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전 이세계에서 엘프의 노예가 되었다-1화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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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1.

* * *

"상태창! 스테이터스!"

나는 진심을 담아 소리를 질렀다.

"안 뜨네, 흠."

안타까웠다.

"이세계로 온 것 같긴 한데."

이게 무슨 일이냐고?

보람찬 헬스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안개에 둘러싸였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난데없이 숲 한가운데였다.

느낌이 딱 왔다.

이거 이세계 전이구나. 그럼 해야 할 것은 하나뿐. 나는 번뜩이는 지성을 발휘해 소리쳤다.

"상태창!!! 상태차앙!! 스테이터스!!"

그렇게 한동안 상태창을 불러 봤는데 아무것도 뜨질 않았다.

"이게 아닌가?"

여기가 만약에 이세계의 숲이 아니라 도봉산 뒷길이라면 참으로 민망한 일이었다. 탱크톱에 숏팬츠 쇠질러 차림으로 도봉산에서 상태창을 외치는 남자라니, 그건 그냥 미친놈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작게 한번 더 속삭여봤다.

"상태창.."

물론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아닌가. 아 쫌!"

뭔지 모를 걸 재촉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런데 이럴 수가? 눈앞에서 갑자기 뭔가 튀어나왔다.

"꺅!"

이 가녀린 비명소리는 내 비명소리가 아니다. 내 앞으로 튀어나온 뭔가의 비명소리다.

"뭐야?"

놀라서 보니 이럴 수가. 풀숲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자그마한 소녀였다. 새하얀 피부에 예쁜 얼굴에 금발, 푸른 눈, 그리고 길쭉한 귀.

"엘프?"

소녀의 티없는 피부에는 여기저기 긁힌 생채기가 잔뜩 나 있었고 얼굴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에 커다란 쇠고랑이 끼워져 있었다. 절대 장신구는 아니고, 자유를 제한한다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노예 소녀는 날 보더니 망설임 없이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Женщины гoнятся!(여자들이 쫓아와요!)"

"뭐, 뭐라는 거야?"

"Беги быстрo! Чтo делаешь!(빨리 도망쳐요! 뭐하는거에요!)"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해."

품속의 소녀를 다독이는데, 사방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Пoймай егo! Пoймай егo!(남자를 잡아라! 남자를 잡아!)"

"뭐, 뭐야?"

뒤이어 풀숲에서 다른 엘프들이 튀어나왔다.

"Пoймай егo!(남자를 잡아라!)"

"есть еще oдин му?чина!(다른 남자가 여기 또 있어!)"

"아이 씨, 뭐라는거야?"

"пoймай егo тo?е(이 녀석도 붙잡아!)"

뭔지 모를 말을 소리치며 수풀에서 튀어나온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엘프 여전사들이었다. 판타지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긴 귀에 롱보우과 롱소드을 찬 엘프 여전사들에게선, 뭔가 향긋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미녀 엘프들은 나에게 다가와 검을 뽑아 내 목에 가져다 대고 내 팔을 뒤로 꺾었다. 나는 뿌리칠까 하다가 수풀에서 엘프들이 더 나타나는 것을 보고 그만두었다. 다들 무기를 들고 있는데다가 수도 많고,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 내 팔을 쥔 힘도 만만찮았다.

"아야야. 말로 합시다 말로!"

내 말을 상큼하게 씹을 엘프들은 내 품에 안겨있던 소녀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끌어냈다. 붙잡으러 온 엘프는 소녀 엘프의 머리채를 붙잡고 비웃듯 말했다.

"ты думаешь, чтo смo?ешь сбе?ать?(너.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냐?)"

소녀는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대답 대신 엘프의 얼굴에 침을 퉤 뱉었다. 오우야. 상대는 칼도 들고 있는데 조그마한 소녀가 배짱이 대단하다.

"пoшли вы, суки!(망할 년들, 뒤져!)"

앙칼지게 뭐라고 내뱉은 소녀는 그 댓가로 뺨을 한대 얻어맞았다. 짝 소리와 함께 소녀의 고개가 돌아가더니 자그마한 뺨에 화끈거리는 손자국이 남았다.

"아니 왜 애를 때리고 그래?"

엘프라면 보통 평화를 사랑하고 얌전한 종족이 아닌가? 그러나 이곳의 엘프들은 좀 다른 것 같았다. 귀가 길고 예쁘고 몸매가 끝내주는 건 똑같았지만 말이다. 엘프들은 나와 소녀를 끌고 뭔가 대장같아 보이는 엘프에게로 끌고 갔다.

대장 엘프 여전사는 한눈에 보기에도 다른 엘프들과는 달랐다. 좀 가녀리고 슬림해보이는 다른 엘프들과는 다르게 꽤 볼륨 있고, 살집도 은근히 육덕지고, 몸에도 근육이 꽤 붙어 있었다. 한마디로 다른 엘프들과는 다르게, 건강미 넘치는 밀프였다.

'허벅지 끝내주네.'

