.”

“흐윽…. 흐으….”

“알아 몰라, 대답해!!!”

짐승처럼 커다랗게 소리치는 그를 바라보는 은혜가 입술을 꽉 깨문 채 눈물만 후드득후드득 흘렸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듯 말 듯 울컥거렸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식칼로 내가 내 배를 직접 쑤실까? 그럼 네가 정신 차릴까? 도대체 네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들어…!”

정우가 그녀의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어 있냐고 다그친다. 은혜의 심장이 이러다 터져 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빠르게 뛰었다. 몸은 아직도 절절 끓는 것처럼 뜨거웠다.

잔뜩 젖은 속눈썹이 꽉 감겼다가 위로 뜨이며 흔들리는 눈동자를 드러냈다. 그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뜨거워지고, 눈물이 차올랐다가 애틋해지는 이 감정을 정우가 알 수 있을까. 그녀를 보며 무섭게 분노하는 그가, 그녀의 마음을 손톱만큼이라도 짐작이나 할까.

“…사랑해요….”

둥지에서 떨어진 작은 새의 울음 같은 목소리가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정우의 눈매가 일그러지고 그 안의 눈동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순간, 공간의 모든 소음이 정지하는 것 같았다.

“…뭐?”

은혜가 벌받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양손을 입술에 모으고 온몸을 떨며 흐느꼈다. 어렸을 때는 아무 거리낌 없이 불쑥 내뱉었던 말. 언제부터인가는 도저히 할 수 없던 말이었다. 입에 담는 순간 몽땅 들켜 버릴 것 같아서. 그가 그녀의 비밀스러운 마음을 알아채 버릴 것 같아서.

“미안해, 오빠….”

“뭘… 어째…?”

정우가 얼음이 쩍쩍 갈라지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은혜는 자신이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서러운 고백을 이런 비참한 상황에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사랑해요…. 흑…. 오빠한테는 나 여자 아닌 거 아는데…. 입을 맞추고 뭘 해도… 흑…. 영원히 동생일 뿐인 거 아는데, 그런데도 나는… 오빠가… 흐윽….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아….”

정우의 눈빛에서 소리 없는 불꽃이 파르르 튀었다. 은혜가 부어오른 목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두서없이 말을 이었다.

“나…. 집 나간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나가기 싫었어.”

주혁이 그녀에게 원하는 게 뭔지 어렴풋이 짐작했음에도 그를 만난 것은 체념 반 오기 반이었다.

“그런데 오빠 옆에 있으면 내가 너무 괴로우니까…. 흐윽…. 그래서…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나 따위 아무렇게나 줘 버리면 이제 오빠 옆에 죄책감 때문에라도 못 남아 있으니까….”

정우가 커다란 손으로 은혜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쥐어 자신을 보게 했다. 주혁에게 맞아 부어오른 뺨보다, 그걸 보는 정우의 눈빛이 더 아팠다.

그의 손안에서 그녀의 얼굴이 가늘게 떨렸다. 그것이 정우에게서 시작된 떨림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은혜.”

고통스럽게 갈라진 목소리가 마침내 정우의 성대를 갈랐다.

“나는… 날 나 따위라고 말할 수 있지만… 넌 그래선 안 돼.”

한 음절, 한 음절, 괴롭게 끊어지듯 내뱉는 정우의 말투는 마치 자신에게 하는 것과 같았다.

“너는, 나 같은 거 말고,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 말고,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의 곁에 있어야 해. 그럴 자격이 있어.”

이성과 본능의 줄타기였다.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마지막 인간성으로 잡아 누르는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은혜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펀치를 다시 한번 날렸다.

“내가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은 최정우뿐인데…?”

피가 나도록 꽉 깨문 정우의 입술에서 뜨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언제부터인지도 몰라. 철이 들기 전부터 내 눈에는 오빠만 보였으니까. 내 세상이 전부 다 오빠였다고.”

“착각이야.”

네 눈 앞을 가린 것은 나였으니, 네 세계를 나 하나로 꽉 채운 건 나의 더러운 욕심 때문이었으니.

“그래.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아. 착각한다고 날 비웃어도 좋아. 하지만… 오빠.”

은혜가 그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날 위해서… 인생 전부를 가져다 바친 사람을… 대체 어떻게 안 사랑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 방법이 있으면 좀 가르쳐 줘.”

“입 다물지 않으면… 넌 진짜, 후회할 거야.”

이것은 그가 주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은혜는 붙잡기를 거부했다. 고백하는 순간 끝일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그녀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오빠 바보야? 나 이미 후회할 말은 다 해 버렸어. 이것보다 더 큰 후회가 어디 있겠어. 말하는 순간 차일 거 아는데. 오빠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 이미 사흘 전에 예행 연습 다 했는데.”

정우는 이제 심장에 화살이 박힌 짐승처럼 숨을 씨근덕거리고 있었다. 은혜가 눈물을 흘리며 바보처럼 웃었다.

“짝사랑 이제 드디어 끝이다. 최정우 인생에 딱 달라붙은 껌딱지 같은 이은혜…. 최정우 인생에 유일한 걸림돌 이은혜…. 이제야 진짜… 오빠랑 안녕할 수 있겠다….”

