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108.
* * *
침대에 억지로 쑤셔 넣어도 카렌은 순순히 잠들지 않았다.
“아직 일을 더 해야 해요….”
“자라 좀.”
“해야 할 게 많은데….”
이거 누가 세뇌라도 한 건 아닐까.
끝까지 반항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나는 살짝 달래는 방법을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침대에 누워서 5분만 눈 감고 있으면 다시 일하게 해 줄게.”
“앗, 네…. 그 정도라면야….”
내가 순순히 허락 안 해 줄 것을 알았는지, 순순히 눈 감고 눕는 카렌.
무슨 마취한 것처럼 정확히 10초 만에 곯아떨어진다.
많이 피곤한지 코까지 골며 자는 것이 조금 보기 안쓰럽다.
“드르렁…. 퓨우…. 드르렁…. 퓨우….”
자는 모습을 보니 일단 안심이다.
쉽게 일어날 것 같진 않으니 일단 눕혀 두고,
관련된 일을 세레니아와 이야기해 봐야겠다.
여행 준비 중인 세레니아를 불러 이야기를 해보니,
의외로 순순히 사실을 인정한다.
“조금 무리일 거라고는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별말이 없어서.”
“보면 모르냐…. 이런 건 쓰러지기 전에 주변에서 신경을 좀 써 줘야지….”
“제가 미욱한 탓입니다. 신관을 더 고용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일을 더하기만 한 것 같네요.”
“그러면 어떻게 하지?”
“저로서는 방법이 없지만, 사도님께서 나서주신다면 쉽게 해결될 것입니다.”
“나? 흐음. 셀레시아와 헤일리아에게 말을 좀 하면 될까?”
“네. 그렇게 해 주시면 카렌에게도 조금 여유가 생길 겁니다.”
왜 진작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생각해보니 셋은 서로 좀 데면데면했다.
그런 부탁을 하기에는 좀 거리가 있다고나 할까.
헤일리아도 셀레시아도 세레니아도 나하고만 친하지, 사실 서로서로는 별로 안 친하다.
혈연이나 가문으로 묶인 게 아닌 이상, 사실 내 하렘(…)맴버들끼리 친한 건 드물다.
내 하렘(…?)에서 그나마 사이가 좋다고 할 만한 건, 나를 경호하는 걸로 매일 협력해야 하는 세레니아와 이실리아 둘 정도….
나머지들은 방긋방긋 웃고는 있지만, 나 아니면 딱히 서로 협조할 것 같지는 않다.
협조하지 않는 걸 넘어서 솔직히 은근 서로 견제하는 것 같기도….
진짜 다 임신시켜놔서 다행이지, 섹스만 하는 하렘이었으면 지금쯤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머리끄댕이 잡고…. 아니 머리끄댕이면 다행이지 누가 죽어 나갔을지도.
아무튼 전부 임신해서 아이를 가져 다행이었다.
다들 섹스를 못 하니까 이렇게 참는 거지…. 아니었으면 먼저 하겠다고 난리가 났을 거다.
근데 애들 태어나는 10년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육아는 해야 하지만, 그 이후에는 섹스가 가능해진다.
음….
그동안 쌓은 임신 스택(…?)이 그대로 돌아올 것 같은데….
소름이 살짝 돋는다.
아이 하나로 만족할 만한 엘프는 별로 없을 것 같다.
10년마다 하나씩 죽을 때까지 낳자고 달려들 거다.
어떻게든 해 봐야지….
아무튼 헤일리아와 셀레시아에게 남성교단의 사무인력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를 하니, 바로 사람을 뽑아 보내 주었다.
무려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곯아떨어져 잠든 카렌은,
자고 일어나니 대신 일할 사람이 가득해져 있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봐야 마지막 도장은 그녀가 찍어야 해서 주 80시간 이상 근무인 건 변함이 없었지만….
“사도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 주신 분은 사도님이 처음이세요….”
대체 악덕 세레니아에게서 무슨 취급을 받으며 생활했던 걸까.
훌쩍훌쩍 울며 고마워하는 카렌의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뭉클하다.
“아니 뭐….”
찝쩍거릴까 하다 신경을 쓴 거라고는 차마 못 하고, 말을 얼버무리는 나.
“이제 하루에 8시간씩 잘 수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게 감사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아니에요.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교단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흐음….”
이거 찝쩍거리자니 너무 불쌍하다.
여전히 식사하고 씻는 시간 빼면 일만 해야 하는데….
잠잘 시간이 생겼다고 행복해하는 카렌에게 임신하고 싶냐고 하기는….
“저기 카렌?”
“네? 사도님?”
“혹시 내가 뭐 해 줄 수 있는 건 없을까?”
“이미 많을 걸 해 주셨는데요…?”
“아니 그 뭐라고 해야 하나. 그동안의 노고에 보답한다고 할까. ‘육체적인 의미’로 내가 도와줄 건 없어?”
