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전 이세계에서 엘프의 노예가 되었다-118화 (117/140)

〈 118화 〉 118.

* * *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깨우길래 일어나 보니,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한다.

대체 뭔데…. 하며 눈을 비비는데 예쁜 시녀 엘프 눈나들이 와서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혔다.

그렇게 반강제로 끌려 나간 곳은 항구.

거대한 크기의 새하얀 범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에 선 이리스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공화국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탐험선, 플라티나 호에요.”

“탐험선…?”

“네. 물의 정령왕은 저 먼바다 어딘가에 있는 안개 속에 있는 섬, 아발론에 신의 정력과 함께 잠들어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플라티나 호는, 아발론을 찾기 위한 목적 한 가지만을 위해 만들어졌어요.”

“그렇구나. 이거 타고 바다로 나가는 건가.”

“최대 일 년까지 바다의 안개 속에서 버틸 수 있어요. 그렇게까지 오래 헤매진 않겠지만, 안개 속은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으니까 모든 사태에 대비해서….”

“이런 걸 미리 만들어 놓은 거야?”

“자세한 건 알려드릴 수 없지만, 신탁이 있었어요. 언제라도 ‘그분’만 오시면 출항할 수 있게 준비해 놓았는데…. 오늘 드디어 바다로 나가게 되었네요.”

“그렇구나….”

“한 가지 걱정인 것은 아발론을 찾기 위한 마력 탐지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인데요….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안개 속에서 무작위로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혹시 이걸 쓰면 안 될까?”

나는 주머니에서 오랫동안 쓸 일이 없었던 ‘현자의 돌’을 꺼냈다.

정력왕의 힘이 근처에 있으면 빛이 난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무색투명하다가 내가 ‘바다의 도시’에 들어서서부터 희미하게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건…. 설마 ‘현자의 돌’인가요?”

“응.”

“없어졌다고 들었는데…. 여신께서 오빠의 손으로 인도해 주었군요.”

“뭐…. 비슷해. 아무튼 이거 있으면 그 아발론이라는 곳에 빨리 갈 수 있을까? 빨리 갔다 와서 우리 이리스 따먹어줘야지.”

“오빠도 참…♡”

“아무튼 금방 다녀올게.”

“저…저도 같이 갔으면 하는데요.”

같이 간다는 말에, 나보다 이리스 옆에 서 있던 도시경비기사단장, 엘리나 에델라인이 팔짝 뛰었다.

“네? 대공 각하?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그야 처음 말했으니까요.”

그렇다. 처음 말하는 이야기니 처음 듣는 이야기일 수밖에.

근데 대공이 세계수를 막 떠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대공 각하께서 도시를 떠나면 세계수를 관리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숙모님들께 맡기면 일주일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일주일 안에 찾을지 아닐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과거 기록으로는 아발론을 찾는 게 최장 반년 가까이 걸린 적도 있었던바,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공 각하께서 도시를 비우시면 최악의 경우 세계수가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간절함은 이해하지만, 대공 각하께서 도시를 비우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대공 각하.”

“그러면 나보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기나 하라는 건가요?”

“부디 그래 주셔야 합니다.”

“오빠가 언제 돌아올 줄 알고요?”

“최대한 빨리 돌아오실 겁니다.”

“싫어요. 같이 갈래요.”

대공답지 않게 마구 떼를 쓰는 이리스.

주변을 보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마 평소에는 이렇게 억지를 쓴 적은 전혀 없었겠지.

이게 다 내 업보가 아닐 수 없다.

일단 남자든 여자든 이성의 맛을 조금이라도 알아 버리면,

뇌보다는 아랫도리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 옆에 있을 때는 심각하게 정신연령이 낮아지는 이리스.

나는 이리스의 팔을 붙잡고 타일렀다.

“이리스는 여기 남는 게 좋을 것 같아.”

“하지만….”

“세계수는 관리하는 대공이 없으면 안 된다고 들었어.”

“그렇지만….”

“금방 다녀올 테니까. 매일 목욕하고 기다리고 있어 줘. 오자마자 바로 따먹게.”

“…알겠어요…. 오빠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사실 따지고 보면 오빠는커녕 아득하게 누나일 텐데,

내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훌쩍이는 걸 보면 영락없이 철없는 여자친구 같다.