“자학이야, 아님 어리광이야.”

은혜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길게 흘러내렸다.

“나 버리지 말라는 애원이야.”

“…….”

“마지막 발악이라고.”

정우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으므로, 은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입 안에 혀를 넣는 정우의 몸 안에서 짐승이 그를 찢어발기며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

격렬하고 긴 키스에 은혜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헐떡였다. 사흘 전, 그와 처음 입을 맞추었을 때보다 호흡이 더욱 가빴다.

몇 번이나 얽히며 질척한 소리를 냈던 혀가 풀리자 붉어진 은혜의 입술이 조금 벌어져 젖은 숨소리를 냈다. 정우가 그녀의 아랫입술을 아프게 잡아당기며 꽉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날 사랑한다고 지껄였니?”

은혜가 붉어진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해.”

서러운 고백이 그의 가슴을 다시금 푹 찔렀다.

“얼마나 더 혼나야 정신 차릴 건데. 응?”

정우가 그가 물고 빨았던 그녀의 입술을 손으로 짓누르듯 만지자 은혜가 숨을 몰아쉬었다. 떨면서도 그의 손가락에 살짝 혀를 갖다 대었다. 작은 접촉 하나에 정우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하는 걸 보며 은혜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어린애 취급 하지 마. 나 더 이상 안 속아 오빠….”

은혜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단단한 굳은살이 박인 정우의 손이 그녀의 혀를 문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엄지가 혓바닥을 만지다 천천히 휘돌렸다. 혀뿌리에서 저절로 타액이 샘솟았다.

은혜는 그의 손가락을 빼지도 못하고 입을 반쯤 벌린 채, 그저 젖은 눈으로 정우를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정우가 그녀의 입 안을 천천히 매만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기도 했고 정신이 완전히 나간 사람 같기도 했다.

그녀의 혀를 맘대로 유린한 손이 입 안에서 빠져나온 후, 그녀의 뺨과 귓바퀴까지 지긋이 마찰하며 이동했다. 정우가 그녀의 얼굴을 만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농밀한 터치는 처음이었다.

“…어린애 취급이 싫으면 어른처럼 취급해 줄까.”

마치 온몸의 피가 그의 손을 따라 이동하는 화끈한 느낌에 은혜의 입술에서 젖은 신음이 터져 나갔다. 정우가 그녀의 시선을 잡아채며 꽉 잠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입 맞추고 옷 벗기고 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만들고, 젖을 빨고 다리 사이를 혀로 핥을까.”

심장이 쿵쿵 터질 듯 뛰었다. 욕망이 끓어넘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정우에게서, 이제껏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이 연이어 줄을 이었다.

“그리고 오빠 거 네 안에 넣을까. 네 안에 쑤셔 넣고 네 눈에서 눈물 터질 때까지 흔들면서 박을까. 그걸 원해?”

무서운 말이지만 무섭지 않았다. 싫은 소리지만 싫지 않았다. 상대가 오빠이기 때문이다.

“응. 다 해도 돼.”

은혜가 그를 보며 붉게 빨린 입술을 뗐다.

“오빠도 나 사랑하잖아. 내가, 하아, 내가 사랑하는 것처럼 오빠도… 그런 식으로 날 사랑하는 거잖아.”

“내 마음을 네가 어떻게 확신하니.”

마지막까지 그녀를 시험하듯 몰아붙이는 정우는 잔인했다. 은혜가 아프게 중얼거렸다.

“내가 아는 최정우는… 여동생한테 발정하는 개새끼가 아니니까.”

“…….”

“나, 오빠한테 동생 아니고 여자였잖아.”

열락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정우는 거부하지 못했다. 정우가 그녀의 입술을 다시 집어삼켰다. 뜨거운 혀가 게걸스레 뒤섞이며 타액을 교환했다. 정우의 숨결 역시 완전히 달아올라 있었다.

정우가 조금 전 자신이 샅샅이 훑었던 은혜의 혀를 제 혀로 돌리며 빨았다. 은혜는 그의 키스를 거부하지 않고 고스란히 되받았다. 말캉하고 부드러운 돌기끼리 서로 부딪치는 느낌은 아찔했다.

자꾸만 바보처럼 입가로 타액이 흘러내리자 정우가 아깝다는 듯 춥, 춥, 입가를 핥으며 그녀의 목으로 입술을 내렸다. 정우의 뜨거운 숨결이 여린 살을 간질였다. 은혜는 달리지도 않았는데 뜀박질한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침을 삼켰다.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으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무서운 게 아니라 긴장한 거였다. 낯설고 뜨거운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정우의 모든 것이 생소한 거였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 같은 눈으로 그녀를 집어삼킬 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그저, 그녀를 떨리게 만드는 거였다.

“나 하나도 안 무서워. 오빠한테 내 모든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아. 오빤 다 줬잖아. 나도 다 주고 싶어. 아니. 나도… 나도 하고 싶어. 오빠랑 그러고 싶어… 흣!”

