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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이세계에서 엘프의 노예가 되었다-8화 (8/140)

〈 8화 〉 8.

* * *

나는 설명하기가 귀찮았다. 설명정도야 해 줄 수 있지만, 이 녀석, 내가 스스로 갇히러 돌아왔다는 걸 알면 귀찮게 굴 것 같아.

"잘 안 됐나요?"

"뭐, 안 된 건 아니지만 탈출은 못했지."

안 되긴, 엄청 잘 됐지. 그렇게 앞으로 잘 될 일을 생각하면 탈출 따윈 할 수가 없었을 뿐이지.

"그렇군요. 형님도 어쩔 수 없었던 건가요."

"음."

"하아.."

나는 셀렌디네가 자꾸 시선을 보내는 줄은 모르고 왠지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느낌만 받았다.

"근데 레오. 누가 자꾸 보는 것 같지 않냐? 뒤통수가 간질거리는데."

"네? 잘 모르겠는데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어, 뭐야. 튀김 다 어디갔어?"

"제가 먹었는데요 형님.."

여리여리한게 엄청 잘 먹네. 그래도 마지막 하나는 형님 먹으라고 남기는 게 국룰 아닌가?

"너 이 자식. 마지막 한 개는 남기는 거라고 안 배웠냐."

"앗. 죄송합니다."

"귀여우니까 봐준다."

레오의 볼따구를 꼬집으며 노느라 나는 호송차 위로 한 마리 하얀 매가 날아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 *

자고로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뒤쳐진 자가 지나간 일에 번민하고 고통스러워 할 때, 앞서가는 자는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생각한다. 그렇다. 뭐 없는 단순무식 셀렌디네는 떽뜨떽뜨만 생각하며 어버버하고 있었지만, 여유도 있고 사회적으로 지위도 있는 이레네는 벌써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놈은 물건이다.'

만약 창남으로 팔린다면 그걸 사 가는 가게는 대박을 칠 터. 그런 기회를 그냥 운 좋은 년이 채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동생에게 편지를 써야겠어.'

이레네의 동생은 '영원의 도시' 에서 상류층 엘프들이 자주 드나드는 고급 업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평소엔 돈 많이 번다고 으스대기나 하는 재수 없는 동생이었지만, 지금 만큼은 남자를 확보해 줄 좋은 그물이었다.

'동생네 업소에 있으면 생각날 때 보러 갈 수도 있고.. 내가 사라고 했으니 가족할인 같은 거 정도는 해 주겠지?'

이레네는 정성껏 편지를 써서 하얀 매 편에 동생에게 부쳤다. 보냈다. 태초의 세계수가 있는 영원의 도시로 어마어마한 물건이 향하고 있다고.

* * *

"우와"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엘프들의 대도시를 구경했다. '영원의 도시' 라는 말이 걸맞게 도시는 어마어마하게 화려했다. 저 멀리 도시 한가운데 솟아오른 거대한 세계수를 둘러싸고 고풍스럽고 우아한 건물들이 겹겹이 들어서 아름다운 거리를 이루고 있었다.

"흑.. 흑흑."

한편 신이 난 나와는 반대로 레오는 곧 신세가 조질거라는 생각에 또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울고 있었다.

"싫어.. 사설 경마 다신 안할게요.."

뒤늦게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따지자면 자업자득이지만, 겉보기는 정말 딱하기 그지없었다.

"싫어.. 흐윽.."

"레오."

"흑흑흑."

"레오!"

"훌쩍.. 네 형님."

"울지만 말고, 내말 잘 들어."

"네.."

"너 아직 인생 끝난 거 아냐. 살 날이 엄청 남아있잖아. 창남. 그까짓 게 뭐라고 그렇게 울어? 눈 딱 감고 여자랑 해버리면 되잖아. 별 거 아냐. 피할 수 없으면 즐겨."

"..제가 즐길 수 있을까요?"

"뭐, 너한테는 무리겠지.."

"흐에에에엥."

"이런.. 쩝."

레오를 달래는데 실패한 나는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나 앉았다. 어느덧 호송마차는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에 들어서고 있었다. 보아하니 노예를 경매하는 곳 같았다. 우리가 탄 앞뒤로도 다른 호송마차들이 줄을 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다 남자노예인가."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호송하는 엘프여전사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아 그렇지. 나도 남자노예였다. 엘프들은 호송차를 한 대씩 대고 남자노예를 꺼냈다. 나와 레오도 목에 사슬을 달고 질질 끌려나왔다.

"장난이 아니네.."

죽은 눈을 한 수많은 여리여리한 남자들이 목에 쇠고랑을 달고 줄지어 서 있었다. 뭔가 답도 없는 느낌, 마치 고시촌에서나 느껴질 법한 강한 음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봐도 신이 난 건 나 뿐이었다.

* * *

"셀렌디네 대장님?"

한편 셀렌디네 대장은 멍하니 서 있다가 누가 부르자 화들짝 놀라 뒤돌아섰다.

