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122.
* * *
이건 무슨 공개 오디션 같은 분위기다.
의자에 앉은 나에게, 첫 번째 엘프 영애가 주춤주춤 다가온다.
“소개.”
“아으…. 그게…. 뎌는, 아니, 저는 XXXX 공작가의 XXXXX라고…. 댧부탁드립미다!”
그 결투한답시고 장갑 집어 던졌던 로리다.
줄에 첫 번째로 서겠다고 난리를 치더니, 정작 긴장해서 혀 씹고 소개는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
그나마 소개를 끝까지 들은 것은, 그녀하고 다르게 나는 기본적인 매너가 있어서였다.
“다음.”
차갑게 그렇게 말하자, 방금 소개한 영애의 표정이 확 굳는다.
“자…잠시 저는 아직….”
머뭇거리며 달라붙는 영애.
“기다리는 사람 많다. 이실리아. 치워줘.”
“이쪽으로 오시죠.”
이실리아가 나서, 어깨를 꽉 잡고 물러나게 한다.
물러난 짜가로리는, 훌쩍거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기에 누가 그렇게 나서서 이년 저년 욕하고 결투 신청하고 그러래?
엘프든 사람이든 다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두 번째 엘프도 장갑 집어 던지던 영애.
막 나가던 애들 얼굴은 똑똑히 기억해뒀다.
“저…저는 명문 OOOO공작가의 OOOO입니다.”
그나마 가문과 이름은 제대로 말한 영애.
하지만 고려의 여지는 없었다.
“다음.”
“읏…. 제가 혹시 어디가 부족한지라도….”
“이실리아.”
포기하지 못하고 질척거리는 영애를 이실리아가 붙잡았다.
연속 두 명이 퇴짜맞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대체 얼마나 눈이 높으신 거지…?”
“미모로는 ‘물의 도시’에서 한 손가락에 꼽을 영애들인데….”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서던 쪼꼬미 영애들은,
연속 스물다섯 명이 ‘다음’ 소리를 듣자 완전히 공포에 질려버렸다.
그야말로 ‘물의 도시’에서 미모나 재력, 능력으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영애들,
업소를 조금 많이 다니긴 하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런 흠도 없는 영애들을,
소개만 듣고 바로 퇴짜를 놓아 버린 것이다.
스물여덟 번째 영애는, 원래 소심한 편이었는데 앞의 스물일곱 명이 연속으로 퇴짜를 맞자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저…저는, 아르넨 공작가의 유스테라라고 합니다…. 모자란 몸이지만 부디….”
나는 ‘다음’이라고 외치려다가, 유스테라 영애의 몸에서 피어나는 미약한 향기를 눈치챘다.
“킁킁.”
“에…?”
“처녀 냄새가 나는군…. 처녀인가?”
“아…. 네…. 부끄럽지만 아직….”
“흐음…. 가슴도 조금 있구나, 아주 조금이지만.”
유스테라 영애는 가슴 조금 있는 것이 무슨 큰 흠이라도 되는 것마냥 벌벌 떨었다.
그녀의 가슴은, 언 땅에 새싹이 겨우 돋아난 듯 아주 조금 봉긋 솟아 있었다.
“죄…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세레니아. 영애를 명단에 올리도록.”
“에…?”
어리둥절한 영애를, 세레니아가 부른다.
“이쪽으로, 성함과 가문, 나이, 주소, 기부할 수 있는 액수 등을 적어 주십시오.”
기부할 수 있는 액수는 왜 적으라고 할까.
보나 마나 은총을 빌미로 교단에서 삥을 뜯을 생각이겠지….
하지만 어차피 교단 돈은 내 돈이다.
게다가 돈을 내라고 해도 저렇게 좋아하는데 뭐 어떤가.
유스테라 영애는 눈물을 찔끔할 정도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넷!”
“오오!”
“드디어!”
“첫 번째로 간택을 받았어!”
“하지만 어째서…?”
솔직히 가슴은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처녀라 봐줬다.
“감사합니다. 사도님! 감사합니다! 꼭 임신하도록 노력하겠….”
“응응. 그건 다 나한테 맡기고, 다음.”
세레니아가 영애의 이름을 적는 동안, 나는 다시 오디션(?)을 개시했다.
“저…저는 XXXX후작가의….”
“윽…. 비처녀 냄새…. 다음!”
다시 열 명 정도 탈락이 이어지자,
슬슬 영애들의 컵 크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전까지는 AAA였다면, 이젠 A~B 정도.
AAA 라인에선 합격자가 한 명뿐이었지만,
이제는 드문드문 괜찮은 영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저는….”
“처녀. 합격.”
“저는….”
“비처녀, 다음.”
“저는….”
“합격!”
기다리는 영애들이 많았기에 조금 빠르게 진행했다.
일단 처녀들은 가슴 크기에 상관없이 합격.
비처녀는 가슴이 아주 크거나 유부녀여야 합격의 여지가 있었다.
