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22.
* * *
"아니 서비스를 받으려는 건 아니야."
여왕눈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누굴 좀 찾고 있거든."
서비스가 목적이 아닌 건가. 하긴 분위기가 별로 서비스 받으러 이런 골목을 돌아다닐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누굴 찾는다고? 누굴 찾는다면 내가 도움 될만한 일은 없다. 그러나 난 어떻게 해서라도 간에 이 눈나와 좀 더 엮이고 싶었다.
'근데 뭐 할 말이 없네.'
뭔가 화려한 화술로 눈나를 농락하면 좋겠지만, 내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도 딱히 뭔가 엮을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누굴 찾는다고 했지? 그럼.. 그러면 뭐 할 말이 없었다. 난데없이 같이 찾자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우물거리고 있자 눈나는 쿨하게 말했다.
"다른 용무 없으면 이만. 좀 바빠서."
"아.."
이대로 보내기는 아까운데 별 방법이 없었다. 눈나는 비서를 데리고 휘적휘적 골목길 안으로 사라졌다. 근데 저쪽 우리 가게 방향인데?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눈나를 천천히 따라갔다.
'어째 좀 헤메는 것 같은데'
뒷골목은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오는 사람은 헤메기 쉬웠다.
"이쪽인 것 같습니다."
눈나를 수행하는 비서는 잠깐 갈팡질팡하더니 뭔가 발견하고 바로 그쪽 누나를 끌고 갔다.
'오오?'
눈나가 향하는 곳, 그것은 바로 우리 그린리프 고민상담소(1타임 7골드, 반타임 4골드)였다. 뭐지?서비스 받으려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아니면 클라리스하고 아는 사이일까? 뭐 아무튼 나는 두 사람이 들어가는 걸 확인한 후 따라 들어갔다. 가게 안 카운터에서 클라리스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서와요. 두 번이나 나갔는데 힘들지 않나요?"
"괜찮아요. 아 그리고 아마 오늘 1만 5천 골드 모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인가요? 흐음. 그렇다면 역시.."
클라리스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재능은 충분한 것 같은데.. 아냐 아직 이른가.."
보자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서 좀 찝찝했다.
"왜요? 뭐 문제 있나요?"
"아니에요. 아직은 좀 이른 것 같네요.. 3번방에 지명 손님이 대기중이에요, 그럼 화이팅!"
"아, 예.."
뭐가 이르다는 걸까. 클라리스를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처음에는 저 웃는 얼굴이 착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째 보면 볼수록 속을 알 수 없는 게 좀 찝찝하다. 나를 홀라당 팔아먹은 것도 그렇고 말이야. 아무튼 나는 조금 두근두근하며 3 번 방의 문을 열었다. 혹시 그 눈나가 손님으로 온 건 아닐까? 지명손님이면 나를 찍었다는 건데 그럴 리는 없고.. 그러면 혹시 쪼꼬미일까?
방 안에 있는 것은, 놀랍게도 그 여왕누나였다.
"앗!"
"음?"
나는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아까 길에서 봤죠? 어 근데 지명손님이라고 들었는데, 저 어떻게 알고 오신 건가요? 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 만났다면 제가 기억을 못할 리가 없는데."
이런 존재감 강한 누나는 잊기가 오히려 더 힘들 것 같다. 누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야. 만난 적 없어. 우리가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그러면 누구시죠? 어떻게 절 아시는 건가요?"
누나는 육덕진 허벅지를 좌우로 교차해 꼬면서 뜸을 들였다.
"글쎄, 지금 밝히는 건 재미없을 것 같고,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나는 침을 꼴딱 삼키며 은근히 들이대 보았다.
"이야기만요?"
"음?"
"이야기 말고 딴 거 해도 괜찮은데요?"
누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야 일단 이야기부터 하지. 혹시 차 좀 타 줄 수 있나?"
뭐지 왜 웃지. 이런 시큰둥한 반응은 또 처음이었다.
"아 예."
나는 대충 차를 탔다. 나는 차 타는 거에는 별로 소질이 없지만, 타 달라니 어쩔 수 없지.
"여기요."
비서 것과 내 것까지 해서 3잔을 타 놓자, 누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하고는 차를 마셨다.
"으음.. 이건 좀.."
누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비서도 한 모금 마셔보더니, 뭔가 수첩 같은 걸 꺼내서 뭘 엄청 적으면서 말했다.
"심하군요."