그가 그녀의 쇄골 부근에 이를 박고 체향을 폐 속 깊이 들이켜며 깊게 빨았다. 고통과 쾌감이 뒤섞이는 느낌에 은혜가 벽에 붙으며 아아, 하고 쇳소리를 내며 아찔하게 신음했다. 정우는 자신이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에 남긴 울혈과, 달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은혜를 차례로 보았다. 마치 누구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길에 함부로 남겨진 발자국 같은 흔적을 달고서 은혜가 물었다.

“이거… 나 벌주는 거 아니지…? 키스했던 것처럼… 나 혼내고 있는 거 아닌 거지…?”

정우가 그녀의 목을 자근자근 씹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화난 것처럼 이글거렸지만 그 안에 가득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욕망이었다. 그녀의 온몸을 자신의 흔적으로 뒤덮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오빠도 좋은… 흣…. 좋은 거지…?”

“넌 내가 얼마나 개새끼인지 아직 몰라, 은혜야.”

그의 손이 벌어진 그녀의 블라우스 사이를 헤집었다. 은혜가 숨을 헐떡이며 그를 채근했다.

“근데 왜 엊그제는 아니라고 했어? 나랑 키스했을 땐 왜 거짓말했어?”

하프 컵 브래지어에 삐져나올 정도로 풍만한 젖가슴을 손으로 한가득 움켜쥐며 정우가 이를 꽉 물었다.

“내가 너와 키스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니…?”

엉망으로 붉어진 은혜의 입술이 그의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응. 궁금해.”

알고 싶었다. 은혜는 정우의 눈동자에 가득한 욕망을 보며, 그의 눈에 집어삼켜지고 싶다고 느꼈다.

“…매일 밤, 하던 생각을 했었어.”

“…그게 뭔데…?”

마주 닿은 정우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부들부들 떨렸다.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심장이 터질 듯 박동했다.

“…네 안에 싸면 무슨 기분일까 생각했어.”

내뱉었다. 그 추하고 더러운 속내를 기어이 입 밖으로 배설하고야 말았다. 정우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그녀의 입술을 다시 한번 집어삼켰다. 진하게 혀를 섞고 돌리며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는 그의 눈빛에 시커먼 욕망이 묻어났다. 입을 맞추며 정우가 이미 단추가 다 뜯어진 그녀의 상의를 벗겨 내고 그녀의 여린 등을 황급히 끌어안았다.

남자의 거친 손에 툭, 하고 작은 철사가 날아갔다. 은혜는 벽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정우는 그녀의 보드라운 젖가슴을 거칠거칠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너는 너무 연약하고… 부드러워서…. 이러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옥에 갈 것 같다.”

은혜는 제 눈에 눈물이 고인 것도 몰랐다. 오빠가 자신을 보며 이토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 하아…. 오빠…. 흣…!”

오빠, 하고 부르는 목소리와 동시에 고개를 치켜드는 죄책감을 내리누르듯 정우가 그녀의 몸을 침대에 뉘었다. 매트리스에 가볍게 뒤통수가 닿는 느낌에 흣, 하고 신음하며 은혜가 헐떡였다. 이제 정우는 그녀의 몸을 제 다리 사이에 가둔 채였다.

은혜는 몸을 일으킨 정우가 양손을 교차시켜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는 것을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탄탄한 상체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숨을 몰아쉴 때마다 복부에 빼곡하게 잡힌 근육이 일렁였다. 정우가 그녀에게 맨살을 붙이며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용서해 줄 거니?”

그녀가 약을 발라 줄 때면 온몸의 살갗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던 훌륭한 남자의 육체가 그녀의 몸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무섭다고 도망가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의 옆구리를 마찰하듯 쓸며 올라온 정우의 커다란 손이 유방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대답해.”

은혜가 제 입술을 깨물며 색색 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한 가지만은 확실히 하고 싶었다.

“오빠가… 나 오빠 여자 친구…. 아니, 애인, 애인 시켜 주면…. 하아…!”

그녀의 부들부들한 가슴에 정우가 얼굴을 묻었다. 유두와 가슴이 통째로 빨리는 느낌에 은혜가 새된 신음을 내질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정우는 그녀의 체취를 더욱 깊게 들이마시며 가슴을 쥔 채 유두와 유륜, 풍만한 살집까지 흡착하며 빨았다.

뻑, 뻑, 공기가 입술 새를 들락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하게 애무당하자 그녀의 여린 젖꼭지가 단단히 뭉치며 빳빳하게 일어섰다. 은혜가 흐느끼듯 울먹이며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오빠아, 흐윽….”

“애인 하고 싶다며.”

정우가 그녀의 가슴을 틀어쥐고 젖꼭지를 쪽, 쪽, 빨았다 놓기를 반복하며 갈라진 목소리를 토해 냈다. 그의 타액에 젖어 연갈색 유두가 번들거렸다. 하얀 유실에는 이미 입술 자국이 진했다.

정우는 이제 아무것도 제어하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미 그녀는 몇 번이나 뜨거운 연인으로서 사랑을 나눴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인가.

“내가… 애인한테 하고 싶었던 게 뭔지는 알아야지.”

