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117.
* * *
나왔다.
진짜 나왔다.
‘물의 도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만한 VIP 둘이서,
손잡고 몰래 새벽 거리로 나와 버렸다.
아 물론 진짜 손을 잡은 건 아니었다.
온몸이 마력 덩어리나 다름없는 이리스는,
스킨쉽을 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무튼 호위들을 따돌리고 무사히 세계수를 빠져나온 우리.
고요하게 가라앉은 밤거리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렇다.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도착한 것이 점심 좀 지나서,
도시로 들어와 이리스를 본 때만 해도 저녁.
몰래 나오니 다들 잘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데이트는 좋은데…. 갈 곳이 없다.
시간으로 따지면 새벽 1시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엘프는 이미 전부 잠들었을 시간이다.
술집 같은 곳은 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도시가 처음이고, 이리스도 딱히 그런 곳은 아는 곳이 없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건 공원 데이트.
마력등의 빛이 몽롱한 고요한 밤의 공원을
둘이 나란히 걷는다.
“신기하네요.”
옆에 날 따라 걷는 이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신기해?”
“네. 만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이러고 데이트를 한다는 게….”
어째 좀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뭐 고작 데이트 가지고…. 나중에는 더 야한 일도 할 텐데?”
“아이 몰라요♡”
그렇게 앙탈을 부리면서 나를 투닥투닥 애교로 때리는 이리스.
근데 때리는 건 애교인데, 마력압 때문에 압박이 만만치 않다.
이거 진짜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지….
피부가 닿은 부위의 느낌도 뭔가 쿡쿡 찌르는 것 같은….
백신 맞고 욱신거리는 느낌이다.
물론 스킨쉽이 싫은 건 아니다.
만난 지 몇 시간 안 되는 미녀와 물고 빠는 건 남자라면 누구나 가진 로망이다.
근데 이게 마력압 때문에 쉽지가 않단 말이야….
하지만 몇백년째 임신을 못해 발정이 난 우리 이리스는,
봐주는 것 없이 마구 들이댔다.
“저기….”
“응?”
“그…. 손 좀 잡아도 될까요?”
“어…. 그래.”
남자가 치사하게 좀 쿡쿡 쑤신다고 손잡는 걸 거부할쏘냐.
그런데 이리스 쪽에서는 별거 안 느껴지는 걸까?
전혀 망설이는 것 없이, 고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는다.
요망한 이리스….
그냥 잡는 줄 알았더니 무려 깍지를 껴서 잡는다.
얼마나 남자가 고픈 거야….
“…짜릿해요.”
그렇게 말하는 이리스.
농담이 아니고 진짜 짜릿하다.
깍지낀 손가락 하나하나가 아린 느낌.
게다가 찌리리릿 이런 게 아니다.
효과음으로 따지자면 빠지지직?
뭔가 세포벽이 연달아 감전되어 타올라 무너지는 그런….
포유류니까 세포벽이 아니라 세포막이구나.
세포막을 뚫는 그런 강력한 충격….
스킨쉽을 할 때마다, 고통스러움을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다.
그렇다. 내가 뚫을 막은 처녀막으로 족하다.
스킨쉽은 과감히 포기다.
“잠깐만…. 마력 때문인가….”
손을 풀고 놓으려고 하자, 이리스의 귀가 축 처진다.
아, 그런 얼굴 하지 말라고….
마음 약해지게….
예쁜 얼굴로, 날 아쉽게 바라보는 이리스.
아니 너 마력이 너무 강해서….
에라 모르겠다.
남자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나는 몰래 손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가.
큰맘 먹고 다시 손을, 이번에는 내 편에서 깍지를 껴서 꽉 잡았다.
“아…!”
좋은지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이리스.
대공작이라는 분이 너무나 귀여우시다.
그나저나 이리스는 좋을지 몰라도.
나는 손이 저릿저릿하다.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니다.
“저…바람이 시원하네요.”
한참을 손을 잡고 걷다 몽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이리스.
이거 100% 야한 생각 하고 있다.
솔직히 나도 싫은 건 아니다.
야한 거 하고 싶지.
하고는 싶은데….
그놈의 마력압이….
“잠깐 앉았다 갈까요?”
벤치를 가리키며 쉬자는 그녀.
