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139.
* * *
“조건이 뭐였는데요?”
“음…. 그게…. 일단 순결할 것, 그리고 섹스를 엄청나게 잘할 것, 남자다우면서도 부드러울 것, 상냥하면서도 거칠 것…. 이런 것들이에요.”
“그게 나…?”
“아마도요…?”
“근데 순결하기까지 해야 하나요?”
“그건 대체….”
“아…아무튼 나하고 하는 게 처음이어야 하지만 엄청나게 잘해야 한단 말이에요.”
“…해요?”
“아….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하는 헤스티아.
진지하게 남편감으로 점찍어놓았다는 게 들키자 민망한 모양이다.
나는 헛기침을 흠흠 하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음…. 뭐 그 조건은 그렇다고 쳐도, 이미 엘프들하고 엄청나게 했는데요.”
“아…. 엘프하고 하는 건 괜찮아요. 나하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다만 다른 종족과 하면 안 돼요.”
“그런 건가요?”
“그런 거예요.”
“그…그럼 앞으로 엘프하고만 하겠습니다.”
“네…. 아무쪼록 열심히…. 오직 엘프하고만요…. 남성의 신이 없어서 안 그래도 종족이 줄고 있으니, 부디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러면…. 나중에는 나도 신이 되는 건가요?”
“그…. 하던 거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하면, 무난하게 신격을 얻을 거예요.”
“그 다음에는…?”
“…몰라요. 당신 하기 달린 거죠.”
말은 나 하는 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만,
보니까 이미 내 인생 신이 되는 것까지 고속도로가 나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짜 헛짓거리만 안 했으면 앞길이 창창했는데….
그나마 지금 와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여신의 반려가 되려면 힘만큼 매너도 있어야겠지.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잘할게요. 지켜봐 주세요.”
“…네.”
헤스티아는 부끄러운지 살짝 고개를 돌리더니 작게 덧붙였다.
“…열심히 해주세요.”
“아, 그…. 그러면 그 ‘제한’은…?”
“이미 풀었어요. 그보다 빨리 돌아가는 게 좋을 거예요. 안개 속은 정말로 위험하니까.”
이미 저주가 풀렸다는 말에, 나는 기운이 팍 났다.
“네!”
“그…. 민망한 축제 있죠?”
“아, 네.”
“열심히 해요. 나도 좀 도와줄게요.”
“네. 알겠어요.”
“그러면 빨리 가봐요. 마수 같은 것과 마주치기 전에.”
헤스티아는 돌아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여 작별 인사를 하고,
엘프의 여신이자 엘프 제일의 미녀와 작별했다.
안개 속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세레니아와 이실리아가 기다리는 숲 입구로 돌아와 있었다.
“사도님!”
“무사하신지요!”
나를 보자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둘.
나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껴안았다.
“네. 날 믿어줘서 고마워요. 둘 다.”
“엣…?”
“아앗…?”
갑자기 내가 껴안자 둘은 좀 당황했다.
나는 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 후, 품에서 풀어 주었다.
“언제나 날 믿고 따라와 줘서 고마워요. 이제 내가 갈 길을 확실하게 알았어요.”
“에…?”
“다…다행입니다?”
세레니아와 이실리아는 내가 깨달음을 얻은 듯이 굴자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둘.
아니, 엘프들은 모두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그녀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려주는 것이, 내 사명이다.
내가 할 일을 알았으니, 이제 하면 된다.
뜻이 있는 곳에 행동이 있다.
엘프에게 사랑을.
후손을 얻는 기쁨을.
그게 바로 내가 할 일이었다.
* * *
자지의 단단함을 되찾은 나에게,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임신제.
사상 초유의 축제는 한 달여의 준비기간을 걸쳐 성황리에 그 막을 열었다.
이날을 기다리고 기다린 육백 명의 엄선된 처녀들이.
순결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신부가 쓰는 면사포를 걸치고 광장에 늘어섰다.
작은 상아색 마력등으로 광장 주변이 별의 바다처럼 빛나는 가운데,
처녀들은 꽃을 한 송이씩 들고 서서, 나를 기다렸다.
내가 추잡한 속셈과 더러운 육욕으로 고른 처녀들이었지만,
그녀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순수했다.
임신을 제외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올곧은 마음.
이제, 깨달음을 얻는 내가 그녀들에게 나설 시간이다.