가슴 작은 유부녀가 있긴 할까 싶었는데, 가끔 있긴 했다.
A~B라인은 AAA보다는 조금 길었다.
합격자는 다섯 명 정도.
AAA에서 한 명밖에 나오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괜찮았다.
그리고 마침내 C 이상,
멀리서 기죽어서 지켜보던 임신에 굶주린 눈나들이 하나둘씩 일어서서 다가온다.
연회장 안의 엘프들은 뭔가 알아채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기준으로 엘프를 고르는지.
일단 처녀.
비처녀라면 가슴과 엉덩이 크거나 유부녀, 아니면 엄청나게 예뻐야 했다.
엘프 기준으로는 참으로 요상한 기준이었기에,
추측하는 목소리가 난무했다.
“대체 사도님께선 어떤 기준을 가지고 계신 걸까요?”
“임신을 잘할 것 같은 여성을 뽑으시는 건 아닐까요?”
“가슴이 큰 영애가 선택받는 빈도가 높은 것 같아요.”
“처녀도요.”
“하지만 처녀가 아닌 유부녀도 안 뽑으시는 건 아니고…. 대체 뭘까요?”
“가슴이 적당히 큰 것을 좋아하시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마르면 남자들이 싫어한다고도 하긴 하죠….”
엘프들의 기준으로 마른 것은 내 기준으로는 슬랜더 중의 슬랜더.
엘프들의 눈에 뚱뚱하다 싶어야 내가 보기 좋은 선에 겨우 걸치는 것이었으니,
“합격…!”
“민망하지만 저는….”
“죄송하지만 저는….”
“송구스럽지만 저는….”
“전부 합격!”
슬슬 가슴 큰 처녀 엘프들이 하나둘 쏟아진다.
인간으로 따지면 고소득 전문직 30대 초반 여성들.
임신하고 싶어 안달 난 엘프 누님들이, 커다란 가슴이 죄송스럽다는 듯이 한 마디씩 덧붙이며 다가온다.
움츠러들어서 가슴 가리고 사과를 하며 소개를 시작한다?
이건 거의 100%였다.
꼭 이런 엘프들은 또 하나같이 처녀여서,
처녀막 뚫어서 따먹고 임신시킬 생각에 얼굴만 봐도 자지가 발끈거렸다.
“죄송합니다만….”
“진짜 이건 무슨 과학이네. 합격! 세레니아. 명단에 올려줘요.”
화장은 야시야시하게 최선을 다해서 하고서는, 표정은 잔뜩 주눅이 들어서 일어서는 그녀들.
‘내가 선택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나 가슴이 큰데….’ 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온다.
큰 가슴에 수줍은 표정, 그것은 영어로 사이언스.
쏟아지는 합격, 늘어나는 명단.
임신이 고픈 처녀들에게는 아낌없이 은총을.
하나둘 합격률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아주 뒤에 앉아 있던 그녀들도 조금씩 용기를 내어 다가온다.
컵이 C를 넘어 D까지 상승하자,
슬슬 마망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이미 애가 둘 있지만….”
“합격!”
“결혼한 지 200년째인데 아직 자식이 없어서….”
“세레니아, 명단에 이름 올려드려!”
유부녀에겐 한없이 허들이 낮아지는 나.
아니 아기 원하는 유부녀는 못 참지.
한결같이 떡을 치고 싶어하는 마망유부들,
그런 주제에 얼굴은 인간 이십 대처럼 청순하다.
물론 인간에 비교해서 그렇다는 거고, 엘프들치고는 좀 꺼칠한 편.
소위 ‘엘프 미녀’들은 정말 티 한 점 없는 아기 피부를 가진 반면에,
유부녀들과 눈나 엘프들은 슬슬 피부에 점도 생기고 기름이랄까 윤기 같은 게 돈다.
엘프들은 못생겨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눈물점 입술점의 매력을 모르는 헛소리.
얼굴에 색기가 감도는 가슴 커다란 유부녀 또한 내 취향이었다.
“대체…. 어떤 기준이신지….”
“아기를 낳아도 괜찮고 못 낳아도 괜찮은 걸까요?”
“점점 명단에 오르는 분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요…?”
엘프들 기준으로는 도저히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너무 색기 있는 미시나 남자 밝히는 아줌마는 탈락.
수줍고 청순한 거유 유부녀만 합격을 시켰으니,
엘프들은 도무지 그 속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뭔가 저희에겐 안 보이는 것이 보이시는 걸까요?”
“그러게요…. 영혼의 순수함이라던가…?”
엘프들이 영혼의 순수함을 고민하며 줄을 서는 동안,
나는 자지의 순수함으로 선발을 계속했다.
물론 오늘 밤에 따 먹을 건 정해놓은 상태였다.
아직도 저 멀리, 테라스 끄트머리에서 고민하는 절름발이 영애.
보아하니 엄마 쪽은 안달이 나나 못해 화가 솟구치는 모양이었다.