“같이 가고 싶었는데…. 훌쩍….”

“조금만 참아.”

아니 도시가 붕괴한다잖아.

도시경비기사단장이 잠깐 사색이 되었었다고.

아마 이랬던 적이 없었을 텐데, 어제 데이트를 하고 나서는….

사실 데이트라고 하기도 뭐한 게 좀 걷다가 계속 쭈물쭈물 만지작만지작만 했다.

아무튼 목표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건 괴롭겠지.

나 같아도 같이 따라나서고 싶을 것 같다.

어떻게 어떻게 이리스를 다독여서 남게 하고 나니,

도시경비기사단장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대공 각하를 설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에요. 많이 당황했죠?”

“평소에는 전혀 저런 모습 없으셨는데…. 저도 많이 당황했습니다.”

“어제 조금 달콤한 시간을 보냈는데…. 남자에 면역이 없다 보니 내가 많이 좋은가 봐요.”

“네, 아무래도 그러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늘 바로 출항하게 되는 건가요?”

“네. 선원들도 미리 엄선해 준비를 마쳤습니다.”

“선장은 누구신가요?”

“아, 접니다.”

“도시경비기사단장님이요?”

“네. ‘물의 도시’의 도시경비기사단장은 해안경비기사단장도 겸임하기에, 제가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도시경비기사단장인 엘리나 에델라인.

약간 붉은 기가 도는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에,

약간 세 보이는 인상을 가진 강한 여성이다.

과연 항해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는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오호. 그렇군요. 이제부터는 선장님이라고 불러야겠는걸요. 잘 부탁드려요.”

“네. 아무쪼록 부족한 점 없이 모시려고 합니다만, 혹시라도 배 안에서 지내시는데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그렇게 진수식을 하고 난 후 바로 출항한다.

이미 시범 항해는 몇 번인가 해 보았다는 모양,

문제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세레니아와 이실리아, 그리고 그 외 필요한 몇 명을 빼고는,

육지에서 원래 내 호위를 맡았던 중대는 ‘물의 도시’에서 대기했다.

가려 뽑은 선원들과 함께, 대양으로 향한다.

안개에 뒤덮인 바다에서, 어떤 모험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새하얗게 빛나는 플라티나 호가.

돛에 바람을 가득 받으며 항구를 나선다.

안개 낀 바다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는 전설의 섬 ‘아발론’을 찾으러.

그 섬에 잠들어 있는 물의 정력왕의 힘을 찾으러.

출발 후 반나절, 여정은 순조로워 보였다.

‘현자의 돌’ 덕분에 정확한 항로를 잡을 수 있었던 덕에,

배는 정확히 아발론 섬이 있는 곳을 향해 질주했다.

거리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느낌상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출항한 후 첫 번째 밤.

배는 끊임없이 출렁거렸지만, 나는 전혀 뱃멀미를 하지 않았다.

아마 몸에 깃든 정력 덕분이 아닐까….

눅눅하게 낀 밤안개를 뚫고,

플라티나 호는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다.

오늘같이 안개가 낀 날에는,

왠지 그녀의 꿈을 꿀 것 같았다.

안개가 보여주는 그녀.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

당장 따먹고 싶은 그녀.

대체 그녀의 정체는 뭘까?

안개는 왜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일까?

의문을 가슴에 품고, 나는 선실에 마련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아…. 이거 꿈이네.’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거 꿈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엘프.

비단결 같은 검은색 머리카락과 숲의 진녹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

그녀가 저 멀리서 밝게 웃고 있다.

내게 다가오라는 듯 손짓한다.

나는 이다음에 벌어질 일도 알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만,

무슨 투명한 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못 갈 거다.

나는 반대로 내가 방긋 웃으면서 손짓을 했다.

내가 못 가니 니가 와야지.

그녀는 내 의도를 잘도 알아듣고,

한 걸음씩 내게 다가온다.

가까이 오니 입은 옷이 보인다.

허벅지에 슬릿이 들어간 하늘하늘한 여신 드레스.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돋보이게 해 주는 차림새였다.

손에 꽃다발을 든 그녀가, 내게 다가온다.

나는 약간 회의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패턴대로라면, 뭔가 말을 하거나 닿으려고 하면 꿈에서 깬다.

미스테리어스한 꿈의 미녀가 나오는 거면 뻔했다.

