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전 이세계에서 엘프의 노예가 되었다-123화 (122/140)

〈 123화 〉 123.

* * *

“드디어 줄 서러 가는 거니?”

엄마 쪽이 간곡하게 물어본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간절해진다.

제발 와라. 좀.

부탁이다. 오기만 해.

줄만 서면 된다. 줄만.

설마 음료수 가지러 가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지만 영애는 역시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꽃 좀 따러 가는 거야!”

엄마에게 괜히 성질을 팍 부리는 절름발이 영애.

아…. 역시….

뭐 음료수 가지러 가는 건 아니었지만,

줄 서려고 오는 건 아니었다.

그놈의 음료수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이제 꽃 따러 간다고 한다.

“화장실 갈 시간은 있으면서 사도님 뵈러 갈 시간은 없니?”

“아 좀 남들 앞에서 화장실이라고 하지 좀 마!”

그렇게 팩 돌아서는 영애.

나는 포기했다.

영애를 포기했냐고?

아니다.

오줌이 마려운 영애를 따먹는 걸 포기하는 것은 남자가 할 짓이 아니다.

뭔 말인지 의미불명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나는 다른 걸 포기했다.

기다리는 걸 포기했다.

내가 간다.

그냥 간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내가 가고 만다.

쩔뚝이며 화장실로 가려고 테라스에서 내려와 커다란 홀로 들어온 영애를 보고,

나는 오디션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이제 면접 안 본 사람을 열댓 명 남짓.

하나같이 미드가 우량한 음침한 영애들이라,

다들 어지간하면 합격을 줄 생각이었다.

“앗…!”

“사도님께서 일어나셨어요!”

“대체 무슨 일인 걸까요?”

내가 오디션을 보다 말고 일어나자,

엘프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부산스럽게 떠들었다.

아니 뭐 큰일 했다고 저렇게 시끄러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 가운데,

나는 쩔뚝이며 화장실로 향하는 절름발이 영애에게 다가갔다.

엘프들은 내가 누군가를 골랐다는 사실은 짐작이라도 한 듯이,

순식간에 침묵 속에 잠겨, 조용해졌다.

뚜벅뚜벅, 내 발걸음 소리가 홀 안에 울린다.

문득 사방이 조용해진 걸 깨달은 영애는, 무슨 일인가 잠깐 주변을 돌아보다가,

내가 일어나서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잠깐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전혀 꿈에서라도 눈곱만큼도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다시 화장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누구를 찾으시는 걸까요?”

“어떤 분이 선택받으시는 것일지…?”

다들 초집중해서 나를 바라보는 가운데,

영애는 화장실로 열심히 가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무시하고, 홀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경로에 있던 영애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스러진다.

너희가 아니다.

그녀다.

한편 영애는 화장실로 가려다 문득 시선이 모이는 것을 느꼈다.

내가 가까이 다가오는 만큼, 엘프들의 시선이 내가 향하는 곳으로 몰렸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이 본인이라고는 아직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체 언제 깨달을까나?

내가 그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속으로 재미있어하며 걸음을 옮겼다.

다가갈수록, 그녀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한다.

처음에는 힐끗 나를 보고 피식 웃더니,

그다음엔 살짝 불안해한다.

점점 설마 설마 하는 표정이 되더니,

어어 이거 뭐지 하는 표정,

그리고 마침내는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녀 앞에 딱 선 나.

근데 뭐라고 꼬시지?

내가 그녀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오줌이 마렵다는 것과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뿐.

둘 다 초면에 묻기에는 난감한 주제들이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하나….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봐요.”

“저…저요?”

“영혼이 매우 맑군요. 영애는 이름이 뭐죠?”

“여…영혼이요?”

설마설마하다 진짜 말을 걸자 놀라서 딱 멈춘 영애.

내가 사이비 전도사처럼 건넨 영혼이 맑다는 말에 당황한다.

그리고 온 연회장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더더욱 당황한다.

“저…저 영혼 별로 안 맑을 텐데….”

엄마하고 다투는 걸 보면 확실히 맑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솔직히 대답하는 건 좀 아니지.

면접 보러와서 와서 회사는 상관없으니 돈만 벌게 해달라고 해봐라. 누가 뽑아 주나.

