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85.
* * *
마차는 로리엘과 들렀었던 세계수 안쪽으로 들어서서도 한참을 더 진입했다.
몇 번의 검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도착한 세계수 심부의 깊숙한 곳,
새하얀 기둥이 저 높은 궁륭형 천장까지 높히 솟은 홀에서,
나는 집정관을 알현하게 되었다.
"아.."
클라리스가 말을 흐렸을 때 알았어야 했다.
집정관.
엘프 공화국의 정점.
세계수를 책임지는,
안개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
나는 나이 좀 있는, 얌전하고 우아한, 여신 타입 눈나를 생각했다.
가슴은 없어도 고상함은 있는..
그런 고상한 여자에게 목줄 채우고,
노예처럼 내 발을 빨게 만드는 게 내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정관을 만난다고 기껏 예복으로 바꿔서 입은 내 앞에 있는 것은..
키 150cm가 될락말락.
화사화사 뽀얀 예쁜 백금발.
통통한 젖살에 순박한 눈망울이 귀엽기 그지없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대평원의 소녀.
"이게.. 집정관..?"
"오! 만나서 반갑느니라! 존귀하고 우아한 본인은 위대한 숲의 공화국의 집정관, 셀레시아 라 에티에넬이라고 한다!"
나를 땡글땡글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반갑게 인사하는 소녀.
존귀하고 우아?
졸귀한 유아가 아니고?
나는 당황해서 클라리스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그런 눈짓을 하며 시선을 슥 피한다.
알고 있었구만.
미리 이야기했으면 안 온다고 할 지도 모르니 숨긴 거였어.
아니 집정관이 로리 계열이라니
이건 아니지..
"그대를 만나서 얼마나 기쁜지, 그대는 아마 상상조차 못 할것이니라!
내가 실망하는지도 모르고, 집정관은 눈치도 없이 가까이 와서 내 엉덩이를 펑펑 쳤다.
"미리 들었던 대로 엉덩이가 과연 탄탄하구나! 과연 축복받은 생식력을 지닌 남자답노라!"
이거 생긴 건 순수로리인데 하는 짓은 완전 아저씨야..
나는 좀 식어서, 엉덩이를 더듬는 손을 쳐냈다.
"야.. 만지지마."
순간, 클라리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린다.
막 손짓을 하며 고개를 흔드는 걸 보니, 뭔가 저질렀다는 느낌이다.
'아니 저지르고 자시고, 덜 자란 2D 평면도형이 엉덩이를 막 더듬는데 그냥 내버려 두나?'
내가 에비에비 하며 손을 쳐내고 엉덩이를 툭툭 털자, 집정관인 셀레시아 라 에티에넬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아, 미안하노라. 그대가 오기를 너무 간절히 기다렸던 탓에, 생각 이상으로 친한 척을 해버렸구나.."
"알면 됐어."
내가 찍 반말을 내뱉자, 클라리스의 얼굴이 새하얘지다 못해 검푸르게까지 물든다.
목에 자꾸 손날을 가져다 대는 이유가 뭘까?
근데 진짜 저 눈나 저러다 쓰러지겠는데?
물론 난 존댓말을 할 생각은 1도 없었다.
차라리 농촌 처녀인 올리비아에겐 해요체를 쓰면 썼지, 이 건방진 꼬맹이에게?
어림도 없다.
"음.. 그대가 나의 상대가 될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허물없이 구는 것은 분명 옳지 못한 일이노라. 그래도 어차피 나중에는 볼 거 못 볼 거 다 볼 사이인데, 너무 쌀쌀맞게 굴면 본인은 좀 슬프구나."
"뭐? 상대? 볼 거, 못 볼 거 다 봐?"
"음! 그러하다."
"전혀 생각 없는데.."
"에..? 정말이더냐?"
"별로 취향이 아니라서."
