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0.
* * *
"흐음. 남자들은 보통 수위가 낮은 걸 선호하는데 리 군은 반대라니.. 어떻게 한다? 흐으음.."
나는 진심을 담아 간절히 애원했다.
"부탁드려요."
"그러면 이러면 어떨까요? 리 군이 가게의 방침을 수정할 정도로 실적을 올리면, 리 군에게만 그 제약을 풀어 주는 걸 고려해 볼게요."
나는 환호했다.
"아싸. 좋아요! 고마워요. 클라리스!"
"잘 해줘야 해요? 진지하게 고려해볼 테니까요."
"네. 기회를 주신 걸 후회하지 않게 해 드릴게요. 맡겨만 주세요."
"후후. 든든하군요. 그러면 다음 주 수입은 조금 기대를 해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오늘부터 시작이죠? 좋아. 가즈아."
활기가 넘치는 나를 보고 클라리스는 빙긋 웃었다.
"후훗, 과연 좋은 노예 싸게 잘 산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부디 열심히 일해 줘요."
"네."
"그러면 바로 일을 들어가도록 할까요. 마침 대기하고 계신 손님이 계신 것 같네요."
클라리스가 가리킨 곳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살짝 취한 묵직한 가슴의 엘프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슴가의 클라스는 셀렌디네 이상, 클라리스 이하로, 추정 F~E컵. 참으로 바람직한 몸매를 자랑하는 엘프는 비싸 보이는 세련된 정복을 가슴이 터져라 조이는 핏으로 입고 있었다. 대략 원래 세계로 치자면 배가 많이 나온 50대 초반 중년 양복 차림 아저씨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취기가 올라 붉어진 얼굴이 참으로 꼴릿했다. 꼴릿눈나는 단골이었는지 클라리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머, 잘 오셨어요. 마침 뉴페이스를 영입한 참이랍니다."
"뉴페이스? 아. 이 소년인가요? 흐음."
소년? 난 다 큰 성인인데? 뭐 엘프 기준으론 소년이겠지만. 흠. 뭐 어때. 난 눈나가 좋으니까 소년으로 봐준다면 뭐 좋을 뿐이다. 한동안 꼴릿눈나의 진득거리는 시선이 내 몸을 끈적끈적 훑었다.
'오우야. 눈나 그런 눈으로 보면 나 못 참을 것 같은데.'
원래 세계로 따지자면 소름끼치는 변태 아저씨의 시선이겠지만 여기서는 초에로한 눈나의 진득한 시선이다. 음. 아주 좋아. 나는 시선에 마주해 살짝 윙크를 날렸다.
"..!"
"마인드가 아주 좋은 친구라서요. 터치 수위도 좀 널널할거에요."
사장님의 은근한 권유에 꼴릿눈나는 조금 민망한지 뭐라고 중얼거렸다.
"이 나이 먹었는데 수위는 무슨.. 난 전혀 관심 없어요. 그냥 착하고 이야기만 잘 들어주면 됐지."
말은 좋은데 표정은 전혀 매치가 안 된다. 내 갑빠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하며 끓는 꿀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길. 저 표정이 어디가 전혀 수위에 관심 없는 표정인가.
"어떠세요? 원래 보는 친구가 있는 건 알지만, 오늘은 이 친구 한번 테스트해 보시는 건."
"뭐, 그러면 한 타임만.."
못 이기는 척 스르르 지갑을 여는 꼴릿눈나.
'조아쓰. 잘 해보자. 흐흐흐.'
나는 속으로 환호하며 겉으로는 얌전하게 방긋방긋 미소만 지었다.
"네, 7골드 받았습니다. 이 안쪽에 4번 대화방을 쓰시면 될 꺼에요."
"사장님, 근데 이 친구 이름이 뭐에요?"
"음. 글쎄요. 가게에서 쓸 이름은 아직 안 정했는데."
"뭐 상관없지.. 자주 볼 것도 아니고. 야. 들어가자."
"넵."
나는 그 괘씸한 예측을 박살 내 주겠다는 다짐을 속으로 하며 꼴릿눈나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정금지인 것에 현타가 오긴 했지만, 아직 기회는 있었다.
달아오른 눈나들을 처절하게 쥐어짜서, 내 천부인권을 되찾으리라.
* * *
방 안은, 정말이지 정갈한 분위기였다. 테이블 하나, 소파, 보조 소파, 차 세트, 그리고 몽롱한 느낌의 등불. 이 중에서 유일하게 뭔가 야릇한 느낌이 드는 것은 등불 뿐이었다.
'이건 진짜 업소가 아니라 무슨 상담실 같은 분위긴데.'
