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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7화 (7/199)

〈 7화 〉 단련, 대련 (1)

* * *

생각보다 너무 폭주해버렸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다. 평소 누님이 찾아오는 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난 채였다.

다행이게도 누님은 아직 오지 않았다…, 라고 생각했다. 그 땐.

혹여라도 누님에게 들킬 새라 급하게 정리한 후 까무룩 기절한 데이지를 구울 메이드에게 시켜 다른 방으로 옮기고, 뒤늦게 찾아온 누님과 평소 같이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10일 가량이 지났다.

나는 그 날 이후 매일 데이지를 방에 불러들였다. 그리고 누님이 찾아오는 시간에 맞춰, 그 직전까지 데이지의 음란한 몸뚱이를 즐겼다.

봤기 때문이다.

누님에게 들키기 않았다고 생각하고, 안심한 채 보았던 누님의 상태창이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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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시아 체페슈

호감도: 64

근력 ▶ 142

민첩 ▶ 156

체력 ▶ 122

내구 ▶ 141

마력 ▶ 133

상태: 우울, 불안

특성: 「혈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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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밑으로 고유 특성이나 스킬 같은 게 보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누님의 상태와 호감도였다.

호감도는 오히려 올랐는데, 상태는 우울?

아침에 봤었을 때 호감도는 그대로였는데, 데이지와 침대에서 뒹굴고 나니 호감도가 올랐다.

이것만 봤을 땐 뭔가 싶었을텐데, 상태에 떡 하니 적혀있는 '우울'까지.

아무래도, 누님에게 다 들킨 것 같았다.

그리고 누님이 우울한 이유는 하나겠지. 내게 마음이 있어서.

나를 동생이 아닌 한 명의 남자로 보고 있으니까, 데이지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우울해진 것이다. 추측으로는.

그렇게, 누님의 마음을 상태창이라는 치트키를 통해 훔쳐 본 나는 뭘 했냐면.

말했다시피 누님을 더욱 부추기기 위해 매일 데이지를 탐했다.

심지어는 보란 듯 흡혈까지 했다. 데이지 피 맛있더라. 무가?家의 딸이라 그런지 순도 높은 마력이 담긴 피라 몸상태도 꽤 회복 됐다.

쓰레기 같은 짓이라고?

내가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무시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누님의 호감도가 70이 넘도록 만들어야 했다.

현재 누님의 상태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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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시아 체페슈

호감도: 69

상태: 우울, 불안, 질투, 욕구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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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흘간의 자극이 상상 이상으로 효과가 좋았다. 부정적으로.

상태에 안 좋은 게 이것저것 잔뜩 붙은 게 좀 섬뜩할 정도였다….

그래도 착실하게 호감도는 조금씩 조금씩 올랐는데, 마치 벽에 막힌 듯 69에서 막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멈춰 있었다.

데이지를 통해 질투를 유발하고, 그러면서도 종종 누님에게 은근한 말을 건네거나, 가벼운 스킨십으로 여지를 주는ㅡ, 현대였다면 어장남이나 할 법한 짓임에도 나는 꾸준했다.

그러나 부족했다.

호감도 하나 올려보자고 누님의 멘탈을 그토록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호감도가 70을 넘지 못했다.

결국 지금의 누님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직 확실하지 않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계기가 부족했다. 때문에 호감도 70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이곳이 게임 속 세상이라서. 나는 그것을 실감하고 말았다.

「특정 이벤트 클리어 시 호감도 락 해제」라는 조건이 게임 설정이었으니까.

호감도 락은 각각 69에서 70으로 올라갈 때, 99에서 100을 넘어갈 때에 존재했다.

진 엔딩으로 가기 전에, 존재하는 모든 노멀 엔딩─한 마디로 네임드 남자 캐릭터 하나씩 배정된 단일 루트─를 모두 클리어 해 거기서 얻은 조건들을 써야만 진엔딩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기 위한 게임 제작사의 설계가 그랬다.

A라는 캐릭터의 엔딩을 보면, 엔딩 부근에서 B의 호감도 락을 해제하는 단서가 나오고, B의 엔딩을 보면 거기서 C의 호감도 락을 해제하는 단서가 나오고. 뭐 그런 식으로.