정우가 그녀의 가슴에서 죽 내려와 배꼽 주위를 혀로 핥았다. 은혜의 납작한 아랫배가 엉망으로 일렁였다. 미치도록 부끄러웠지만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닿는 부분이 온통 절절 끓는 것 같았다.

“오빠… 으응, 아 거긴…. 흣…!”

정우가 그녀의 치마와 속옷을 단번에 잡아 내렸다. 그녀의 허벅지를 벌려 여는 순간, 은혜는 저도 모르게 손등으로 입술을 가린 후,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흠뻑 젖은 음부를 확인한 정우의 입술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 같은 욕설이 샜다. 여릿한 음모에 감춰진 곳에서 여체의 향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의 어린 연인은 담뿍 젖어 있었다. 붉은빛의 질구가 투명한 애액을 뒤집어쓰고 빛나는 걸 보는 순간, 정우는 스스로를 죽이고 싶었다.

“보지 마, 오빠…. 흐… 윽…. 보지 마…. 으응…!”

그녀는 그의 것이었다.

이곳은 오로지 그만이 용납되어야 하는 곳이었다.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에덴이었다. 그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인정하는 자신은 얼마만큼 덜떨어진 인간인가.

“…씨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정우가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입술을 박았다. 낙인을 찍듯 자국을 남기자 그녀의 몸이 저절로 튀듯이 움찔거렸다. 정우가 그녀의 다리를 벌리며 점점 더 안쪽으로 입술을 움직이자 은혜는 신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흑…!”

작고 길게 주름진 입구를 정우가 혀로 핥으며 빨았을 때는 견딜 수가 없어 온몸을 떨었다. 정우는 그녀의 양 무릎을 손으로 밀어 올린 채, 그녀의 음모에 코를 박고 시커먼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오빠가 있었다. 은혜는 불길에 삼켜지는 기분이었다. 쾌락에 내몰린 음핵을 혀로 돌려 빠는 정우의 눈빛은 이제껏 그녀가 보아 왔던 모든 눈빛을 통틀어 가장 어둡고 깊었다. 정우가 몰아쉬는 거친 숨결이 아랫도리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오빠…. 아…. 오빠…. 흑…!”

단 한 번도 내비치지 않은 소유욕을 통째로 드러내는 정우에게 짐승처럼 아래를 빨리며 은혜는 양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흐느끼듯 신음했다. 인간의 혀에 돌기가 몇 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몹시도 부드러운 살덩이가 점막을 애무할 때 주는 황홀함에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터뜨릴 뿐이었다.

“오빠, 안… 흣…. 그만….”

은혜는 이미 잔뜩 구겨진 이불을 몇 번이나 쥐었다 놓았다. 정우는 그런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피가 몰린 음핵을 강하게 흡착하며 빨기 시작하자 은혜가 허리를 뒤틀며 흐느꼈다. 정우는 그런 그녀를 결박하듯 꽉 움켜쥐고서 쉰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내가 애인한테 하고 싶었던 건… 이런 거야.”

이제껏 알고 있었던 정우의 모습이 은혜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이 재생산되는 기분이었다. 내부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흘러내리자 정우가 이제는 그녀의 아래를 완전히 감쳐물었다.

“흐읏…. 으흣…. 으응…. 응…!”

그가 질구에서 흘러나오는 걸 빨면서 혀로 입구와 음핵을 쓸어 자극했다. 은혜의 허리가 자동으로 앞뒤로 움찔거렸다. 정우는 그녀가 느끼는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으며 더욱더 집요하게 그녀를 빨았다. 오만할 정도로 높은 콧날이 그녀의 다리 사이에 완전히 처박혔다.

정우가 그녀의 음부에 얼굴을 파묻은 채 천천히 흔들었다. 감탄이 나올 만큼 완벽한 이목구비를 회음과 질구, 클리토리스 전체로 느끼는 감각은 은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 그 이상이었다.

“아아…. 아응…. 오, 오빠…. 하아…!”

절정을 느끼는 그녀의 몸이 엉망으로 퍼덕이듯 튀었다. 허벅지가 그의 얼굴을 조일 듯 힘이 꽉 들어가는데도 그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얼굴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천천히 고개를 물렸을 때, 조각 같은 정우의 얼굴은 콧잔등부터 광대, 입술까지 전부 그녀의 흔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 빠. 얼굴…. 하아….”

은혜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엉망으로 더럽혀진 정우의 얼굴을 손으로라도 닦으려 했지만 그가 몸을 물렸기에 닿지 못했다. 침대에서 내려온 정우가 청바지 단추를 풀며 애액으로 충만한 제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녀의 생생한 흔적을 빨며 바지를 스스로 벗는 정우를 보는 은혜의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흐읏….”

정우는 옷을 벗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바지에 이어 검은 드로어즈까지 가차 없이 내리는 행동에 오히려 굳어 버린 것은 은혜였다.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정우의 욕망이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은혜는 저도 모르게 이불을 끌어당겨 벌어진 입가를 가리고야 말았다.

아랫배를 휘갈기며 반동으로 튀어나온 성기는 검은 붓으로 거칠게 칠해 놓은 것 같은 음모를 뚫고 복부 위로 한참 치솟아 있었다.