“육체적인 의미…? 그게 무슨…. 아앗…! 그…그런.”
이제야 말을 알아듣고 얼굴이 빨개지는 카렌.
“저 혹시…. 그건….”
“음. 그거.”
“제가 생각하는 그거….”
“응. 그거.”
“그게 임신 맞죠?”
“음. 결국 그렇게 대놓고 물어볼 거면 그냥 처음부터 물어보지 그랬어. 아무튼 맞아.”
“저…. 사도님이 싫은 건 아닌데….”
“그런데?”
“세레니아 대신관님을 제치고 제가 먼저 하기는 조금….”
“흠, 그래?”
“네. 아무래도 주변 시선도 있고. 몰래 하기만 하는 거라면 저도 엄청 좋지만….”
“임신이 싫은 건 아니고?”
“아니요…. 임신은 하고 싶은데…. 세레니아 대신관님보다 먼저 하는 건 안 돼요.”
“그럼 섹스만은 괜찮은 거야?”
부끄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카렌.
수줍은 그 모습이, 가슴에 불을 붙인다.
정확히는 성욕에.
“…할래?”
“저…. 진짜로 저를…?”
“나 진심이야. 내 취향 못 들었어?”
“알긴 알지만…. 더 예쁜 분들도 많으신데….”
“난 지금은 너 따먹고 싶어. 좋아? 싫어?”
다이렉트 ‘너 따먹고 싶어’에 몸을 비비 꼬는 카렌.
어지간히 좋은지 볼이 빨개진다.
“…이 일 마치고 나면 두 시간 정도 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세…아니 네 시간도….”
역시.
남자가 들이대는 거 싫어하는 여성 엘프 못 봤다.
여긴 진짜 천국인가.
예쁜 엘프들이 따먹고 싶다고만 말하면 다리를 벌려 준다니.
“그런 거 그냥 도장만 막 찍어버리면 안 돼?”
“아…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알겠어. 그럼 얌전히 기다릴게.”
“네…넷…! 최대한 빨리 끝낼게요….”
사과처럼 빨개진 얼굴을 푹 숙이고 서류를 읽는 카렌.
옆에서 일하는 모습을 천천히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자지가 발딱발딱한다.
인력이 충원돼서 피부에 요새 윤기가 좀 돈다.
엘프니, 외모는 두말할 필요 없이 예쁘다.
엘프들 사이에서는 나름 좀 더 예쁘고 안 예쁘고 이런 걸 따지는 것 같지만,
존못인 여성 엘프라고 해도 이미 웬만한 걸그룹 맴버를 뛰어넘는다.
그 외에도 신체의 비례가 다르다.
팔다리 길쭉하니 늘씬해서 보기 좋은 몸.
살이 찐다고 해봐야 가슴에만 붙는 축복받은 신체다.
그래서 큰 가슴이 좀 흉하게 보여진다고 하지만,
오히려 내겐 최고다.
다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건강한 식사를 하는지,
가슴 빵빵한 엘프는 꽤 드물었다.
그것도 젊은 엘프들은 더욱.
카렌은 젊은 편이지만, 가슴은 꽤 있었다.
수석신관이랍시고 교단의 재정을 위해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을 유지했던 데다,
일도 대부분 앉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느긋하게 보니, 참으로 예쁘다.
사실 요새 막 따먹는다고 이렇게 변태같이(…) 여성 엘프를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깨끗하니 청량한 느낌이 드는 백금발에,
물빛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
만약에 서울 거리를 걷고 있다면,
10분도 안 돼서 스카우트며 헌팅이며 온갖 남자들이 달라붙을 것이 뻔할 정도의 엄청난 미녀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흔녀1일 뿐.
그것도 조금 못생긴 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얼굴이야 뭐 그럭저럭 예쁘지만.
저 가슴이.
풍만한 두 개의 언덕이.
엘프들 사이에서 흉하게 보이는 것이다.
집중해서 서류를 살펴보느라,
백금발 머리카락이 살짝 옆으로 흘러내린다.
얇은 검은 테 안경 옆으로 흘러내린 옆머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섹시하다.
전체적인 차림이 야한 건 아니다.
허벅지가 드러나지만, 전체적으로 단정한 신관복 차림.
차분하고 단아한 느낌이라 좋다.
그러나 앉아있는 의자 틈새로 보이는 허벅지.
포동포동한 허벅지에, 후끈 열이 돈다.
마치 우등생이 보여주는 야한 모습이라고 할까.
저런 엘프를 범한다고 생각하니 군침이 돈다.
임신은 못 시키지만….
그전까지는 얼마든지 해도 괜찮겠지?
4시간이라고 했다.
저런 등신대 인형 같은 미녀 엘프를 따먹기에는 모자랄지도 모르지만,
일단 주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었다.
