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57.
* * *
키득거리며 침대에 누워 셀렌디네와 시간을 보낸다.
"근데.. 엉덩이 아프지 않았어?"
"아프니까 좋은 건데요.."
"그래..?"
이런 대화를 하면서 탱탱한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며 농탕을 치고 노닥거리자니,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우리 스테이크 먹을까?"
"네..!"
셀렌디네는 두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고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셀렌디네는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겠다면서, 구석진 골목 안쪽에 처음 보는 가게로 갔다.
"노가다 끝나고 왔었던 곳이에요. 남자를 데리고 갈 만한 곳은 아니지만, 좋아하실 것 같아서.."
내 취향을 잘 아는 셀렌디네가 고른 가게.
분위기는 엘프들 치고는 상당히 투박한 곳으로,
생고기를 무게를 달아 가격을 계산한 후,
마음에 드는 컷으로 잘라 바로 석쇠에 구워먹는 와일드한 가게였다.
진짜 단백질 보충이 반드시 필요한 여성엘프들이나 올 법한 곳이었는데,
내 취향에는 물론 엄청나게 아주 잘 맞았다.
"좋은데? 빨리 굽자."
안심을 내 몫으로 2인분을 달아 저울에 올린다.
큼직한 안심 덩어리를 두껍게 잘라, 그대로 석쇠에 구운다.
치르르 고기 굽는 소리와 함께, 진한 육향이 연기에 섞여 퍼진다.
거무튀튀한 가게 벽은, 고기 연기로 거의 훈제가 되어 있었다.
'냄새 끝내주네.'
조미료는 소금뿐이다.
소스도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진짜 맛있는 고기는 소금만 찍어 먹어도 맛있다.
잘 구워진 안심을 소금에 살짝 찍어 입 안에 넣는다.
진한 고기맛과 함께, 혀끝에서 사르르 고기가 녹는다.
정말 신세계다.
"허엇..!"
"왜.. 왜 그러세요?"
"아니 이거 진짜.. 여기 고기 진짜 맛있다."
원래 가던 스테이크집도 나쁘진 않았지만,
거기는 그래도 소스도 있고 구운 야채도 있고 뭔가 요릿집 같았다면,
여기는 정말 고기 하나로만 승부하는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고기의 질이 정말이지 끝내줬다.
"진짜 맛있어, 태어나서 두 번째로 맛있는 고기야."
"두 번째요..? 첫 번째는 어디에요?"
"첫 번째는 셀렌디네 엉덩이살이지."
"아.."
부끄부끄하면서 마주앉아 고기를 굽는 셀렌디네.
엉덩이 칭찬받은게 기쁜지, 뭔가 계속 꼼지락거리더니, 자기가 구운 고기를 한 점 내게 건넨다.
"이, 이것도 한 점 드셔보세요."
"이건 어느 부위야?"
"갈빗살이에요."
"..오! 엄청 맛있어!"
우걱우걱 구워주는대로 받아먹는다.
미녀를 안고 고기를 먹는다.
그야말로 주지육림.
황제가 부럽지 않다..만..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다.
뭔가 호기심 어린 시선이 나에게 막 쏟아진다.
'남자가 이런 데 와서.. 그리고 저렇게 잘 먹는다고?'
'젊은 남자가 뭐 저런 애가 있지?'
대충 뭐 이런 시선들이다.
근데 좀 있으니 나보다 셀렌디네에게 더 시선이 집중된다.
'뭐 하는 여잔데 저런 남자를 데리고 다니지? 애인인 것 같은데..'
'여자가 돈이 엄청나게 많은가?'
'그런데 여자가 왜 남자한테 존댓말을 쓰지?'
내가 먼저 고깃집을 가자고 한 것을 알 리 없는 엘프눈나들은,
대체 이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감을 못 잡는 것 같다.
남자가 혐오감이 드는 고기를 막 집어먹는 것은,
뭐 눈나들과 잘 어울리고 싶어서 억지로 그런 척을 할 수는 있다고 해도,
오히려 눈나 쪽에서 굽신굽신 거리는 건 대체 무슨 시츄레이션인가?
원래 세계로 따지자면 보신탕집에서 개고기 수육을 겁나 잘 먹는 육덕진 이십대 미녀에게, 데리고 온 아저씨가 극존칭을 쓰는 상황 정도일 것 같다.
'뭐지 이거..?'
'궁금해서 고기가 안 넘어가네..?'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서 뭔가 답을 찾아 보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하는 이야기래봐야 엉덩이살이 쫄깃하니 하는 이야기뿐.
