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정우를 처음 만난 건 아홉 살 때였다.
“내리자, 은혜야.”
한적하고 낯선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자다 깨길 반복하다 스르륵, 눈을 떴다. 찬란한 태양에 금빛으로 빛나던 은행나무를, 차창을 통해 보았던 늦가을. 은혜는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복지원인 ‘은혜원’에 입소했다.
“이름이 은혜라고? 반갑다.”
나이가 지긋한 원장 수녀님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는 늘 은혜의 곁에서 널 지켜보고 있단다.”
“근데 왜 내 눈에는 안 보여요?”
“마음으로 보면 보이지.”
“그럼 언제 만날 수 있어요?”
“시간이 많이, 아주 많이 지난 후에.”
은혜는 병원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매일 기다렸다. 품 안에서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봉사자 아줌마들은 그녀를 안아 주며 딸이라 불렀다. 그래 놓고서 해가 지면 그녀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친절한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맛없는 반찬을 남기지 않고 먹었는데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불도 직접 갰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았고, 그녀를 찾아갈 수도 없었다.
“야, 구라쟁이.”
입소한 지 이 주일째 되던 날. 아이들 대여섯이 은혜를 시설 뒤편 조용한 곳으로 불러낸 후 빙 둘러쌌다. 구라쟁이 이은혜. 그녀에게 붙은 별명이었다.
“내가 왜 구라쟁이야?”
“너 맨날 구라만 치잖아. 너희 집에 가면 맛있는 과자랑 아이스크림 쌓여 있다며. 인형이랑 장난감도 엄청 많으니까 나중에 애들한테 하나씩 다 준다 그랬다며.”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컴퓨터도 있고 게임기도 있고 다 있대. 고래랑 수영한 적도 있대.”
“목장에 자기 말도 있다던데? 이름이 당근이래. 푸하하. 또 뭐 있어? 혹시 코끼리도 있어?”
입술을 꾹 다문 은혜의 주먹이 촌스러운 자색 코르덴 바지 옆에서 조금 떨렸다.
“거짓말 아니야. 당근이는 진짜… 있어.”
“뻥 치지 마. 네가 그렇게 부자면 넌 왜 여기 있어? 여긴 집 없고 불쌍한 애들만 오는 덴데. 엄마 아빠 없는 애들만 오는 덴데.”
자신을 불쌍하다 칭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은혜의 둥그런 눈동자가 마구 떨렸다.
“아, 알았다. 얘 이름이 은혜잖아. 은혜니까 은혜원에 있는 건 당연하지. 하하!”
“아니야….”
은혜가 눈물을 터뜨리며 소리를 쳤다.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자신을 부정했다.
“내 이름 은혜 아니야!!!”
은혜가 이름을 바꾸고 싶었던 건, 그때부터였다.
“이거 봐. 입만 열면 또 뻥 치고. 구라쟁이 이은혜. 뻥쟁이 이은혜.”
풍선껌을 후, 하고 불어 빵 터뜨린 여자애 하나가 입술에 붙은 껌을 손으로 떼어 냈다.
“뭐… 뭐 하는 거야?”
예쁘게 땋아서 반으로 묶인 은혜의 기다란 머리카락에 씹던 껌이 떡하니 붙었다.
“아침마다 머리 묶어 달라고 선생님들 귀찮게 하지 말란 말이야! 야, 너희도 빨리 붙여.”
“하지 마…. 하지 마아!”
다가오는 아이들을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들은 또래보다 키가 한참 작은 은혜의 머리를 쥐어박고 벽에 사납게 밀쳐 세웠다.
“흐으…. 아아…!”
튀어나온 벽돌에 쿵, 하고 부딪힌 등이 아팠다. 은혜는 결국 입술을 벌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재수 없는 이은혜. 뻥쟁이 공주병 이은혜.”
“구라쟁이는 이걸 받아랏!”
은혜의 머리카락에 단물이 다 빠진 풍선껌이 훅훅 날아와 계속 붙었다.
“흐으…. 흐으윽….”
둥그런 다갈색 눈꼬리가 가늘어져 서러운 눈물이 들어찼다. 입고 있는 낡은 옷에 눈물이 후둑후둑 떨어졌다.