나는, 광장 위에 마련된 단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축제는 한창 달아올라, 절정인 ‘600인 합동임신식’만 남겨두고 있었다.
육백 명의 처녀들은 집중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눈망울을 마주한 순간, 나는 아무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요한 것은 자지뿐이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정령의 힘이 해방되면서, 눈부신 우윳빛 정력이 내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폭죽처럼 쏘아진 정력이, 공중에서 팡 터진다.
달콤한 밤꽃향기와 함께, 은가루처럼 부서져 흩날리는 정력.
눈송이처럼 떨어지던 정력은, 이내 커지며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아…!”
“세상에…!”
처녀들은 감탄했다.
하늘에서 비처럼 자지가 쏟아진다.
천사의 깃털처럼 하늘하늘 쏟아지는 정력 자지들.
처녀들은 손을 뻗어 한시라도 빨리 자지에 닿으려 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은 자지뿐만이 아니었다.
자지의 두세 배는 되는 손들이,
유성처럼 광장의 하늘을 뒤덮는다.
해류를 타고 대양을 넘나드는 물고기처럼,
수많은 손들이, 처녀들을 휩쓸기 시작한다.
“아앗…♡”
“아아…♡”
우윳빛 정력손은 참으로 젠틀하게,
광장에서 손을 뻗은 처녀들에게 닿았다.
갈구하듯 하늘로 뻗친 손을 마주 잡고,
그녀들의 옷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고향을 찾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정력손들도 그녀들의 몸에 숨겨진 샘을 찾아 파고든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강압적이지 않았다.
샘을 찾으려면 샘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법.
먼저 손을 잡고, 뺨을 쓰다듬고, 팔을 어루만지고,
부드럽고 상냥하게, 각양각색의 처녀들의 몸을 일깨운다.
정력이 닿자 짜릿짜릿 반응하는 고운 피부의 처녀들.
백 년을 잠들어있던 고대의 꽃씨가 피어나듯, 처녀들의 몸이 열려간다.
결코 격하거나 충격적이지 않게,
처음인(혹은 처음이 아닌) 그녀들을 배려하듯이,
필요한 자극을 딱 필요한 곳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분 좋을 만큼만 준다.
오줌을 지리거나 눈이 돌아가거나 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상냥하고 사랑이 가득 담긴 애무였다.
그녀들은 아기가 되어 아버지의 품에 안긴 듯한 기분을 맛보며,
두둥실 미지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아…!”
“이것은 기적이야…!”
지켜보던 엘프들은 경악했다.
하늘에서 팔랑팔랑 자지가 내리나 싶더니,
상앗빛 물고기 떼 같은 손이 처녀들을 휩쓸었다.
지상의 것이 아닌 열락이,
순결한 처녀들의 다리 속으로 파고든다.
일찍 달아올라 벌써 다리 속으로 파고드는 자지를 받아들이는 처녀.
천천히, 오랫동안 애무를 즐기는 처녀.
오히려 정력 손과 자지를 쪽쪽 빨며 행복해하는 처녀.
그리고 기타 비처녀들.
광장은 성스러운 성의 도가니였다.
손들이 처녀들을 달구어놓으면,
깃털처럼 자지가 날아와 속으로 파고들었다.
따스한 열락으로 가득 찬 광장에는.
아헤가오도 오줌도 없었다.
러브러브 젠틀섹스로, 여성 엘프들에게 그들이 원하던 것을 준다.
“이런 건 처음이야….”
“너무나 감미로워요.”
전의 섹스에 당한 여성 엘프들이 질질 싸고 눈이 풀렸다면,
러브에 당한 여성 엘프들은 몽롱하니 들떠 눈이 풀렸다.
앗 하는 순간 쿠션에 휩싸인 듯 포근해지고,
몽롱하니 들뜬 순간 따스한 기운이 배에 깃든다.
이제 정력은 마력을 녹이거나 깎지 않았다.
정력은 수많을 여성 엘프들의 마력과 하나가 되어,
그녀들의 욕망을 다시 정력으로 바꾸었다.
안 그래도 무제한인 정력이,
여성 엘프들을 휩쓸며 점점 크게 물결친다.
광장에 가득한 우윳빛 은총에,
지켜보던 관객들도, 손을 뻗었다.
“제게도…! 은총을…!”