게다가 노멀 엔딩을 모두 수집하지 않으면 아예 진엔딩으로 가는 분기점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게임의 디테일이 게임을 플레이하던 오타쿠들에게는 좋은 요소일지 몰라도, 막상 그 세계에 빙의한 내 입장에선 참으로 좆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게다가 난 남캐 따위 꼬시고 싶지도 않고, 내 목표는 누님인데 그 누님마저도 호감도 락이 걸려있다니 더더욱.

누님의 호감도 락을 푸는 단서 따위 모르니까.

“씨발.”

시간이 길게 남지 않았다. 남은 건 한달 하고도 보름이 좀 덜 되는 정도. 지금까진 솔직히, 70까지 금방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했던대로 69까지는 아주 순조로웠고.

게임에서 여캐 공략 따윈 없으니까, 여자한테도 호감도 락이 있을지 몰랐다. 왜 이런 데에서 꼼꼼하지? 역하렘 미연시면 그냥 남캐들 것만 정성스럽게 구현하면 되는 거 아닌가?

눈 앞이 조금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

뭘 해도 당장은 누님의 호감도를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꼬박 하룻밤을 썼다.

데이지도 부르지 않고, 방에 찾아온 누님도 돌려보냈다.

이 몸에 빙의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데이지도 누님도 나를 많이 걱정하는 듯 했다.

더 방에 박혀 있어봐야 폐만 끼칠 뿐. 풀 죽어 있는 건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좌절한 것도 아니었다.

방법이 아예 없진 않을 거다. 심각한 문제는 맞아도 포기해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됐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밤새 명상을 통해 몸을 회복시켰다. 그간 흡혈해왔던 데이지의 피 덕분인지, 상태가 상당히 많이 회복 되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방에서 나오자, 지난 밤부터 쭉 자리를 지킨 듯 한 누님과 눈이 마주쳤다.

“스칼렛!”

“…계속 기다렸어, 설마?”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어 묻자, 내가 방 밖으로 나왔단 게 그리 좋은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곧이어 데이지까지 저 멀리서 긴 치맛단을 손으로 잡아들고 이곳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괜히 무가?家의 딸이 아닌지 하이힐을 신고 있는데도 상당한 걸음걸이였다. 보법인가.

“주인님!”

“둘이 똑같네.”

둘 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일단 환한 얼굴로 날 부르고 본다. 꼭 주인 만난 강아지마냥. 꼬리라도 나중에 달아줄까.

가까이 선 데이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꽤 초췌해진 게, 내 걱정을 하다 밤이라도 샌 몰골이다. 혹시나 싶어서 묻자 역시나였다.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니까 내가 할 말이 없었다….

“괜찮은 거 맞지?”

“괜찮아. 생각할 게 있던 거니까.”

누님은 내 대답에 안심한 듯 휴우,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나를 위해 꾸며낸 연기라는 것쯤은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누님이 무안할까봐 따로 말은 안 했지만.

누님도, 데이지도.

둘 다 내가 안고 가기로 했으니까. 안심 시켜주는 것도 내 몫이리라.

“누님.”

“으응? 왜?”

“조만간 대련이나 할까.”

내 말에 누님은 고개를 갸웃 하곤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다.

지금까진 몸을 회복시키느라 반쯤 요양하다시피 저택에 박혀 있었지만, 슬슬 단련할 때가 됐다.

아카데미에 들어가 주연들을 견제하면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그들이 성장할 수 있게 유도하려면, 적어도 그들보다 약간은 우위에 있어야 할 테니까.

그리고 대련을 통해서 누님과 보내는 시간을 좀 더 늘려보려는 속셈도 있었고.

“갑자기?”

“몸도 거의 다 나았고.”

“오랜만에 하는 거라 좋긴 한데….”

“지금 당장은 말고. 오랜만이니까 나도 감 좀 잡아야지.”

실생활에서 쓸 법한 마법이야 혼자 침실에서 연습하면 되고, 덕분에 마력이나 피를 다루는 것은 꽤 능숙해진 상태이다만…. 역시 전투에 돌입하면 어설프기 짝이 없을 테지. 경험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혼자서 연습해야지.

“그래. 뭐어…. 몸이 안 좋아지면 언제든 말해야한다? 누나 피라도 줄테니까.”

“무, 무무무슨 소리를….”