“얘 되게 웃겨. 이거 자기 옷 아니라고 그랬대. 신발도 누가 숨겨 놔서 어쩔 수 없이 이거 신는 거라고 그랬대. 입만 열면 뻥이야.”
“원장 수녀님이 거짓말하는 거 세상에서 제일 나쁜 거라 그랬는데. 너 진짜 왜 그래?”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신고 있는 낡은 운동화. 다 떨어진 운동화에 붙은 캐릭터는 은혜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아니었다. 늘 빙그레 웃기만 하는 원장 수녀님이 숨겨 놓은 그녀의 옷과 신발은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선생님들의 대화에 나오던 ‘위화감’이라는 단어의 뜻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풍선껌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폭탄 같은 머리카락으로 은혜는 그와 처음 눈을 마주쳤다.
“어, 정우 형…!”
정우.
그는 은혜가 시설에서 만난 아이들 중 가장 깨끗하고 예쁘게 생긴 사람이었다. 새까만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잘려 있었고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을 따다 박아 놓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 아래로 쭉 뻗은 종아리가 길었다. 그가 걸치고 있는 칙칙한 색깔의 남방은 보이지도 않았다. 얼굴이 흰 우유처럼 하얀 정우는 마치 텔레비전 화면을 뚫고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정우 오빠, 아니 얘가 자꾸 거짓말 치고 그래서….”
은혜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단박에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아홉 살 은혜와 고작 네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던 열세 살 소년은 또래 사이에서 눈에 띄게 조숙했다.
“그렇다고 같은 식구 괴롭히면 돼?”
“우리, 안 괴롭혔어!”
“거짓말하는 거 나쁘다고 괴롭혔으면서 너희들도 지금 거짓말하고 있네?”
정곡을 찔린 아이들은 입을 딱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과해.”
“아니… 쟤가 먼저 잘못했는데….”
“머리에 껌 붙이고 때린 거 원장 수녀님한테 다 말씀드릴까?”
우물쭈물 변명을 내뱉던 아이들의 표정에 단박에 당황함이 들어찼다. 다정한 원장 수녀님이 화를 내면 정말 눈물이 찔끔 나도록 무서운 탓이었다. 시설 안에서 원장 수녀님이 가장 신뢰하는 게 공부도 잘하고 착실한 정우라는 사실은 아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까짓 청소 하면 된다 뭐…!”
누군가 용기를 내어 반항적으로 입을 열자 정우가 차분히 되받았다.
“집 없고 불쌍하다고 자기소개한 것도 모자라서 여럿이서 한 사람 몰아붙이고 괴롭힌 거 알면 원장 수녀님이 얼마나 속상하실지 생각해 봤어?”
아직 어린아이들의 얼굴에 뒤늦게 죄책감이 들어찼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정우가 마치 선생님처럼 말을 이었다.
“수녀님이랑 선생님들이 우리들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알지?”
“…….”
“후원해 주시는 분들은 어떻고? 그분들이 우리가 이러는 거 알면 좋아하실까? 후원금 끊어 버릴지도 모를걸.”
아이들이 이제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릴 적부터 경제관념을 심어 주기 위한 원장 수녀님의 노력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자신이 한 달에 한 번씩 받는 용돈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빠듯한 복지원 생활에 후원금이 끊기면 과자와 떡볶이도 사 먹을 수 없게 된다. 겁이 확 나는 건 당연했다.
“미안.”
은혜의 머리에 제일 처음 풍선껌을 붙였던 아이가 작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쭈뼛거리던 아이들의 사과가 줄줄이 이어졌다.
“너는? 사과 안 받아 줄 거야?”
정우의 말에 은혜는 대답하지 않고 빨간 얼굴로 훌쩍, 코를 들이마셨다. 예쁘게 땋아서 묶었던 머리카락은 흐트러졌고, 얼굴은 눈물에 젖어 엉망이었다. 아이들이 정우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어쨌든 우리는 사과했다, 형.”
“쌤들한테는 절대 아무 말도 하면 안 돼, 알았지?”
“우리 점심 먹으러 가야 돼. 가자!”
다짐하듯 제 할 말을 번갈아 내뱉은 아이들이 이내 우르르 사라졌다.
