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상급 정령, 코나 (3)
* * *
“대호수에도 한 번 안 가봤어? 세상에.”
「대호수가 그렇게 예뻐요?」
루나는 코나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루나는 눈 앞의 이 조그마한 정령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귀엽고, 자신과 얘기가 잘 통했으니까.
“대호수가 얼마나 넓고 좋은데. 다른 것도 아니고 수(?) 속성 계열인 네가 안 가본 게 나는 더 신기한데?”
「와아… 저도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얼마나 좋을까요?」
대화의 주제는 대륙의 대호수였다. 수많은 수 속성 정령들이 가장 보금자리 삼고 싶어하는 그곳.
엘더급 블루 드래곤이 서식하는 그곳에 대해 루나가 길게 설명하자, 머릿속으로 대호수의 풍경을 떠올린 코나의 얼굴에 설렘이 서렸다.
그러다 상상만 해도 설렌다는 듯 눈을 빛내던 코나가, 이윽고 시무룩한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저는 여길 지켜야 해서…. 칼리아 님이 부탁하셨단 말이에요.」
코나의 어깨가 축 내려갔다. 조그마한 정령이 시무룩해지니 루나가 당황했다.
“그, 그래? 뭘 지켜야 하는데?”
「이 영역이요. 칼리아 님이 자연으로 편히 돌아가실 수 있도록 제가 여길 지켜야 해요.」
“아. 그 얘기구나.”
설마 코나가 여길 떠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까 싶어 당황하던 루나는 그 말에 은근히 안도한 듯 했다.
“무슨 얘길 그렇게 해?”
때마침 찾아온 스칼렛이 끼어들었다. 루나가 반색하며 스칼렛을 옆에 앉혔다.
“어떻게 됐어? 아이리스는 잘 하고 있어?”
“보니까 나 없어도 잘 하겠더라.”
루나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아이리스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은 칼리아의 부탁을 잘 들어주고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그녀가 코나를 데리고 갈 확률이 높아졌다는 거니까.
다만 아직까지 코나의 의사는 묻지 않은 상태였어서, 루나는 조심스럽게 그 작은 정령의 눈치를 살폈다.
“그, 코나.”
「네에?」
대호수에 갈 수 없다며 시무룩하던 정령은 또 그새 기운을 차린 모양이었다. 루나는 그 모습에 조금 안심했다.
“혹시 말이야.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되면,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네에?」
이곳에서 나간다.
그 말에, 코나는 상상도 못 해본 단어를 들었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워낙 조그만해서, 아주 크게 뜬 두 눈동자마저도 요만했지만. 아무튼 작은 정령은 작은 눈을 아주 크게 떴다.
「여기서 나간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루나 님?」
평생 산맥의, 칼리아의 영역을 지켜온 코나에게 ‘밖’이란 그만큼 생소한 것이었다.
최상급에 가까운 상급 정령. 그만큼이나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코나의 세계는 좁았고, 작은 정령은 어린 아이와 같았다.
그 순수한 모습에 루나는 쓰게 웃었다.
처음에는 이 작은 정령이, 그녀의 전력을 보태줄 큰 힘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계약하려고 했었고.
그러다 대화를 나눠보며, 이 작은 정령에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솔직하게, 순수히 이 정령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칼리아를 탓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드래곤이었고, 일만 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질서를 수호하였으며, 그 끝에 평온한 안식을 위해 코나와 정당히 계약을 맺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칼리아와의 계약이 끝나면, 코나가 자유로워진다면.
함께 하자고 얘기하는 것 정돈 괜찮지 않을까?
“칼리아한테 부탁을 받았어.”
루나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긴 동안, 스칼렛이 말을 받았다.
「칼리아 님한테서요?」
“그래. 조만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 그 뒤를 대비하기 위한 일들 말이야.”
코나가 고개를 기울이자, 스칼렛이 긍정했다.
「칼리아 님이… 그랬구나….」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쭉, 그녀를 보살펴 온 칼리아였다. 코나에게 칼리아라는 늙은 용은 몸이 불편하지만 자신에게 자상하고 상냥한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코나는 그런 칼리아에게 남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그래서. 우리 누나는 너랑 같이 가고 싶은 모양이야. 칼리아가 자연으로 돌아가면, 너는 혼자 이곳에 남게 되니까.”
원래라면, 칼리아의 사후에도 산맥과 이 영역의 안정을 위해 코나가 남아있기로 했었다.
하지만 스칼렛과 루나가 칼리아를 설득해, 코나를 데리고 떠나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생길 법한 문제는 모두 해결하기로 해두었다.
만일 코나가 일행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네가 원한다면, 칼리아의 흔적이 남을 이곳을 지켜도 좋아.”
다만 계약 때문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스칼렛의 목소리가, 작은 정령의 마음을 부드럽게 톡 건드렸다.
「…생각해볼게요.」
포르르.
작은 정령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날아올라서, 냉큼 도망가고 말았다.
“…고마워.”
