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노스페라투 (17)
* * *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데이지는 시뻘건 피를 토하며,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방울 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잠시 의식이 끊겨 있었던 건가?
실책이다.
금방이라도 다시 놓아버릴 것 같은 정신을 꽉 붙들고, 데이지는 자신의 몸상태를 점검했다.
내부에 데미지가 꽤 있다. 내장이 조금 상했나? 그래도 버틸만 했다. 마력으로 터진 상처를 억지로 지혈했다.
어깨가 조금 뻐근했다. 부러진 건가? ……다행이게도, 데이지는 스칼렛의 권속이었다. 그야 위대한 주인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의 권속으로서, 불사성에 가까운 재생력을 어느 정도 빌려올 수 있었기에.
‘큿.’
뚜둑, 뚜두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달라붙은 뼈의 상태를 점검한 데이지가, 재차 울컥 올라오는 핏덩이를 퉤 뱉어냈다.
……그리고, 아까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충격파에 잠깐 맛이 간 걸까?’
괜찮았다. 콰득! 절로 비명이 나올 것 같은 아찔한 고통을, 입술을 짓씹어 핏물이 주륵 흘러내리며 참아내자, 맑게 시야가 돌아왔다.
‘……다른 사람은?’
시야를 회복한 데이지가, 두 눈으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괜찮니, 데이지.”
“주인님…?!”
데이지는 기함했다. 그녀가 사랑해 마지 않는 사랑스러운 주인님이, 그녀의 앞에 서서, 피를 흘리고 있었기에.
망가진 시야 뿐 아니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눈 앞에서 그녀를 지킨 주인의 기척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감까지 망가졌던 것인지.
아니면, 기척이 거의 사라질 정도로 주인이 입은 데미지가 컸던 것인지.
“……저, 저 때문에…?!”
그녀도 알고 있다. 그녀의 주인은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며, 내장이 짓이기고 머리가 날아가도 우습게 부활하는 몸이란 것을.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의식이 날아간 사이에도 여전히 재생이 덜 끝났을만큼 주인님마저 치명상을 입었던 공격을, 만일 그가 아니라 데이지가 직접 몸으로 받아냈다면 속절 없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을 것임을.
데이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후우. 괜찮냐니까.”
“……네, 네에.”
찬란한 금빛 머리칼이 피에 젖어서,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닦아내는 주인의 모습을 보면, 데이지는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주인님, 죄송, 죄송….”
“그만.”
속이 북받쳐 오른 데이지의 말을, 스칼렛이 끊어냈다.
기세가 급변했다.
데이지 역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강대한 기운에 반사적으로 자세를 다잡았다.
“2파가 온다.”
스칼렛이 앞서 받아내줬음에도 데이지가 일순간 정신을 잃어버렸던 1파다. 데이지는 긴장한 기색으로, 자신조차 이 지경인데, 육체적으론 그녀에 한참 못 미치는 다른 두 일행을 걱정했다.
“그 둘은 그림자 속으로 보냈어.”
그녀의 걱정을 눈치 챈 스칼렛이 답했다.
“……내가 대신 받아주는 걸로 버틸 수 있는 너랑 달리, 그 둘은 바로 즉사니까.”
미안한 기색이 서려 있는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여자들은 대피시켰으면서, 데이지는 그러지 않고 남겨둔 것에 대한…….
“괜찮습니다.”
굽혔던 무릎을 편다. 데이지의 손에 들린 검, 에 씌인 오러가 한층 날카롭게 벼려졌다.
데이지의 눈이 뜨였다. 그녀의 두 눈에는 오직, 사랑하는 한 남자만이 담겨 있었다.
“……저는, 당신의 검이니까요.”
그것은 데이지가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기도 했다.
다잡는 말.
다짐, 맹세.
굳게 쥔 손과, 꺾이지 않을 의지.
육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부러질 것만 같은데.
데이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데이지는 마치,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피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역시 당신을 위해 살아야, 비로소 피어나는 존재구나.
데이지의 눈빛이 달라졌다.
「신파극은, 다 끝났나.」
그리고, 제 2파.
───!
*
두 번째의 파동은, 첫 번째보단 쉽게 막아냈다.
신경 써야 할 두 사람을 미리 대피시켰으며, 직격으로 맞았다간 마찬가지로 즉사할테니 신경을 기울여야 마땅했던 데이지의 기세가 어느샌가 달라져 있어, 스칼렛의 부담이 조금이나마 덜어낸 덕분이었다.
「….」
데이지의 성장은, 스칼렛보다도 바사고에게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짓누르면 짓누르는대로 터져 죽어버릴 벌레였다. 그것을 지키는 대적자가 아니었다면, 그 육신을 찢고 영혼마저도 수십 수백 번은 불태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장작에 붙은 불길처럼, 타오르듯 발광하는 영혼.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정말로 단 한 걸음, 이 싸움을 통해 번뜩이는 찰나의 순간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수많은 이들이 넘지 못하고 스러진 지평선을 넘게 되리라.
「허어.」
그것은, 의도한대로 결과를 이끌어내는 권능을 지닌 바사고에게 있어, 더없이 불쾌한 일이기도 했다.
「날파리인줄 알았거늘.」
날개를 펴기를 기다리던 나비였던가.
일부러 보지 않았다. 보잘 것 없는 이라 생각했기에.
그것이 바로 눈 앞이 아찔할 정도로 불합리해 보이는, 바사고의 「인도」가 가진 유일한 약점이다.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한정적이기에.
‘관측’할 가치가 없는 미래는, 그 과정은, 그로 인해 생겨나는 결과는, 보지 않는다.
데이지는 바사고에게 방금 전까지 아무 의미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어떤 미래도 보지 않았다. 어떤 결과도 이끌어내지 않았다.