은혜는 열기가 이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싫은 건 아니었다.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빠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고개 들어.”

정우의 말에 그녀가 눈을 살며시 들었다. 그가 다가오자 묵직한 성기가 흔들렸다. 은혜의 눈이 점점 더 커지며 두려움을 담는 걸 보며 정우가 제 입술을 지그시 짓씹었다.

“못 하겠니.”

“아니…. 할 수 있어.”

은혜가 침대 위로 올라오는 정우를 헐떡이며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불을 부드럽게 잡아 내리며 그가 고해 성사 하듯 내뱉었다.

“이렇게 흉측한 게 오빠야, 은혜야.”

그를 가릴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정우가 죽을힘을 다해 억누르고 숨겨 왔던 거대한 진심을 마주하는 순간, 은혜의 가슴이 아플 만큼 빠르게 뛰었다.

“…사랑해.”

은혜가 그의 얼굴을 붙잡고 다시 한번 울먹이며 고백하자 정우가 혼탁한 눈으로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듯 끌어안았다.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싱글 침대에 두 사람이 마주 본 채 겹쳐 누웠다. 완전히 나체가 되어 욕망을 드러낸 정우는, 역시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은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오빠… 얼굴에…. 내가… 하아…. 미안… 미안해….”

은혜가 정신이 아득한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훔치려 애를 쓰자 정우가 그녀의 양손을 붙들었다. 뜨거운 손이 깍지를 꼈다. 정우가 그녀에게 이마를 대고 속삭였다.

“내 얼굴에 뭐.”

말을 내뱉을 수 없어 입만 꾹 다물자 정우가 혀로 다시 그녀의 것을 핥으며 중얼댔다.

“맛있어. 너한테서 나온 건 다.”

은혜가 화르륵 타 버릴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젖은 게 부끄럽니?”

“그래도 더러워지면 안 되니까….”

정우가 그녀의 손을 아래로 천천히 이끌어 무언가를 잡게 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손을 떼지는 않았다. 단단한 것의 끄트머리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정우가 잇새로 탁하게 신음하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나도 더러워?”

은혜가 고개를 세게 저었다.

“그럼 증명해 봐. 네가 날 더럽게 느끼지 않는다는 걸.”

용기 내어 그의 성기를 떨리는 손으로 주무르자 선액의 양이 더욱 늘었다. 정우가 뜨겁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뺨에 키스를 흩뿌렸다. 정우가 느리게 허리를 흔들자 그녀의 작은 손 안에서 버거운 크기의 성기가 스르륵거리며 움직였다.

“오빠 거… 꼭 오빠 같아.”

정우가 괴롭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야?”

“크고… 진짜… 딱딱해. 나랑은 달라.”

그녀의 손안에서 그의 욕망이 한껏 부피를 늘리고 있었다.

“그래서, 싫어?”

“아니. 가지고 싶어.”

정우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녀의 얼굴에 입맞춤을 흩뿌린 후, 낮게 내뱉었다.

“이제 네 거야. 둘 다.”

은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며 정우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성기가 그녀의 손에 진한 선액을 잔뜩 묻히고 떨어졌다.

은혜는 저도 몰래 제 손을 소리 없이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정우의 흔적이 남은 자신의 손바닥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야한 무언가가 된 것 같았다.

정우는 커다란 손으로 붉어진 그녀의 양 무릎을 어루만졌다. 노동과 운동으로 거칠거칠하게 굳은살이 박인 손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대하듯 부드럽게 그녀의 살결을 쓸었다.

은혜는 그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이제껏 수도 없이 그녀의 이마를 만지던 그의 손길이, 부정할 수 없는 애무였다는 걸. 그가 만질 때마다 그녀의 몸이 반응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빠도 그녀와 같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온몸에 불길이 지펴진 듯 달아오르며 더욱 뜨거워졌다.

“은혜야.”

정우가 천천히 그녀의 무릎을 구부리며 몸을 조금 숙였다. 질구를 스치는 딱딱한 살덩이의 감각에 은혜가 무의식적으로 놀랐지만, 예민해진 클리토리스가 젖은 성기에 눌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아…!”

은혜가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벌리며 아찔하게 신음했다. 정우가 숨을 몰아쉬며 완전히 갈린 것 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눈 뜨고 봐야지.”

정우는 그녀가 그의 욕망을 똑바로 직시하길 바랐다. 끙끙거리며 벽을 넘어오려 한 건 그녀였고, 그녀를 위해 기꺼이 그 벽을 부숴 버린 건 자신이었다. 더 이상 참을 이유도, 여유도 없다.

“우리가 섹스하는 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똑바로 봐 줘야지.”

은혜의 눈동자가 다시금 흔들렸다. 정우는 그들의 지금 상황을 일부러 더 확실히 말로 되짚었다. 이제 그들이 더 이상 어제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똑똑히 확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날, 가지고 싶다면서.”

그의 성기가 질구와 음핵을 동시에 자극하자 은혜의 성대에서 앓는 소리가 흘렀다. 점도를 더한 애액이 진득하게 그녀의 안에서 흘러내렸다.

