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2.
* * *
"아무튼, 귀여운 건 넘어가고, 인간과 엘프 남자는 달라?"
"아뇨 비슷해요. 저는 갓 성인식을 치러서 어려 보이는데, 팔십 년 정도만 지나면 형님처럼 키가 클 거에요."
"비슷한가 보구나."
"네."
그건 나쁘지 않았다. 남창이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외모에서 감점이 있으면 곤란하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우리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 거지?
"아, 저기 레오. 혹시 우리가 지금 어디로 붙잡혀 가는 건지 알아?"
"태초의 세계수가 있는 영원의 도시로 가고 있을 거에요. 나라에서 가장 업소가 많은 도시죠."
'대도시로 가는 건가.'
내가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데 레오가 질문했다.
"저기 형님. 형님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이름을.."
"나? 음, 여기 말로는 이상한 이름인데, 그냥 성만 해서 리(Lee)라고 불러."
"네. 형님. 그런데 저기 리 형님."
"응?"
"모, 몸이 멋지시네요. 형님처럼 단단하게 단련한 남자는 처음 봐요."
나는 뭔가 복잡한 기분이었다. 생긴 건 저래도 이 녀석 덜렁덜렁 남자란 말이지? 왜 내 대흉근을 저렇게 탐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걸까.
"멋집니다.(발그레)"
"아. 으. 응, 그래."
"남자들은 마력을 못 쓰니까 몸을 단련하는 사람은 드문데 말이에요."
뭐라고라? 이건 또 무슨 소리냐.
"뭐? 남자들은 마력을 못 써?"
레오는 내 대꾸에 오히려 당황했다.
"네?"
나는 세계관에서 피어나는 퐁퐁 풍기는 망스멜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어째 느낌이 영 안 좋은데.
"당연히 남자는 마력을 못 쓰죠?"
"어어.."
"형님이 계시던 세계에선 남자도 마력을 쓸 수 있었나요?"
"아냐. 음. 마력이라는 게 아예 없었어. 뭐. 암튼, 어떻게든 잘 되겠지."
"아, 네."
내가 찝찝해하는 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이거 여존남비라던가 그런 세계면 좀 싫은데.. 나는 이세계에 관한 정보를 더 캐 보려고 레오에게 말을 다시 걸었다.
"저기 레오."
"네. 형님."
"혹시 이 세계에선 여자는 존귀하고 남자는 비천하다던지.. 그런 거 있어?"
"네? 그건 뭐.. 딱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보통 여자들은 그냥 남자는 씨뿌리게 정도로 봐요.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돌보는 아빠가 되거나, 공부를 엄청 많이 하거나 해서 지위를 얻거나 하면 좀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아. 이거 정조역전 수준이 아니구나. 여성상위다. 읽는 사람도 엄청 드물고, 작가라곤 쩡에 뇌가 쩔은 씹덕 변태들밖에 없다는 그 장르다.
망.했.다.
그나마 여자들이 전부 엘프인게 다행인가. 근데 레오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예쁜 여성엘프들이 아무 남자나 따먹는다는 말이 아닌가. 그게 정말일까? 외모컷같은거 없나?
"그러면 그.. 남자가 창남이 되는 건? 뭐 아무나 되는 거야? 뭐 제한 같은 것 없어?"
"창남이요?"
"응."
"남자가 거기만 서고 아기씨만 나오면 상관없어요. 아, 그리고 여러 여자에게 안겨도 자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만한 정신력만 좀 있으면 되겠네요."
"그럼 특별히 조건은 없다는 거군. 흠흠. 그러면 어떤 사람이 보통 창남을 해?"
"노예들이요. 가끔 신세 망친 시민 계급들도 드물게 있고요."
창남에 대한 인식은 역시 사회 밑바닥인것 같았다.
"그, 창남을 찾는 손님들은 누구야?"
"운 좋으면 좋은 업소로 가서 귀족엘프들에게 봉사하겠지만 운이 없으면.. 아까 보셨죠?"
"누구?"
"그 추노대장이요."
"아. 그 쌔끈한?"
"네?"
"음?"
"쌔끈요? 그게 무슨 말이죠?"
"어, 음, 글쎄? 내가 통역구슬을 잘못 먹었나?"
"나이먹어서 가슴은 커지고 엉덩이도 나오고 허벅지도 굵은 여자로서 매력이 밑바닥인 토나오는 여자라는 뜻인가요?"
"에?"
말하는 투를 보니 저 섹끈한 엘프 밀프는 원래 세계로 치면 오십대에 얼굴에 기름기 질질 흐르는 배 나오고 대머리인 아저씨 정도의 매력을 지닌 걸로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닌가요? 형님?"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뭐 그런 거지."