대충 한판 뜨고 몸보신하러 나온 것 같기는 한데,
애인이라고 하면 도저히 무슨 구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 잘먹었다."
내가 식사를 마칠 동안,
셀렌디네는 나 구워주느라 본인은 정작 띄엄띄엄 먹은 탓에,
아직도 식사를 마치지 못했다.
나는 화장실 다녀온다고 핑계를 대고 먼저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시치미 뚝 때고 다시 돌아와서, 이번에는 내가 고기를 구워준다.
셀렌디네는 엄청 부끄러워하면서 고기를 받아먹었다.
"자. 아 해."
"아으.. 넵."
"어때, 내가 구운 거. 맛있지?"
"어..엄청 맛있서효.."
부러움의 시선이 셀렌디네에게 쏟아진다.
대체 저 여자는 전생에 나라를 몇 개를 구했길래,
저런 남자 만나 고깃집에서까지 꽁냥거리냐는 표정들이다.
'부러우면 눈나들도 다리 벌리세요.'
나는 말 없이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진짜 말하면 고깃집이 뒤집어질지도 모르니까.
'잠깐, 어쩌면 나쁘지 않을 지도..?'
현재의 나는 5자지 컨트롤러가 아닌가.
함 해봐?
음.. 무리다.
굶주린 엘프 눈나들이 너무 많다.
다섯 개가 아니라 스물다섯 개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저 질투심 어린 시선을 슬며시 무시하는 수 밖에는.
아무튼 내가 잘 구워준 고기를 냠냠 다 먹은 셀렌디네는,
계산하러 갔다가 울상이 되어서 돌아왔다.
"계산을 먼저 하셨어요?"
"엉."
"죄송해서 어떡해요.."
"잘 먹었으면 됐지 뭐. 좋은 집 알려준 거 고마워."
"아.. 이 은혜를 진짜 어떻게 갚지.."
"은혜는 무슨.."
"오늘 임신도 시켜주시고 고기도 사 주시고.. 이러시면 너무 진짜.. 진짜.."
"진짜 뭐?"
셀렌디네는 고개를 90도로 팍 숙이며 빽 소리질렀다.
"감사합니닷! 사랑해욧!!!"
큰 소리를 낸 탓에, 고깃집 손님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확 집중된다.
"으.. 응."
그렇게 1절만 하면 좋았을 것을, 셀렌디네는 멈추지 않았다.
"혹시 제 미천한 몸에서 마음에 드시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용하러 와 주세욧♡"
어마어마한 사용선언에, 고기굽던 눈나가 멍하니 여기를 계속 쳐다보고만 있다.
'보지 말고 고기나 구워요. 고기 타요 눈나.'
나는 애써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피하며, 셀렌디네에게 속삭였다.
"으.. 그.. 알겠으니까, 여기 밖이잖아.."
셀렌디네는 무슨 소린지 다 알아들으면서도 모르는 척, 한번 더 크게 소리쳤다.
"엉덩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었는데, 임신을 했어도 엉덩이는 얼마든지 맞을 수 있으니까욧♡"
마침내, 고깃집의 손님들은 무언가 이해했다.
'아, 저런 관계..'
'있지 있어.. 엄청 가끔이긴 하지만..'
'부럽네..'
이유 모를 질시의 시선이, 이유 있는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뀌어 간다.
나는 민망해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니 본인 성벽을 왜 광고하고 난리야.
저러면 내가 때리는 거 좋아하는 것 같잖아.
난 절대 그런 거 안 좋아한다.
자지는 서지만 아무튼 아니다.
"아.. 알겠으니, 제발 목소리 좀 작게.."
"네! 죄송합니닷!"
멋쩍어하면서 뒤숭숭해진 분위기를 살펴본다.
그런데 어째..?
뭔가 감이 팍 온다.
셀린디네 요거요거, 일부로 이런 짓을 한 것 같다.
셀렌디네를 보라.
고깃집의 눈나들을 향해, 승리의 미소를 씨익 날린다.
'자자, 맘껏 부러워들 하시라고요♡'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남자가 임신까지 시켜줬는데, 에프터로 고깃집 가서 고기까지 사준다?
솔직히 자랑하고 싶어질 만도 하다.
나 이런 남자랑 했어♡ 하는, 암컷으로서 뽑내고 싶어하는 기분.
뭐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나는 살짝 경고의 의미를 담아 셀렌디네의 탱탱한 빵뎅이를 한 대 때렸다.
"찰싹!"
"아읏♡"
"자랑하고 싶은 건 아는데, 다음에는 좀 적당히 해."
"네.. 히힛.. 죄송해욧♡"
"빨리 세계수 가서 축복도 받고."
