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4.
* * *
"엘프는 임신이 쉽지 않거든. 마력이 강한 여성일 수록 임신하기 어려워. 그래서 마력 강하고 돈 많은 귀족 엘프들은 남첩을 수십명씩 거느리고 다니지. 그래도 후계자라던지 만들기 어렵다고 하더라."
"정말요? 와. 그건 몰랐네."
"우리 같은 서민은 적당히 많이 하면 생긴다지만, 후. 그것도 남자 하나 먹여살릴 수는 있어야 뭘 하던지 말던지 하지."
"임신하면 좋은 점이 있나요?"
"일단 자식이 생기잖아? 인간은 어떨지 모르지만 엘프는 후손을 남기고 싶어하거든. 그리고 엘프는 자식이 귀하다 보니까, 정부에서 보조를 많이 해줘. 아이가 생기면 태어난 후 성인이 다 될 때까지 보호자가 일을 안 해도 될 정도거든. 양육비에 교육비에 문화활동비에, 여가생활비에, 주거비에, 의복비 등등등 혜택이 얼마나 많은데? 일 안 하고도 200년 정도는 느긋하게 살 수 있어. 거기다가 양육이 끝나고 재취업도 공공기관에 알선받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하층민 엘프가 임신하면 인생역전이나 다름없는 거지."
'이거 생각보다 이세계 설정이 스고이한걸. 대체 어떤 찐따엘프덕후가 상상한 이세계가 이따구인지 원.'
나는 마음속 깊이 이 세계의 창조자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사무치게 표현했다. 그저 압도적 감사! 그저 압도적 고마움!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도 젊은 때 빡세게 벌어서 열심히 시도해보려고, 남편을 구하기는 힘들겠지만."
"남편이 없으면 어떻게 시도(?)를 해요?"
"어떻게긴. 업소에 가는 거지."
"아하."
그래서 창남이 필요한 거였구나.
"그것도 젊을 때나 해야 그나마 임신이 잘 되지. 대장처럼 저렇게 나이 들면 소용도 없어."
"그래요?"
"그래. 저렇게 가슴 나오기 시작하면 여자로선 끝이지."
그 탐스럽게 농익은 과실이 좋은 건데, 슴알못이구만.
"그리고 그거 알아? 대장이 저 나이 먹도록 현장에서 노예 잡으러 뛰어다니는 이유? 원래 대장 정도 경력이면 사무관리직으로 올라앉아 있어야 정상이거든."
"뭔가요? 뭐 사연이 있나요?"
"들으면 놀랄껄? 셀렌디네 대장. 저렇게 깐깐한 척을 하면서, 예전에 술 먹고 호송하던 남자노예한테 손을 댔다더라."
"진짜요?"
"진짜라니까. 우리 선배 중에 직접 그 장면을 본 선배도 있어."
"그럴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그치? 더럽게 깐깐한 척 하면서 말이야. 세 번이나 엉망진창으로 쥐어짜서 노예가 실신했다더라고."
"고작 세 번요? 그걸로 실신?"
내 반응에 페라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강조했다.
"응? 아니 세 번이라니까! 세 번! 보통 남자는 죽어라 해 봤자 두 번 아냐?"
"아. 뭐. 두 번이나 세번이나 뭐 그게 그거죠."
"남자는 다 그런 거 아냐?"
"뭐. 풉. 그러면 그런 걸로."
내가 피식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페라는 빙긋 웃으며 도발했다.
"뭐야. 잘난 척 하는 거야?"
"잘난 척이 아니라 경험에 근거한 확실한 자신감입니다."
"한번 하면 쓰러질 것 같은데.. 인간은 엘프보다 체력도 적다고 들었고."
"뭐 직접 몸으로 경험해보면 답을 알게 되겠죠."
"뭐? 이게.. 풉. 자신감 하나는 마음에 든다. 나 혹시 너 싼 곳에 팔리면 좀 보러 갈까?"
"팔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뭐 있어요? 오늘 밤에라도 하면 되지."
내 도발에 페라는 혹시 누가 들었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작게 대답했다.
"야. 안 돼. 너무 막 간다 너."
"왜요?"
"이렇게 심심풀이로 이야기하는 정도라면 몰라도, 진짜 손 대는 거 누가 보면 나 짤린다고?"
"이따 밤에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살짝 하면?"
페라는 당황해 얼굴이 붉어졌다.
"야. 뭐, 뭐라는 거야? 남자가 왜 이래. 좀 이상한 애네."
"에이 뭐야. 쫄았어요?"
"남자가 먼저 하자고 하다니 이상하잖아?"
나는 빙긋 웃으며 속삭였다.
"이상하면 어때요? 맛있으면 그만이지."
