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51.
* * *
저택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것저것 챙긴다.
별 거 아니지만, 중요한 것들이다.
"그만 깜빡 잠들어 버렸네.."
로리엘은 데이트 시간을 낮잠으로 보낸 게 아까운 듯,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옆구리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근데 그건 왜 산 거야? 애완동물이라도 키워?"
내 왼손에는 상자가 하나 있었다.
오늘 밤에 쓸 비장의 무기이다.
"뭐, 비슷한 거야."
대답을 얼버무리며, 마차에서 내린다.
저택 입구에서, 놀랍게도 소피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딜 마음대로 나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어조가 조금 사납다.
소피엘치고는 드문 모습이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달콤한 하룻밤을 보내고 일어나니,
어젯밤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는 없다.
차갑게 식은 침대에서, 씁쓸한 결핍감을 맛봤을 것이다.
어디 갔나? 했더니.
일정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나가 버렸다.
그래도 기다려 본다.
하지만 나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애타는 마음에 분노와 걱정이 뒤섞인다.
체면도 잊고 초조하게 저택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무려 여자를 옆에 끼고 돌아온다.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백작님.."
로리엘은 깜짝 놀라 팔짱을 푼다.
"둘이.. 무슨 사이야?"
차갑게 가라앉은 소피엘의 눈에 칼날이 번득인다.
'오늘 기대하라고 했으면서..!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는데..!'
무너진 자존심, 쓰라린 배신감.
가슴 한켠이 아련하다.
나는 재빨리 커버를 쳤다.
"준비할게 좀 있어서요. 도움을 좀 받았어요."
피하라는 뜻으로 로리엘의 엉덩이를 톡톡 친다.
로리엘은 눈치 빠르게 알아듣고, 인사만 대충 하고 후다닥 자리를 피한다.
"무슨 도움을 받은"
"일단은 들어가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나는 화를 내기 전에 재빨리 선수를 친다.
소피엘은 뭐라고 하려다가, 먼저 이야기는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저 멀리 현관에서, 아르피엘이 훔쳐보는 것이 보인다.
아르피엘은 엄지손가락으로 따봉을 한번 해주고, 집 안으로 호다닥 사라진다.
'저게 진짜 정말..'
오늘은 반드시 해내라는 의미다.
해 낼 것이다.
그냥 하루 쉬기만 한 것 같이 보여도,
머릿속으로는 번득이는 지성으로 공략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나는 앞장서서 소피엘의 침실로 걸어갔다.
침실에 다가갈수록, 소피엘의 얼굴이 굳어진다.
'분명히 경고를 해야지.. 아직은 노예인데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막 외출을 다니고.. 남자가 그렇게 혼자 막 다니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쩔 거야?'
속으로 화 낼 이유를 이것저것 찾아 보지만, 솔직히 화 난 원인은 하나뿐이었다.
소피엘을 버리고 떠났다.
실제로 그런 건 아니더라도, 그렇게 보였다.
자실 그건 소피엘의 자격지심이었다.
스스로 여자로서 한창 때가 지났다고 생각하는 소피엘.
인간으로서라면 몰라도, 여자로서 딸보다 매력있다고 자신하기는 힘들었다.
일부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계속 비교를 하게 된다.
그 열등감을 매꿔주는 것은, 오직 달콤한 속삭임뿐.
가슴이 좋다고,
큰 가슴이 좋다고,
포동한 허벅지가 좋다고,
끝임없이 속삭이는 걸 듣고 싶었다.
자신을 잔뜩잔뜩 사랑해주고, 진하디 진한 것을 안에 싸주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깨어나자마자, 다시 어제의 그 달콤한 하룻밤을 다시 즐기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떠난 남자가 미웠다.
'확실히 주의를 주지 않으면 안 되겠어.. 누가 주인인지 분명하게 해 둬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침실에 도착하기만 하면 한바탕 혼쭐을 내 주려고 하는 소피엘.
물론 나는 소피엘의 그런 마음을 손바닥 위에 놓고 보듯 훤히 보고 있었다.
달칵하고 침실의 문이 열린다.
아직도 에로틱한 향기가 감도는 침대.