나도 모르게 드러난 탄탄한 허벅지로 눈이 갔다. 엘프들이 원래 그런 것인지 잔털없이 매끄러운 피부는 티없이 깔끔했다. 그나저나 대퇴직근이 저 정도면 어지간히 열심히 몸을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감탄하며 탄탄벅지를 감상하는 와중에, 대장 엘프는 뭔가 부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부하 엘프 하나가 반짝이는 푸른 구슬 같은 것을 가지고 왔다.

"저건 또 뭐야."

내가 중얼거리는데 대장 엘프가 구슬을 하나 골라서 내게 다가왔다. 대체 뭘 하려고 하나 보고 있자니 대장 엘프가 입을 아 벌렸다.

"아!"

'아? 뭐 어쩌라고. 따라하라고?'

"아?"

나도 모르게 따라하자 대장 엘프는 그대로 내 아구창을 붙잡고 구슬을 집어넣었다. 아니 집어넣었다기보다는 쑤셔넣었다. 삼킨 듯 녹은 듯 구슬은 청량한 느낌과 함께 목구멍 안쪽으로 사라졌다.

"쿨럭 쿨럭. 뭐야 이건?"

"이제 말이 통하는 것 같군. 내 말이 이해되나?"

"어? 뭐지? 왜 말이 이해가 되지?"

"좋아. 통역구슬이 효과가 있군. 나는 추노대의 수색대장 셀렌디네다. 넌 누구지?"

"어, 저, 저요? 그게."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고 어물거리자 셀렌디네가 다시 물었다.

"소속이 어디지?"

"대한민국.. 국민이요?"

"안개가 데려온 방황자로군. 지금부터 노예길드 명의로 너를 야생 노예로서 포박한다."

"뭐? 야생 노예? 뭔 개소리야?"

"얌전히 복종한다면 노동 노예로 팔아주마. 만약 반항한다면 남창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남창? 뭔 소리야 설명을.."

남창이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뭘 좀 설명이라도 듣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목에 칼이 닿아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인류 공통의 예의다.

"그러면 노예 등록을 시작한다."

"예!"

엘프 여전사들은 대답과 함께 내 팔을 꺽은 채로 단단히 구속했다.

"가만히 있어. 얌전히 있으면 금방 끝날 꺼야."

귓가에 간질간질하게 속삭이는 미녀 엘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슬쩍 아래에 피가 쏠렸다. 겨우 그걸로 흥분하냐고 할지도 모르는데 목소리가 장난이 아니게 섹시했다.

"머리카락은 검은색, 종족은 인간으로 추정, 남자."

재빨리 빈 노예문서에 포획한 야생노예의 기본적인 사항을 휘갈겨 쓴 셀렌디네는 뒤이어 명령을 내렸다.

"옷을 벗기도록. 성별을 확실히 확인하겠다."

말을 벗기라면서, 실제로는 칼을 칼등이 살에 닿게 옷 안으로 거꾸로 집어넣어 옷을 그냥 쓱 베어버렸다. 탱크톱과 숏팬츠는 서늘한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뒤로 분리되어 떨어졌다.

'장난 아니게 날카롭네. 아까 반항 안 하길 잘 했다.'

"손을 치워라."

나도 모르게 손이 그곳을 가렸는데, 셀렌디네는 봐주는 것이 없었다.

'굳이 보고 싶다면야.'

손을 치우고 살짝 흥분한 그것이 모습을 드러네자 엘프들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나름 출중한 그것에 대한 칭찬인지 감탄인지 휘파람 소리를 휘익 내는 엘프들도 있었다.

"남자, 흉터 없음, 건장함, 외모 중, 길이 특상"

셀렌디네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더니 중얼거렸다.

"이건 좀."

'뭐가 좀인지 불안하게 만드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셀렌디네가 이어서 말했다.

"얌전히 굴면 노동노예로 팔겠다고 약속은 했다만, 아무래도 노동노예로 팔리기는 어렵겠군. 뭐 남창도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나쁜 직업은 아니니까."

분위기가 살벌하길레 나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기, 좀 물어봐도 될까요?"

"뭐냐. 특별히 한 가지만 대답해주지."

"혹시 남창이 되면 고블린이나 오크같은 걸 상대해야 하나요?"

"뭐? 귀한 남자를 대체 왜 그딴 것들에게 넘긴단 말이냐? 상대하는 건 엘프다!"

나는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엘프? 여기 있는 엘프?

"엘프라면 여기 계신 여성분들이시죠?"

"그렇다."

"저 남창 꼭 하고 싶습니다!"

셀렌디네의 얼굴은 꼭 현역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들은 징병검사관처럼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뭐?"

"그, 남창 하고 싶다고.."

셀렌디네는 대답 대신 서류에 뭔가 추가로 적어 넣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가능성 높음.."

나는 아무래도 변변찮은 내용인 것 같아서 뭐라고 할까 했지만, 반항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진짜 예쁘네.'

엘프들은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매가 끝내줬다. 셀렌디네는 부하 엘프에게 명령했다.

"노예의 인장을 가지고 와라."

노예의 인장? 그건 또 뭐지? 하고 보는데 욕이 절로 나왔다.