볕 좋은 가을날이었다. 시설 뒤편. 노랗게 익은 은행잎이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곳에서 정우가 그녀에게 눈을 맞추었다.
“선생님들한테 이야기 들었어. 네가 은혜구나.”
은혜는 정우를 바라보며 아직도 서러움이 남아 있는 눈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나 뻥쟁이 아니야. 애들한테 거짓말한 적도 없어.”
“그래, 알았어.”
눈물이 자꾸만 주르륵, 뺨을 타고 흘렀다.
“근데 애들이 머리에 껌 붙이고 너 밀치는데 왜 가만히 있었어? 같이 때리기라도 하지.”
“…친구 때리면 나쁜 사람이니까.”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은혜를 보며 정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도 괴롭히는데 왜 가만히 있어. 바보같이.”
은혜는 억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어!”
“누가? 원장 수녀님이?”
“…엄마가.”
은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정우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아홉 살이라는데 마치 두어 살은 어려 보이는 듯한 작은 체구. 머리에 껌을 덕지덕지 붙이고 까만 눈에는 눈물을 대롱대롱 달고 있는 여자아이가 코를 훌쩍거리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엄마가 나… 흑…. 데리러 오면 여기 있는 친구들 우리 집에 다 초대하려고 했는데…. 봉사자 아줌마랑 선생님들이랑 다 초대하려고 했는데. 흐윽….”
정우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며 은혜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꼬마는 자신의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걸까.
정우가 후원자의 집에서 돌아온 건 방금 전이었다. 원장 수녀님이 왜, 자신이 돌아오자마자 불러서 이 아이를 특별히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 걔네는 절대 초대 안 할 거야…. 장난감도 안 빌려주고 당근이도 안 태워 줄 거야.”
꼬마가 히잉, 소리를 내며 울며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진짜 예쁜 엄마가 만들어 주는 맛있는 케이크도 혼자 다 먹을 거고 고래랑 수영하면서 찍은 사진도 안 보여 줄 거라고.
아이는 마치 동화 속 세상에서 빠져나오기 싫은 사람처럼 말을 했다. 정우는 그녀의 희망대로 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거짓말은 정우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부모님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남에게 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는 또다시 굵은 눈물방울을 후드득 떨어뜨리는 은혜의 어깨를 살며시 붙들었다.
“내가… 비밀 하나 말해 줄까.”
눈물에 푹 젖어 볼록해진 눈동자가 그를 쳐다보았다. 바싹 올라간 속눈썹이 엉망으로 젖어 있었다.
“…뭔데?”
시설에 처음 들어온 아이가 이곳의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정우의 경험상 그랬다. 정우는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은혜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침내 입을 뗐다.
“난 가끔 귀신이 보인다?”
은혜의 자그마한 입술이 소리 없이 벌어졌다.
“…진짜?”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묻는 그녀를 향해 정우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응. 진짜. 그런데 다른 친구들한테는 말 안 해. 몇 번 해 봤는데 안 믿어 주더라고. 순식간에 거짓말쟁이 됐어. 그러니까 너도 애들한테 그냥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오빠 그럼 우리 엄마도 보여?”
은혜가 간절한 눈으로 그를 보며 묻자 정우의 말문이 막혔다.
“…어?”
“원장 수녀님이,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 간 거랬어. 짝꿍이 그랬는데 그건 죽은 거래. 죽은 사람들은 귀신이 된대. 근데 내 눈엔 귀신이 안 보여. 오빠 눈에는 그럼… 우리 엄마… 보여…?”
정우의 단정한 얼굴에서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는 기대감과 불안감이 반반 섞인 눈으로 자신을 보는 아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보여.”
동그랗게 뜨인 눈동자에 실망이 천천히 차올랐다. 은혜가 입술을 한일자로 딱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툭. 땅바닥에 소복하게 깔린 은행잎에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녀의 자그마한 정수리 위에서 나직한 정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왜냐하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만 무서운 귀신이 되거든. 너희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이제 아프지도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귀신 못 돼. 안 돼.”
은혜가 코를 훌쩍였다. 정우가 엄마를 볼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엄마가 무서운 귀신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야.”
정우는 운동화 끄트머리로 땅을 비비고 있는 은혜를 조심스레 불렀다.