“오빠….”

마치 애원하듯 그녀가 내뱉자 정우가 그녀의 무릎을 붙여 다리를 한데 모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처박고 싶은 욕망을 죽을힘을 다해 짓누르며 방향을 위로 틀었다. 흥건하게 젖은 성기가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비집고 은혜의 여린 음모 사이로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은혜는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찔한 광경을 보며 입술을 깨물며 신음했다. 핏줄이 불거진 정우의 성기가 그녀의 뽀얀 허벅지 사이에서 왕복하고 있었다.

“응…. 으응…!”

툭 불거진 귀두가 숨겨진 음핵을 쑥쑥 쳐올렸다. 굵직한 기둥뿌리에 문질러지는 질구에 피가 몰리더니 찌잉하며 생경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정우의 움직임에 점점 속도가 붙을수록 은혜의 호흡도 빨라졌다.

은혜가 그를 보며 헐떡였다. 입 안이 말라 혀로 제 입술을 핥으며 그녀가 어쩔 줄을 모르고 신음하자 정우가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붙들었다. 정우의 손가락 사이에서 그녀의 유두가 꼿꼿이 섰다.

정우가 고개를 내려 그녀의 접힌 무릎에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그의 이마를 가렸지만 눈빛만큼은 가리지 못했다.

“아… 아!”

허벅지 사이로 쑥쑥 치켜드는 팔뚝만 한 성기의 마찰에 따라 온몸이 성냥에 그어지는 기분이었다. 한 번, 두 번, 그어질 때마다 화르륵 불꽃이 피어오르며 그녀의 온몸을 태웠다.

“오빠…. 제발….”

은혜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애원했다. 완전하게 달아오른 몸이 그를 원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부끄러움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해갈되지 못한 그 어떤 욕구가 가득 채웠다.

“제발 뭐.”

“흐윽…. 오빠…. 안아 줘…. 안아 줘…. 흣…!”

그녀가 다리를 활짝 벌리며 흐느끼는 순간, 질구에 둥그런 귀두가 걸렸다. 뜨겁게 빨아들이는 압력을 느끼자 정우는 더 이상 참아 내지 못했다. 촉촉이 젖어 있는 내벽에 천천히 진입하며 은혜에게 몸을 묻었다.

은혜가 숨도 못 쉬고 그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충분히 풀린 녹진한 내부가 그의 성기를 집어삼킬 듯 꽉 조이자 정우가 허스키하게 내뱉었다.

“씨발….”

“오빠….”

“힘 빼, 은혜야. 제발.”

정우가 어금니를 꽉 문 채 부들부들 떨며 속삭였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흣, 오빠…. 아….”

은혜의 속눈썹이 바싹 위로 들렸다. 참지 못한 정우가 움직임을 시작한 탓이었다. 한계까지 벌어진 점막이 성기에 쓸리는 느낌은 생소했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정우는 성기 끄트머리만을 그녀의 안에 넣으며 얕고 잘게 박았다. 귀두만 걸리게 박아도 내벽이 자극되기에 충분한 크기였기에 은혜는 아랫도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선사하는 쾌감에 신음할 뿐이었다.

성기가 들락거리는 횟수가 이어질수록 질벽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벌어지고 조이며 애액을 뿜어냈다.

정우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들이박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움직이는 그의 몸이 바윗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 와중에 잘라먹을 듯 그의 것을 조이는 그녀의 몸이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이대로 처박아 엉엉 울게 만들고 싶다는 가학적인 충동과, 은혜에게 고통스러운 처음을 안길 수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욕망이 그의 내부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날 사랑한다고 했지.”

“사랑해…. 하, 사랑해….”

정우는 그녀의 몸을 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뜨끈해진 살결을 매만지고 훑어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녀의 눈썹과 콧잔등, 뺨과 입술, 귓바퀴에 연신 키스가 흩뿌려졌다. 은혜는 온몸이 쾌감 덩어리가 된 것 같은 느낌에 그를 끌어안으며 녹아내렸다. 그녀가 다시 한번 흐느끼며 사랑을 말하자 정우는 결국, 더 큰 욕망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럼 날 감당해.”

정우가 그녀의 내벽에 뿌리 끝까지 들어오는 순간, 신음은 둘 모두에게서 터졌다. 정우는 그녀의 자그마한 세계를 완전히 파괴함과 동시에 들이 채웠다. 아니. 실상은 그 반대였을지도 몰랐다. 그의 세계가 그녀에게 완벽하게 감싸이는 느낌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황홀했다.

정우는 짐승처럼 신음하며 그녀를 결박하듯 끌어안았다. 그녀의 견갑골을 감싸듯 안자 바닥과 그녀의 몸 사이를 그의 팔이 지탱했다. 그 상태로 정우는 물결치듯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우가 미치도록 원했던 섹스의 시작이었다.

그가 피스톤 운동을 할 때마다 그녀의 젖가슴이 원을 그리며 출렁였다. 링 위에서 정우의 본성은 원래, 상대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그 역시 한계점을 넘는 것이었다.