일단 손부터 좀 놓고 싶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벤치에 앉으니 손을 놓기는커녕,
오히려 발정이 나서 팔짱까지 껴 온다.
“이상해요. 진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진짜 얼마나 남자가 고팠으면 이럴까 싶기도 하고….
너무 쉬운 거 아니냐 4대공.
밀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쓰러지다니.
차라리 암컷 트롤이 비벼대는 마력탑이 더 튼튼할 것 같다.
아무튼 팔짱을 끼고 고개까지 어깨에 기대는 이리스.
몰래 데이트를 나왔다는 상황이 있어서 그런가, 어째 약간 흥분한 모양이다.
“저기…. 저는 자꾸 막 만지고 싶고 닿고 싶은데…. 저만 이런 건가요?”
“아니, 나도 그렇긴 한데….”
그놈의 마력압이….
“그러면…. 저 만지셔도 되는데….”
“마…만져?”
“네…. 막….”
“막 뭐?”
“막 아무 데나 만지셔도 돼요….”
이건 무슨 변태녀인가.
눈을 보니 맛탱이가 살짝 갔다.
가까이서 보니 숨소리가 하악거리는게, 진퉁으로 흥분해 있었다.
아니 너하고 닿으면 따끔따끔하다고….
근데 아무 데나 만져도 된다는 건 좀 꼴린다.
아….
젠장….
성욕이냐 고통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막 허벅지 안쪽이나 가슴 만지셔도 괜찮…. 아니 만져 주셨으면…. 아앗…. 제가 무슨 말을….”
그래…. 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대체.
내가 만지기 싫어서 안 만지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근데 그렇게 막 도발을 하면 못 참을 것 같다고.
“이런 밝히는 여자는 싫으시죠?”
젖은 눈망울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
그 눈을 보고 가만히 있을 남자가 어디 있을까.
“…싫지 않아.”
마력압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당장 뺨을 붙잡고, 진하게 키스한다.
입술에 전류가 흐르며, 찌릿하니 얼얼하게 마비된다.
최대한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 보다가, 떨어진다.
떨어져서 얼굴을 보니, 이리스의 얼굴에는 김이 폭폭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 야한 여자 좋아해. 엄청.”
“네에….”
“첫 키스지?”
“네에….”
“앞으론 오빠라고 불러.”
“네에….”
키스 한 번 당했다고 네에네에 대답밖에 못 하는 이리스.
정말이지 따먹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이 정도면 만족했겠지…?
“저 근데…. 오빠….”
“어…? 왜?”
설마 또 뭐 더 시키려고?
아무리 에로프라도 그렇진 않겠지?
“가….”
“가?”
“가슴도 쪼물쪼물 해 주시면….”
“가슴을 쪼물쪼물?”
“으으…. 네에….”
“방금 첫 키스 해놓고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냐?”
“그…그렇긴 한데….”
“그것도 대공작이라는 여자가 이렇게 밝혀서야 쓰겠어?”
“죄…죄송해요….”
구박하면 구박하는 대로 쩔쩔매는 이리스.
아.
너무 귀엽다.
마력압이 아프긴 한데,
이건 만져줘야 한다.
쪼물쪼물 만져 주지 않으면 남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도 내숭 떠는 것보다는 마음에 든다. 일로 와 봐.”
“네…넷…!”
“가슴 까.”
“네?”
“못 들었어? 가슴 까라고.”
“하지만 오빠…. 여긴 공공장소인데….”
“아니 공공장소에서 만져달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빼는 거야?”
“하…하지만…. 저 대공작이 이런 데서 훌렁훌렁 벗는 건…. 그냥 옷 안에 손 넣어서….”
“확 다 까지 않으면 안 만져준다?”
“까…깔게요. 잠시만요. 이거 옷이 좀 복잡해요….”
후다닥 등의 단추를 푸는 이리스.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진짜 번개처럼 단추를 풀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이 묵직하니 중력을 받아 떨어진다.
원래도 크다고는 못 하지만 그렇다고 작다고는 절대 못 하는 크기였는데.
아마 꽁꽁 싸매고 있었는지 풀리니 상당히 묵직하다.
“뭘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었어?”
“좀 부끄러워서….”
“나 가슴 큰 거 좋아한다고 못 들었냐?”
“듣긴 했는데…. 그래도 너무 큰 건 조금 아니다 싶어서요….”
