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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이세계에서 엘프의 노예가 되었다-23화 (23/140)

〈 23화 〉 23.

* * *

"음? 무슨 소란이지?"

소피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와중에도 밖에서는 고함소리가 계속 들렀다.

"일수까지 써서 8만 골드 가져왔다고! 당장 나와! 어디 있어?"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저 독한 년, 일수까지 쓰다니.'

"지금 손님을 받고 있어서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한 타임에 7골드 짜리 손님? 다 물어줄 테니 당장 나오라 그래!"

"물어주신다고 해도 타임 중에 그런 건 좀 곤란한데요."

"곤란하긴 뭐가 곤란해? 당장 부르지 못해?"

클라리스와 아이린이 옥신각신하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아니 저건 지도 업소를 운영하면서 매너가 왜 저따위인지 모르겠다.

"왜 저러는 거지? 무슨 문제가 있나?"

"아, 아마도 절 사겠다고 하는 거일 텐데.."

내가 그렇게 말을 흐리자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아챈 소피엘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실례 좀 하겠네."

"뭐야! 이건 또 어떤 뇬.."

클라리스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있던 아이린은 높으신 분 포스가 뿜뿜 풍기는 소피엘을 보고 얼어붙었다.

" ..어떤 분이신지 모르겠는데, 저에게 용건이 있으신지?"

소피엘은 갑자기 예절을 주입받은 아이린을 내려다보며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이린은 그 웃음이 기분이 좀 더 나빠졌지만 일단은 잠자코 있었다.

"저 남자 노예를 사려고 한다고 하던데."

"그, 그런데요?"

"내가 사려고 하는데, 포기해주면 안 되나?"

"누, 누구신데 포기하라 마라 하시는 거죠."

소피엘이 비서에게 눈짓을 하자, 비서가 나서서 대신 소개를 했다.

"이 분은 소피엘 엘룬드 경. 엘룬드 가문의 가주이시자 5위계 장로 백작위의 귀족이십니다."

공권력을 등에 업은 5위계 장로인 소피엘에게 뒷세계의 거물 따위는 우스울 뿐이었다. 아이린도 나름 알아주는 인물이었지만, 그건 뒷세계나 노예 길드에서나 통하는 것일 뿐이다.

"아, 백작님.. 이셨군요."

"음. 사정이 이렇게 돼서 미안한데, 양보를 좀 해 주게."

미안함이라고는 짚신벌레의 방어력 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어조였지만, 백작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겉모양이나마 숙이고 들어오니 아이린은 곤혹스러웠다.

"저, 정말로 죄송하지만, 꼭 필요한 노예라."

소피엘은 쿨하게 아이린의 말을 씹고 클라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이 여자가 노예를 얼마에 사기로 했지?"

클라리스는 뭔가 대박이 날 것 같은 느낌에 속으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8만 골드입니다."

"10만 골드 주겠네."

가차없는 상회 입찰에 클라리스는 나를 포장배달이라도 해 줄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소피엘에게 감탄했다. 이 눈나 진짜 머시따.

"예. 그러면 바로 데리고 가실 건가요?"

"음 그러도록 하지."

아이린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소피엘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니까짓 꺼 따위는 방구석 먼지만큼도 신경 안 쓴다는 분위기였다. 아이린은 굴욕적이었는지 땅을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소리쳤다.

"10만 5천 골드! 10만 5천 골드 낼테니.."

클라리스가 움찔하자, 소피엘이 클라리스에게 다시 말했다.

"생각해보니 10만골드는 너무 적은 것 같군. 그래도 명색이 우리 가문의 임신 시종인데, 15만 골드로 하지."

이번에는 나도 입이 턱 벌어졌다.

15만골드

대략 1골드 = 1만원 정도인 느낌인데, 15만 골드면 15억원에 가까운 돈이다. 이게 내 몸값인지 아니면 강남 부동산인지, 그냥 말 몇 마디에 순식간에 훅훅 뛰어오른다. 클라리스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영업용 미소가 풀려 헤실거리고 있었다.

