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58.
* * *
대체 파티장은 얼마나 붐빌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들긴다.
'똑똑똑'
"누구세요?"
누구라고 해 봐야 소피엘 아니면 아르피엘일 텐데, 아마 아르피엘일 것이다.
"아르피엘이에요"
역시
드레스를 입고 샬랄라 들어오는 아르피엘.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다.
몸매만 보면 도저히 임산부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다.
9년차부터 배가 불러온다고 하긴 했지만..
"이제 슬슬 나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벌써?"
나가봐야 뭐 다른 여자를 꼬시거나 할 수도 없고,
나는 그저 모녀 손의 꽃과 같은 존재.
그저 소피엘과 아르피엘 옆에 서서 방긋방긋 웃는 역할이다.
아르피엘은 내 맘 다 안다는 듯 빙긋 웃었다.
"어머님이 너무 힘들어하셔서요."
뭘 얼마나 힘들어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으래?"
머리를 빗고, 예복으로 갈아입는다.
번잡한 걸 싫어해서 준비를 간단하게만 한 것도 있지만,
엘프 시종 눈나가 셋이나 달라붙어서 해준 덕에 금방 끝났다.
"그럼 가볼까?"
"네♡"
아르피엘의 팔을 잡고, 당당하게 파티홀 안으로 걸어간다.
본격적인 엘프귀족의 파티는, 엄청났다.
'전에 한 게 소박하게 한 게 맞구나.'
화려한 꽃으로 장식한 홀 내부,
천장에서는 빛의 정령이 반짝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그룹의 한 가운데, 소피엘이 있었다.
소피엘은, 슴가 큰 우월한 마망눈나들에게 둘러싸여
세상에 다시 없을 치욕을 맛보고 있었다.
"이야! 엘룬드 백작 이제 한물 간 줄 알았더니 아직 한창이네 한창!"
"아하하.. 아니.. 뭐.."
"뭘 먹기에 그 나이에 그렇게 임신을 해? 우리한테도 좀 알려 줘. 응? 우리도 좀 같이 먹자고."
"아니.. 뭘 먹은 건 아니고"
"에이, 그렇게 빼지 말고, 그 나이에 임신한 비법이 뭐야? 좀 알려줘."
"아니 그게.."
"아니면.. 이런 말 하기 그런데 특수한 체위라던가 있어? 듣자하니속닥속닥하면 임신이 잘 된다고 하던데."
"아.. 아니 그런 게.."
다들 그 임신한 소피엘의 절륜함을 부러워하며 비법을 알아내려 하고 있는 중이었다.
비법이 뭐 있겠는가. 내 몸이 비법이지.
거기에 하나를 더 꼽자면 암캐 플레이 정도?
물론 소피엘 체면에 목줄 플레이 했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뭐 할 말이 없으니 저렇게 계속 얼버무리는 것인데..
차마 보고 있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비법이 뭐야? 딸도 임신한 거 보면 분명 뭐가 있을 거 아냐. 우리 사이에 숨기지 말자구."
"아..하하.."
억지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소피엘.
소피엘을 처음 따먹었던 그 날 입은 그 옷을 입었다.
아르피엘의 임신축하파티때 입었던 그 옷,
허벅지 슬릿이 들어간 꼴릿한 검은 드레스.
너무나 섹시하다.
저런 여성에게 목줄을 채웠었다니
생각만 해도 자지가 발끈발끈하다.
"어머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세요?"
곤란해하는 소피엘 곁으로 끼어드는 아르피엘.
덕분에 소피엘을 향한 압박이 조금 줄어든다.
"오! 아르피엘, 대체 너네 어머니 어떻게 된 거냐?"
"우리 나이에는 정말이지 쉬운 게 아닌데, 뭔가 비법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얼버무리는 소피엘보다는 아르피엘에게서 뭔가를 캐내는 게 더 쉽다 싶었는지,
타겟을 바꾸어 질문이 쏟아진다.
수많은 질문을 받은 아르피엘
당당하게, 한 마디로 대답을 한다.
"그건 전부, 우리 오빠 덕분이에요!"
순간, 내게 살벌한 시선이 집중된다.
나는 자중하라는 뜻으로 아르피엘의 옆구리를 찔러 보지만,
아르피엘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오빠가 얼마나 절륜한데요. 이런 남자 다시 없을 걸요."
'절륜'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긴 한 단어에,
돈 많은 엘프 눈나들의 눈에 불길이 붙는다.
"호오.."
"흐음.."
무슨 감정이라도 하는 것 같은 눈길로, 위아래를 훑는다.
교배장의 숫소가 된 느낌이다.