아무튼 이름을 물어보는데 영혼이 안 맑다는 영애의 한심한 대답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뿌득. 하는 소리가 들린다.

테라스 쪽이길래 힐끗 보니,

영애의 모친께서 부채를 움켜쥐다 부러트리고 계셨다.

하긴 감히 이 내가 말을 걸어주었는데 아니라고 뺀찌를 놓는 건 좀 그렇지….

아무래도 딸에게만 맡겨놓기는 좀 불안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오고 있다.

좋아. 모친까지 이대로 가는 거다.

어차피 영애를 오늘 밤 따먹을 생각이었던 나는,

자지가 발끈발끈하려는 걸 애써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리가 조금 불편하신 것 같은데, 어쩌다 그렇게 된 거죠?”

“다…다리요? 그냥 어렸을 적에 친구하고 노…놀다가….”

“어디서 놀았죠?”

“조…조선소요…. 저희 가문이 조선업을 하거든요….”

“그런 곳에서 놀았나요? 어쩌다 다친 건가요?”

“친구와 건조 중이던 배 위에서 술래잡기하다가 발을 헛디뎌서….”

“아. 그랬군요. 친구의 목숨을 구해준 덕에 영혼에 선한 덕이 이렇게 쌓여 있었던 거군요.”

“에…? 아뇨 그냥 같이 놀다가…. 딱히 제가 구해준 건….”

여전히 눈치 없는 영애의 뒤로, 기습하는 암표범처럼 모친이 급습한다.

“어머! 얘도 참! 그 친구 네 덕분에 살았다고 그렇게 감사를 했었잖니!”

“에…? 엄마…? 그랬나?”

“안녕하세요. 사도님! 우리 딸, 세나가 영혼이 참 맑죠? 너무 맑아서 가끔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참 착한 아이랍니다. 사도님 착한 처녀 좋아하시나요?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부산스럽게 끼어드는 어머님.

아마 본인 이마에도 표적 마크가 찍혀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시는 것 같다.

모녀가 쌍쌍바로 귀여우니 이건 한꺼번에 홀라당 먹어야 제맛이다.

쌍쌍바는 막대가 두 개, 나는 막대가 열 개. 아니 열한 개였나?

아무튼 모녀가 제각각 넉넉하게 세 개씩 써도 네 개 넘게 남는다.

좋아! 가는 거야.

“그렇습니다. 외면의 아름다움보다도, 내면의 아름답고도 선한 영혼을 맛보는 게 더욱 즐거운 일이지요.”

내 대답에, 다른 엘프들이 충격을 받았다.

“영혼…!”

“역시 영혼이 선한 분들을 뽑는 것이었나 봐요!”

“그래서 결투한다고 싸우시던 분들은 한 분도 안 뽑힌 것이었어요!”

엘프들 생각으로는 대체 알 수가 없던 선발기준.

대체로 내 자지가 질싸해서 임신시키고 싶다 하면 뽑는 것이었지만,

회장의 분위기는 어째 영혼이 맑고 아름다워야 뽑히는 걸로 이해하는 것 같다.

“과연….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셨던 거군요.”

“아아…. 뽑힌 분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었어요….”

감탄하는 엘프들 사이로, 모친이 재빨리 나섰다.

“그럼요. 우리 세나가 머리가…아니 영혼이 참 깨끗하답니다. 혹시 사도님, 세나가…”

“잠시만요.”

나는 잠깐 어머니를 멈추고, 절름발이 영애를 바라보았다.

“이름을 먼저 알려줄래요?”

“저…저는…. 세나리엘 에델라인이에요….”

“에델라인…? 혹시 기사단장님과 친척이거나 하신 건가요?”

“아, 엘리나 언니…. 네 저희는 분가고 언니는 본가지만 친척은 맞아요. 제 사촌 누나예요.”

“역시, 같은 에델라인 가문이라 그런지 참으로 아름답네요.”

육덕진 몸매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역시 유전의 영향이란 게 없을 수는 없는 건가.

“아름다워요…? 아, 영혼이요…?”

“영혼도 아름답지만, 외견도 아름답네요.”

“제…제가요? 잘못 보신 게 아닌지….”

