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36.
* * *
"아으으.."
엉덩이를 비비며 아파죽겠다는 표정을 하는 엘프 여자는,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게 어째 거지처럼 보였다. 다만 좀 얼빠져보이는 얼굴에 살짝 통통한 게 은근히 내 취향이었다. 근데.. 머리카락이 엄청 지저분한 회색인 데다가, 가슴도 좀 안쓰럽다. 엄청 작은 건 또 아니지만 확실히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한편, 로리엘은 천장에서 떨어진 여성엘프를 보고 당황해서 시트로 몸을 가리며 내게 물었다.
"저거 뭐야?"
"글쎄, 이게 아마 유령의 정체 같은데?"
로리엘은 유령이라는 말에 어이없어했다.
"유령..? 이게? 야! 너 뭐야? 뭐 하는 년이야?"
천장에서 떨어진 여자는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 근엄하게 대답했다.
"어디다가 대고 함부로 이년 저년 하는 거야!"
나는 들킨 주제에 큰소리 치는 게 너무 얼척 없어서 꿀밤을 한 대 꽁 먹여주었다.
"아야..! 뭐야! 왜 때려!"
"큰소리 치지 마.'
"너.. 감히..! 내가 누군 줄 알아?"
"누구긴 누구야, 빠구리 뜨는 거 훔쳐 보는 변태년이지."
"뭐? 변태년? 누가 변태년이야! 내, 내가 훔쳐봤다는 즈.. 증거 있어?"
"허벅지에 애액이나 닦고 말씀하시지."
"앗.."
엘프 여자는 뽀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달콤한 꿀을 재빨리 소매로 닦았다.
"이.. 이건.. 니네가 나쁜거야! 이런 데까지 와서 이상한 짓을 하니까! 난 잘못 없어! 다 너네 변태 커플 잘못이야!"
잠자코 듣고 있던 로리엘은 다 훔쳐봐 놓고서 우리 탓을 하는 게 얼척 없는지 내게 물었다.
"얘 대체 뭐 하는 애야?"
"나도 모르지.. 이제부터 물어보려고. 야. 너 누구야?"
"나.. 나? 나는.."
"광산에서 숨어서 뭔 짓을 한 거야?"
"그.. 그건 말할 수 없어."
"이건 뭐 신고 같은 걸 해야 하나?"
"아.. 잠깐.. 그건 곤란한데.."
로리엘은 당황스러워 했다. 이 여자, 광산에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너 대체 뭐야? 언제부터 여기 숨어 있던 거야?"
"비.. 비밀이다!"
쉽게 말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사실 로리엘도 별로 사정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씨.. 지금 바쁘니까 아무튼 딴데로 가!"
로리엘은 뭐 어찌 됬든 꺼지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나는 쫌 황당했다.
"그냥 보내? 여기 숨어 있는 거 불법 아냐?"
"불법이긴 한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럼 뭐가 중요해?"
신뢰받는 노조위원장이자 광산의 작업감독을 맡고 있는 로리엘은 우물쭈물 속삭였다.
"하..하는 거..?"
'아.'
나는 깨달았다. 로리엘도 지금은 일단 쎅수구나.
구역이 폐쇄되었어도 갑자기 천장에서 여자가 떨어져도 세상이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 로리엘은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 가 아니고 오늘 한 번 질싸를 더 받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저거 안 잡아도 돼?"
"괜찮아. 쟤 있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여기 폐쇄구역인걸."
"음.."
"나중에 사무실에 이야기해서 잡으라고 하지 뭐. 일단 우리는.. 알지..? 으응..?"
차마 말을 못하고 내 복근에 볼을 부비부비 부비는 쪼꼬미 로리엘의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다.
"그럴까 그럼..?"
나는 로리엘의 통통한 허리를 감아들고 다시 들박할 준비를 했다. 거지녀는 자기를 무시하고 한판 더 뜨려는 우리를 보고 기가 차는지 소리쳤다.
"자, 잠깐! 교배 멈춰!"
"넌 진짜 뭐야. 좀 딴 데로 가라. 응?"
"이 짐승 같은 것들! 어떻게 이렇게 뻔히 보는 앞에서!"
"안 보면 되잖아. 절루 가. 좀."
로리엘도 귀찮다는 듯 다시 한 번 손을 휘휘 내저었다.
"봐 줄게, 좀 꺼져."
"야! 난 그냥 없는 사람 취급이냐? 이것들아!"
"왜. 자꾸."
"나.. 나도 좀.."
"너 뭐."
"껴 줘.."
로리엘과 나는 벙쪄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게 뭔지 대체. 아무튼 달콤한 사랑의 행위에 껴 달라는 말에 로리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조.. 좀만 껴 주세요.. 너무 오래 굶었어요.."