군침을 꼴딱꼴딱 삼키면서 기다리는데,
신관 하나가 곤란하다는 듯이 나를 찾아왔다.
“저기 사도님….”
“응?”
“어떤 여성분이 사도님을 찾으시는데요….”
“누구지? 아이린인가?”
“아뇨, 시골에서 올라오신 분 같은데, 사도님과 아는 사이라고 우기는데…. 며칠째 계속 찾아오셔서 좀 곤란합니다.”
“시골?”
신시아나 올리비아라면 세레니아와 알고 있으니 딱히 저렇게 날 찾지 않아도 볼 수 있을 터.
대체 시골에서 올라왔다는 엘프는 누구일까?
“흐음, 그냥 이상한 여자일 것 같긴 한데…. 며칠째 찾아온다고?”
“네. 그렇습니다.”
“한번 얼굴이나 볼까?”
“사실 이런 걸로 번거롭게 해 드리고 싶진 않긴 한데…. 워낙 끈질겨서. 얼굴 보면 알 거라고 우기시더라고요.”
“그래? 딱히 짚이는 사람은 없는데…. 뭐 한번 보지 뭐.”
“네. 그럼 이쪽으로….”
그 ‘손님’은 난동을 피워서 보안실…. 아니 ‘손님방’에 억류되어 있다고 한다.
가 보니 벌써 방 밖부터 시끄러웠다.
“아니, 보면 알 거라니까…. 좀 만나게 해 줘요.”
“죄송하지만 사도님은 바쁘셔서.”
“방금 마차 들어가는 거 봤는데…. 그러지 말고…. 내가 어떤 사람인데….”
“하루에도 수많은 여성 귀족분들이 오시는데요, 후작 아래로는 명함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후…후작이요…?”
“네. 아무래도 사도님께서 매우 유명해지시다 보니, 어떻게든 하룻밤 모시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아지셔서.”
“아…. 그렇다고 듣긴 했는데.”
“혹시 누구신지 명함이 있으시면, 최대한 전달해 드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친절한 보안요원의 대답에 개미 목소리로 대답하는 우리의 방문자.
“아…. 아니….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시골에서 장로를 좀….”
“네? 뭐라고요?”
“아…아니에욧!”
부끄러웠는지 후다닥 방문을 뛰쳐나오다, 딱 나하고 마주친다.
보니까 언제 섹스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레네 장로였다.
품에는 보자기에 뭘 소중하게 껴안은 채, 나와 툭 부딪히는 이레네.
“엣…?”
“이레네 장로?”
“아앗…!”
내가 살짝 고개를 까닥해 인사를 하자, 이레네는 지옥에서 부처님을 본 것 마냥 굽신거린다.
“아앗! 이건! 이런! 이게! 이러려고!”
날 보고 흥분해서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이레네.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참.
“일단…. 좀 진정해. 숨 좀 쉬고.”
“후우…. 후우….”
“좀 진정됐어?”
“응, 아니 네….”
“오랜만이네. 누가 날 찾는다고 시골에서 왔다기에 누군가 했더니….”
“아…. 오랜만에 뵈어요. 사도님.”
내게 존댓말을 쓰는 이레네 장로
이렇게 보니 참 처지가 많이 변했다.
그때 난 노예였고 장로는 하늘같이 높은 엘프였는데,
지금은 입은 옷도 영 허름해 보이고 좀 안쓰럽다.
“그래, 무슨 일이야?”
“아니…. 그 아이린에게 소식을 들었는데…. 혹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유명해져서 한번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린이라면 몰라도, 이레네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었다.
처녀는 아니었지만, 섹스도 나하고 신나게 잘했고, 하룻밤 보내고 다음 날에 고맙다고 도시락까지 싸 주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무슨 보따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품에 그건 뭐야?”
“아, 이거요? 이건 드리려고 싸 온 음식인데…. 입에 아마 안 맞으실 것 같아요….”
예상외로 높아진 내 지위에 기가 잔뜩 죽었는지,
기껏 싸 온 음식을 재빨리 등 뒤로 숨긴다.
“내놔 봐.”
“하지만…. 좋은 거 많이 드실 텐데…. 이런 시골 음식은….”
“줘 봐 좀.”
우격다짐으로 보따리를 뺏어 열어보니,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그 고기 맛이 나는 버섯 튀김이었다.
“야. 이거 맛있었는데, 다음에 먹어보질 못했단 말이지.”
고기는 고기 나름대로 맛있지만 이건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튀김.
지방 함량 높은 조리법은 별로 선호되지 않는 터라,
이렇게 고기 맛이 나는 버섯을 튀긴 요리는 그때 먹어본 게 처음이었다.
노예가 밤에 힘썼으니 든든하라고 신경을 써서 싸 준 것이리라.
참 맛있었는데 절반 넘게 레오 자식이 먹어 버렸지….
“음…. 맛있네. 독특한 맛이 있어.”
추억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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