"그러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음."

소피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는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 뭔가 휘갈겨 쓰고 마도인을 찍었다.

"저건 뭔가요?"

뭔지 궁금해서 소피엘에게 물어보니, 소피엘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이렇게 보면 사람 좋은 눈나 같은데, 참 사람 모를 일이다.

"저건 마도수표라는 거네. 마력을 쓸 수 있는 귀족끼리 거래할 때 쓰는 건데, 마력회로를 통해 은행에 있는 금화의 소유권을 바로 넘겨줄 수 있어."

"마력회로라는 걸 꼭 쓸 수 있어야 하나요?"

"음. 마력이 있는 것하고는 별도로 마력회로를 다를 줄 알아야 해서.. 평민들은 중계사를 통해 수수료를 내고 이용해야 하는데.. 여기 주인은 마력회로를 쓸 수 있는 모양이군?"

소피엘은 의외라는 듯 클라리스를 바라보았다. 클라리스는 종이쪼가리를 받더니 손에서 푸른 빛을 뿜어냈다. 빛에 닿은 종이쪼가리는 순식간에 파사삭 삭아 없어졌다.

"감사합니다. 15만 골드 잘 받았습니다. 그 노예는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리우 군. 잘 지내길 바랄게요. 행복하게 살아요! 아, 노예 낙인을 넘겨 드려야지.."

클라리스는 마력을 뿜어내 소피엘에게 노예 낙인의 소유권을 넘겨 주었다. 사실 난 잘 모르지만 아무튼 빛무리가 오고 가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이제 정말 다 됐네요. 안녕히 가세요!"

클라리스는 우리를 마중하며 방긋방긋 웃었다. 클라리스의 웃는 얼굴을 보니까 뭔가 참 찝찝했다. 대체 이 여자 정체가 뭘까? 아무튼 이제 팔렸으니 더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만."

소피엘이 나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문득 문이 벌컥 열리며 엘프 둘이 들어왔다.

"돈 구해왔어요! 아직 안 늦었죠?"

"모자라서 일수까지 썼어요!"

들어온 것은 에로리나와 셀렌디네였다. 이 눈나들도 일수를 썼구나. 둘은 허겁지겁 들어온 후 잠깐 방 안의 분위기를 보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늦었나요?"

설명해 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내가 나섰다.

"나 15만 골드에 팔렸어요."

두 엘프의 표정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 고생을 해서 1만 5천 골드를 모았더니 뭔 놈의 시세가 반나절에 열 배나 뛰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큰일났네.."

"어디로 팔려가는 거죠? 이상한 곳은 아니죠?"

"여기, 엘룬드 백작가의 임신 시종으로요."

"임신 시종? 그러면 우리 이제 못 보는 거지?"

"안 돼! 이럴 순 없어. 저기 백작님. 제발 어떻게 안 될까요? 제발요."

애타게 매달리는 둘에게 소피엘은 조금 곤란한 눈치였다. 아이린처럼 경우 없이 까부는 건 무자비하게 짓밟아 줄 수 있지만 이렇게 매달리는 것에는 약한 모양이다.

"이건 좀 곤란한데.."

"저기 에로리나, 셀렌디네. 마음은 고맙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주 4일이라고 하니, 쉬는 날에 둘을 만나는 걸로 하죠. 빌린 돈은 빨리 갚고 오세요. 일수는 특히."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야?"

"임신 시종을 하는데 괜찮겠어요?"

둘은 보니 내 안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만나서 할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인 것 같았다. 나는 둘의 손을 꼭 잡고 안심시켰다.

"걱정 마요. 나 알잖아요?"

"응.."

"네.."

다독다독해주자 둘은 수그러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소피엘이 감탄했다.

"뭘 얼마나 잘하기에 여자가 저렇게 까지 매달리는 거지? 나 원.."

여자 둘이 남자 하나에게 체신머리없이 매달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좀 처량해보였는지 소피엘은 잠시 물러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귀족가 들어가서도 기죽지 말고 잘 지내야 해?"