"음?"

셀렌디네를 부른 것은 노예 길드의 사무원이었다.

"야생노예에 관해서 추가 서류를 좀 작성해주셔야 하는데요."

"아, 뭐죠?"

"정신이 이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아, 예.'

셀렌디네는 그제서야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야생노예 포획 성과금 좀 받고 땡이었다. 셀렌디네는 몸에 새겨진 그날의 쾌락을 잊을 수 없었다.

'만약 비싼 업소에 팔린다면 내 월급으론 얼굴도 보기 힘들겠지..'

셀렌디네의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고오급 업소에 팔린다면, 그야말로 영원히 빠이빠이 하게 되는 것이다. 셀렌디네는 더 머리를 굴렸다.

'비싸게 팔린다고 내가 돈 그렇게 더 받는 것도 아니니까.. 최대한 싸구려 업소에 넘어가도록 내용을 써야겠군.'

정신이 이상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셀렌디네는 거짓말은 안 하는 수준으로 서류를 작성했다.

­여성에 대한 복종심이 희박하고 육체적으로 억세며 매우 난폭하여 컨트롤이 어려움. 교활하고 말을 잘 듣지 않음­

다만 이러다가 정말로 광산 같은 곳의 노동노예로 팔려버리면 그것도 꽝이었다. 셀렌디네는 서류에 몇 줄 더 끄적였다.

­다만 성기능에 문제는 없음. 신체도 강건함. 다만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므로 평범한 업소보다는 조금 열악한 업소에나 적합할 것으로 사료됨­

'이정도면 잘 되겠지.'

셀렌디네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서류를 접수원에게 넘겨주었다. 마음 같아선 직접 사고 싶었지만, 월에 200골드도 못 버는 셀렌디네에게 노예는 저 하늘의 꿈이었다. 일반적으로 교육받지 않은 상급 남자 노예의 가격은 보통 4만 골드 정도였다.

'하아..'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셀렌디네는 노예를 데리고 경매장으로 나섰다. 원형극장처럼 생긴 회랑에는 이미 수많은 남자노예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셀렌디네는 우리 둘의 목줄을 붙잡고 정해진 자리로 찾아갔다.

"이 위로 올라가."

"네."

나는 단 위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았다. 내 옆으로 죽은 눈을 한 남자노예들이 주르륵 끝도 없이 서 있었다.

'오오, 드디어인가. 기대되는걸.'

나는 누가 주인님이 될 지 궁금해 두근거렸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이 에로프들은 육체교육의 효과를 킹받는 상급변태들이 아닌가. 육덕지고 학습능력이 좋은 쮸인님이면 좋겠지만, 사실 어디로 팔려가든 잘 할 자신(?)은 있었다.

"이걸 목에 걸어라."

경매를 관리하는 엘프들은 남자 노예들에게 순서대로 가격표를 걸어 주었다. 슬쩍 내려보니 내 가격은 3만 골드. 주위를 둘러보니 내 가격이 비싼 편은 아니었다. 내 근처에 있는 남자 노예들의 가격은 8만골드에서 2만골드 사이. 레오는 4만 2천골드였다.

"내가 레오보다 싸다니.. 셀렌디네, 나 왜 이렇게 싸요?"

셀렌디네는 짧게 대답해주었다.

"시작가격일 뿐이다. 누가 상회입찰을 하면 가격이 높아지는 시스템이야."

아 그렇군. 별로 납득이 안 가는 초기가격선정이었지만, 뭐 괜찮았다. 뭐 저 돈을 내가 받는 것도 아니고, 가격이 쌀수록 육덕진 쮸인님들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키야. 날 사는 엘프는 진짜 대박치는 거네.'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는데, 내 앞에 뭔가 팻말이 세워졌다.

"이건 뭐에요?"

셀렌디네에게 묻자 셀렌디네는 차갑게 대꾸했다.

"몰라도 된다. 지금부터는 경매가 시작되니까 자꾸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엄청 예민하게 날이 서 있었기에 나는 시키는 대로 입을 다물었다.

'저거 또 혼나고 싶은가. 왜 저렇게 틱틱대?'

허리에 칼만 안 찼으면 당장 빵뎅이를 때려줬을 텐데, 나는 칼이 무서워서 참았다.

* * *

셀렌디네는 초조한 마음으로 예비 노예구매자들을 기다렸다. 아무래 생각해도 불안했다. 몸도 좋고. 짜찌도 크고, 생긴 것도 괜찮고. 이런 남자노예가 헐값에 팔릴 리 없지 않은가.

다만 밤일솜씨가 완전 ㅜㅑ인 점을 꽁꽁 숨긴 것과 앞에 놓여진

­'!주의! 정신이상'­

팻말은 조금 안심이 되는 점이었다.

"지금부터 노예 길드에서 주관하는 경매를 시작합니다. '플레티넘 맴버' 들께서는 먼저 입장하여 주십시오."