“사실은… 알고 있는 거지?”
“…….”
“엄마가… 널 데리러 오지 못한다는 거… 알고 있잖아.”
마침내 고개를 든 은혜가 정우의 눈을 보며 깜빡, 깜빡,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정우는 눈앞에 선 꼬마의 얼굴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지금, 이 자그마한 꼬마의 머리 안에서는 무슨 생각이 지나가고 있을까.
말이 없던 은혜가 마침내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얼굴은 손바닥 하나만 한데 내쉬는 한숨이 깊었다. 동그란 어깨가 갈무리되지 못한 서러움에 조금 떨렸지만 아이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다.
이제 겨우 아홉 살이다. 삶이란 게 무언지 채 알기도 전에 제일 처음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의 의미.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 정우도 이미 그녀의 나이에 겪은 일이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봤던 공상 과학 영화에서처럼, 아무도 없는 우주에 혼자 떨어진 것같이 두렵고 아픈 느낌이었다.
“오빠.”
은혜가 그를 보며 말간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왜 울어?”
호수 위에 반짝이는 별같이 예쁜 정우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은혜가 주변을 한 번 빙 둘러보더니 작게 입을 열었다.
“혹시 지금 귀신 보여? 그래서 무서워서 우는 거야?”
“…응.”
정우가 꽉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또 생각나 버렸다. 부모님과 영원히 이별해야 했던 무서운 날이.
가을바람에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져 휘날렸다. 은혜는 잠시 고민하다 양손을 들었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이 앞머리가 기다랗게 자라나 덮은 정우의 두 눈을 조심스레 가렸다.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지?”
은혜가 그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아직도 무서우면 내가 소리 질러 줄까? 나 소리 진짜 크게 지를 수 있어. 노래 선생님이 나 목청 되게 좋다 그랬어.”
가려진 눈 아래로 정우의 기다란 입술에서 약한 웃음이 샜다. 꼬마 아이의 허세에 위로를 받는 걸 보면 아직 그는 어른이 되기에 한참은 먼 모양이었다.
“…이제 안 무서워.”
다행이다. 은혜가 작게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정우에게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있잖아. 귀신 나타날 때마다 나한테 말해도 돼. 그러면 내가 이렇게 맨날 눈 가려 줄게.”
“고마워.”
“근데 그러려면은….”
은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뒷말을 머뭇거렸다. 정우는 자신보다 한참은 자그마한 은혜의 손을 제 눈에서 부드럽게 떼어 냈다.
“…오빠는 나랑 맨날 꼭 같이 있어야 돼.”
제법 진지한 은혜의 표정을 보고 그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웃었다.
“그래. 알았어.”
은혜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생긴 소년이 웃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코를 훌쩍이며 헤헤 마주 웃었다. 나중에 우리 집에 오빠만 초대할 거라고, 그래서 특별히 당근이도 태워 주겠다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대신, 내가 귀신 이야기 한 건 다른 사람들한텐 비밀이다.”
“응!”
“약속.”
은혜는 손가락을 내미는 그에게 덥석 제 손을 걸었다. 그게 정우가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했던 첫 번째 거짓말이었단 걸, 그때는 몰랐다.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낯설고 무서웠던 그곳이 따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정우에게서 느껴지던 체온만큼이나.
***
아이들이 붙여 놓은 풍선껌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쓰다 안 된 원장 수녀님은 결국 은혜의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은혜는 식용유가 범벅이 된 머리로 울음을 꾹꾹 참다가 원장 수녀님이 가위를 꺼내는 순간 벌떡 일어나 다다다 도망을 갔다.
“머리 자르면 진짜 예쁠 것 같은데. 진짜. 진짜로.”
숨어 있는 은혜를 찾아내 겨우 설득한 것은 정우였다. 은혜는 결국 시설 뒤편의 커다란 벤치에 앉아 눈을 꼭 감았다. 가위는 정우가 직접 잡았다. 은혜가 다른 사람한테는 자신의 머리카락에 손도 못 대게 했기 때문이다.