"음.. 그럴 리가.. 하지만.. 신탁에.. 예언에 따르면.. 아니, 그, 한번 잘 생각해 보아라. 이 작고 고귀한 몸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더냐? 그대의 위엄찬 남성기로서 이 몸이 소중하게 지켜온 처녀막을 찢고, 이 몸의 고귀하고 앙증맞은 자궁에 번식의 씨앗을 부어 넣는다는 지고의 쾌락을 상상해 보거라."
따먹는다는 걸 참 어렵게 말하는 집정관 셀레시아 라 에티에넬.
근데 솔직히 이런 애가 저런 말을 하니 꼴리긴 한다.
"..너 처녀야?"
엣헴! 하며 자랑스러워하는 셀레시아.
"그렇도다! 본인은 처녀인 것이다!"
"처녀인데 또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는 건 처음 보네.."
"본인은 못해서 처녀인 것이 아니라, 국가에 온전히 몸을 바쳤기에 처녀인 것이다! 그러니까 못 한 것이 아니고 안 한 것이니라, 따라서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나도 처녀인 것이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지금은 왠지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 봤자 처녀잖아."
묵직한 팩트에 셀레시아가 쪼그라든다.
"우우.. 그대는 심술맞도다.."
눈부시게 예쁜 얼굴에 살짝 울먹울먹하는 끼가 도는 걸 보니 왠지 미안해졌다.
하는 짓이야 아웃이지만, 생긴 게 일단 예쁘니까.
"그러게 누가 초면에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래?"
"으으.. 하지만.. 그래도 될 줄 알았느니라.."
"다음부터 그러면 혼난다. 내 말 잘 들어야 예뻐해 줄 거니까."
아이 달래듯 어르는 말에 셀레시아가 발끈했다.
"보..본인은 공화국의 집정관이다. 감히 누굴 예뻐해준다고 하는 것이냐?"
"뭐야. 예쁨 받고 싶지 않은 거야?"
직구 물음에, 개미목소리로 대답하는 셀레시아.
"그..그건 아니다. 나도 그대에게 예쁨 받고 싶은 것이니라.."
"그럼 말 잘 들어."
"우우.."
"뭐, 그리고 처녀인 점은 구미가 당기긴 하네."
"으으.."
"그래서 또, 뭐 더 있어? 하면 나한테 유리한 점이라던지."
"조건을 더 따지는 것인가.. 으으.. 이 고귀한 몸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너무하는 것이니라."
"고귀한..? 빈약한 게 아니고? 뭐.. 그런 빈약한 몸은 그냥 주면 먹겠지만 딱히 찾아서 먹고 싶지는 않은데.."
"헉.."
"집정관님께 저런.."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이거 내가 말하고도 좀 심했던 것 같다.
"끄윽..!"
내 빈약 어쩌구 하는 직구 다이렉트 투하에, 클라리스는 뒷목을 잡고 풀썩 쓰러졌다.
그래도 뭐 사실이니까.
"비, 빈약한 몸..? 주..주면 먹어? 흥. 그대는 아직 준비도 안 된 주제에 너무나도 쌀쌀맞고 건방진 것이니라."
"준비가 안 되다니? 난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데?"
"..후후후..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어디 한 번 이 몸 가까이 다가와 보겠는가?"
"뭐가..? 앗..!"
아까는 못 느꼈는데, 셀레시아 근처에 서자, 마치 몸이 사방에서 압력을 받아 짜부라지는 느낌이 훅 든다.
"이게 무슨..?"
"공화국의 대공작 급이 되면, 자궁 뿐만이 아니라 전신에 마력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니라.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제어하고 있지 않으면, 마력압 때문에 지금 그대가 지닌 힘으로는 발기조차 불가능할 것이노라."
뭔가 꼬맹꼬맹으쓱으쓱거리며 그렇게 말하는 게 괘씸하다.
근데..
진짜..
발기가 안 된다..
정력을 아무리 돋구어 봐도,
내 아랫배에서 정력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멈춰있다기 보다는, 사방에서 눌러서 꼼짝을 못 한다는 느낌.