"그쵸? 하아. 만약에 맨날 저런 여자에게 당해야만 한다면 차라리 죽어버릴 거에요."
"어, 음. 뭐 그렇겠지."
좋아 죽지 않을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궁금한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혹시 이 세계에서 좋은 여자 엘프란 건 어떤 엘프야?"
좋은 여자 엘프라니까, 레오 이 녀석. 갑자기 눈이 반짝거린다.
"조건은 많지만 일단 첫 번째로는 가슴이 작아야죠.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슴이 B컵 이상이면 아웃이에요 아웃. 나이가 칠백살이어도 관리만 꾸준히 하면 작은 가슴을 유지할 수 있다고요. 큰 가슴이라니 정말.. 으으.. 자기관리도 못하고 게으른 여자들이 가슴이 흉하게 늘어지는 거에요."
"아하. 대충 알 것 같아."
한마디로 이쪽 세계에서의 여성엘프의 가슴은 원래세계 남자의 뱃살과 같은 취급인 것 같았다.
"머리카락은 형님처럼 흑발이면 좋지만 저는 금발도 괜찮아요."
"흑발? 흑발은 왜?"
"하이엘프 순혈 중에 흑발이 많다고 하거든요. 하지만 머리색보다는 일단 여자는 경제력이죠. 흔한 금발이어도 돈이 많으면 괜찮아요."
"어. 음. 그리고?"
"몇 번 강조하지만 돈이 많아야 하고.. 또 나한테만 일편단심이면서도 육체적인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아야 해요. 하지만 관계를 가질 때는 엄청 잘해야 하죠. 또 말 안 해도 내 맘을 다 알아줘야 하고 언제나 내 편이어야 하고.."
어째 듣고 있자니 묘하게 짜증이 나는 느낌이다.
"..뭐 이제는 전부 소용없지만요. 흑흑."
아니 왜 갑자기 우냐. 근데 이녀석 남자 주제에 얼굴이 예쁘장해 가지고선 우는 얼굴이 반칙 수준이다.
"야. 아오. 쫌. 울지마."
"네 형님. 흑. 아아. 전 그냥 귀족영애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니 그냥 좀 돈 많고 자상하고 나한테 충실한 여자 만나서 오순도순 살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그러냐. 안됐네. 근데 너는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냐?"
"그, 사설 정령마 경마를 하다가 사채를 쓰는 바람에."
하이고, 이 자식. 불쌍하게 생각했던 거 돌려내! 이거 완전 자업자득이구만. 생긴 건 순진순진 소녀소녀하게 생긴 놈이 뭐? 사설 경마? 어린 놈이 정말. 진짜 생긴 것만 아니었으면 정신 좀 차리라고 후드려 패주고 싶었다.
"중간까진 꽤 벌었는데 마지막 레이스에 다 꼴아박는 바람에.."
"어.. 그래.."
"형님은 어떻게 된 건가요?"
"나? 나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안개에 휩싸여서 그냥.."
여기하곤 정조가 역전되어 있는 세계에서 헬스하다 집에 가는 길에 전이되어 왔다고 하면 이해할까?
"여기하곤 많이 다른, 그야말로 이세계에서 왔다고나 할까."
"이세계요?"
"거기선 남자가 더 적극적이야 보통."
"아, 네에.."
레오 이 녀석. 갑자기 나를 보는 눈이 새초롬해진다. 어째 슬쩍 거리를 두는 게, 아마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자식이.'
나는 레오의 앙증맞은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아얏! 왜 때려요 형님!"
"나 안 미쳤다."
"헉? 어떻게 제 생각을?"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는 레오를 보곤 나는 피식 웃었다. 이 녀석. 아무래도 허당끼 있는게 영 변변찮을 것 같은데, 얼굴이 너무 고와서 미워할 수가 없었다.
"얼굴에 다 보인다. 이 녀석아."
레오는 표정을 읽은 게 뭔가 대단해 보였는지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녀석. 뭔가 내버려두면 어디서 사기라도 당할 것 같은데.'
뭔가 안타까워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뭉글뭉글 드는 게, 덜렁덜렁 주제에 너무 귀엽게 보여서 뭔가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형님?"
"왜?"
"아니 뭔가 저를 느끼하게 보시길래."
"아냐. 신경쓰지마."
"네에.."
뭔가 찝찝해하던 레오는 대화하던 것을 멈추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흑.. 흐윽.."
'이자식 이거 또 우네.'
사내녀석이 눈물을 흘리는 게 참 뭐했는데 생긴 것 때문에 되게 잘 어울렸다.
'사설경마 하다 끌려왔으면서. 누가 보면 비련의 여주인공, 아니 남주인공인 줄 알겠다.'
