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29.
* * *
다음날 아침, 레이나는 불성실한 임신 시종을 참교육할 맘을 단단히 먹고 아가씨 방의 방문을 열었다. 침대에는 녹초가 된 임신시종과 영애가 뒤엉켜 잠들어 있었다.
'몇 번이나 하셨나..?'
책상 위에 갈겨 쓴 메모를 보니 다음과 같았다.
'침실 3 욕실 3 침실 2, 끝내줌, 따로 수당을 챙겨줄 것.'
하는 짓은 마음에 안 들지만 정력만큼은 정말 훌륭한 모양이었다.
'첫날부터 8번이라, 기특하군.'
레이나는 임신시종이 꽤나 무리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 남자에게 그 정도는 그냥 평범할 뿐이었다.
'재능은 있으니 매너나 품위 같은 것만 갖추면 좋겠는데..'
임신 시종으로서는 어쩌면 좋은 점일지도 모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아무하고나 하려고 달려드는 것은 좀 곤란했다. 그것도 남자가 감히 먼저 꼬리를 치고.. 이렇게 보면 아무한테나 이상한 짓을 하는, 도무지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걸레남인데, 이상하게 싫지는 않.. 아니 싫었다. 정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겠지만서도.
'내가 잘 교육해야겠지. 하아.'
레이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피엘 옆에 잠들어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세요..!"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내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니, 레이나가 보였다.
"뭐야.."
보니까 레이나는 짝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이거 아침부터 너무 자극이 강한 것 아닌가?
"먼저 아침 운동부터 하고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일어나세요."
"아.. 벌써 아침인가.."
"..아직 정신이 안 들면 차가운 물 한 잔 마시고 잠을 깨도록 해요."
레이나는 마시라고 찬물을 한 컵 따라 건네주었다. 한 잔 마시니 뻐근한 몸에 냉수가 시원하게 스며들었다.
"크으..!"
"영애님이 깨시지 않게 조심해서 나오세요."
어제 장난친 게 있어 막 괴롭히거나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온건하게 나오는 걸 보니 좀 미안해졌다. 어쨌든 학교에서 응응하기 위해서는 레이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잠깐만요. 입을 게 어디 있지.."
내가 옷가지를 찾자 레이나가 내게 준비한 옷을 건넸다.
"이걸 입으세요."
건네준 것은 요가복 같은 레깅스였다.
"이걸 입으라고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숲거미 직물로 제조한 신축성 있고 땀배출이 잘 되는 고급 운동복입니다."
"어.. 후회할 텐데요.."
나는 한숨을 쉬며 시키는 대로 레깅스를 입었다. 역시 기대했던 그대로 허벅지에 짝 붙는 부분에 꼬툭튀가 선명했다.
"아니.. 무슨.."
레이나가 당황해하는 걸 보니 묘하게 흥분됬다. 이 눈나, 내 사이즈를 평범한 엘프 남자 사이즈로 짐작했었나 보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레이나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모르자, 꼬툭튀가 꼬섯튀가 되어 버렸다. 무슨 직물이라고 했었는데 과연 신축성은 매우 좋았다.
"왜.. 왜 서는 거죠?"
레이나의 멍청한 질문에 나는 현명하게 답했다.
"왜 서겠어요?"
"이, 일단 나가죠."
꼬섯튀는 제쳐 놓고, 일단 정원에 나가서, 레이나가 시키는 대로 아침운동을 따라하니, 몸이 확실히 개운해졌다. 근데 레이나가 입은 레깅스가 너무 자극이 강하다. 얇은 검은테 안경을 쓴, 레깅스 입은 엘프라니, 아침부터 무슨 발깃한 모습인가.
"좀 더 유연하게.. 쭉쭉. 아니, 자꾸 왜 서 있는 거죠?"
"아니 레깅스 입고 눈앞에서 다리를 쫙쫙 벌리는데 안 서겠어요?"
"남자가 어떻게 감히..! 진짜 그런 태도를 빨리 고치지 않으면 혼날 겁니다."
혼나는 건 좋아하지만 잘못도 안 했는데 혼나는 건 좀 그렇다.
"이건 서고 싶어서 서는 게 아니라 그냥 본능적인 거라 어쩔 수 없어요."