실제로 간판을 고민상담소라고 해 놓았으니 틀린 짐작은 아니었다. 꼴릿눈나는 탱탱한 엉덩이로 소파에 푹 주저앉더니 시작부터 한숨을 푸욱 쉬었다.
"후우. 요새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저건 혼잣말인가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뭐 하지 근데? 옆에 앉아야 하나?
"차나 좀 끓여 봐."
"아 네."
다짜고짜 명령조인게 좀 거슬렸지만 일단은 손님이니 시키는 대로 했다. 그나저나 차 세트는 대충 보면 알겠는데 끓는 물은 어디서 구하지? 아니 그것보다 찻잎은 얼마나 넣어야 하나?
나는 찻숟갈로 찻잎을 뒤적이다가 차통의 뚜겅을 덮었다. 아니 지금 차나 끓이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 차 끓일 필요가 있나요?"
내가 도발적으로 그렇게 묻자 눈나야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뭐 해?"
이 눈나 진짜 7골드 내고 차나 마시러 온 건가? 아닌 거 뻔히 아는데? 저기 내가 금지 먹은건 못 해드리지만 그 이외는 서비스 팍팍 해드릴 수 있으니 말씀만 하시라구요.
"나랑 뭐 하고 싶어요?"
내가 눈나의 어깨를 사르르 어르만지며 그렇게 말하자 안 그래도 취한 눈나의 얼굴이 더욱 붉게 물들었다. 좋아. 이제야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다.
"응? 솔직히 말해봐요. 나랑 뭐 하고 싶어요?"
"..솔직히 말해도 돼?"
"네. 말해요."
"무.."
"무..?"
"무릎배게.."
"..고작..?"
"응..? 왜?"
이 쫄순이 같으니라고. 가슴도 나올 만큼 나온 눈나가 주저주저하다가 지르는 게 고작 무릎베게가 뭐냐 무릎배게가. 그보다 이 없소의 수위가 심각한 수준인데? 정말이지 그냥 이건 이 눈나가 찐일 뿐인 거라고 믿고 싶다.
"하아. 아니에요. 일로 와요."
나는 스쿼트로 단련된 내 탄탄한 대퇴직근을 짝짝 쳤다. 눈나는 엄청 부끄러워하면서 무릎을 벴다. 근데 어째 베는 포즈가 좀 이상하다.
"아니.. 얼굴을 왜 아래로 해요? 편하게 옆으로 돌려요."
"킁카킁카.. 아, 응.."
난 왜 저러는지 상상도 못하고 그냥 눈나의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눈나의 비단결 같은 머릿카락에서는 바닐라 향기같은 것이 은은하게 풍겼다. 원래 세계로 따지자면.. 음. 상상하지 말자. 난 눈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질문했다.
"이름이 뭐에요?"
"에, 나?"
"그럼 누구겠어요?"
"나, 내 이름은. 음. 에로리나."
"에로리나?"
"응."
"에로리나 누나는 이런 데 자주 와요?"
"아니, 자주는 아니고.. 가끔 술 먹고 너무 외로울 때면 종종 와."
"뭐가 그렇게 외로워요?"
"그냥. 하아. 이 나이 먹도록 남자는 없고 가슴만 자꾸 나오고.."
"몇 살인데요?"
"그냥 많아."
"좀 알려줘요. 대충이라도."
"대충 600살 넘었어. 자세한 건 묻지 마."
이레네 장로가 그 쯤이었던것 같은데. 이게 정말 같은 나이대라고? 흠흠. 참으로 바람직하게 잘 관리되지 못한 눈나였다.
"가슴 컵이 얼마에요?"
에로리나는 좀 짜증을 냈다.
"그런 건 왜 물어?"
"난 가슴 큰 누나들이 좋거든요."
에로리나는 배 나온 아저씨들이 좋다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피식거렸다.
"잘도 그러겠다."
"진짠데?"
나는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을 슬금슬금 가슴께로 내렸다. 내 손가락이 거미처럼 둥그런 가슴선을 따라 휘돌자 에로리나는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으응.. 장난 치지 마."
"장난이요? 이게? 아직 뭐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요."
나는 그러면서 옷 안으로 슬금슬금 손을 집어넣었다. 에로리나는 당황했는지 내 손을 뿌리쳤다.
"뭐야. 너. 남자가 왜 이래?"
"왜요? 싫어요?"
"아니. 싫은 건 아닌데.. 이상하잖아."
"에로리나가 너무 섹시해서 그래요."
"내가 섹시해?"
"네. 아까도 말했지만 난 큰 가슴이 정말 좋거든요."
에로리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특이하네."
"그런 말 자주 들어요."
"솔직히 나 이런데 좀 다녔는데, 남자가 수위를 올리는 건 처음 봐."