정력이 이렇게 멈춘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꼭 정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심리적으로도 뭔가 위축되는 느낌이 들고,
뭔가, 공간 자체가 발기를 허가하지 않는 느낌이다.
"씁, 이거 기분 나쁘네."
"음.. 어쩔 수 없도다. 이 타고난 탁월함을 지닌, 고귀하고도 완벽한 몸 앞에서는 어떤 남성이든 기가 죽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후훗.. 비록 그대가 주제파악을 못하고 감히 빈약한 몸이 어쩌고 했지만, 그대도 한낱 남자였을 뿐이었던 것을 어찌하겠는가? 너그러운 본인이 용서해야 할 뿐이도다."
으쓱으쓱 신이 난 셀레시아.
아니 지 몸 때문에 안 선다는데 뭘 저렇게 좋아하는 걸까.
사실 화 낼 건 아닌데, 진짜 혼내주고 싶게 싱글벙글하고 있다.
"너 진짜 혼내주고 싶게 말하는구나."
"혼내주고 싶다라.. 훗, 본인도 한번 그대에게 야한 방식으로 혼나보고 싶구나. 뭐 지금은 절대 무리겠다마는."
"그래?"
나는 셀레시아의 허리를 잡아들었다."
"엣? 자, 잠깐 무슨..?"
"야한 방식이 아니라 물리적인 방식으로 혼내보려고."
셀레시아는 당황한 것 같았다.
덕분에 마력압을 조절하는 게 느슨해졌는지, 압박감이 엄청 심해진다.
하지만 이 정도는, 참고 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내 손바닥.
셀레시아는 다급하게 팔을 버둥거려 보지만,
삼대오백의 강철같은 근육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잠깐! 본인의 위엄은 본인의 것만이 아니니라! 공화국의 대표로서 유지해야 할 위엄이..!"
"시끄럽고 엉덩이 팡팡이다."
조막만한 엉덩이를, 솥뚜껑같은 손이 후려친다.
"끄윽!"
클라리스가 쓰러져서 이 장면을 못 봐서 다행이다.
한편 조금 떨어져 있는 집정관의 경호원들은 식은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이걸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근데 말리려고 했으면 애저녁에 반말을 찍찍 할때부터 말렸어야 했다.
어? 선 넘네? 또 넘네? 진짜 넘네? 어어어? 하다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어우. 쪼끄만 게 손맛은 좋네."
"보..본인의 엉덩이를..! 감히..!"
"왜. 또 혼나고 싶어?"
"아, 아니다.. 아니.. 그, 근데 사실 조금은.. 뭐랄까 혼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 않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뭐라는 거야. 그냥 한대 더 맞아라."
나는 아까보다는 훨씬 약하게 한 대 엉덩이를 팡팡 해주었다.
두 손을 꽉 쥐고, 엉덩이에 힘을 주는 셀레시아.
"아읏..♡"
쪼꼬미 주제에 야릇한 콧소리를 내는 게 기가 막히다.
"아니.. 쪼그만 게 암컷소리를 다 내내?"
암컷소리라는 말에 호위병들은 눈을 감았다.
마치 다른 시공간에 얼어붙어 있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니, 그저 아무것도 못 듣고 못 본 걸로 생각하기로 한 것 같았다.
현명한 선택이다.
한편 암컷소리를 내 낸다는 조롱에, 셀레시아는 원망스럽다는 듯 대꾸했다.
"으읏..! 이, 이러는 건 어쩔 수 없노라! 평생 여자로서의 기쁨은 포기해야한다고 생각하던 중에 그대가 나타났으니..!"
여자로서의 기쁨이라고 하면서, 부끄러웠는지 볼을 붉히는 셀레시아.
하는 짓은 저래도 처녀가 맞긴 한가보다.
"그래. 야. 그 여자로서 기쁨 알려줄 상대가 니 옆에만 서면 불능인데, 그게 좋아?"