이제는 애원하는 거지녀에게, 내 품에 안긴 로리엘이 쏘아붙였다.
"야."
"..왜."
"너 뭐 하는 년이야?"
"이게 어따 대고 년이래?"
"남 씹질하는거 훔쳐보다 껴달라고 하는데 그럼 존댓말이라도 써 줄까?"
거지녀는 할 말이 없는지 얼굴이 뻘게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 몰라! 나도 껴 줘! 함만 대 주면 되잖아! 제발 좀!"
거지녀는 대짜로 뻗어 아이처럼 버둥거렸다.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었다.
'아.. 이거 진짜 못 써먹을 엘프다..'
성욕이라고는 한 톨도 돋아나지 않는, 박박 우기며 생때를 쓰는 모습에 나는 질려버렸다.
"해줘! 해줘! 해줘! 대줘! 해줘! 대줘! 해줘어! 이이잉!"
"으아아.."
다 큰 여자가 저러는 게 정말이지 정이 뚝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엘프라 외모가 반반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실수(를 가장한 고의)로 주먹이나 발차기가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로리엘은 어째 생각이 좀 다른 모양이었다.
"..좀 불쌍하네.."
"하아..?"
나는 세상에 불쌍할 게 없어 저게 불쌍하냐는 시선을 보냈다. 로리엘은 납득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설명을 덧붙였다.
"나도 못 해서 한이 맺힌 저 기분을 아니까.. 좀 짠해.."
"아니 짠할 게 따로 있지.."
"그래도.."
"됐고 우린 우리 일이나 하자. 로리엘."
내가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쪼물락거리자 로리엘은 신음소리를 냈다.
"아읏..!"
"응? 나 다시 섰어."
"아.. 그.. 그래도 잠깐만..!"
로리엘은 단호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로리엘을 놓아주었다. 로리엘은 아직 가슴이 두근대는지, 숨을 크게 한 번 고르고 거지녀에게 다가갔다.
"야."
"..왜?"
"니가 누군지, 여기 숨어저 뭐 하던 건지 솔직하게 다 이야기해주면, 나 하고 나서 한 번 양보해 줄게."
"지.. 진짜로?"
"니가 불쌍해서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솔직하게 불어. 유령 소동 같은 거 다 니 짓이야?"
"..그게.."
"솔직하게 다 말해봐."
"..그.. 먼저 하게 해주면 그 다음에 이야기 해 줄게.."
듣고 있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로리엘이 이렇게까지 양보하는데도 저러는 걸 보면 진짜 철면피가 따로 없었다.
"로리엘, 일로 와. 잰 안 되겠다. 그리고 나 쟤한테는 박고 싶지도 않아. 지저분한 게 어디서 딜까지 하려고 들어."
"..그러게"
로리엘도 정이 뚝 떨어지는지 다시 내게 안겨왔다.
"하여간 로리엘은 귀엽게 생겨가지고 쓸데없이 너무 착하다니까."
나는 착한 로리엘의 뺨을 앙 깨물며 키스를 했다.
"아읏..!"
로리엘은 몸을 바르르 떨며 내 젖꼭지를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행위가 시작되려고 하자, 거지녀는 갑자기 납작 엎드렸다.
"잘못해씀다! 다 불게요!"
나는 그저 한숨만 나왔다. 진짜 분위기 깨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여자였다.
"..하아.."
"솔직히 다 불게요! 재발 하게 해 주세요! 여기 갇힌 지 10년이 넘었는데, 하는 걸 보고만 있다니 죽을 것 같아요..!"
나는 로리엘을 옆에 내려놓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꾸 뭐가 끊키고 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이름"
"..이름..? 아, 제 이름이요! 제 이름은 세레니아입니다!"
"직업."
"그.. 원래는 모 교단의 대신관인데, 지금은 도망노예 신세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설명하자면 좀 긴데.."
"..해봐. 들어줄 테니."
"아.. 그게.. 제가 좀 마이너한 교단의 대신관인데.. 어느 날 신탁을 받았거든요."
"응."
"그게 십 년 전 쯤인데.. 신께서 국립중앙박물관을 털라고.."
어째 개소리 농도가 상당히 짙은 게 좀 찝찝한 느낌이었다.
"박물관을 털어..?"
"네. 거기에 교단의 유물이 몇십 점 있는데.. 신께서 그걸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을 털려고.."
"그냥 달라고 하면 안 줘? 꼭 털어야 하나?"
"아니, 문화재인데 그냥은 안 주죠."
하긴 불교 문화재라고 어느 절 주지스님이 달라 마라 그럴 수 있을 리는 없다.
"아.. 뭐 그렇다 치자. 그래서?"