회장에 마법방송이 울려퍼지고, 마침내 남성경매가 시작되었다. 경매의 시작은, 길드의 탑급 손님들인 '플레티넘 맴버' 들의 선매수로 시작된다.

'플레티넘 맴버'

그들은 길드의 VIP들이었다. 길드에서는 이 '높으신 분들' 이 어중이떠중이들과 번잡하게 뒤섞이는 불편을 겪지 않도록, 본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입장해 좋은 노예를 추가금을 내고 먼저 구매할 권리를 주었다.

셀렌디네는 긴장했다. 만약 여기서 남자가 팔린다면, 셀렌디네와 남자가 다시 만날 확율은 무한히 0으로 수렴하게 된다. 그리고, 한 무리의 '플레티넘 맴버' 들이 셀렌디네 쪽으로 다가왔다.

"어우. 생긴 건 멀쩡한데."

"쯧쯧, 아깝네."

다행히 셀렌디네의 계책 덕분에, 지나가던 높으신 분들 께서는 가끔 레오에게나 흥미를 보일 뿐, 남자에게는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셀렌디네가 속으로 안도하는데, 누군가 갑자기 셀렌디네를 불렀다.

"어이! 셀렌디네 대장"

"아, 아이린 님..?"

그곳에 나타난 것은, 이레네의 동생인 아이린이었다. 영원의 도시에서도 수위에 드는 업소 '엘리시움'의 업주이자, 노예 길드의 '플레티넘 맴버' 이기도 한 그녀는, 영원의 도시의 뒷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거물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자기 자리를 청탁한 적도 있던 셀렌디네였지만, 지금 아이린의 등장은 당황스러웠다.

"우리 '엘리시움'에 어울리는 끝내주는 녀석이 있다고 하던데?"

"누가 그런.."

"누구긴 누구야. 언니지. 이레네를 상대한 게 누구야?"

한편 나는 딱 보고 번뜩이는 지성을 발휘해 상황을 알아챘다. 고급스러운 비단 옷, 언니 못지 않은 평면적인 몸매, 쓸데없이 고상한 업소명, 저기 잡혀가면 대평원의 소녀들에게 아양이나 떨며 술이나 따라주는 신세가 될 것이 뻔했다.

'난 그런 거 말고, 육덕진 눈나들에게 육체적으로 가혹하게 쥐어짜이고 싶거든..?'

나는 필사적으로 눈을 내리깔며, 레오의 허리를 쿡쿡 찔렀다.

'너 대평원 좋아하잖아. 너가 나서야지. 뭐 하냐.'

레오는 계속 울다가 지쳐 영혼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다가 내가 옆구리를 찌르자 화들짝 놀랐다.

"오 너냐?"

"네?"

레오는 정신을 못 차렸다.

"너가 이레네 상대를 한 거야?"

"아, 제가 이레네 님 술 상대를 잠깐 하긴 했는데.."

한잔 따르고 엉덩이 좀 만져진 걸 상대했다고 하긴 뭐하지만 아무튼 거짓은 아니었다. 레오가 우물쭈물하니까 아이린은 셀렝디네에게 캐물었다.

"맞아? 셀렌디네 대장?"

셀렌디네는 순간 격렬한 내적갈등을 겪어야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냥 딱 눈 감고 있으면..?

'에잇. 모르겠다!'

셀렌디네가 택한 건 본능이었다.

"이 남자가 맞습니다.."

"그래, 너구나. 따라와."

아이린은 망설임 없이 목줄을 채 갔다.

"엣, 에에?"

당황하는 레오 옆에 노예 길드의 사무원이 재빨리 붙었다.

"추가금이 50% 가산되어 2만 1천 골드 붙어 6만 3천 골드 되겠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음. 바로 지불하지."

아이린은 빈약한 가슴과는 다르게 배포가 큰 모양이었다. 통 크게 곧바로 골드를 지불하고 셀렌디네에게 손을 내밀자, 셀렌디네는 목줄을 아이린에게 건네 주었다. 금화를 확인한 사무원은 아이린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낙인 등록은 출구에서 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음."

레오는 멍하니 아이린이 끄는 대로 걸어갔다. 나는 끌려가는 레오에게 손을 살짝 흔들어 주었다.

'잘 가! 열심히 살아!'

그렇게 기분 좋게 속으로 작별인사를 하는데, 아이린이 내 앞에 팻말을 보더니 험한 말을 내뱉었다.

"뭐야 이건? 뭔 찌끄리같은 게.."

뭐? 찌끄리? 이누무 꼬맹이가 못하는 소리가 읍네? 나는 참교육을 시켜주겟다는 뜻을 가득 담은 시선을 보냈지만 아이린인가 하는 평원녀는 그대로 레오를 데리고 가 버릴 뿐이었다. 찌끄리가 되어 뒤통수만 노려보던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휙 나와서 팻말 앞에 뭐라고 써 있나 한번 확인해 보았다.

"엥 이게 뭐야. 정신 이상? 대체 뭐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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