“너무 크긴 무슨….”
신시아나 소피엘, 세피아에 비하면 그저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렇게 가슴이 온전히 드러난다.
차가운 밤바람에, 가녀린 유두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아…. 공원에서 이런….”
만져달랄 때는 언제고 노출에 민망해하는 이리스.
자세히 보니 민망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 같다.
진짜 이 에로프들은 어쩔 수가 없어….
나는 큰맘 먹고 가슴에 손을 댔다.
유두에 손가락 끝이 닿자, 벌써부터 저릿저릿한 느낌이 든다.
피부 대 피부 접촉은 아마 민감도가 더 심한 것 같다.
“아앗…!”
데이트하러 왔는데 야외노출 변태 짓을 하고 있다.
그나저나 직접 닿으니 꽤 고통스럽다.
이리스는 어떨까.
“느낌이 어때?”
“간질간질하면서 좋아요….”
이리스는 별로 불편한 것 없는 모양이다.
이거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한번 불붙으면 억지로 덮쳐질지도 모르는데,
솔직히 이런 감각에는 세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전에 예상했던 대로 넣자마자 죽어 버리겠지.
아….
따먹어달라는 엘프가 있는데….
따먹지 못하다니.
원통한 일이다.
어서 빨리 또 다른 정력왕의 힘을 손에 넣어야 할 텐데….
“읏…♡ 으흣…♡”
영문도 모르고 가슴 만져지며 좋다고 아흣거리는 이리스.
참고로 내 손은 거의 마비가 돼서 저릿저릿하다.
나는 절대 인정하기 싫었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에…?”
“마력압 때문에 손이 너무 아파.”
“아…. 죄송해요…. 괜찮으신 줄 알고. 절 만지는 게 싫은 건 아니시죠?”
“아냐, 만지는 건 좋은데, 아직 마력을 견디기에는 좀 모자란 것 같아. 손이 많이 따끔거리네.”
“네에…. 죄송해요, 오빠….”
“죄송할 건 없어. 나중에 존나 따먹어 줄 테니까 각오해.”
“아앗…♡”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
다시 주섬주섬 가슴을 정리(?)하는 이리스.
등 뒤의 단추는 내가 다시 채워주어야 했다.
“그러면…. 이제….”
슬슬 돌아갈까. 라고 하려는데….
이리스는 깜찍발랄하게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좀 쉬었다가 허벅지 주물주물도 해 주실 거죠?”
“야….”
만족을 모르는 그녀, 이리스.
하지만 솔직히 이거 남자로서는 최고의 데이트코스다.
귀찮은 거 없이 손잡고 좀 걷다 바로 몸 주물주물.
마치 정욕의 화신이 스케쥴을 잡은 듯한 플랜이 아닌가.
진짜 마력압만 아니었으면….
“그래, 좀만 쉬었다가….”
“네…♡”
이리스는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베시시 웃었다.
뺨에 닿은 어깨가 따끔거린다.
아이고….
* * *
결국 허벅지까지 주물주물해주고, 기진맥진해서 겨우 돌아왔다.
100명 임신시키는 것보다 마력압 이겨내며 주물럭거리는 게 더 힘든 것 같다.
불쌍한 이리스.
대지의 정력을 가진 나조차 이 모양인데,
진짜 다른 남자들은 근처에만 가도 몸이 저릿저릿했을 거다.
이리스가 처녀인 건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저렇게 들이대는 걸까….
빨리 따먹어줘야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무튼 그렇게 아무도 몰래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모양이다.
들어오니 이실리아가 방긋 웃으며 맞아 주더라.
“산책은 즐거우셨는지요?”
“아…. 들켰었나요?”
“좋은 시간을 보내시는 것 같아 멀리서 몰래 경호했습니다.”
“음, 좀 민망하긴 한데, 고마워요.”
“바로 주무시죠, 여행 때문에 지치셨을 거고…. 내일은 또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하니까요.”
이실리아의 말대로 곧바로 침실로 들어갔는데,
여행이 안락하긴 한 것 같았어도 은근 피곤했었나 보다.
사실 여행보다는 방금 전 주물주물 데이트가 더 피곤한 것 같긴 했지만….
아무튼 베개에 머리를 묻으니, 순식간에 졸음이 쏟아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