'이거 뭐야. 뭔가 기분이 이상해..'
진득한 시선이 몸 곳곳에 달라붙는다.
엘프 마망 눈나들은 다들 예의가 발랐기에,
차마 남의 집 임신시종에게 뭐라 말로 유혹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근데 말을 안 하면 뭐하나
다들 눈빛이..
'혹시 우리 집에 올 생각 없나?'
'우리 딸이 마침 임신할 나이인데'
'소피엘도 괜찮았으면 나도 괜찮지 않나'
육욕에 뒤범벅이 된 눈빛이다.
아르피엘은, 그 눈빛들을 보며 행복해했다.
"우리 오빠, 진짜 끝내준다니까요. 쪽♡"
셀렌디네처럼 허영심을 채우려는 건가 싶었는데,
눈빛을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아직 젊고 탱탱한 아르피엘은,
확실히 다른 여자에게 자랑하거나 허세를 부려 허영심을 채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순전히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하여
'우리 오빠 쩔어욧♡'
하고 알리고 싶었을 뿐.
그 증거로, 아르피엘은 체면따윈 집어치우고,
내 팔에 가슴을 비비고 붙어서 쪽쪽 키스를 한다.
엘프들 기준으로 봐도,
너무 체신머리 없는 행동이었다.
내가 아르피엘의 애첩이 아니라,
아르피엘이 내 애첩 같이 보이는 행동.
오히려 가만히 있는 내가 주인 같고,
아르피엘이 임신시종이라 해도 믿겨질 정도였다.
'진짜 얼마나 잘 하길래 저러나.'
'엄청난 남자인가 보네.'
'꿀꺽..'
군침을 삼키며 나를 바라보는 엘프들.
아르피엘의 행동으로 기대감이 무진장 높아진 느낌이다.
맘모스를 집단으로 사냥하려는 원시처녀들처럼,
엘프 눈나들의 시선이 매섭다.
"저기 아르피엘, 소피엘, 이제 둘 다 임신했으니, 임신 시종은 이제 필요 없지 않나..?"
"그렇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재능이 있으면 널리 쓰이게 해야지."
"꼭 어떻게 하자는 건 아니지만, 마침 우리 딸이 딱 좋은 나이인데 말이야"
한 명이 밑밥을 던지자, 우르르 몰려든다.
말은 은근한데, 행동은 진심이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소피엘과 아르피엘을 둘러싼다.
갑자기 엘프눈나들이 몰려들자, 모녀는 당황했다.
"아.."
나는 이마를 짚었다.
자랑할 때 여기까지 생각을 했어야지.
그냥 좋다고 다 좋은 티를 내면 어떡하나.
소피엘과 아르피엘은 명목상으로는 내 주인이지만,
실제로 지배권(?)을 행사하는 건 내 쪽이다.
어쩌면 좋겠냐는 듯이 날 바라보는 두 모녀.
나라고 딱히 답이 있을 리가 없다.
여기의 눈나들은 다 소피엘 급,
한 번에 여러 명을 처리하기는 버거운 눈나들이다.
"..?"
한편 소피엘과 아르피엘을 다그치던 눈나들은,
뭔가 묘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어째 모녀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궁금한 것 이것저것 다 묻고 싶지만,
차마 말은 못 걸고, 애타게 쳐다보기만 한다.
"..혹시, 좋아하는 여자 타입이 어떤지 알 수 있을까?"
결국 한 눈나가 말을 걸고야 말았다.
그냥 임신 잘 시켰다 이런 게 아닌,
노골적으로 여성 취향을 묻는 질문.
분명히 실례였지만, 일단 한 명이 시작하자 우르르 질문이 쏟아졌다.
"소피엘은 대체 어떻게 한 건가?"
"혹시 우리 가문에 올 생각은.."
"아니 우리가 먼저야. 우리 딸이.."
"자네 딸은 아직 젊잖아."
"나도 딸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상황은 거의 통제불능이었다.
드레스 위로 드러난 풍만한 빅찌찌를 밀어붙이며 달라붙는 엘프 눈나들.
이건 대체 무슨 타입의 천국인가.
근데 이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소피엘이 나서서 장내를 좀 정리해보려 하지만,
열이 오른 마망들은 그칠 기세가 아니다.
"일단 좀 진정하게."
"아니 소피엘.. 지금 우리도 좀 급해서.. 일단 팔 건지 말 건지 그거라도 먼저 이야기해주면 안 되나?"
"그게.. 음.. 15만 골드에 사왔긴 했지만.."
"20만 골드 내지"
"25만 골드"
"30만"
"아니 잠깐만, 경매를 하자는 게 아니고"
"그러면 뭔가, 안 팔거야?"