"나 자주 보러 와요. 그러면 이제 많이 보게 될 거에요. 누난 맘에 드니까. 특별히 쎈 것도 맛보여줄게요."
에로리나는 내 말에 침을 꼴깍 삼켰다.
"저기, 혹시 어디까지 돼?"
"그런 거 물어보는 거 좀 멋없지 않아요?"
눈나는 애가 타서 달라붙었다.
"그러지 말고, 알려줘."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눈나를 가지고 놀았다.
"어디까지 될 것 같아요?"
에로리나는 한참 고민하다 주춤주춤 말을 꺼냈다.
"으음.. 그, 그거?"
"그거?"
"응. 그거."
"그게 뭔데요?"
"손..?"
"에이, 너무 약하다."
약하다는 말에 에로리나의 얼굴이 삶은 문어처럼 푹 익었다.
"야, 약해?"
"좀 더 불러봐요."
"그럼.. 입..?"
"좀 더."
"이보다 더 위가 있어?"
"궁금하죠?"
에로리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면 다음 시간에 알아보기로 해요."
"뭐야.."
에로리나는 김이 빠졌는지 소파에 몸을 쭉 기댔다.
"나 놀린 거지?"
"아뇨. 놀린 거 아니에요. 사장님하고 약속도 했거든요."
"무슨 약속?"
"제가 돈 많이 벌면, 제한 풀어주기로 했어요."
"제한?"
"알잖아요?"
"그거? 설마?"
"네. 그거."
에로리나는 침을 또 꼴딱 삼켰다.
"나 자주 올게."
"자주 와주면 고맙죠. 근데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요. 그러고 보니 에로리나는 무슨 일 해요?"
"나? 어, 나 솔직히 말하면 안 되는데.."
"왜요. 무슨 공무원 같은 거에요?"
"어.."
"에..?"
"음.."
"진짜?"
"응.."
"내가 잘은 모르는데 엘프라고는 해도 공무원은 이런 데 오면 안 되죠?"
"뭐.. 좋을 건 없지.."
"그런데 용케 솔직하게 말해줬네요?"
"응.. 왠지 너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물론 내가 어디 가서 소문내고 다닐 건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말해주는 것도 좀 이상했다. 내가 어딜 봐서 믿음직스럽다고? 무거운 거 들 때라면 몰라도.
"왜요? 어디가 믿음직스러워요?"
"설명하자면 좀 긴데.. 저기 나 있잖아. 어렸을 때부터 가슴이 컸어."
"에?"
"이백 살 전에도 C컵이었고.. 학교 다니면서도 놀림 엄청 받았거든."
"아. 여긴 가슴 큰 걸 좋게 안 보죠?"
"응, 젖소같다고.. 돼지같다고.. 친구들한테 괴롭힘도 많이 당했고.."
"그런 건 친구라고 안 해요. 무식한 젖알못 년들. 정말이지 원. 이 빅젖탱.. 아니 큰 가슴이 얼마나 좋은 건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별 게 다 고맙네요."
"아냐. 아무튼.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또 대학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지만.. 가슴 크다고 남자들은 만나주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일만 하다 이 나이가 되어 버리고.."
"네에. 그랬군요."
"야근 끝나고 맨날 혼술만 하다 보니 가슴이 더 튀어나오고, 이젠 중년들 입는 기성복들도 가슴이 맞지를 않았거든."
그래서 저렇게 블라우스가 터질 것 같았던 건가.
"그런 것 같네요."
"그랬는데.. 니가 거짓말이라도 내 가슴이 좋다고 이야기를 해 주니까, 뭔가 치유되는 것 같아. 뭐 반쯤은 농담이겠지만.. 그래도.."
분위기 좋은데 미안하지만 난 이 눈나와 치유가 아니라 떽뜨를 하고 싶었다. 저런 꼴씸한 몸을 가지고 저렇게 주눅이 들어 있는 게 너무 안쓰럽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질싸가 눈나에게 자신감을 줄 것 뻔한데.. 안타깝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나는, 대기순번 1호인 눈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에로리나 누나."
"응?"
"나 똑바로 봐요."
내 욕정 가득한눈이 에로리나의 촉촉하게 젖은 눈과 마주쳤다.
"내가 괜히 거짓말 하는 것처럼 보여요?"
"아니.."
"에로리나는 매력이 넘쳐요. 괜히 주눅 들지 말고. 어딜 가든 당당하게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응.. 고마워."
"그리고 좀만 기다려요. 제한만 풀리면. 그 괘씸한 가슴에 제일 먼저 한발 쏴줄 테니까."
이쪽 세계 남자치곤 꽤나 거친 워딩이었는지, 에로리나는 당황하면서도 부끄러워했다.
"아.."
"알겠죠?"
"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