자신이 여자를 안을 때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그는 처음 깨달았다. 몸속에서 툭, 툭, 시커먼 소유욕이 터져 나가며 그녀를 집어삼켰다. 은혜는 격렬하게 흔들리면서도 그를 거부하지 않고 안았다.

“나 말고 그 어떤 새끼도 만나지 마. 알았니?”

입을 열면 흐느끼는 신음만이 새어 나와 은혜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가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 그녀의 여린 귓가를 이로 잘근거렸다. 아랫도리의 상황은 점점 더 극한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여리고 좁은 점막이 그의 궤적만큼 벌어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쑥, 쑥, 비집고 들어올 때마다 누가 쾌감을 몸속에 강제로 퍼붓는 것처럼 그득하게 쌓여 갔다.

“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내 거야.”

정우가 공중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그녀의 종아리를 제 허리에 감으며 속삭였다.

“평생 아무한테도 못 줘. 넌, 죽을 때까지 최정우 거야.”

정우는 그제야 스스로 두려워 피하려 했던 그의 악마 같은 진심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는 은혜가 누구를 데려와도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용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상대가 부족함이 없었다면 그의 몸 한 군데를 은혜 몰래 분질러서라도 허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이마에서 진한 정염을 담은 땀방울이 은혜의 젖가슴에 뚝뚝 떨어졌다.

“오빠도 아무도 안 만날 거지…? 나만… 평생… 아…!”

은혜는 땀에 질척한 그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그의 입술에서 터지는 협박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원하던 바였다. 가쁜 숨을 내뿜으며 정우가 그녀에게 이마를 마주 댔다.

“글쎄. 어떻게 할까.”

은혜의 눈에 순식간에 불안감이 가득 차는 걸 보자 기묘한 만족감이 그의 속을 장악했다. 바보 같고, 사랑스럽고, 나밖에는 알지 못하는 이은혜. 너는 진심으로, 내가 너 아닌 다른 이를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빠 미워…. 미워…!”

그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자 은혜의 몸이 강하게 흔들렸다. 정우는 그녀의 머리를 팔꿈치 사이에 둔 채 빠르게 허리를 올려붙였다.

“좋다며, 사랑한다며.”

탁탁 소리를 내며 치받힐 때마다 애액이 허벅지에 튀었다.

“저리 가…. 싫어…!”

은혜가 눈가에 눈물을 달고 고개를 마구 젓자 그가 눈물을 핥으며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싫어? 그만하고 싶어?”

“응. 응. 흑. 아. 으응…!”

은혜가 격렬히 흔들리며 새된 신음을 토해 냈다.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그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지만 정우는 멈추기는커녕 더욱 빠르게 그녀를 박아 댈 뿐이었다. 정우가 시커먼 눈으로 중얼거렸다.

“계속해 달라고 애원하면 그만할게.”

회음까지 질퍽하게 젖어 들었다. 아랫도리에서부터 시작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짜릿하게 번져 나갔다. 오빠가 치댈 때마다 음란한 소음이 무섭게 번졌다. 이러다 이불을 적실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어 두려웠다.

“오, 오빠 그만.”

정우는 물론 멈추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혜는 결국 눈물에 젖은 얼굴로 그를 원망스레 보며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계속… 흐응….”

“똑바로 말해야지.”

“계속, 해 줘…. 응. 안아 줘, 하응, 응…!”

엉엉 울며 안아 달라고 애원하는 그녀. 정우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연인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티 없이 순수하던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건 그였다. 온몸에 퍼지는 진한 쾌감은 죄책감을 닮아 있었다.

“더 울어 봐, 은혜야.”

정우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꽉 붙들었다. 진해진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속삭였다.

“내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어 줘.”

“응. 으응. 하. 하아…. 오빠…. 제발… 흑…. 제발, 아아….”

신음 섞인 목소리로 흐느끼는 은혜의 머릿속이 열락으로 곤죽이 되었다. 그가 그만하길 원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하길 원하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정우의 직각 어깨에 걸린 늘씬한 두 다리가 공중에서 동동거렸다.

“예쁘네. 우리 은혜.”

정우가 완전히 몸이 반으로 접힌 은혜에게 아랫도리를 격렬히 치대며 속삭였다. 그의 목에 핏대가 불뚝거리며 섰다.

“정말 예뻐서 미치겠어.”

은혜는 정말이지 그가 미워서 죽을 것 같았다. 돌덩이처럼 딱딱한 어깨를 꼬집고 싶었지만 손가락 끝까지 쾌감이 꿈틀거려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은 몸 안에서 점점 이상한 감각이 해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이상… 흣…. 이상해, 오빠, 나 몸이 이상해…. 흐응, 응.”

“이상하지 않아.”

정우가 그녀가 가장 느끼는 부분을 집요하게 박아 대며 눈을 마주쳤다.

“섹스는 원래 이런 거야.”

그는 은혜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가는 걸 놓치지 않았다.

“오, 오빠.”

“응?”

“오빠도… 내가, 내가 처음이지? 그치?”