내 속삭임에 페라는 꼴깍 침을 삼켰다. 생긴 것은 영락없는 청순미녀인데 눈에서는 육욕이 번들거리는 것이 보기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나는 놀리듯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몰래 먹는 게 더 맛있다던데?"
"..너. 이 자식. 나 가지고 장난치는 거지?"
페라는 갑자기 들어온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진심인데요."
"야. 이거.."
페라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내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너 혹시 병 같은 거 있어?"
"아니요."
"그럼 왜 그러는 거야? 남자가 이럴 이유가 없는데."
나는 씨익 웃으며 정면으로 강공을 날렸다.
"페라한테 박고 싶어서요."
내 치명적인 한 마디에 페라의 동공이 자명종처럼 흔들렸다. 이건 원래 세계로 따지면 여자 노예가 호송하는 용병에게 다리를 쫙 벌리고 박히고 싶다고 아양 떠는 수준이었다. 뭔가 수상해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달콤한 미끼였다.
"아 맞다, 쟤는 어떻하고?"
동공지진하던 페라는 문득 떠올랐는지 레오를 가리켰다. 그렇다. 호송차에는 레오가 같이 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레오에게 눈을 찡긋했다. 레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전 아무것도 못 듣고 못 본 걸로 할게요."
페라는 성욕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하곤 수상스러운 미끼를 입에 넣을까 말까 의심하는 야수처럼 우리에게 캐물었다.
"뭐야 이거 혹시. 둘이 짰냐? 혹시 나 어떻게 하고 탈출이라도 하려고 그래? 그만둬. 만약 도망친다고 해도 여기 시골 처녀들이 얼마나 독한데."
나는 시골 처녀도 좋지만 일단 눈앞의 페라가 이름값을 하게 해주고 싶었기에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그런거 아닌데요? 뭐하면 난 호송차에서 안 나가도 좋아요."
"그럼 뭐 어떻게 해? 내가 들어가? 나 열쇠도 없어. 열쇠는 대장님이 보관하고 계시거든."
"열쇠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창살 사이로 내 '일부' 만 나가면 되니까."
나는 누더기 안쪽에 불륵 솟아오른 그것을 가리켰다. 페라는 뭔지 이해하고 감탄했다.
'거기만 꺼내서 한다고? 좀 흥분되는데?'
상황이 마음에 드는지 페라의 눈동자가 거반 넘어와 있었다.
"너. 헛수작 부리는 거 아니지?"
페라는 그러나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 외견상 노예와 감시자라는 서로의 상황을 생각하면 어떻게 하든 의심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으리라. 나는 내 특기인 번뜩이는 지성을 발휘했다. 지금은 다가갈 때가 아니라 살짝 물러날 때다.
"뭐, 페라가 싫으면 어쩔 수 없죠. 난 하고 싶지만 정 마음이 불편하다면야."
"자, 잠깐. 안 한다곤 안 했어."
"그러면 어쩔 거에요?"
페라는 고민에 잠겨 끙끙거렸다. 원래 세계였다면 어디 모델이라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외모인데 나와 하려고 저렇게 끙끙대는 걸 보니 귀여웠다.
"..귀여워라."
작게 중얼거린 혼잣말이 페라의 귀에 닿았는지 페라가 발끈했다.
"뭐? 너. 남자 주제에 건방져."
마력인지 뭔지 있어서 나보다 강할 지 모르지만, 겉보기에 페라는 슬림한 미녀였다. 나름 무섭게 이야기한다고 하는 것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자친구가 '너 죽을래! 우쒸!' 하고 애교떠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건방진 남자랑 할 거에요? 말 거에요?"
이어진 도발에 페라는 결국 넘어오고야 말았다.
"너 진짜.. 내가 어떤 여잔지 그 몸에 똑똑히 교육시켜주지. 기다려. 그.. 오늘 밤 자율 불침번 꼭 하고싶다고 하고 올 테니까."
페라가 씩씩거리며 떠나자 나는 작게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오도 감탄했다.
"형님. 대단하세요! 보초를 구워삶으시다니."
"훗. 뭐 이 정도야."
"어떻게 호송차에서 벗어나실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엄청난 계획이 있으신 거죠?"
엄청난 계획? 아니, 그런 거 전혀 없는데.. 근데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무계획이라고 하기는 좀 미안했다.
"맡겨두라고."
"역시 형님! 그 잠깐 사이에 탈출이 불가능한 호송차에서 도망쳐 굶주린 엘프 처녀들을 피해 도망칠 천재적인 계획을 짜시다니. 저는 형님만 믿겠습니다!"
나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저 무한한 신뢰와 존경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야. 임마 니가 말해놓고도 모르냐. 세상에 그런 계획이 어딧어. 저렇게 순진하니까 젊은 놈이 도박에 빠져서 신세 다 망치지.