"어. 씁. 아니 저건"

지글지글 끓는 인두같은 인장에서는 뭔가 엄청 뜨거운 것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발버둥쳤다. 하지만 엘프 여전사들은 내 사지를 단단히 붙잡아 제압했다. 천천히 다가온 셀렌디네는 인장을 들어, 내 아랫배에 그대로 눌러찍었다.

"으아아아아!...어? 안 아프네."

의외로 인장은 좀 시원할 뿐 아프진 않았다. 근데 이게 뭐냐. 인장을 꾹 찍고 나니 뭔가 하트뿅뿅한 남사스러운 검은 타투가 아랫배에 새겨져 있었다.

"엘프는 인도적인 종족이라 마력인을 찍을 때 고통이 없는 방법을 쓴다."

셀렌디네는 내가 난리피우는게 우스웠는지 피식 웃으며 설명을 해 주었다.

"아. 네. 근데 이건 뭐하는 문신이죠."

"주인이 생기면 알게 될 거다."

그렇게 말하곤 셀렌디네는 휙 돌아서 버렸다. 뒤이어 부하 엘프들이 내 목에 가는 쇠고랑을 채웠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건가? 그렇게 쇠고랑을 목에 채운 다음에는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으라고 던져줬다.

"입어."

입는다기 보단 무슨 누더기 두르는 것 같은 옷이지만 불만스러워할 처지도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 내 다리 사이를 엄청 쳐다보는 절정의 미녀들의 시선이 매우 부담스러워서 나는 재빨리 옷을 입었다. 엘프 미녀는 옷으로 가려진 다리 사이를 더 보고 싶었는지 한참 시선을 보내다가 쇠고랑에 쇠사슬을 연결해서 내 목을 끌어당겼다.

"이리와."

"아야야."

개가 목줄에 묶여 끌려가는게 이런 느낌일까.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아무튼 엘프들은 나를 쇠창살로 만들어진 죄수 호송마차로 끌고 갔다. 마차 안에는 아까 나에게 안겼던 소녀가 먼저 가두어져 있었다.

"타."

나는 스스로 호송차에 올라 소녀 옆에 주저앉았다. 뺨을 맞았을 때 입술이 터졌는지 소녀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통역 구슬인가 먹었으니 말이 통하려나? 나는 소녀에게 말을 걸어봤다.

"괜찮니?"

소녀는 힘이 없는지 꿈지럭 고개를 돌려 겨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형님."

"어? 형님?"

소녀와 내 눈이 마주쳤다. 어라 이거 설마?

"너 남자야?"

"네. 남자니까 잡혀왔죠. 빨리 도망치시라니까."

"그땐 말이 안 통해서 뭔 뜻인지 몰랐어."

"아, 형님은 방랑자신가 보네요."

"방랑자?"

"마력이 짙은 안개가 끼면 종종 다른 세계의 사람이 섞여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을 방랑자라고 불러요. 방랑자 맞으시죠?"

딱 내가 겪은 일이었다.

"음. 나는 방랑자가 맞는 것 같네."

"그런 것 같았어요. 이 세계의 남자들 같지 않게 몸도 엄청 좋으시고."

나는 눈 앞의 소녀, 아니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의 남자는 다 이런가? 곱상한 얼굴에 보들거리는 피부, 고운 목소리까지, 도저히 남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귀여움이었다.

"너 진짜 남자야?"

"네."

진짜로? 이 얼굴로? 나는 머리가 띵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았다.

"아.. 그래.. 근데 너, 남자니까 잡혀왔다고?"

"네. 흑. 도망치려고 했는데."

"도망치려는 것 같긴 했는데."

소녀, 아니 소년은 입가의 피를 쓱 닦으며 허탈하다는 듯 말했다.

"저는 남창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요."

"남창이라면 아까 얼핏 들었는데 엘프를 상대하는 남창 맞지?"

"네."

"그게 나쁜거야?"

"남창이 하는 일이란 것이 뭡니까. 정식으로 사귀지도 않는 여자에게 범해진다니, 형님. 그건 남자에게 있어서는 안 될 굴욕이에요."

난 뭘 잘못 들었나 했다.

"응?"

"에?"

뭐가 문제냐는 내 얼굴과 참으로 큰 문제라는 소년의 얼굴이 마주쳤다. 순간 날카로운 지성이 번뜩이며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아. 이거 이런 종류의 이세계구나. 그 정조역전인가 하는 거. 좋아 이해했어."

"네?"

"아냐. 근데 너 이름이 뭐냐?"

"레오입니다. 제 5세계수 출신이에요. 형님은 인간이시죠?"

"응. 여기도 인간이 있니?"

"방랑자로서 인간이 가끔 잡힌다고는 들었는데 저도 직접 보는 건 형님이 처음이네요."

'아무래도 인간은 드문 건가.'

드물긴 해도 노예로 잡는 걸 보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혹시 인간 남자와 엘프 남자는 다르니? 엘프 남자는 다 너처럼 귀엽다던가."

"귀엽다니요. 형님."

근데 왜 볼을 붉히냐. 저게 덜렁덜렁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찝찝한 느낌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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