계속 소리 죽여 우는 걸 보자니 뭔가 불쌍해졌다.
'그래도 나야 뭐 최악이 밀프엘프들하고 실컷 으챠으챠 하는 거지만, 이 녀석은 아니지. 불쌍한 녀석. 자기 앞가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따지고 보면 나나 레오나 같은 처지인데,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아랫배에 인장 찍고 목에 쇠고랑을 찬 것 치곤 참 느긋했다. 노예로 팔릴 신세라고는 하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대가 됬다.
'엘프 전용 창남이라니. 세계관은 좀 그렇지만 그래도 끝내주는데? 하꼬라도 이세계 전이라 그런가? 그러고 보니 이 엘프들, 창남으로 팔아넘긴다고 했었지? 혹시 팔리기 전까지 가만 놔두기만 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창살 너머에 여리여리한 젊은 엘프 여전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노예를 팔기 전에 건들거나 하지 않나요?"
엘프 여전사는 내 질문의 의도를 오해하고 도리어 나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라. 우리는 판매 전 상품을 건들지 않아. 만약에 그러려는 엘프가 있다고 해도 대장님이 가만히 안 계실 꺼다."
"아, 네."
"쓸데없는 걱정 말고 얌전히 있도록."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직업윤리의식이 투철한 엘프 추노꾼들은 노예에게 손을 대지 않는 모양이다. 일단은 말이다.
"흠. 뭐. 방법이 있겠지."
나는 창살에 등을 기대고 느긋하게 호송차 옆에서 걷고 있는 엘프의 자태를 감상했다. 개인적으로는 아까 그 셀렌디네 대장같이 육덕진 느낌이 있는 탄탄한 몸매가 극취향이었지만 눈앞의 모델같은 하늘거리는 체형도 싫지는 않았다. 뒤에서 보자니 걸을 때마다 골반과 엉덩이가 흔들흔들 하는 것이 매우 흡족스러웠다. 몽롱하게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애플힙을 보고 있는데 레오가 귀에 속삭였다.
"형님.. 방법을 찾고 계신 건가요?"
"으음. 그렇지."
"저도 돕겠습니다."
"응? 뭘 도와?"
"도망칠 방법을 궁리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표정이 진지하셨는데."
진지하게 고민하기는 했다. 혹시 저 엉덩이에 코박죽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도망? 내가 도망을 왜 가? 샬랄라 엘프랜드 자유섹스권을 목에 사슬을 채워서까지 끌고가서 발급해 주겠다는데 그저 감사합니다지.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돌았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대충 둘러댔다.
"뭐, 오늘 밤에 좀, 기회를 노려볼까 하고."
"좋은 생각입니다. 형님.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해주세요. 저도 꼭 돕겠습니다."
"아, 응. 상황 봐서."
나는 대충 대답하고 다시 느긋하게 살랑거리는 엉덩이를 감상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죄수호송차의 바퀴는 끊임없이 굴러갔다. 마차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오늘은 여기서 머무는 모양이었다.
'건물이 엄청 고풍스럽네.'
커다란 나무와 어우러진 환상적인 건축물은 아름다웠다. 깔끔하면서도 우아한 양식으로 치장된 벽 위 천장에는 전구처럼 반짝이는 열매가 맺힌 나뭇가지들이 길게 뻗어 있었다.
'내려서 구경 좀 하고 싶은데.'
멈춘 호송차에 갇힌 채 마을을 둘러보는데 거리를 좀 두고 엘프 아이들이 호송차를 쫓아왔다.
"남자다 남자! 창남노예야!"
"더러워!"
"아냐! 불쌍해!"
아이들은 불쌍하다는 듯이 나와 레오를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천사처럼 귀엽게 생겨서(더럽다고 한 애새끼만 빼고 말이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안녕."
내가 인사를 하자 엘프 아이들은 꺄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창남이 말했어!"
"신기해!"
더럽다 운운한 시키 빼고 꺄르르 다른 아이들이 몰려들자 호송차를 지키는 엘프 여전사는 곤란해하며 아이들을 쫓아냈다.
"가까이 오지 마라! 혼난다!"
그리곤 나를 돌아보며 경고했다.
"그리고 너. 아무 말 말고 얌전히 있어."
나는 여전사의 경고를 순순히 따랐다. 마차는 이윽고 마을 회관처럼 보이는 큰 건물 앞에 도착했다. 회관 앞에는 여러 모로 안타까운, 빈약한 몸매의 소녀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망친 남자 노예는 잡았나?"
셀렌디네는 자기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어린 소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 이레네 장로님. 거기에 더해 야생 남자 노예 한 명까지 포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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