루나가 스칼렛에게 작게 속삭였다.
스칼렛이 픽 웃었다.
“뭘.”
*
루나 테일러에게, 스칼렛 체페슈는 참 기묘한 남자였다.
분명 자신의 동생인데.
그런데도, 자신이 기억하던 것과 달라진 모습을 보면 낯설어서, 쉬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첫 만남.
“오랜만이다.”
그녀가 기억하던 전생의 동생과 닮은 얼굴, 체격.
그러나 좀 더 얇고 고운 느낌. 그리고 또, 차갑고 날카로운 눈매.
제국의 일곱 기둥이자 밤의 주인이며 제 부모의 자리를 찬탈한 삼대 혈귀의 일각.
루나 테일러는 그녀의 동생이 그녀 없이 살아온 백 년이 어떠했을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물어볼 수 없었다.
변해버린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분명 그녀가 기억하던 동생이면서도, 새롭게 다가오는 면모가 있었다.
그러다가도 아주 변하지는 않고, 그녀가 기억하는 동생이 이따금 보일 때면, ‘역시 내 동생이 맞구나’하며 반기기도 했다.
함께 여행하며 이런저런 일이 있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그녀가 기억하는 동생으로 돌아오진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어딘가 쓸쓸해지곤 했다.
*
아이리스는 한참 뒤에나 숙소로 돌아왔다. 날뛰는 화룡을 상대하였음에도 그을음 하나 없다는 게 얼마나 그녀의 실력이 향상되었는지를 보여줬다.
“어디까지 썼어?”
“세 번째까지요.”
칠검 중 어디까지 사용했느냐는 물음에 빙그레 웃으며 아이리스가 답했다.
네 번째부터는 오의에 속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제 일검부터 제 삼검까지, 기초만으로 화룡을 상대했다는 사실에는 그녀도 상당히 자부심을 느낀 듯 했다.
“잘 했어.”
나 역시 가감 없이 칭찬했다. 오히려 마스터가 돼서 그 정도도 못 하는 게 이상한 것이긴 하지만, 괜히 오의를 쓰겠다며 힘조절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네 번째는 나랑 나중에 연습해보자.”
현재 아이리스가 쓸 수 있는 건 다섯 번째까지.
마스터의 경지에 허락 된 검은 여섯 번째까지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벽을 넘어 마스터가 되긴 했어도 아직 아이리스가 갈 길은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언젠간 그랜드 마스터가 되어서, 제 칠검(? 七?)까지 쓰는 날까지.
“네에.”
방긋방긋 웃으며 내게 고개를 기댄다. 나도 자연스럽게 아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헝클어지지 않게, 머릿결을 따라서 스윽ㅡ 스윽ㅡ, 하고.
‘히.’ 아이리스가 소리 내 웃는다. 마침 따라 들어온 누나가 그 광경을 보곤 눈가를 찡그렸다.
“참 나.”
“…?!”
그러곤 들으란 듯 혀를 찼다. 내게 이마를 콩 대고 비비적 대던 아이리스가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어, 언니 오셨어요?”
그러곤 어색하게 웃는다. 누나도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아이리스가 정말 어색해 하는 거라면, 누나는 일부러 어색한 척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네에. 언니 오셨어요.”
“….”
아이리스가 입을 다물었다. 귀가 빨갰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둘이 있을 때면 모를까 셋이 있을 땐 내가 먼저 접촉하면 모를까 누나나 아이리스가 먼저 나한테 접촉하는 일은 드물었으니까.
아무튼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보다 못한 내가 입을 열었다.
“둘이 뭐해? 둘 다 이리와.”
그림자를 움직여 저 멀찍이 서 있던 누나의 허리를 휘감았다.
“야. 이거 뭐, 꺄악!”
성격이랑 안 어울리게 깜찍한 비명이었다.
그림자로 잡아채 납치하듯 끌고 온 누나를 아이리스의 반대편, 내 왼쪽에 두고는 팔로 허리를 감았다.
“야이 씨. 뭐하는 짓이냐? 어?”
갑작스런 내 돌발행동에 씩씩 거리면서도, 내 팔뚝이 허리에 감기니 육체적으론 저항하지 않고 말로만 틱틱 내뱉는 게, 뭐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나쁘지 않았으므로 물끄러미 지켜봤다.
“뭘 봐. 어? 뭘 보냐고. 눈깔 안 치워? 어? …이 씨.”
내가 눈을 피하지 않자, 되려 목소리에 힘이 빠진 건 누나였다. 이 새끼 저 새끼 욕하다가도, 점점 목소리가 웅얼거리더니, 끝내 내 오른편에 기댄 아이리스의 시선을 느끼곤 결국 새빨개진 얼굴을 숨기려 내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하여간에.
누나의 어깨를 토닥 토닥 두드려주자, 앙칼진 목소리가 돌아왔다.
“하지마라.”
토닥토닥.
“하지말라고.”
주물.
“어딜 만져 씨발아!”
글쎄.
엉덩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