"넵♡"
아무튼 그렇게 셀렌디네와 식사를 마치고 헤어저셔 저택으로 돌아와 보니,
저택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경)엘룬드 모녀 동시 임신(축)'
저택 정문에 저렇게 적힌 대문짝만한 현수박이 걸려 있다.
'아르피엘이 혼자 임신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안으로 들어와 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평소에는 전혀 안 보이던 하인들이 때로 몰려다니며,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저기 막 날아다니는 것들은 정령인가?'
홀에 가서 무슨 일인가 보자니, 임신축하 파티가 맞았다.
흥분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지시를 하는 아르피엘을, 소피엘이 졸졸 쫓아다니며 말을 걸려고 하고 있었다.
"네, 등은 저쪽에.. 꽃은 이쪽에, 아 빨간색이 아니고 하얀색이요. 네. 리본장식은 저쪽에 있으니 기둥마다 달아주시고요."
소피엘이 뭔가 애가 타서 말을 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틈이 없다.
"저기 아르피엘.. 나는.."
"아, 어머님, 앉아 계세요. 임신하셨잖아요. 무리하시면 안 되죠."
"아니 너도.."
"저는 괜찮아요. 근데 나이가 들어서 임신하면 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잠깐 앉아서 쉬세요. 파티 준비는 제가 할게요. 어머니."
"그, 나는.."
뭐라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아르피엘은 바쁜지 휙 떠나버린다.
소피엘이 포기하고 앉은 의자 옆에, 나도 따라 앉는다.
"아.. 돌아오셨.. 아니 돌아왔나.. 요..?"
아직 어젯밤의 여운이 남아 있는지, 쉽게 반말을 쓰지 못하는 소피엘.
다 큰 눈나가 어설프게 이러는 걸 보니 참 귀엽다.
"그냥 평소대로 말해요. 괜히 존댓말 쓰니까 어색하잖아요."
"아.. 음.. 응.."
"세계수에서 소피엘도 임신 맞다고 했나 보네요?"
"예.. 아니 응.."
"그래서 이게 다 뭐에요? 임신 파티?"
"음.. 그게.. 원래는 아르피엘의 임신을 알리고, 첫 파티때 안 부른 손님들까지 자잘하게 다 불러서 하는 건데.. 그.. 나까지.. 임신시켜주셔서.."
임신 앞에서 갑자기 공손해지는 소피엘.
그만큼 임신의 가지는 의미는 컷다.
"어허, 존댓말 쓰지 말라니까요."
"에.. 음.. 응.. 알겠.. 어.. 그러니까.. 그게 나까지 임신해서.. 이렇게 된 마당에 둘이 같이 임신하는 걸 알리는 파티가 되었다고.. 아르피엘이 규모를 잔뜩 키우겠다고 나서서.."
"아하."
"현수막도 걸고.."
"봤어요. 동시 임신 축하라던데?"
"세계수에서 확인해 봤는데, 정말로 드문 일이라고 해서.."
"그렇군요."
"나는 사실 임신할 나이는 좀 지나서.. 딸하고 동시에라니.. 솔직히 좀 민망, 아니, 많이 민망한데.. 아르피엘이 너무 신나해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하아.."
그렇다.
소피엘의 반응이 정상적인 반응이다.
동시임신이라니, 좀 남사스럽지.
그것도 한 남자한테.
내가 대충 알겠다는 시선을 보내니, 소피엘은 다시 한숨을 크게 쉬었다.
많이 민망할 것이다.
딸과 동시임신 파티라니.
세상에
누가 그런 짓을
누구긴 누구야 나지.
사실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했다.
아르피엘은 몰라도,
소피엘은 진짜 쉽지 않았다.
"이걸 진짜.. 어쩌면 좋을지.."
소피엘은 많이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뭘 할 건 아니고,
거반 포기한 듯한 분위기였다.
"사방팔방에 다 알리고 초대를 해 놔서, 이제 그만둘 수도 없고.."
아르피엘, 이 여자, 은근히 사차원이다.
귀엽기는 하지만. 음..
뭐 소피엘이 마음이 어쨌건 파티는 열리고야 말았다.
나는 귀찮다고 핑계를 대고 방에서 좀 쉬었다.
얼굴은 내비쳐야 한다고 들었지만,
보아하니 밤 늦게까지 할 것 같기에 초반에는 좀 농땡이를 피울 속셈이었다.
창밖을 보니, 그 넓은 정원이 마차로 가득가득 찼다.
"대박이네 정말.."
아르피엘의 임신축하 때도 사람이 꽤 왔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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