"뭐, 차 타는 솜씨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둘은 그렇게 말하면서 뭔가 속삭였다. 뭔지는 모르지만 이거 무슨 시험 같은 걸 당하는 느낌이다. 나는 섣부른 짓 하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누나는 비서와 뭘 한참 속삭이더니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몇 가지 좀 물어봐도 괜찮을까?"
"예 뭐든 물어보세요."
"혹시 이상적인 여성상이 어떻게 되나?"
'누나 같은 짱짱큰왕가슴에 육떡지고 피부 겁나게 뽀얀, 떽뜨를 밝히는 암퇘지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고, 조금 돌려서 말하는 게 좋은 것 같았다. 좀 격조 있게.
"외모로는 모성애가 풍부하게 느껴지는 풍만한 육체에 고운 피부를 가진 여성이고, 정신적으로는 관습에 얽메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새로운 경험에 열린 가치관을 가진 여성이 제 이상형입니다."
이거 솔직히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10점 만점에 10점인 대답이었다. 내 대답을 들은 눈나도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으흠. 그렇구나. 좋아. 아, 이건 혹시 좀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인데, 일주일에 자위행위를 몇 번이나 하나?"
나는 바로 대답하려다가 비서가 막 뭔가 적는 걸 보고 함정임을 깨닫고 조신하게 대답했다.
"그런 건 부끄러워서 말씀드릴 수 없네요."
내 뒤통수를 내가 스스로 오지게 후려치고 싶은 대답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 헬스하면 근육이 발달하면서 남성호르몬이 왕창 나오기 때문에 정력이 참으로 왕성해진다.(최소 1일/5딸)3대 500을 치는 내가 부끄러운 척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려니 진짜 곶통스릅다. 일당 오딸러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혹시 돈을 주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나? 50골드 주겠네."
여기서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근데 자위 횟수를 알려주면 돈 준다는 건 참 매력적이긴 하다.
"아뇨.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처음 보는 여성분에게 그런 건 이야기할 수 없어요."
"오오. 그런가. 나쁘지 않은걸."
누나는 왠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근데 진짜 이게 뭐지? 굉장히 뭔가를 시험하고 탐색해보는 느낌인데, 뭔지 모르지만 일단 잘 해보자.
"그러면 조금 질문을 바꿔서.. 아까 풍만한 여성이 좋다고 했는데 비서와 나 중에서는 누가 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눈나요눈나하앍하앍하고 대답할 수는 없고, 나는 좀 풀어서 대답했다. 비서 눈나도 나쁘진 않지만 그냥 엘프들 중에 좀 오동통한 느낌이고, 막 육덕지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래도 가슴은 좀 있긴 했지만.(C컵 정도)
"여성의 매력은 겉모습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굳이 외모로만 매력을 따지자면 저는 더 풍만한 분이 좋네요."
"으음.."
어째 눈나는 좀 의심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나는 말로 더 설명하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게 더 확실할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 손을 좀 잡아봐도 될까요?"
내가, 남자가 먼저 손을 잡자고 나오자 누나는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다.
"에? 뭐.. 안될 건 없지."
나는 최대한 느끼하고 진득하게 누나의 손을 만졌다. 피부가 아주 그냥 탱탱하고 쫀득한게 손가락 발가락을 아주 그냥 막 그냥 쪽쪽 빨아 먹고 싶었다.
'이 손이 내 자지를 만지게 하고 싶다.'
진짜 이 눈나 너무 괘씸하게 에로한 몸이라 손만 잡아도 불끈불끈 성욕이 들끓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하느니.
손만 잡은 것인데도 분위기가 벌써 바뀌었다. 누가 봐도 떽뜨떽뜨한 분위기가 되자, 누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해야겠네. 이건 진짜야."
나한테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아서 보니까,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그러면.. 어떤가?
"재능은 나쁘진 않은데, 매너나 이런저런 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매너가 중요한 건 아니지. 지금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그건 그렇죠."
"가르칠 건 가르치면 되지만, 타고난 건 어쩔 수 없으니, 어떤가?"
"저는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백작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음.."
엿들어 보니 이 눈나 엘프들 중에서도 백작인 것 같다. 왠지 여왕포스구나 했더니 백작이었어? 하긴 분위기부터가 벌써 다르다 했다. 둘은 결론을 낸 것 같다니 그 후로도 둘이서 뭘 한참 쑥덕거리다가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로 최종 결론이 나온 것 같았다. 나는 내가 탄 맛 없는 차를 한잔 마시며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이야기가 대충 정리된 것 같자 말을 걸었다.