"잘 할 거라 믿어요. 우릴 잊으면 안 돼요."

나는 둘의 귓가에 속삭였다.

"걱정 마요. 둘 다 임신하기 전까지 놔 줄 생각 없으니까."

"아.."

둘은 얼굴이 빨게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울먹거리는 둘을 토닥여 주었다. 성숙한 눈나들이 울먹거리는 걸 보니 뭔가 불끈불끈하다.

"그럼 가죠. 백작님."

"으, 음."

* * *

우리는 큰길로 나가 마차를 타고 백작의 저택으로 향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마차는 저택에 도착했다. 엘룬드 가문의 저택은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귀족 저택 그대로였다. 엘프 특유의 미려한 건축양식이 잘 살아있는 저택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이 있었고, 정원 중심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여기가 앞으로 내 직장인가.'

귀족저택의 시종이라, 뒷골목 대화방의 접대부 보다는 확실히 나은 환경이다. 우리가 탄 마차가 문 가까이 다가가자 저택의 문이 스르르 자동으로 열렸다. 문 너머 정원 가운데 있는 커다란 나무 앞에서, 교복을 입은 엘프 한 명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피엘이었다.

"어머님..!"

마차의 문이 열리고 소피엘이 먼저 나서자 아르피엘이 쪼르르 달려왔다.

"음, 내 딸아."

"어떻게 되었나요..?"

소피엘은 대답 대신 빙긋 웃으며 내게 손짓했다. 내가 수줍게(?) 마차 밖으로 나가자, 아르피엘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오빠..!"

"안녕."

아르피엘은 엄청 좋으면서도 부끄러워서 어떻게 표현을 못 하겠는지 내 손만 잡고 그저 방긋방긋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곤 소피엘은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좋으니?"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님. 정말로요!"

"네가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기분이 좋구나."

"감사합니다!"

소피엘은 연신 고마워하는 딸을 뿌듯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감정 표현이 적은 아르피엘이 이토록 기뻐하며 고마워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늦된 딸이 드디어 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둘째 치고, 지금은 순수하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금은 더 컸다.

"저기, 어머님. 오빠에게 저택을 구경시켜줘도 될까요?"

한편 나는 두근거리면서 내 손을 잡아당기는 아르피엘을 보고 있었다. 그땐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진짜 예쁘다. 살짝 통통하면서도 엄마를 닮아 뽀얀 피부에 귀엽고 예쁜 얼굴. 내가 진짜 이런 애 처녀를 따먹었다니. 게다가 저건 귀족학교의 교복인 것 같은데 배덕감이 장난이 아니다. 단정하고 깔끔한 검은 색 계통의 교복이었는데 덕분에 흰 피부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잠시만요. 영애님."

끼어든 것은 백작의 비서였다.

"일단 제가 저택에서 생활하려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좀 알려주고 올려 보내겠습니다. 먼저 교복에서 편한 옷으로 옷부터 갈아입으시지요."

아마도 아르피엘은 나를 사온다는 말에 학교에서 돌아온 그대로 여기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교복을 입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옆에 있던 소피엘도 비서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아.. 네. 알겠습니다. 어머님."

"그러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잘 알려주도록. 나는 집무실에 가 있을 테니."

"예. 백작님. 영애님도 어서 들어가시죠."

"네.."

소피엘과 아르피엘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마차 앞에는 나와 백작의 비서만 남았다. 근데 어째 둘만 남으니까 비서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

"후우..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뭔가 확실히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를 못마땅해 하는 느낌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금까지 신경 써서 볼 틈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 비서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내 취향은 아니고 엘프들이 예쁘다고 할 만한 미인으로, 가슴이 좀 큰 걸 제외하면 몸매도 엘프식으로 미끈하니 잘 빠져 있었다.

'좀 깐깐해 보이기는 하는데.'

검정색 가는 테 안경에 살짝 찌푸린 인상이 왠지 까다로울 것 같은 느낌이다. 비서는 나를 조금 넓은 홀로 데려갔다.

"그러면 앞으로 주의해야 할 것을 알려주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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