난 대답도 안 했는데 데이지가 난리다.

아무튼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도 기분 좋게 웃었다. 요새 데이지 때문에 날이 갈수록 얼굴이 어두워지던 누님이 웃으니 보기 좋더라.

준비가 되면 그때 말하기로 하고, 저택 지하로 내려갔다.

왜 정원이나 그런 곳에 있는 단련장이 아니냐면, 이 저택의 주인인 나와 누님이 흡혈귀라서다.

햇빛을 극복했다곤 쳐도 역시 어둠 속이 더 좋으니 아무래도 햇볕 쨍쨍 쬐는 야외보단 그늘지고 습한 지하가 좋다고.

확실히 밑으로 내려오니 꽤 아늑했다. 단련장 구석에는 관까지 두 개 놓여있었다.

뚜껑이 열려있고 내부는 꽤 깔끔하게 청소 돼 있는 게 나랑 누님의 휴식 공간으로 쓰려고 뒀나보다.

일단 지하로 내려오는 문을 닫고,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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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체페슈

근력 ▶ 102 (77)

민첩 ▶ 121 (89)

체력 ▶ 105 (71)

내구 ▶ 84 (55)

마력 ▶ 232

특성: 「혈귀」「공?」「가주」

고유특성: 「부여」「연결」「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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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스탯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마력도 꽤 올랐고. 누님에게 가 있던 가주 특성도 돌아왔다.

일단 지금부터 다루는 데에 익숙해져야 할 특성은「공?」의 활용법이다. 「혈귀」는 저택 내부에서 숙달이 됐으니 실전에 투입할 기술만 만들면 되는 반면에 이 특성은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특히 고유특성 세 개가 모두「공?」특성과 이어지는 것이라, 「공?」의 단련을 하자면 자연스럽게 고유특성까지 다루어야 했다.

상당히 빡셀테지만, 해야지.

「공?」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음을 뜻한다. 아무 것도 없음無가 아니라, 분명 무엇인가 존재하는데 정작 그 내용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내 마력의 속성을 뜻했다.

허무?無의 속성.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

손바닥 위로 작은 마력구를 띄웠다. 검은 구체. 원래라면 흡혈귀답게 붉거나, 혹은 검붉은빛을 띄워야 할 마력이 마치 모든 빛을 빨아먹은 것처럼 새까만 색이다.

손바닥을 치우고, 바닥에 마력 구체를 떨어뜨렸다.

콰직.

마력 구체가 닿은 만큼, 단련장의 바닥이 둥그렇게 깎이곤 마력 구체가 제 역할을 다 했다는 듯 사라졌다.

아마 마력을 더 넣어 압축해서 만들었다면 더욱 깊이 파고들었을 것이다.

닿은 존재의 완전 소멸.

그것이 내 특성 「공?」의 정체이자 마력 속성이었다.

사용자마저 태어난 순간 집어삼키는, 존재 해선 안 될 마력 속성.

그런 특성을, 스칼렛 외에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 단 한 명. 그게 누군지 알기에 나는 더욱 단련해야 했다.

마왕.

말이 안 나오는 개 씹사기 보스 캐릭터.

미연시면 그냥 비주얼 노벨답게 캐릭터 원툴로 갈 것이지.

굳이 판타지스러움을 살리겠답시고 집어넣은 메인 빌런인 마왕이, 하필이면 나를 제외한 또 한 명의 허무의 마력 소유자였다.

나보다 존나 셀텐데, 심지어 나랑 마력 속성이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봤을 때 내 추측으론 스칼렛이 원작에 안 나온 이유가 아마 이 속성 때문인 것 같았다.

아님 이런 캐릭터가 왜 안 나왔겠어.

이 정도 스펙이면, 원작에서 누님이 아무리 트롤링을 했어도 스칼렛이 권력이든 무력이든 써서 무마할 수 있었을 거 같다.

그런데도 안 나왔다면, 스칼렛 체페슈가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있다는 뜻일텐데.

혹시 원작 시작 전에 죽었다거나.

….

“─후우.”

숨을 돌리자.

일단,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하자.

누님을 꼬시고, 단련해서 강해진다.

어떤 엔딩에서든 몰락해버리거나 죽어버리는 악역 영애인 누님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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