"좋은 건 아니다..! 전혀 좋지 않아.. 하지만.. 하지만 그대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는가? 본인이 스스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내 아름다움이 탁월하다는 것은 엘프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받는 객관적인 사실이도다. 그 존귀하고 완벽한 신체를 가.. 감히 빈약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이건..
둘이서 어린애처럼 투닥거린 것이었다.
'니가 먼저 했잖아! , 아냐! 니가 먼저 했잖아!' 이런..
"그..그대가 호텔에서 한 짓 때문에 공연 음란죄로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을 내가 손을 써서 불기소 처분도 하게 했건만.. 그대는 어찌하여 내게 그렇게 심술맞게 대하는 것인가.."
"아.."
하긴 생각해보니 그 짓을 벌였는데, 호텔 블랙으로 끝날 리가 없다.
왠지 그냥 넘어갔다 했더니 이런 사정이 있었구나.
"정말 기대를 많이 했던 것이다.. 예언에도.."
"예언?"
자기 입을 흡 막는 셀레시아.
"..흡"
"뭐야. 말 해봐."
"안 된다..! 절대로 그대에게는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니라."
"..뭐.. 그럼 됐어."
"음..? 그냥 넘어가 주는 것인가?"
"이야기해주기 싫어하는 거 보니, 내가 들으면 뭔가 안되는 그런 종류의 예언 아냐?"
"마..맞다.. 그대는 아무 생각 없어 보였는데 의외로 지성이 뛰어나구나..!"
"뭐? 누가 아무 생각이 없어?"
"하지만.. 보고서를 보면 절륜한 교배력에 비해 지성은 별로 뛰어나지 않아 보인다고 나와 있었느니라.."
"뭐? 보고서? 저기 클라리스..?"
뒤를 획 돌아보니, 클라리스는 이미 실려 나가고 없었다.
'나 원 참, 보안국의 정보요원이라는 분이 저렇게 담이 작아서야.'
아마 다른 엘프들에겐 위엄이 엄청난 것 같은데,
나한테는 집정관이라고 해 봤자, 좀 많이 건방진 쪼꼬미로 보일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막 나가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떤가? 보아하니 뭔가 나에겐 중요한 역할이 있는 것 같은데.
게다가 주변에서 하도 떠받들어 주기만 해서 그렇지,
셀레시아도 이러는 걸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이 녀석 아마 구박받는 걸 좋아하는 건방진 M 꼬맹이일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더 싸우려 들지 않고, 먼저 셀레시아에게 사과를 건넸다.
"아무튼.. 음.. 일단 미안했다. 심술 맞게 군 것 먼저 사과할게."
"음..?"
"사과한다고. 이래저래 여러 모로 날 봐주느라 신경도 써 준 것 같은데."
"음..! 이제야 좀 고분고분해진 모양이구나! 그러면 그렇지. 이 몸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을 남성은 없도다. 아마 내 아름다움을 보고 너무 부끄러웠던 것일 지도 모르겠구나? 처음부터 솔직하게 나왔다면.."
꼭 잘 가다가 몇 발자국 더 가 버리고 마는 셀레시아.
나는 손바닥을 짝짝 치며, 살짝 협박을 했다.
"일절만 해라. 일절만. 엉덩이 팡팡 한다?"
"히익..!"
"자, 나도 사과를 했으니, 너도 사과를 해야하지 않겠어?"
"으.. 알겠다. 엉덩이를 마음대로 건든 것과, 불능이라고 놀린 것을 사과하겠다."
그러면서 샐죽하게 손을 내미는 셀레시아.
집정관이라면서 하는 짓은 쪼꼬미 짝꿍 같은 느낌이다.
작고 부드러운 손을 잡고, 화해의 악수를 한다.
"좋아. 사과를 받아주지."
"음. 좋다. 나도 그대의 사과를 받아들이마."
"그럼.. 이제 널 어떻게 따먹어야 되는지 알려 줘. 마력압을 이겨내고 따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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