“비처녀지만 임신하고 싶어요!”
심사에서 탈락했던 엘프들이 애타게 손을 뻗는다.
창공에서 자지와 손을 흩뿌리던 나는,
그녀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나는 어째서 그녀들을 밀어냈던가.
처녀든 비처녀든 상관없었다.
엘프이고 여성이면 충분한 것이다.
광장의 처녀들이 하나둘 임신하기 시작하자,
나는 손과 자지의 물결을 광장 밖으로도 흩뿌렸다.
내게 손을 뻗는 여성들에게 손을.
내게 다리를 벌리는 여성들에게 자지를.
은총이 번져나가는 것을 보며, 점점 더 많은 여성이 하늘로 손을 뻗었다.
잡을 수 없었던 자지.
가질 수 없었던 아이.
후손을 가지고 싶은 욕망, 번식본능.
‘선별’에 감히 참여하지 못했다고 해도,
마음은 모두 비슷했다.
그 간절함이 애타는 손이 돼서 내게 다가온다.
나는 손을 마주 잡고, 외로운 그녀들의 속으로 파고들었다.
에이미.
그녀는 시골에서 올라온 엘프로,
기사단의 하급 병사였다.
봉급을 받으면 업소부터 가고 보는 그녀.
처녀가 아니라 선별에 참여하지 못했던 그녀의 가죽 갑옷 사이로,
우윳빛 은총의 손이 파고든다.
르웬.
그녀는 채소가게 점원으로,
남편 없이 삼백오십 년을 살아왔다.
예쁜 것도 아니고 젊은 것도 아니었다.
잘난 것 없었기에 어디 나서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도, 오늘은 용기를 내어 하늘로 손을 뻗는다.
평소에는 절대 잡히지 않던 남자의 손이,
오늘만큼은 꿈결처럼 손가락에 감겨든다.
핀델.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엘프들의 우체부 비슷한 전령이었다.
편지와 전갈을 한가득 담은 가방을 메고 대륙을 떠도는 그녀.
당연히 정착해 결혼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어느덧 그렇게 100년이 흐르고,
남편도 아이도 없는 생활이 쓸쓸해질 무렵.
우연히 참여하게 된 축제에서, 기적을 마주한다.
그녀는 오늘 새로운 가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리에넨
인생의 절반을 바다에서 보낸 그녀.
어두운 밤바다에서 안개에 길 잃은 배를 구출하는 구조선의 선원인 그녀는,
죽을 때까지 이 일에 매여 결혼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가지는 것은 꿈도 못 꿀 일.
파도 소리와 요동치는 차가운 침대에 익숙해질 무렵,
우연히 축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기를 점지해준다는 이야기에 구경이라도 하자고 생각한 그녀.
거친 해병의 군복 속으로, 부드러운 손길이 파고든다.
외롭고 쓸쓸한 엘프들.
차가운 침대에 눈물짓는 엘프들.
사랑받아야 마땅한 엘프가 고작 600명만 있을 리 없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정력이 온 도시를 휘돌며,
뻗은 손이라면 놓치지 않고 마주 잡는다.
“아아…!”
“기적이야…!”
“세계수가 빛나고 있어…!”
수많은 영혼이 한날한시에 깃들며,
세계수의 가지로 황금빛 영혼이 모여든다.
오늘이 생일인 아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높은 언덕 위, 바다를 굽어보는 위치에 솟아오른 거대한 세계수.
영혼에 반응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세계수는 마치 등대 같았다.
빛나는 세계수에, 축제에 관심 없던 엘프들마저 거리로 나왔다.
“무슨 일이지?”
“저게 뭐야?”
“자지와 손이 날아다니고 있어!”
어찌 보면 기괴할 법도 한 광경이지만, 사정을 전해 들은 엘프들은 하나같이 하늘 높이 손을 뻗쳤다.
손 닿는 곳에 임신이 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일찍 잠든 착한 엘프들마저도,
거리에서 들리는 달뜬 신음에 잠이 깨어 나온다.
세상에 임신할 자격이 없는 엘프는 없으니,
오늘 밤은 이 도시의 모든 이들에게 은총이 임할 것이다.
한없이 부드러운 섹스로 스르르 임신하는 엘프들.
꿈결 같은 달콤함에 황홀하게 젖어 든다.
나는 오늘, 사랑으로 도시를 임신시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