난처한 얼굴로 숨을 내쉬던 정우는 마침내 그녀의 머리카락을 서걱, 서걱 조심스레 자르기 시작했다. 마치 삭발식 같은 그 모습을 시설 아이들이 빙 둘러 구경을 했다. 아이들이 소리 죽여 키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은혜는 점점 울상이 되었다.
정우가 드디어 가위를 내려놓았을 때는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였다. 은혜가 살며시 눈을 떴을 때 통나무 테이블 위의 사각 거울에는 머리카락이 쑹덩 잘린 낯선 여자애가 빨간 눈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진짜 예쁘다. 은혜야. 인형인 줄 알겠어.”
정우가 속삭이는 소리보다 아이들이 비웃는 소리가 더욱 컸다.
“어, 남자다 남자!”
“야, 이은혜 남자 됐어!”
“완전 못생겼어, 푸헤헤!”
“야, 너희들 조용히 못 해!”
화를 내는 정우의 눈치를 보며 달아나면서도 아이들은 끝까지 은혜를 놀렸다. 귀밑 아래를 스치는 어색한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며 콧구멍을 벌렁거리던 은혜는 결국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으아앙…!”
“진짜 예뻐, 은혜야. 왜 울어. 응?”
은혜가 떠올릴 수 있는 자신의 아홉 살 인생 동안, 머리카락을 어깨선 위로 잘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은혜는 예쁜 엄마의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이 부러워서 늘 그녀같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파서 머리카락이 몽땅 다 빠졌을 때, 털모자를 벗은 엄마를 병실 화장실에서 우연히 보았을 때를 생각하니 더욱 슬퍼졌다.
“은혜야, 엄마 이제 안 예뻐서 싫지? 무섭지?”
“아…. 아니. 아니야…. 엄마.”
속상한 얼굴을 하는 엄마의 앞에서 어린 마음에도 진실을 말할 수는 없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어쩌면 그녀는 다른 애들 말마따나 거짓말쟁이가 맞는 걸까.
“진짜 귀엽고 예쁜데 울긴 왜 울어. 애들이 거짓말하는 거야. 진짜 예뻐.”
“…오빠 미워…. 흐윽…. 미워!”
서러움이 잔뜩 치밀어 올라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라 버린 그에게 주먹질을 했다. 정우는 그녀의 솜방망이 같은 주먹질을 고스란히 받아 내며 그녀를 달랬다.
“그만 울고 저녁 먹으러 가자. 응?”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엉엉 우는 그녀의 손을 이끌고 정우는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 메뉴는 하필 짜장면이었다. 은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정우는 그녀의 앞에 짜장면을 한 그릇 가득 퍼 주고 그 앞에서 맛있게 먹었다.
“흐윽….”
“먹어. 얼른.”
은혜는 우는 와중에도 그가 내미는 젓가락을 받아 들었다. 배가 고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온 얼굴에 소스를 묻히며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었다.
“천천히 먹어. 그렇게 배고팠어?”
그가 건네준 단무지를 아득아득 씹으면서도, 그가 휴지로 얼굴을 꼼꼼히 닦아 줄 때도 그를 노려보며 울먹거렸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우의 앞에서 얼쩡거리며 억울함을 계속 드러냈다.
“알았어, 미안. 마음대로 머리 잘라서 미안해. 응?”
그녀가 싹둑 잘린 머리카락을 만지며 밥그릇 빼앗긴 강아지처럼 굴 때마다 그는 늘 그녀에게 눈을 맞추고 부드럽게 사과를 해 주었다.
사실… 은혜는 그게 좋았다. 귀신이 무섭다고 해 놓고서, 그녀가 눈을 가려 줄 수 있도록 늘 자신의 곁에 있겠다고 약속해 놓고서 정우는 늘 선생님들의 일을 돕느라 바빴다. 다른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것이 부러워 수학 문제를 일부러 다 틀리게 썼을 때는 정우에게 혼까지 났다.
“…바보가 되고 싶은 거야?”
그럴 때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훌쩍이는 것이었다.
“알았어, 미안. 미안. 오빠가 잘못했어.”
은혜는 정우가 쓰다듬어 뺨을 스치는 머리카락이 영원히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은혜야, 뭐 해?”
