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3.
* * *
나는 저렇게 어려보이는 소녀가 장로라는 것이 신기했다.
"잘 됐군. 노예상 길드에서 기뻐하겠어. 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머물고 갈 건가?"
"네. 하룻밤 머무르려고요."
셀렌디네는 나에게 냉혹하게 틱틱대던 모습과 달리 뭔가 주춤주춤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아, 저기, 동생분께서는 잘 계시는지요?"
"아이린 말인가? 뭐 잘 지내지. 맨날 '영원의 도시'의 업소가 잘 되서 바쁘다고.."
"장로님, 꼭 동생분께 이번에 저 노예상 길드에 잘 좀 이야기해달라고 해 주십시오. '영원의 도시' 에서도 손꼽히는 업소의 마스터시면 분명 길드에서도 들어줄 겁니다."
이레네는 초조해하는 셀렌디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하하. 걱정 말게나. 자네가 예전에 실수를 한 번 하긴 했지만 다 지난 일 아닌가. 안 그래도 내가 벌써 이야기를 해 놨어. 내 동생 말로는 다음번 인사이동 때 힘을 좀 써볼테니 기대해도 좋을 거라고 하더군."
"아..! 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냐, 아냐. 맨날 현장에서 일하는 셀렌디네 대장이 수고하지 나야 뭐."
"혹시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이 사람이, 내가 어디 그런 거 바라겠는가. 그냥 자네가 일 열심히, 성실히 하는 거 다 아니까 그런 거지. 그보다 좋은 날이 머지 않았는데 괜히 사고나지 않게 조심하게. 마을 처녀들 분위기가 영 심상치가 않아. 또 사고 나면 다 물건너가는거 알지?"
"아, 넵!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 머무는 건가. 그런데 마을 처녀들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설마 엘프들이 덮치러 오기라도 하나? 아까 애들도 나를 신기해 하는 것 같던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레오에게 물었다.
"레오. 엘프는 여자가 성적으로 적극적이라고 했지?"
"네."
"얼마나? 혹시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둘만 있는다 하면.."
"..그럼 바로 여자가 덮치죠."
"아.. 그 정도야? 좀 심한데."
"남자가 적으니까 여자들도 필사적인거죠. 기회를 놓치면 안 되니까요."
"남자가 수가 적어?"
"많이 적어요."
"왜? 태어나는 건 똑같은 거 아냐?"
"아니에요. 엘프는 태어나기 전에 세계수에서 성별을 정할 수 있거든요. 물론 다들 마력을 쓸 수 있는 여자아이를 선호하죠. 일손이 필요한 이런 시골에서는 더하고요."
"그렇군."
"진짜.. 그나마 창남도 도시에서 하는 게 낫지, 이런 시골은 진짜 최악이에요. 시집 못간 나이든 시골 처녀 엘프들과 굶주린 군인들 뿐이니까요. 좀 교양 있는 여자들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요. 야만적이죠."
"야만적이라니. 흠흠. 어우야."
"열악한 시골 업소에서는 심지어 여러 명하고 동시에 시킨다는 소문까지 있어요. 으웩."
"워우.. 워우오우아우야."
"도망치더라도 오늘 밤만은 피하는 게 좋겠어요. 마을 처녀들의 손에 잡히면 차라리 노예 신세가 나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성적으로 끔찍하게 착취당하게 될 테니까요."
"음. 명심해 둘게."
나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어떡하든 탈출하고 만다. 반드시!'
시골 엘프 처녀들과 집단 뿅뿅은 못 참지. 내가 굳건히 결의를 다지는 사이에도 엘프 추노대원들은 머무를 준비를 하며 분주하게 오갔다. 그 동안 호송차는 마을회관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그대로 멈춰 있었는데, 저 멀리서 섹시한 엘프 마을 처녀들이 한둘씩 나타나더니 지나가는 척 하면서 힐끗힐끗 이쪽을 훔쳐봤다.
'저거 나름 안 보는 척 하는 걸 텐데.'
아닌 척, 그냥 지나가는 척 끈적한 시선이 나와 레오에게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오우야 엘프 시골처녀 시선 수준 보게. 무진장 달콤끈적한게 시선에서 꿀이 떨어질 것 같다. 내가 기분 좋게 시선을 즐기는(?) 것과 달리 레오는 시선을 받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 모양이었다.
"으으. 진짜 싫어."