레이나는 잠시 나를 째려보다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내일부터 다른 옷을 가져다주겠습니다. 헐렁한 걸로요."
"네 뭐, 그래주신다면야 감사합니다."
사실 레이나가 어쩔 줄 몰라하는 걸 보고 있자니, 이 남자 레깅스가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는데, 조금 아쉽다.
"그러면 다시 유연성 체조를 하죠."
"근데 시종에게 왜 유연성이 필요한 거죠?"
"음. 엘프들에게 자세와 근육은 출신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시종으로서 격에 맞는 몸가짐을 가지지 않으면 아가씨께 폐를 끼치는 일이 됩니다."
"자세요? 진짜로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잘 안 느껴지겠지만, 좀 연습은 하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곧게 등을 쭉 뻗고 부드럽고 우아하게 걸으려면, 일단 유연성이 필수입니다."
유연성은 솔직히 좀 자신 없었다. 근육을 믿고 힘 쓰는 일은 자신 있었지만.
"그, 유연성은 그렇다 치고 제 몸은 어떤가요? 근육이라던지."
"음, 나쁘진 않은데 약간 품위가 부족한 느낌이죠."
"품위요?"
"뭐랄까, 남성치고는 살짝 육덕진 건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아름다운 남성상에는 약간 벗어나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들이 많이 좋아하는 타입입니다."
여기서는 내가 육덕 미녀 취급인가. 육덕 좋아하는 내가 육덕 취급이라니, 기분이 묘하다.
"그렇군요."
"몸을 괜찮지만, 자세는 많이 교정해야 해요."
"자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우고, 걸을 때는 가볍게, 산뜻하게.. 그렇지만 이렇게 말해도 모르겠죠. 천천히 가르쳐 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런 게 진짜 중요하다니.."
"눈썰미 있는 엘프라면 몸동작만 보고도 어느 정도 신분을 짐작하니까요. 다시 말하지만 밖에서 누구의 눈에 띄어도 엘룬드 가문에 누를 끼치지 않게 행동을 바로 하세요."
'흠, 알겠습니다."
쉽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학교 교복 교배 뗵뜨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근데 이 다리 찢는 거,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그래도 웨이트를 한계까지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나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제일 먼저 유연성 체조, 체조 다음은 서 있는 법이었다. 이게 배우다 보니 서 있는 것도 그냥 서 있으면 안 된다. 몸에 균형을 잡고, 어디 기대더라도 지나치지 않게, 우아하게 서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은 걷는 법이었고, 걷는 법 다음에는 인사 등 예절이었다. 첫날이라서 그런지 좀 빡셌는데, 레이나도 하루만에 다 가르칠 생각은 아니었는지 일단 들어만이라도 두라고 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는 게 우선입니다. 자세한 디테일은 차차 알려드리죠."
"하아. 알겠습니다."
"오전은 이 정도로 하고, 오후에 아가씨께서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접대법과 호신술을 배우도록 하죠."
"접대법은 차 타는 건가요? 그건 그렇다 치고.. 호신술이요?"
"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니까요."
"남자는 마력도 못 쓴다고 들었는데 그게 필요한가요? 급할 때 아르피엘을 위해 고기방패는 되어 줄 수 있겠지만."
"남자가 호신술을 배우는 건 영애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낯선 여자로부터 자기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이구야. 눈나야. 나 머리가 띵해.
"저기 혹시 아르피엘이 다니는 학교가..?"
"아까부터 아르피엘이라고 하는데, 아르피엘이 아니라 영애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는 이루리엘 고등영애학교에요."
"그, 영애님들이 다니시는 학교같은데.. 근데도 덮쳐요?"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한창 때 나이인 영애님들이라 오히려 위험한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임신시종은 정조관념이 약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조심하는게 좋아요. 당신은 실제로 정조관념이 매우, 정말로 매우 약하기도 하고요. 특히 아까처럼, 강제로 유혹당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영애님들이라도 덮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강제로 유혹당한다는 게 대체..?"
"그, 레깅스에 발딱.. 그런.."
"아, 네."
아까같은 섯툭튀같은 상황이라면 덮쳐질 수도 있다 이건가. 오우야.
"아무튼 그런 불미스런 경우에도 가문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적절히 처리할 수 있게, 몸을 보호하는 기술은 알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덮쳐질 때 호신술을 쓰라는 건가요? 마력도 없는데?"