"의논은 다 끝나셨나요? 아,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이제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차를 홀짝이며 그렇게 말하자 백작눈나는 이번에는 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음. 내 이름은 소피엘 엘룬드, 5위계 장로이자, 백작위에 있는 엘프 귀족이네. 그대가 어제 처녀를 따준 아르피엘 어머니기도 하지."
'엄마? 걔네 엄마? 뒷골목에서 개처럼 처녀를 따먹었던 걔 엄마?'
쿨럭쿨럭. 나는 사례가 들려 차를 마시다 다시 잔에 좀 뱉었다. 눈나 나 손이 덜덜 떨려 오또케. 그러고 보니 어제인가 그제인가 가출소녀를 따먹었었다. 어째 좀 익숙한 외모다 했더니 딱 그 아르피엘이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어머님이 왜 오신 거지. 처녀 딴 게 잘못을 아닐 것 같은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찻잔을 받친 손은 나도 모르게 덜덜덜 떨렸다. 설마 잡아죽이진 않겠지? 조금 쫀 내게, 아르피엘 엄마 소피엘의 번둥천개(?)날벼락같은 선언이 쏟아져 꽂혔다.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만 말하지. 내 딸 아르피엘의 임신 시종이 되어주었으면 하네."
덜덜거리던 떨림이 딱 멈췄다.
"임신시종이요?"
"음."
"그게.. 아니 이름만 들어도 알 것 같긴 한데, 혹시 무슨 일을 하는 건가요?"
"내 딸과 열심히 교배해서 임신시켜주면 되네."
"음. 오. 아. 예."
임신 시종. 과연 그 뜻은 그 말 그대로였다. 완전 대박이다. 임종시신이 될 줄 알고 쫄았더니 임신시종이 되라고 하네. 만세다.
"아. 저야 뭐 좋긴 좋습니다. 근데 전 노예인데."
"내가 그대를 사겠네. 참고로 임신시종은 노동강도가 높아 노예더라도 주 4일제 근무네."
"어.."
주 4일에 자유교배라니 엄청 끌린다. 근데 이러면 어찌해야 하나. 1만 5천골드로 오늘 자유인이 되는 첫날이 될 수도 있었는데.
"딸아이가 너무 늦돼서 걱정했는데 지금이라도 처녀를 뗐으니 다행으로 생각하네, 마음 같아서는 여러 명 붙여주고 싶지만 자네가 좋다고 고집을 피워서.."
아르피엘이 나 사달라고 졸라서 온 것이었나. 귀족가의 시종도 나쁘진 않지만, 자유인에 비해서는 아직 조건이 좀 부족했다. 나는 좀 더 딜을 해볼 요령으로 운을 띄웠다.
"저기."
"뭔가?"
"딸 뿐만인가요?"
"음? 그게 무슨 소리지?"
"아, 그, 저, 혹시."
"뭔가. 말해보게."
내가 차마 말을 못하고 눈알만 굴리자 뭔가 눈치챈 비서가 소피엘 엘룬드 백작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건.. 속닥속닥.. 백작님도.. 속닥속닥.."
소피엘의 얼굴이 어울리지 않게 붉어졌다. 역시 아까 손 잡았을 때 떠봤던 것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었나 보다.
"아, 혹시 그.. 뭐 겸사겸사.. 같이.. 뭐 그런 뜻인가?"
나는 감히 대답하지는 않고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음. 나도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딸하고 같이는 좀.. 그리고 일단 가문의 후계자를 만드는 게 가장 우선이라.. 난 나이가 많기도 하고.."
"그래도.. 꼭. 원해요. 꼭. 그게 안 정해진다면 아니면 시종이 되지 않겠어요."
내가 단호하게 원한다고 요구하자 소피엘 눈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렇게 보니 되게 귀엽다.
"이, 이건 좀 당황스러운데.. 그.. 그러면 일단 일차적인 과제로 딸을 돌봐주는 걸로 하고 다른 건 좀 장기적으로 성취해야 할 과제로 생각해보는 건 어떤가?"
저 졸라봐도 소용은 없을 것 같았다. 그보다 저 비서는 왜 나를 저렇게 잡아먹을 듯이 보는 걸까.
"지금은 그러면 그런 걸로."
"음. 그러면, 후우.. 일단 정신없지만 대충 정해진 것 같군."
소피엘 엘룬드 백작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문밖에서 날카로운 쨍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8만 골드 가지고 왔다! 그 놈 내놔!"
아이린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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