라고 하기엔 초롱초롱한 레오의 눈이 너무 귀여웠다. 나도 모르게 손이 레오의 머리로 갔다.
"저 형님? 왜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으세요?"
"그냥. 귀여워서."
레오는 좀 곤란해하더니 가만히 손길을 받아들였다. 뭔가 고양이 같은 느낌이다. 뭐, 고양이는 사설 경마같은거 안 할 테지만.
잠시 후, 페라가 다급하게 돌아왔다.
"불침번 두 번째 조야. 원래 둘이서 서는 걸 나 혼자 선다고 했으니까. 단단히 각오하라고."
"알겠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페라는 흥분해서 콧김을 뿜었다. 와, 근데 진짜 예쁜 얼굴은 콧구멍을 벌릉거려도 예쁘구나. 놀랍다.
"좋았어."
그 이후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여행용 식량인지 단단한 빵과 과실즙같은 걸 식사로 주고 일 보고 씻으라고 욕실에도 한번 가게 해 주었다. 욕실이라고 해봤자 마구간 구석에 원래는 말을 씻기는 곳이었지만 씻을 수 있는 게 어딘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밤.
하필 페라가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 순번인 탓에, 나는 잠을 안 자고 기다려야 했다. 불침번인 엘프와 노가리라도 까 볼까 했지만 첫 번째 조 두 명은 만만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걸어도 말 걸지 마라. 잠이나 자라. 정도로 대꾸할 뿐이었다.
'페라니아가 유난히 풀린 거였군.'
아니면 둘이 같이 불침번을 서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어떻게든 구슬려 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한편 레오를 보니 무릎을 껴안은 자세로 코를 살짝 골면서 잠들어 있었다.
'이 자식 이거 그 때까지 잠 안 잘 거라더니.'
잠자는 척만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마취당한 다람쥐처럼 몸을 말고 곯아 떨어져 있었다. 나는.. 나는 잠이 올 리 없었다. 호송차 창살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에 쏟아질 것처럼 가득한 별을 보며 엘프의 달아오른 육체를 농락할 상상을 할 뿐. 그 생각만으로 쮸뿌쮸뿌가 불끈불끈했다.
'시간 참 안 가네.'
호송차에 갖혀 뭐 할 게 있을리도 없다. 이야기도 못 하겠다. 이럴 땐 뭐다?
"흡! 흐읍!"
스쿼트다. 자고로 그런 말이 있다. 문제가 뭐든 간에, 정답은 스쿼트를 하는 것이다. 남자는 하체. 하체는 스쿼트. 고로 남자는 스쿼트다!
"흐읍!"
아닌 밤중에 내가 배에 딱 힘을 주고 갑자기 일어나서 스쿼트를 하자 불침번을 서던 엘프들이 당황했다.
"뭐야? 잠깐 기다려!"
"네? 왜요?"
"싸려는 거 아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닌데요. 내가 뭔 짐승도 아니고."
"그럼 왜 자다 말고 그런 자세를 하는 건데?"
"이게 스쿼트란 트레이닝인데요. 하체 발달하는데는 최고에요."
"스쿼트? 뭔 말이야? 트레이닝이라면.. 무슨 훈련의 한 종류인가?"
"뭐 그런 거죠. 잠이 안 와서 몸 좀 풀 겸. 어때요. 한 번 해 보실레요?"
"됐다. 적당히 하고 자라."
불침번을 서는 엘프들은 조금 궁금은 한지 이쪽을 힐끗힐끗 보았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스쿼트를 계속했다. 세 세트 정도 하니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후우. 흡!"
호송차가 좀 더 넓었다면 이것저것 하겠는데, 뭐 아쉬운대로 어쩔 수 없지. 그나마 운동을 하니까 시간이 금방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밤은 깊어오고 불침번 첫 번째 타임도 어느덧 끝났다.
"씨익 씨익"
흥분해서 콧바람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페라니아가 완전무장을 하고 혼자 나왔다. 머리 끝까지 응응에 대한 기대감이 폭팔 직전까지 차올라 있어 표정이 장난 아니었다.
"교대다."
"드디어 끝인가. 근데 페라 너 혼자야?"
"사정이 좀 있어서. 괜찮아. 뭐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그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뭐 상관 없겠지. 난 자러 들어간다."
교대를 마치고 들어가는 엘프 추노대원들이 건물 안으로 사라지기 무섭게 페라는 호송차로 다가왔다.
"약속했지? 빨리.."
나는 피식 웃었다. 안달이 난 게 너무 귀여운데? 좀 놀려 볼까?"
"뭐가요? 무슨 약속?"
내 영문을 모르겠다는 대답에 페라의 얼굴이 급속도로 식어갔다.
"어? 안해줄꺼야..?"
거의 화가 나서 울 것같이 된 표정이 엄청 꼴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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