과연 나이든 시골 처녀들이라더니 하나같이 미드가 우량했다. 물론 셀렌디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슬림하기 그지없는 추노대원들에 비하면 차이는 확연했다. 아마 원래 세계로 따지자면 팔팔한 나이의 사설경호원들과 배가 나오기 시작한 40대 농촌 총각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꿀꺽."
지나가면서 침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나는 아리따운 엘프 처녀에게 빙긋 웃으며 추노대원들에겐 안 보이게 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헉!"
내 미소를 받은 엘프는 숨을 헛들이키며 당황하더니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을텐데 안타깝게도 훔쳐 볼 배짱 이상으로는 뭐 없는 모양이었다. 둘만 있으면 덮친다더니 저건 뭐 그냥 순둥이 아냐? 흠, 이거 앞길이 걱정인걸? 아냐. 오히려 저런 애를 거꾸로 농락하는 게.. 므흣..!
"형님. 무슨 생각 하시나요? 표정이."
"뭐? 표정이 왜."
"아니 뭔가 좀."
느끼느끼하다고는 차마 말 못하고 우물거리는 레오를 보며 나는 뿌듯했다. 엘프 처녀의 시선으로 확실히 알았다. 내 번득이는 이성으로 추론한 바에 의하면 이건 정조역전에 여성상위에 살짝 미추역전이 들어간 엘프물 이세계가 틀림없다.
"레오."
"네 형님?"
나는 내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레오에게 질문했다.
"아까 장로라는 이레네라는 엘프하고 셀렌디네 대장하고 비교하면 어때?"
레오는 망설이지 않고 즉답했다.
"이레네 장로가 낫죠. 저 나이가 되도록 B컵 이하면 정말 열심히 노력한 거에요. 셀렌디네의 흉측한 그건, 보기만 해도 정말이지, 으. 그 지방덩어린 좀 숨기고 다니던지."
숨기긴 왜 숨겨. 그런 아까운 짓을.
"그리고 시골이라도 장로라면 공무원이잖아요? 노예상 길드의 파견추노대 비정규직 중간관리자인 셀렌디네하고는 비교가 안 되죠. 하긴 관리도 돈과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니까 당연한 건가.."
"음. 그렇구나."
이런 신세에서도 여성평가에는 가차없는 레오였다. 나는, 뭐 솔직히 이레네라는 장로는 여자답다기보다는 레오하고 닮은 게, 잘 봐줘야 귀욤한 정도여서, 여자로서 매력이 있냐고 한다면 그다지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반대로 셀렌디네 같은 경우는 실루엣만 봐도 발기할 정도로 농후한 여성의 매력이 넘쳐났는데 , 레오의 평가는 완전 정 반대였다. 그나저나 여성 평가에 경제력이 빠질 수 없다니. 이쪽 세계 여성엘프는 서글픈 존재구나.
잠깐 레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상황이 정리가 되었는지 셀렌디네가 나와서 말했다.
"마을 처녀들이 심상치 않다고 하니. 호송차는 여기에 두고 밤새 번갈아 보초를 서도록."
엘프 여전사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꼭 그래야 합니까?"
"힘든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혹시 수당은.."
"자율잔업이니 수당은 없다."
엘프 여전사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자율이란 말은 뒤지기 싫으면 알아서 하라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엘프 여전사들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우릴 호송차에 그대로 둔 채 밤을 보낼 생각인것 같다. 나는 황당해서 셀렌디네를 불렀다.
"여기서 자라고요?"
푹신한 침대와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까진 안 바라지만 마차의 딱딱한 바닥은 좀 아니지.
셀렌디네가 딱딱하게 대꾸했다.
"담요를 가져다주마."
"담요.."
요새는 군대도.. 군대도 이러진 않겠다. 뭐 춥지도 않고 또 노예 신세니까 너그럽게 생각해서 야외취침을 감수해준다고 하더라도 호송차에 갇혀 있으면 시골처녀들과 으쌰으쌰할 찬스는 저멀리 날아가버리는 것 아닌가. 그러고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지 승진좀 하겠다고 이러는 것 같던데.
"말 잘 들을게 건물 안에서 자게 해줘요."
그러나 셀렌디네는 단호했다.
"귀찮게 하지 마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 말을 남기고 휙 돌아서서 육덕진 엉덩이를 흔들며 사라지는 셀렌디네. 엉덩이도 괘씸하고 하는 짓도 괘씸하다. 나는 작게 혼자 중얼거렸다.