기왕 꿈이면 야한 거나 실컷 하게 해 줄 것이지.

뭔지도 모르게 떡밥이나 던지고 말이야.

괘씸하기 그지없다.

당장 달려가서 저 완벽하게 균형 잡힌 젖통을 내 손바닥 모양으로 일그러트리고 싶다.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꽃다발에서 꽃을 한 송이 꺼내, 내게 건넨다.

“우린…. 곧 만나게 될 거예요….”

그렇게 알 듯 모를 듯 한 말을 남기고,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

나는 살짝 열이 받았다.

다음에 만나면 가까이 오게 한 다음에,

망설이지 않고 덮쳐버리리라.

꿈에 정신 사납게 나와서 하는 짓이란 게,

알 듯 말 듯 한 말이나 던지고 사라지는 거라니.

게다가 그녀가 꿈에 나오면 왠지 며칠은 다른 여자는 안 땡기게 되어 버린다.

그런 주제에 손도 못 잡게 하고 사라지는 건 너무하다.

그리고 꽃은 왜 주냐? 나는 꽃보다는 섹스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처음처럼 걸쩍지근한 느낌은 좀 덜했다.

안개에 들어가면 꼭 나타나는 그녀.

다음엔 꼭 가슴이라도 만져 볼 거다.

근데…. 묘하게 선실 안에서 꽃향기 같은 게 나는 것 같다.

그건 꿈이 아니었나?

꿈이 아니긴, 꿈이지….

진짜 열받게 쓸데없이 흥분만 시키고 말이야.

다음에 꿈에서 그녀를 또 만나면 머리채 휘어잡고 ‘넌 내 여자야, 알겠어?’ 해버릴 거다.

이제 못 참아 진짜.

조금 답답해져서 선실 밖으로 나오니,

바다 저 너머 안개 속에서 새벽빛이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었다.

일출을 바라볼까 하고 갑판 위로 올라갔는데,

선객이 있었다.

엘리나 에델라인이었다.

“선장님.”

“사도님…! 아침부터 어쩐 일이신가요? 혹시 잠자리가 불편하셨는지요?”

“아니에요. 꿈을 요상한 걸 꿔서….”

“꿈이요?”

“네. 엄청 예쁜 엘프 여성이 나오는 꿈인데, 맨날 뭐 하지도 못 하게 하고 사라져 버리네요.”

“사도님도 그런 꿈을 꾸실 때가 있군요.”

“왜요? 안 그럴 것 같은가요?”

“사도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줄을 설 텐데요.”

“나는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것보다는 굶주린 걸 더 좋아해요.”

“굶주린 거요?”

“네. 남자를 원하는 거요. 예쁘고 내숭 떠는 여자보다는, 평범하지만 남자에 목마른 여자가 좋다고나 할까요.”

“트…특이하시군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 그러고 보니… 엘리나였나요?”

“네. 에델라인 후작가의 엘리나입니다.”

“엘리나는 좀 어때요?”

“어떻냐니요?”

“남자 사정이 어떠냐는 거에요.”

“나…남자 사정이요?”

“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 저는 업무가 바빠서…. 그다지….”

“제가 또 지친 커리어우먼을 좋아하거든요.”

“사…. 사도님?”

꿈에서 본 그녀와는 정반대 타입인 엘리나.

미녀는 맞긴 한데, 정통적인 엘프 미인은 아니다.

살짝 러시아의 불곰이 떠오르는 느낌인 순둥순둥 귀여운 그녀는,

내 노골적인 어택에 당황스러워했다.

“혹시 남자친구가 있거나 한가요?”

“아…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러면 이번 기회에 한번 은총을 받아보는 건 어때요?”

“으…은총이요?”

내가 내 입으로 은총이라고 하니 참 부끄럽고 민망하긴 한데,

지금은 엘리나를 안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뭐, 꼭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요.”

“하…하지만….”

“뭐 걸리는 점이 있나요?”

“왜 저 따위에게?”

“저 따위라뇨?”

“저는…. 솔직히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가슴도 좀 큰 편이고…. 사도님이시라면 저보다 훨씬 좋은 여성분들과 마음껏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예쁜 여자보다 굶주린 여자가 좋아요.”

“저는…. 저는 굶주리거나 하지 않았….”

나는 어물거리는 엘리나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정말이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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