하지만 시트와 카페트는, 얼룩 한 점 없이 전부 깔끔하게 새 것으로 바뀌어 있다.
방에 들어오자, 소피엘과 나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저기"
"소피엘"
소피엘은 화를 내려다가 뭐 변명거리라도 있는지 먼저 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정당한 변명이라면 뭐 용서해주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하는 생각이었다.
"..먼저 말해봐."
"소피엘, 어젯밤에 좋았나요?"
소피엘은 뭐라고 하려다가, 순순히 인정했다.
"..좋긴 했지.."
"소피엘, 사실 고백할 게 있어요."
소피엘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자신의 몸이 생각보다 별로였던 건 아닐까?
사실은 하는 게 좀 힘들었다던지..
물론 어젯밤을 생각하면 전혀 그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소피엘의 잠재의식이 자꾸 스스로를 딸과 비교하며 그런 불안을 부추겼다.
젊은 딸이 더 좋지 않을까?
나한테 만족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근거라곤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의심이 드는 것이었다.
"뭐..뭐야?"
"저기.. 나 사실 변태에요.."
소피엘은 맥이 탁 풀렸다.
뭔 말을 하나 했더니..
"알아. 세상에 여자를 덮치는 남자가 또 어디 있다고."
"아니, 그런 것보다 더 심한 변태에요."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소피엘도 살짝 긴장하기 시작한다.
"더.. 심한 변태? 혹시 뒤로 하는 거라면 나도 흥미가 없지는 않지는.."
아이고. 딸이나 엄마나.
나는 또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 전에 커트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저기 난, 여자를 지배하는게 좋아요."
소피엘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화 내려던 것도 싹 까먹었다.
"지..지배..?"
"네. 여자를 노예로 부리고, 명령하고, 복종시킬 때 가장 흥분하고 희열을 느껴요."
"어.."
성적으로 적극적인 걸 넘어, 오히려 여자를 지배하고 싶다는 건 확실히 좀 심하게 변태스러운 취향이었다.
'너무 심하네..'
여자로서 자존심이 있는 만큼, 그런 플레이는 좀..
근데 왜 소피엘의 심장이 이렇게 두근두근하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소피엘은 소질이 있어요. 100% 확신해요."
이어지는 추가타에, 소피엘은 대략 정신이 멍했다.
"내가.. 소질이 있어?"
"소피엘. 어제 솔직히 지금까지 해본 것 중에 제일 좋았죠?"
"..나쁘진 않았어."
"솔직하게 이야기해 줘요. 엄청 좋았죠? 남자가 적극적으로 하는 거."
"....응."
"그게, 소피엘에게 소질이 있어서 그래요. 소피엘도 남자에게 지배당하며, 남자에게 복종할 때 희열을 느끼는 거죠.."
"아니 난 전혀 그런"
"몸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소피엘의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내가 거짓말을 할 뿐.
정력을 이용한 마력섹스를, 교묘하게 주종플레이로 바꿔치는 말솜씨.
소피엘은 혼란스러웠다.
"그런.."
"솔직히 좋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솔직히 인정하면, 소피엘도 나도 오늘은 더 좋아질 수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따라해 준다면요."
"하지만 복종이라니.. 그건 좀.."
"소피엘,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몸으로 느껴봐요. 어제, 좋지 않았나요? 남자에게 수동적으로 박히면서, 바보가 되어 아양 떠는 거."
"그건.."
소피엘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한동안 침묵하는 소피엘.
한참 있다가, 소피엘은 어렵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어.."
'오우야쓰으으으으!!'
나는 머릿속으로 야쓰를 외쳤다.
여기까지 온 거면 다 온거다.
"그래서 준비했어요."
"뭐.. 뭘..?"
"열어 봐요."
나는 소피엘에게 방금 전 상점가에서 사온 물건이 담긴 상자를 건넸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는 소피엘.
상자 안에는, 그것이 있었다.
붉게 칠한 에나멜 가죽.
투박한 철제 버클.
길게 늘어진 가죽끈.
그것은, 목줄이었다.
그야말로 개가 찰 법한
아니 찰 법한 게 아니라, 그냥 개가 차는 목줄이다.
"이건.. 목줄..?"
정신이 멍하다.