늦은 밤, 어두컴컴한 공부방에서 가위를 찾아내 머리카락을 자르다가 그에게 들켰을 때 은혜는 복도를 달려 도망쳤다. 갈 데가 없어 식당 주방에 숨어 있다가 그녀를 찾아온 정우에게 발견되었을 때는, 그의 가슴에 솜 주먹을 다시 팡팡 날려 대며 울었다. 부끄러움과 서러움을 견디는 건 아이에게 미숙한 일이었다.
“은혜야. 근데 너… 머리카락 오른쪽이랑 왼쪽이랑 길이가 완전히 달라.”
은혜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오른쪽이 더 짧아 보여 왼쪽을 자르면 이제는 왼쪽이 더 짧아져서 반대쪽을 잘라야 했다. 길이를 맞춰 자르고 자르다 보니 머리카락은 까마귀 둥지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어떻게 넌 머리를 이렇게 해도 귀엽냐. 빡빡 밀어도 귀엽겠다. 하하.”
정우가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오빠 미워! 진짜 싫어…!”
싫다는 말과는 달리 은혜는 정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었다. 정우와 함께 쓰레기 분리수거를 도왔고, 공부방의 책을 높이별로 정리했다.
가끔 불쑥불쑥 그의 두 눈을 손으로 가려 주는 은혜를 아이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은혜를 누구보다 더 살뜰히 챙겨 주었다.
3개월 후, 정우의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입양이 결정되었다. 은혜가 복지원에 오기 전부터 정우를 후원하고 있던 부부였다.
정우가 떠나던 날, 은혜는 그의 짐 가방을 들고 화장실 창고에 두 시간 동안 숨어 나오지 않았다. 그때쯤 그녀의 별명은 ‘구라쟁이’에서 ‘최정우 코딱지’로 바뀐 상태였다. 더러운 코딱지처럼 정우에게 매일 딱 달라붙어 있다고 누군가가 놀린 게 시작이었다.
상관없었다. 은혜는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 주는 정우만 있다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았다.
“자주 놀러 올 거야 은혜야. 약속해.”
여느 때처럼 그녀를 찾아낸 정우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은혜는 여전히 짤막하게 잘린 머리카락을 만지며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정우가 선생님들과 시설 아이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나눌 때, 은혜는 정우를 처음 만났던 은행나무 뒤에 숨어서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다, 양부모의 차를 타고 떠나는 정우를 뒤늦게 뒤쫓았다.
“나도 갈래…. 나도 데려가 오빠…. 오빠…. 정우 오빠…!!!”
차의 뒤꽁무니를 따라 달리던 은혜는 결국 바닥에 세차게 엎어졌다. 엉엉 크게 소리를 내어 목청껏 울었지만 차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양부모님과 함께 좋은 옷을 입고 떠났던 정우가 다시 은혜원으로 돌아온 건, 한 달 후였다. 놀러 온 게 아니었다. 은혜가 숨겼던 짐 가방과 함께였다.
“정우야….”
착잡하게 그를 부르는 원장 수녀님 앞에서 정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입을 떼지도 않은 채, 그저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마치, 그가 처음 시설에 왔던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달에 한 번씩 은혜원에 봉사를 오던 부부는 정우를 입양하기 위해 2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철들기 전의 어린아이가 아니라 웬만큼 큰 아이를 받아들이려 마음먹은 부부의 인성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와 지성이 있었고, 물질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부유해 보였다.
대학 병원 의사인 남편이 의처증에 눈이 돌아 한 번씩 아내를 무지막지하게 구타하는 사람이란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집에 방문해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냈던 정우마저도. 그리고, 부드럽고 친절했던 양아버지가 처음 본색을 드러냈던 날 정우는 잠긴 안방 문을 식칼로 따고 들어가 남자를 찌르려 했다.
“정우한테 이러면 제가 안 되는 거 아는데…. 흑…. 그 잔인한 일을 겪은 아이한테 이런 상처를 주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정우를 데리고 돌아왔던 여자는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스카프에 감추며 원장 수녀님을 차마 바라보지도 못했다. 남편의 직업 때문에 그를 경찰에 신고할 수가 없다고 했다.
평소에는 다정한 사람이라고 울먹이는 그녀의 곁에서 정우는 입술이 터진 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정우 오빠.”