“저 봐 또 합격이네. 저러다 명단 가득 차겠다. 너 정말 보고만 있을 거니?”
“아 진짜 엄마 가만히 좀 있어 봐.”
“엄마 보니까 가슴 큰 애들 합격시켜주는 것 같은데, 너도 빨리 가 봐.”
“꼭 그런 것만도 아니야. 아까 가슴 큰 언니 떨어지는 거 못 봤어?”
“얘도 참. 나 같으면 벌써 나가서 줄 서고도 남았겠다.”
“아니 그럼 엄마 먼저 가 보던지…! 왜 자꾸 나한테만 그래? 엄마도 가슴 크잖아?”
“얘는 참. 아빠가 멀쩡하게 집에서 기다리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게다가 너라면 몰라도 엄마는 너무 늦었어.”
“어어. 엄마 말하는 거 봐. 아주 생각 없는 건 또 아닌 모양이네? 아빠한테 이른다?”
“너 진짜!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빨리 나가기나 해!”
“다리만 안 이랬으면 나도 진작 나갔지…! 자꾸 재촉하지 좀 마! 좋은 때를 노리는 중이니까…!”
“때를 노리긴, 그 전에 명단 가득 차겠다. 얘!”
“엄마 좀 가만히 좀 있어. 싸우는 거 다 들리겠다!”
맞다. 다 들린다.
저 멀리 있는데 둘이 얼마나 투닥거리는지, 귀 기울이고 있으면 은근히 다 들렸다.
이거 느낌이 좋은데? 딸 뿐만 아니라 엄마도 가능할 각이다.
어떤 이유로 다리를 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좆물을 자궁에 푸슛푸슛 쏴주면 치유돼…겠지?
치유되었으면 좋겠다. 상태창에는 치유된다고 했지만,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가 없으니.
아무튼 시험도 해볼 겸 오늘 밤은 저 귀여운 모녀로 정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찜을 해 놓고 계속 오디션을 보는데….
저 둘, 올 생각을 안 한다.
아니 둘로 이미 찍어뒀는데, 줄을 서기는커녕 저 멀리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가끔 일어난다 싶으면 음료수나 들고 다시 돌아가서 앉고.
그러다가 둘이 계속 투닥거린다.
아니 일어나서 줄만 서면 되는데,
내 앞에만 오면 합격을 넘어 오늘 밤 복권 대박 당첨인데,
이분들 올 생각을 안 해….
그러는 사이 명단은 3장을 넘어갔다.
“저…저는….”
“응. 합격.”
“사도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비처녀…. 지만 가슴이 크구나? 에이 그래도 다음.”
“가슴이 크다고 하셨어요!”
“가슴이 큰 게 플러스 요인이 맞나봐요!”
“그렇다면 왜 저분은 탈락한 걸까요?”
“비처녀여서인 것 같아요.”
“하지만 같은 조건에 비처녀인 분도 합격하시기도 했는데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제 좀 질려서 건성건성 오디션을 보는데,
엘프들은 내가 대충 던지는 말에도 귀를 바싹 곤두세우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기준이라고 해봐야 이제는 진짜 별거 없었다.
처녀면 대충 합격.
비처녀도 꼴리면 합격.
두 모녀를 유인할 생각으로 상당히 합격률을 올렸는데도.
두 귀여운 쫄보는 올 생각을 안 했다.
‘아니 여기 음료수 마시러 왔나. 올 때 그렇게 다짐하고 왔으면 내 앞에 얼굴은 내비쳐야 하는 거 아냐?’
이제 슬슬 내가 다 억울해질 지경이다.
미드가 우량한 엘프 눈나들이 연이어 합격을 받아 명단에 올라가는 가운데,
두 모녀는 침만 꼴딱꼴딱 삼킬 뿐 뭘 하진 않았다.
아니 딸이야 다리가 불편하니 용기를 내기 힘들다고 해도….
엄마 쪽은 그래도 올 수 있잖아?
엄마 쪽이 오면 예쁘다고 칭찬하면서 딸도 부를 수 있을 거고.
근데 둘 다 안 온다.
엄마 쪽도 아빠하고 어지간히 금슬이 좋은건지,
딸만 계속 달달 볶을 뿐 본인이 도전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아주 없는 건 또 아닌 것 같은데….
밀당 아닌 밀당에 내가 다 속이 탈 지경이다.
‘햐. 온 도시의 미녀 엘프들이 내 앞에 줄을 서는데 정작 나는 저 모녀를 못 따먹어서 이러고 있네….’
오히려 저렇게 버팅기니(?) 더 따먹고 싶어진다.
아니 좀 오라고….
합격 넘어 당첨이라니까 안 오고 지들끼리 싸우고 앉아 있어.
하지만 투닥거리는 걸 들어보면 또 딱하고 불쌍한 게 더 따먹고 싶어진다.
대체 언제 올까 간절하게 기다리는데, 마침내 절름발이 영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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