"혹시 교단 대신관인게 들키면 안 되니까, 복면을 쓰고 망치하고 빠루를 챙겨서 갔죠."
"어.."
"보호결계를 깨니까 경보가 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잡히긴 했는데, 신께서 내려주신 축복으로 유물은 거반 빼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노예가 됐죠. 문화재 절도한 범죄자라고.."
"대신관이라며?"
"그걸 불어버리면 교단에 민폐가 되니 입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특한 일을 할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저 이래뵈도 신앙심은 있습니다. 교단을 배신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아요."
"그럼 애초에 절도를 하지 말지 그랬어?"
"신께서 명하셨습니다."
"하아.. 뭐 됐어. 아무튼 그 다음에는?"
"노예로 그냥 팔릴 순 없으니 도망쳤죠. 근데 요새는 시스템이 좋아서 그런지 노예문양 찍은 게 마력망에 연동이 되서 그걸로 다 추적을 하더라고요."
"그렇겠지.."
"그래서 마력망이 닿지 않는 이곳에 숨었습니다."
"음."
"끝이에요."
나는 잠시 생각한 후 이야기를 정리했다.
"노예형을 받은 문화재 절도범이 숨어있던 거네. 이거 신고해야겠다."
"자.. 잠깐만요! 신탁이 있었다니까요!"
"신이 시켰는지 욕망이 시켰는지 알 게 뭐야."
"그런 신성모독을..!"
"됐고, 기왕이면 훔쳐간 거 돌려주고 자수나 해라."
"자.. 자수는 하더라도.. 저기.."
"뭐?"
"다 이야기했으니.. 함.. 대주셔야.. 죠..?"
진짜 정 뚝 떨어지게 만드는 여자였다. 내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데, 로리엘이 옆에서 속삭였다.
"한번만 해 줘. 불쌍하네.."
"저게 불쌍해? 진짜? 저게?"
"얼마나 굶주렸으면 저러겠어."
"하아아아아아.."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면 조금만 기다려 로리엘. 금방 끝내고 올게."
"응.."
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터벅터벅 거지녀.. 아니 자칭 대신관 님이신 세레니아에게 다가갔다. 근데 어째 한 발 다가갈 때마다..
'어..? 씁..!'
뭔가 오징어 썩은 것 같은 냄새가 진동했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세레니아는 냄새라는 말에 자기 겨드랑이를 킁킁거렸다.
"네? 냄새요? 킁킁. 음? 조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그게 조금이냐! 너! 당장 이리로 와!"
"앗..!"
나는 세레니아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샤워실로 향했다.
"아..앙돼! 거친 건 싫지 않지 않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좋은..! 내 마음 나도 몰라..!"
"시끄러! 씻기러 가는 거야 멍청아!"
"에?"
"미친, 엘프가 오징어 냄새 나는 건 처음이다 진짜. 너 대체 뭐 하는 여자야?"
"오징어? 오징어가 뭐죠?"
"생선 썩는 냄새 난다고!"
"그럴리가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로리엘 잠깐 이리로 와 봐."
하지만 재빠른 로리엘은 코를 감싸쥐고 이미 저만큼 떨어져 있었다.
"확인 안 받아도 되니까, 빨리 씻기고 와."
"너 마지막으로 씻은 게 언제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나는 섬뜩한 느낌에 머리채를 잡았던 손바닥을 펴 보았다. 진득한 머릿기름이 덩어리져 있었다.
"으아아! 개더러워!"
나는 그대로 세레니아의 허리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꾸리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지만, 난 숨을 꾹 참고 그대로 세레니아를 들쳐매고 샤워실로 돌진했다.
* * *
세레니아가 씻는 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시간을 로리엘과 열심이 으쌰으쌰를 하며 보냈다.
"이야, 오랜만에 씻으니까 개운하네요."
세레니아는 바디워시를 두 통째 쓰고 나오면서 그딴 소리를 했다. 나는 녹초가 되서 헐떡이는 로리엘을 눕혀 두고, 세레니아를 바라보았다.
'진짜 어이가 없네.'
나는 기가 막혀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겁나 지저분했었는데.'
거무튀튀한 회색 머리카락은 반짝이는 아름다운 은발이 되어 찰랑거렸고, 때가 잔뜩 끼었던 피부는 뽀얘져서 아기 피부 같았다.
'이게 종족빨인가? 꼴에 지도 엘프는 엘프다 이건가? 저런 애한테 꼴리는 게 뭔가 억울하네.'
"어후, 개운해."
물기를 탁탁 털며 샤워실에서 나오는 세레니아에게선 오징어 냄새 대신에 옅은 크림파스타 향기가 날 뿐이었다.
미니 폐급 히키 세레니아입니다.
4장 작가님(instagram:@km4jng)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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