그럴 힘으로, ‘대적자’를 견제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올바른 일이었으니까.
헌데.
지금은 과연 어떤가?
지금의 그녀도, ‘관측’할 가치가 없는 존재인가?
「……대적자의 영향인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지금 와 권능을 써 관측하기엔 이미 늦었기도 했다. 꽃봉오리가 열리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개화를 시작한 것을 막기엔 효율이 좋지 않았다.
바사고가 위기감을 느낀 것은, 대적자─ 스칼렛이 보인 주변 사람들을 ‘개화’시키는 힘에 대해서다.
데이지가 마스터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성장이 놀라울지언정, 그 강함에 바사고가 관심을 줄 일은 앞으로도 없으리라.
게다가.
「애초에 가로막힌 아이로구나.」
데이지는, 마스터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바사고의 눈에 보이는 그 어떤 미래에도, 그녀가 마스터가 되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에게서 관심을 끈 바사고의 눈이, 스칼렛을 응시했다.
「역시, 다른 이는 몰라도 그대만큼은 이곳에서──.」
바사고의 손이 다시 한 번 종을 울렸다.
딸랑─.
제 3파. 바사고는 이것이 저들에게 꽤 치명적이리라 여겼다. 두 번째의 파동은 큰 피해 없이 막아냈다지만, 결국 그조차도 한계가 있는 법.
첫 번째의 파동보다 약하기야 했다만, 저들이 두 번째 파동을 견뎌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켜야 할 후위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신경 써서 지키고, 그 데미지를 대신 받아줘야 할 이들이 없기에─.
그렇다면, 첫 번째 파동이 치명적이었던만큼, 데미지를 누적시키면 그만인 일.
그리고 바사고는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
형언할 수 없는, 가히 표현이 불가할 소리와 함께 스칼렛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견 단순히 울릴 뿐인 청명한 종소리에 불과한 것이, 그 대상에게는 세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충격을 입히는 것이다.
허나, 버틴다.
스칼렛도, 데이지도. 꺾이지 않고 세 번째 파동까지 견뎌냈다. 견디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바사고조차 맨 몸으로 받아낸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만큼 짙은 ‘어둠’이, 기다렸다는 듯 바사고를 덮쳐왔다.
“큭!”
퍼엉!
허나 그마저도, 딸랑─. 바사고의 종소리와 함께, 그를 짓이길 듯 감싼 어둠이 산산이 비산했다.
심기를 기울여 만들어낸 덫에서 간단하게 빠져나온 바사고의 모양새에, 스칼렛의 고운 미간이 일그러졌다.
다만.
“……위협이 되긴, 하단 말이지.”
똑똑이 보았다.
제 4의 파동으로 빠져나오며, 육체를 수복하는 바사고의 모습을.
스칼렛의 몸에서부터, 그림자가 미친 듯이 일렁이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
데이지 블랙우드.
체페슈의 가장 충직한 종복, 시녀, 메이드…. 그녀 스스로가 어찌 생각하든, 이 수식언들을 놓고서 ‘자주적이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스터가 되는 데에 무엇보다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마스터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완성’이었으니까.
스스로 원하는 것.
스스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
스스로의 욕망, 욕구, 소원.
그것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기본.
데이지는?
‘딱히.’
없다.
주인님이 바라는 것이, 그녀가 바라는 것.
주인님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그녀가 나아가야 할 길.
스스로의 욕망보다는, 주인님의 욕망을 받아내고 싶다.
그렇게 한 평생 사는 것으로 데이지는 행복하리라.
새장에 갇힌 새가 모두 불행하란 법은 없으니까.
사랑하는 주인님의 품에서, 영원토록──.
‘안 돼.’
그래선 안 된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데이지는 나아가야 했다. 주인님의 안온한 품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했다.
…잘 안 됐다.
오러는 날카로워졌다. 깨끗해졌다. 크기도 더 커졌다. 몸 안에 품은 힘도 순간순간 늘어나서, 불과 몇 분 전의 자신보다도 훨씬 훨씬 더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론 안 된다.
그런 방식으로는, 영원토록 경지를 넘지 못하고 벽 앞에서 발버둥 치는 수밖에 없다.
‘…어떡해야 하지?’
스칼렛의 지시에 따라, 검을 휘두르며, 어느샌가 익숙하게 파동을 쳐내며 데이지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몸은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어떡해야 좋을지 고민하면서도, 검만큼은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스칼렛이 손짓하면, 검을 휘두른다.
‘지금 이 순간마저도.’
무아지경.
한 없이 빠져든 지금마저도, 스칼렛의 지시에라면 따른다. 거슬리는 종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와중에, 사랑하는 남자의 목소리만큼은 하나도 빠짐 없이 귀담에 듣는다.
‘역시 무리야. 안 되겠어.’
스칼렛의 품에서 벗어나는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영영 독립하라면, 역시 데이지는 그럴 수 없었다.
삶의 모든 것.
생애를 모두 바쳐서라도 사랑할 유일한 주인님.
모든 걸 불태우더라도, 적어도 스칼렛의 품 안이고 싶었다.
‘아.’
데이지는 불현듯 떠올랐다.
이미 몸은 스칼렛에게 내어줬다. 무아지경에 빠진 지금도 그의 목소리만큼은 착실하게 듣고 있다.
그럼 그 다음은?
‘내 생각.’
생각.
사고방식.
혼의 뿌리까지.
‘말 그대로 전부 드리자.’
그렇게, ‘나’를 비우자.
‘나’를 전부 주인님께 드리자.
그리고 주인님으로 ‘나’를 가득 채우는 거야.
그러면, 그것이 나의 완성일테니까.
───푸르른 오러가, 한 없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꽃이 피었다.
이름은 데이지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