별로 저항할 생각은 없지만, 저항한다고 해도 마력이 있는 여성에게 저항하긴 힘들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럼 왜 호신술을 배우라는 것일까?
"귀족가문의 임신시종이나 되는 남자가 저항조차 안 하면, 그건 정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당하더라도, 반항한 후에 당하는게 가문의 명예를 위한 겁니다."
"아.. 네.."
이건 내 생애 들은 말인지 방구인지 구별이 안 가는 말 중 1순위였다. 순순히 당하면 쪽팔리니까 소용도 없는 호신술 배우라고? 이거 진짜 이세계 남성인권에 문제가 심각하다.
* * *
그렇게 내 일과는 정해졌다. 일어나서 아침에는 자세와 예법 수업, 오후에는 접대법과 호신술. 저녁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르피엘과 는실난실 오곡므흣쎅수.
그렇게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처음으로 주말을 맞이했다. 주 4일이라 그런지 주말도 금방이다. 나는 주말에는 전에 약속했던 대로 에로리나와 셀렌디네와 보낼 생각이었다.
'아르피엘이 좋긴 해도 뭔가 눈나성분이 좀 부족하단 말이지.'
아르피엘은 몸만은 꽤나 성숙했지만 그래도 집착하는 여동생에 가까운 캐릭터였다. 내 취향저격은 누누히 말하지만, 슴가가 터무니없이 큰, 매우 굶주린 바람직한 눈나다.
'근데.. 아르피엘이 어째 순순히 보내줬단 말이야?'
근무할 때 열심히 해서였는지 아르피엘은 주말에 별 말 없이 외출하라고 순순히 보내 주었다. 질투라도 좀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 없어서 뭔가 껄쩍지근했다. 설마 스토킹 같은 걸 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 눈에 띄는 가슴을 가지고 미행같은 건 하기 힘들겠지.'
아르피엘은 엘프들 사이에서는 눈에 확 띄는 거유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이에 비해 큰 거지 아직 셀렌디네와 에로리나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했다. 물론 소피엘을 보자면 장래가 매우 유망하게 기대되긴 한다.
'근데 소피엘은 몇 번 얼굴 보지도 못했네.'
장래의 과제로 어쩌구 하더니, 날 피하는건지, 바쁜건지, 몇 번 마주치지도 못했다. 식사 때는 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 그 풍만한 빵뎅이를 뚝스딱스! 반드시 먹고 말거야! 소피엘!
"그나저나.. 이쯤에서 보기로 했는데?"
나는 광장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셀렌디네를 찾았다. 오늘은 셀렌디네, 내일은 에로리나 순서였다. 여기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늦는 걸까.
'안 오네..?'
참고로 난 일주일치 주급을 받았기에 주머니도 빵빵했다. 노예라 뭐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주급을 100골드씩이나 주었다. 일주일에 4일 일하고 100골드, 한달에 약 400~500골드나 된다. 거기에 월말에는 기록된 응응 횟수에 따라 보너스까지 준다고 한다.
물론 내 몸값은 15만골드로 뛰어버린 상황이라 뭘 갚기는 아득하지만, 그냥 쓴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호사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고.'
돈 쓸 일이라곤 없는데 돈을 쥐어주니 참 곤란했다. 뭐, 돈 쓸 일이 전혀 없는 건 또 아니지만. 흠흠. 방금 전에도 '어떤 가게' 에 가서 미리 주문했던 '어떤 물건' 을 비싼 돈을 주고 샀다.
'근데 진짜 셀렌디네는 어디에 있는 거지? 약속 시간이 다 됬는데? 잠깐 까페에 가 있을까.'
시간 좀 때울 겸 음료나 한 잔 마시려고 광장이 잘 보이는 까페에 들어갔는데, 어라, 거기에 셀렌디네와 에로리나가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 왜 둘이 같이 있지?'
오늘은 분명 셀렌디네만 보는 날이었다. 그런데 왜 둘이 같이 있는 걸까?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까르르 웃는 걸 보니 어째 친한 사이로 보였다. 난 왠지 모르게 좋은 느낌에 두근두근하며 다가갔다.
'뭐지 돈 빌리면서 둘이 친해지기라도 한 건가? 이거 설마? 셋이서 하는 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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