“아닙니다. 오늘 본 영애 중 가장 아름다워요.”

“엣…?”

“세나리엘 영애.”

“네…넷?”

“오늘 밤 제 상대가 되어주시겠어요?”

“에…?”

영문을 몰라 가만히 서 있는 세나리엘 에델라인에게 내가 손을 뻗자, 사방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오오오!”

“세나리엘 영애를 고르셨어!”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내가 고르면 장땡인 거지.

나는 조용히 영애가 내 손을 잡기를 기다렸다.

영애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얼떨떨해하다가 행복감이 현실로 올라오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 사도님, 상대라 하시면…?”

“네. 오늘 밤 당장 은총을 받아 임신하게 될 거예요.”

은총이라 쓰고 질싸라 읽는다.

“지금 당장요…? 하지만 명단에 오르는 건….”

“그분들은 나중에, 일단 오늘의 주인공은 영애입니다. 아, 세레니아, 아직 면접 못 본 분은 전부 합격시켜 드려요. 영애를 만난 기념입니다.”

“네. 사도님.”

“불합격한 영애가 다시 끼어들지 않게 조심하고요.”

“네. 전부 얼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맡겨주세요. 사도님.”

남은 인원에게 전원 합격통지가 떨어지자, 내 빈 의자 앞에 줄을 섰던 음침거유 엘프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졌다.

세나리엘 영애 덕에 전원합격이라니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뭐 어차피 다 합격시켜줄 생각이었으니까, 그냥 인심 쓴 척만 한 거다.

아무튼 지금은 세나리엘이 우선이다.

“자…. 그러면 세나리엘 영애. 어떻게 하실 건가요?”

세나리엘은 내가 뻗은 손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마침내 결심하고 살포시 잡았다.

보드라운 손이 내 손을 마주 잡자, 자지가 발끈거린다.

“세상에….”

그 장면을 보며 울먹이는 모친.

세나리엘 영애도 엄마가 울먹이는 걸 보자 같이 울먹인다.

“엄마…! 엄마! 나 선택받았어…!”

“알아! 눈앞에서 봤잖아…!”

“엄마! 이거 진짜야? 사도님이 날 선택하셨어…!”

“세나야! 잘했다! 엄마는 너 믿고 있었던 거 알지…! 허으윽”

“엄마아…! 고마워…! 흐엉…!”

연회 내내 티격태격하던 거 다 까먹었는지,

부둥켜안고 내 앞에서 감동의 눈물바다를 만드는 모녀.

이렇게 보니 좀 미안할 정도로 좋아한다.

“아아…. 아름다워….”

“역시 사도님께선 다 뜻이 있으셨어…!”

“정말 아름다운 모녀야…!”

“영혼이 아름다운 분들이에요!”

난 그냥 자지 박고 싶어서 고른 건데,

엘프들의 반응은 더없이 좋았다.

설마 진짜 꼴려서 뚱뚱하고(엘프 기준) 절름발이인 영애를 골랐다고는 생각 못 하고,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고 간택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난 그냥 자지 박고 싶어서 고른 건데….

그리고 이 간택은 모녀에겐 정말 인생 역전의 기회나 다름없었나 보다.

근데 분명 둘 다 화장실 가고 싶을 거다.

지금은 감동에 겨워 잠깐 뇨의를 잊은 것 같다.

지금이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천금 같은 찬스인데 말이지….

나는 당연히(?) 두 모녀를 쉽게 화장실에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원래도 잘 싸게 만드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쏘냐.

나는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모녀 중 어머니의 어깨를 작게 잡아당겼다.

“어머님. 저기.”

“흐윽흐윽…. 세나야…. 잘했어….

“흠흠! 어머님! 저기!”

”흑흑…. 네?저, 저요?”

“네. 어머님. 잠시만요.”

울어서 화장이 살짝 번졌는데, 애초에 어머님은 별생각이 없이 오셨는지 가볍게 화장한 덕에 오히려 더 예뻤다.

뭔가 실연한 30대 초반 여자 같은 느낌이다.

엄청 말 걸어서 따먹고 싶어진다는 의미다.

세나의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 네. 사도님.”

“인제 보니 어머님도 영혼이 참 맑으시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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