"빵뎅이만 오지게 큰게 더럽게 깐깐하네."
내 중얼거림을 듣고 혼자 보초를 선 엘프 여전사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상사 욕하면 좋아하는건 어느 세계나 공통인가. 나는 씨익 웃으며 방금 웃음을 터트렸던 엘프 여전사에게 작업을 걸었다.
"상사가 저래서 힘들죠?"
엘프 여전사는 내가 말을 걸자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심스레 대답했다.
"딱 보면 느껴지지? 내가 진짜 답답해서."
조잘조잘 이야기하는게 딱 보니 이제 막 이병 달고 살짝 풀리기 시작한 느낌이 났다. 업무에 조금 익숙해져 뭔가 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신입 정도일까. 역시 추노대원이라고 다 깐깐한 엘프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나는 엘프 여전사를 위아래로 흘깃 훑었다. 예쁘고 희고 깨끗한 피부에 백금발인 전형적인 엘프 외모였다. 셀렌디네와 비교하면 미드는 많이 빈약했지만 몸매는 더 매끈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솔직히 원래 세계에서 내가 이런 초절정 미녀랑 노가리 깔 기회가 언제 있었겠는가. 외모가 하도 우월해서 겉으로만 보면 좀 쫄리기도 했지만, 나는 남자란 거 하나 믿고 강하게 나갔다.
"이름이 뭔지 알려줄 수 있어요?"
내가 젊은 엘프 여전사의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엘프 여전사의 표정이 '어쭈. 이것 좀 보게' 하는 표정이 되었다. 노예(아직 미정이긴 하지만) 주제에 활기차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펠라니아야. 그냥 페라라고 불러."
나는 이름을 듣고 나도 모르게 호송차의 창살 사이 간격을 내 다리 사이 그것의 두께와 비교해보았다. 음. 가능! 조금 낄 것 같긴 하지만.
"페라니아는 몇살이에요?"
"쉿. 이쪽 똑바로 보지 마. 이야기 하는 거 들키면 곤란해져. 딴 데 보고 이야기 안 하는 것처럼 말해. 아, 난 올해로 221살"
나는 페라의 말대로 엉뚱한 곳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젊은 편인 거죠? 인간이라 잘 몰라서."
"뭐, 부대에선 거의 막내지. 넌 몇 살이야?"
"스물여섯이요."
"헉."
"왜요?"
"미쳤네. 돌았어.. 어우.. 이거 완전 불법 아냐?"
엘프 입장에서는 미성년자는 커녕 XX학생이 될락말락한 정도의 나이인 것 같았다.
"인간은 나이 빨리 먹잖아요."
"어우. 끝내준다."
"젊은 남자 좋아해요?"
"좋긴 한데 너무 젊은 남자는 싫어."
"스물여섯은 어때요?"
"엘프라면 완전 범죄인데. 흠. 솔직히 인간은 모르겠네. 니가 스물여섯이라고? 엘프로 치면 이백 살은 넘어 보이는 몸인데. 근데 인간은 원래 그렇게 몸이 좋아?"
"왜요? 엘프 남자는 어떤데요?"
"키 큰 애들도 몸은 니 옆에 있는 애 같은 게 보통이야."
키는 커도 비실거리는 건 다름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 이거 나 창남으로 상당히 괜찮은 거 아닌가?
"나 혹시 창남으로 어떨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 그냥 나쁘지 않다? 정도?"
엘프 미녀에게 나쁘지 않다고 들은 것만 해도 만족스럽지만, 나는 혹시 더 나아질 방법이 없을까 물어보았다.
"제 외모는 어때요?"
"너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니?"
"엘프들의 취향이 궁금해서 그래요. 어디에 얼마에 팔릴 지 모르니까. 엘프 시선으로 보기에는 내가 어떤지 궁금해서요."
"음. 아까도 말했지만, 진짜 나쁘진 않아. 어차피 남자는 세우고 싸기만 할 줄 알면 되니까. 너 성기능에 문제는 없지? 그럼 됐지 뭐. 얼굴은 굳이 따지자면 한 중상의 하 정도?"
중상의 하는 뭐냐. 줄 거면 중상의 중을 주던지.
"아무튼 남자는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성기능! 남자는 성기능이지! 아 그러고 사근사근하게 여자 기분 적당히 맞춰주는 것도 중요하고. 그래도 역시 남자의 가치는 횟수와 량이지. 여성에게 중요한 건 일단 임신이니까."
"임신이요? 왜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