시설에 돌아온 후, 정우는 말수가 적어졌다. 은혜는 쭈뼛거리며 다가가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 그를 찾았다.
“밥 먹으러 안 가? 오늘 저녁 짜장면인데.”
정우는 은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그녀의 앞머리를 슥, 걷어 냈다.
“그때… 넘어졌던 거?”
“으응.”
그녀의 동그란 이마 한쪽에는 그를 쫓다가 넘어져 돌부리에 찍힌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 바람에 은혜는 병원에서 일곱 바늘이나 상처를 꿰매야 했다. 뜨끔거리는 고통보다 정우를 다시 볼 수 없을 거란 충격이 더욱 컸었다.
“…흉터, 남았네.”
정우의 눈이 조금 더 어둑해졌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별을 박아 놓은 것처럼 반짝였지만, 어린 은혜의 눈에 그는 어딘가 슬퍼 보였다. 말없이 상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정우를 향해 은혜가 깔깔한 목소리를 냈다.
“나 되게 아팠다, 오빠?”
“…….”
“오빠 때문에 되게 아팠어.”
정우는 촉촉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미안해, 라고 말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떠났던 정우가 새로 만난 부모님의 집에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를, 그때 그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자신이 제발 오빠를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인 걸까. 그래서 정우는 이렇게, 슬픈 얼굴인 걸까. 교복을 입고 머리를 짤막하게 자른 그는 더더욱 낯설어 한 달 전과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리고, 은혜는 그게 싫었다.
“…있잖아. 오빠는 진짜 내 오빠지. 진짜 오빠 해 주겠다고 했지. 그치.”
그가 처음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던 벤치에서, 은혜가 그에게 물었다. 정우가 대답 대신 그녀의 목도리를 고쳐 매 주었다.
3월. 봄은 올 생각도 않는지 매서운 꽃샘추위에 눈발이 휘날렸다. 은혜가 주먹을 꽉 쥐고 코를 한 번 훌쩍였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반 애들 중에… 오빠 있는 애들 중에 같이 안 사는 애들은 아무도 없어.”
“…….”
“사실 한 명 있긴 한데…. 이건 비밀인데…. 엄마 아빠가 따로 살아서 오빠는 아빠가 데려갔대.”
정우는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근데 우리는 엄마 아빠 없잖아.”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거짓말하던 아이는 몇 개월 새 부쩍 자라 있었다. 적응이 느린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오빠 여기서 나랑 같이 살면 안 돼?”
“…그랬으면 좋겠니?”
마침내 마른 입술을 떼며 침묵을 깨자 은혜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그랬으면 좋겠어. 오빠랑 영원히 여기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그가 있으면 은혜원도 좋았다. 자신의 이름이 은혜라는 것도, 아이들이 놀리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확실한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는 정우를 보자 가슴이 울렁울렁해지고 먹먹했다. 뺨이 얼어서 아플 정도로 추운 날씨에 바깥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정우를 보는 자그마한 은혜의 심장이 쾅쾅 아프게 뛰었다.
“오빠 괴롭히는 사람… 내가 다 혼내 줄게….”
준경이가 그랬다. 정우는 무서운 부모님한테 괴롭힘당해서 시설로 돌아온 거라고. 은혜는 마른침을 삼키며 주먹을 꽉 쥔 채 목소리를 높였다.
“무서운 사람도, 귀신도 내가 다 물리쳐 줄게. 나 그럴 수 있어.”
정우의 눈이 서서히 붉게 물들었다. 은혜는 양손으로 얼른 그의 눈을 가려 주었다. 축축해지는 손바닥을 느끼며, 울음 섞인 숨을 몰아쉬며 목이 아플 정도로 크게 소리를 쳤다.
“가…! 가아…!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말고 가라고오…!!!”
파양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불안과 두려움을 알아채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나이에 비해 어른이었던 정우가 양부모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은혜원을 떠났고, 또 어떤 마음으로 되돌아왔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가 얼마만큼 두렵고, 상처받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는 정우의 떨림이 그녀의 몸을 통해 생생히 느껴졌다.
은혜는 그 밤, 묵주를 손이 닳도록 만지며 하느님께 기도했다. 오빠를 다시 돌려보내 줘서 고맙다고. 이제 정말 착한 은혜가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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