화가 나기보다, 수치심이 먼저 밀려온다.
감히 나를 어떻게 보고?
5위계 백작위, 제련업계의 큰손, 회장님, 가주
대체 어디가 이딴 목줄에 어울린단 말인가.
"이걸.. 나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엘의 매끈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되는데..
만약..
만약에..
조금만..
아주 조금만 인정한다면 어떨까..
5위계 백작위, 제련업계의 큰손, 회장님, 가주.
이런 것들에 앞서.
남자에게 박히며 행복해하는.
천박하게 아양을 떨며 오줌을 지리는.
암캐라는 것을.
조금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이.. 이건.."
화를 내야 한다.
당장 집어던지고 그딴 짓을 할 것 같냐고 화를 내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끝이다.
그걸로 끝이다.
만약에 인정하면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이, 무한한 가능성들이 사라진다.
"해봐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나는 소피엘에게 악마처럼 속삭였다.
소피엘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줄을 잡는다.
"이.. 이걸.."
버클을 벗기고,
주름 한 점 없는, 가늘고 여린 목에,
질긴 가죽을 두른다.
붉디붉은 한 바퀴, 종속을 표상하는 띠.
버클을 잠근다.
목은 전혀 졸리거나 하지 않지만,
숨이 턱 막힌다.
스스로 한 것이다.
스스로 목줄을 찼다.
스스로 예속되기를 원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황홀하다.
"아.."
나는 목줄을 끌어당겼다.
소피엘은 묶인 개처럼 끌려온다.
"이제는.. 내가 주인이네요."
"아.."
"자. 불러봐요."
"뭐.. 뭘..?"
"주인님이라고, 불러봐요."
소피엘은 믿겨지지가 않았다.
감히 남자가, 남자에게, 남자를,
주인님, 이라고.
주인님, 이라고 인정하라니.
치욕스럽다.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이다.
그렇기에..
황홀하다.
"자. 어서.."
속삭임은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든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소피엘은 입을 연다.
"주.. 주인님.."
"다시."
"주.. 주인님.."
"좀 더 또박또박. 크게."
"주인님..!"
화내려던 건 이미 앳저녁에 잊어버렸다.
밀려오는 치욕과 수치스러움.
하지만 황홀함이 더 크다.
"잘 했어요."
나는 소피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비단 같은 새카만 머리카락이 부드럽다.
소피엘은 칭찬을 받는 게 아직 어색한 것 같다.
하지만 곧 익숙해질 거다.
"소피엘."
"응..?"
"소피엘은, 이제부터 개가 될 거에요."
소피엘은, 자기가 잘못 들었나 의심했다.
"..에?"
"주인님으로서 명령할게요. 이제부터, 소피엘은 암캐에요."
"..암캐? 내가..?"
"좋죠? 좋아할 줄 알았어요."
좋을 리가 있겠느냐마는.. 좋았다.
이상하다는 걸 아는데, 좋았다.
앞으로 대체 무슨 일을 시킬지,
상상만 해도 유두가 곤두서며 머릿속이 짜릿하다.
소피엘은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자 소피엘..? 주인님이 부르면 암캐로서 뭐라고 해야 하죠?"
"네..?"
"이런, 틀렸네요. 네, 가 아니고, 왕. 이에요. 알죠? 개 짖는 소리."
소피엘은 찔끔 눈물까지 났다.
개.
개소리
개 짖는 소리
그걸 나보고 하라고?
골이 띵하다.
너무나 치욕적이다.
누가 시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거다.
하고 싶었다.
소피엘은, 오밀조밀한 입술을 열어 천박한 복종의 소리를 낸다.
"와..왕..!"
엘프를 포기한다.
한 마리 암캐가 된다.
보지로부터 척수를 관통하는 짜릿함이 치받고 올라와 뇌수에 꽂힌다.
강렬하기 그지없는 자극이다.
"소피엘?"
"와.. 왕!"
"잘 했어요. 한 번 더."
"왕!"
"이제 익숙해졌네요. 역시 타고났다니까요."
칭찬인지 아닌지, 하지만 기분은 너무나 좋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네요?"
"와.. 왕?"
"왜 암캐가 옷을 입고 있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