정우는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는 그녀의 얼굴을 꽉 쥔 채 숨을 몰아쉬었다. 벅찬 쾌감에 두려워 엉엉 우는 은혜의 눈동자에 시커먼 짐승 같은 그가 비쳤다.

“아직까지는.”

“앞으로도, 흐윽, 만나지 마!”

그의 작은 연인은 결국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 만나지 마, 오빠… 흐윽. 으응…! 나만… 나만 안아 줘. 흑… 아아!”

지독한 만족감, 그리고 스스로가 두려워질 정도로 위험한 소유욕이 정우의 내부에서 폭발했다. 정우가 울부짖는 그녀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약속할게. 맹세할게.”

서러움과 쾌감, 두려움과 안도가 뒤섞인 얼굴로 은혜가 숨을 끅끅 몰아쉬었다.

“너한테 뭐든 다 해 줄게. 다시는 네가 불안하지 않게 만들어 줄게. 내가… 그렇게 할게. 나한텐 너뿐이야. 처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은혜가 눈물을 매단 채, 울면서 그에게 매달렸다. 절정에 오른 그녀의 목덜미를 꽉 움켜쥐고 정우가 속삭이듯 내뱉었다.

“사랑한다, 은혜야.”

***

비좁은 침대에서 그의 팔베개를 하고 안긴 은혜가 손으로 정우의 가슴 위를 피아노 치듯 두드렸다. 정우가 달아 준 커튼 사이로 여명이 희미하게 밝아 오는 아침이었다.

몇 번이나 오빠와 하나가 된 밤이었다. 그동안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근육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는 것처럼 아프고 묵직했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뭐 해?”

“피아노 쳐.”

잠이 오지 않는 건 정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녀의 벗은 어깨를 이리저리 매만지는 손길은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피아노도 칠 줄 알았어?”

“그럼. 나 못 하는 거 없는데. 피아노, 승마, 수영. 다 잘하는데.”

정우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게. 우리 은혜, 정말 못 하는 거 하나도 없더라.”

의미심장한 말투였다. 몇 시간 동안 끈질기게 이어지던 폭풍 같은 정사를 떠올리며 은혜가 입술을 조금 빨다가 작게 내뱉었다.

“오빠는… 진짜 왜 이렇게 야해?”

투정이 섞였지만 진지한 물음이었다. 정우가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었다. 은혜는 그의 단단한 가슴에 턱을 붙이고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하루 사이에 천지가 개벽한 것 같았다. 이게 혹시 꿈일까 두려워 잠들기조차 싫었다.

오빠에게 고백하는 순간 그와 자게 될 거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못 했다. 연인들이 서로를 알아 가며 차근차근 밟아야 하는 단계별 과정을 다 뛰어넘은 것만 같아 민망했다. 은혜는 그들이 이제껏 함께 지낸 시간이 연애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어. 세상에서 가장 야한 남자였어. 오늘이 주말인 게 진짜 다행이야. 나 오늘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일어나지도 못해.”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야한 남자가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상처 위였다.

“…많이 아팠어?”

“아니.”

중의적인 의미. 은혜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정우와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 무엇도 아프지 않았다. 돌부리에 이마가 찍혀도 좋았고, 그에게 몸이 부서질 때까지도 안겨도 좋았다.

“하나도 안 아팠어.”

정우가 사랑스럽게 미소 짓는 그녀를 잠시 응시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품 안의 연인에게 시선을 섞으며 정우가 작게 내뱉었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응? 뭔데?”

은혜의 풍성한 속눈썹이 소리 없이 깜빡이는 걸 보며 정우가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작은아버지랑 우연히 연락이 닿았어.”

“어, 진짜? 언제?”

“…며칠 됐어. 건설 쪽 사업하시는데, 일 같이 하자고. 마침 젊은 인력이 필요했다고 해서 같이 일할까 해.”

일어날 힘도 없다던 은혜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그를 마주했다. 다갈색 눈동자가 휙 커지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딱 유두를 가리는 길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붉은 입술 자국으로 가득한 젖가슴 위에서 흔들렸다.

“…진짜? 사업 힘들어서 오빠 못 맡겠다고 하셨던 그 작은아버지? 이제 괜찮으신 거야?”

정우가 응, 하고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어릴 적 지나가듯 말한 거였는데 역시 은혜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가 소년 교도소에 있던 당시, 작은아버지의 부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진짜… 잘됐다, 오빠.”

은혜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로 웃었다.

“응. 이제 너 고생시키는 일 없을 거야.”

“참나. 오빤 지금 내가 중요해?”

은혜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럼 뭐가 중요한데.”

“오빠한테 나 말고도 가족 생긴 거잖아…. 아아. 진짜… 진짜 잘됐어.”

눈에 눈물을 달고 흥분해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정우는 속으로 속삭였다.

지옥은 내가 갈게. 은혜야. 넌 그렇게 예쁘게, 평생 웃기만 해.

그는 오늘, 사람의 손가락 두 개를 잘랐다. 앞으로 그는 수없이 나쁜 일을 많이 할 것이다. 손에 피를 묻히게 될 것이다. 선한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있어도 그녀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평생을 감당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은혜는 영원히 몰라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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