"아니 팔고 안 팔고를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서.."
"그럼 누가 정해?"
가주가 집안 일을 못 정하면 대체 누가 정한단 말인가.
소피엘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교차하며, 눈빛으로 대화가 오고간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주인님?'
'아니 왜 나한테 떠넘겨..'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엘프눈나들하고 는실난실 섹스하는 거지 뭐.
근데 누구하고?
자지 수도 상당히 늘었지만, 이 눈나들은,
혹은 이 누님의 딸들은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다.
아직은 소수정예로 상대해야 하는데, 누구 먼저 해야 하는가?
결국 내가 정해야 할 문제였다.
"저는"
뭔가 말을 하려는데, 밖에서 우렁찬 나팔소리가 들렸다.
"뿌뿌뿌뿌뿌"
뭐지 이게? 하는데, 손님을 알리는 시종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남성교단의 대신관이신 세레니아 페이엘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신관 두 명의 보조를 받으며, 세레니아가 홀안으로 들어왔다.
정확히는 세레니아하고 똑같이 생긴 대신관.
동일인물이라기엔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아마도 세레니아가 맞는 것 같긴 한데.
대신관 정복을 차려입고, 기품있는 걸음걸이로 또각또각 걸어오는 모습이,
광산에 숨어 니트짓하던 때하고는 너무 천지차이다.
나를 보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이편으로 걸음걸이도 당당히 걸어온다.
"사도님을 뵙습니다."
"어.. 안녕."
사도라는 말에, 엘프들이 웅성거린다.
"사도..? 교단의..?"
"저 남자.. 대체 뭐지?"
"근데 남성교단이라니.. 들어본 적 있어?"
"아니.."
반응을 보아하니 대신관이나 사도는 꽤 대단한 것 같은데,
교단은 꽤나 마이너한 모양이었다.
세레니아는 소피엘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단의 사도님을 그동안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어어.."
소피엘과 아르피엘은 좀 당황하는 눈치였다.
"15만 골드를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별 건 아니지만, 교단에서 작은 성의를 준비했으니 받으시지요."
세레니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신관을 불러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마도수표가 들어 있었다.
수표에 적혀져 있는 액수는 무려..
"..100만 골드..!"
액수를 본 엘프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크게 일었다.
100만 골드.
원래 세계로 따지면 1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쯤 되면, 신분이 노예라도 절대 노예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금액을 앞에 두고,
소피엘과 아르피엘은 마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소피엘은 가주답게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받을 수 없습니다. 대신관님."
"어째서죠..?"
"그.. 남성분께서는 이미 충분히 우리 가문에 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흐음.."
"오히려 저희가 돈을 드려야 하지만.. 받지 않으시겠죠.. 자유롭게 해 드리겠다고도 했지만 거절하셨기에, 대체 뭘 어떻게 해 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갸륵한 마음씨를 가지셨군요."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축복을 받아서 영광이었습니다. 저기.."
소피엘은 나를 바라보면서 물어보았다.
"저희하고 계속 같이 있기를 원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겠죠..?"
"음.."
나쁘진 않지만, 임신한 기간동안에는 하질 못하니, 어쩔 수가 없다.
"아마 이후에 여기저기서 압력이 들어올 것 같은데.. 엘룬드 가문보다는 교단이 더 잘 보호해드릴 수 있겠죠.."
조금 시무룩해진 소피엘.
그래도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어 본다.
"영원히 못 보는 것도 아닌데 뭐."
"네.."
어째 분위기가 이별하는 것처럼 되자, 아르피엘이 와락 달려든다.
"오빠아.."
"아르피엘.."
"오빠 역시 그랬군요.."
"뭐가..?"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어요."
"그야 뭐.. 그렇지."
"웃으며 보내드리고 싶은데.. 흑.."
차마 울음을 참지 못하는 아르피엘.
내 팔을 붙잡고, 소리죽여 운다.
"아이고. 울지 마."
"아뇨.. 우는 거 아니.. 흑.."
안 운다고 우겨 보지만, 소매는 이미 축축하다.
나는 아르피엘을 꼬옥 안으며 달랬다.
"울지 마. 뚝..!"
달래니까 그마나 울음을 그친다.
"뚝..!"
"아예 못 보는 게 아니잖아."
"네에.. 흐읍.."
또 울려는 아르피엘에게, 재빨리 작게 속삭인다.
"가끔 똥꼬로 따먹으러 올 테니까.."
내 말에 울어서 퉁퉁 부은 볼을 발그레 붉히는 아르피엘.
"..네.."
"그러면 이만.. 가볼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