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화 〉 341. 진짜 마지막 이야기
"미우, 들었어? 다시 게이트가 열릴 거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럴 리가. 성당기사단이 닫은 게이트가 다시 열릴 리가 있어?"
스무 살의 서큐버스 미우는 모른 척을 했지만 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열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창관에서 일한지 7년.
복권에 당첨되는 꿈을 꾸듯이, 게이트가 열려서 인간계로 건너가 인간계의 생활을 즐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달콤한 일일까.
의심하는 미우를 친구 아진이 쿡쿡 찔렀다.
"최근엔 게이트를 열고 물자를 뿌리잖아!
너도 저번에 내가 나눠준 통조림 받지 않았어?"
미우의 친구 아진은 성당기사단이 뿌린 물자에 동봉된 팜플렛을 꺼내 또랑또랑하게 읽었다.
"저희 성당 기사단은 마계와 다시 교류하고자 합니다.
마계의 마법과 현세의 과학이 합쳐진다면 옛날 연금술사들이 이루었던 기적을 다시 한번 일으킬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마계는 굉장히 황폐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인간이 건너갈 수는 없지만- 도움이 되는 물건을 보냄으로써 여러분에게 호의가 있는 것을 증명하려 합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믿어볼 법 하지 않아?"
하지만 미우는 털을 잔뜩 세운 고양이처럼 칫, 하고 내뱉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우리가 건너가게 만든 다음에 잡아서 고문하려는 건 아냐?
많이들 그러잖아. 나라에 위기가 찾아오면 외부의 적을 만들어 공격한다.
지금도 성경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는데, 악마가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미친 듯이 종교를 믿지 않겠어?
그걸 위한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닌가?"
아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눈 앞의 친구는 의심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런 주제에 호기심은 더욱 많아 너무 피곤했다. 최근에도 무작위로 열리는 게이트에 뛰어드는 게 괜찮을지 자신에게 몇 시간동안 상담을 했었는데.
"그냥 뛰어들지 그래?
네가 최근에 봤던 소설, 그 뭐시냐- 샤를이라는 서큐버스 나오는 거.
거기서도 게이트에 뛰어들어서 인생 핀거잖아."
"야! 그 소설이야말로 성당기사단의 프로파간다거든?
우리가 건너가면 인간 하나 꿰차고 동영상을 올려서 마력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거라고!
그런 거짓말을 왜 믿어?"
아진은 입을 다물었다.
거짓말이라면서 소설에 완벽히 빠져들지 않았나?
미우가 소설의 외전이 쓰레기같았다고 자신에게 세 시간동안 화를 내며 토로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뭐... 마지막에 진짜 조지긴 했지.
갑자기 NTR 이야기를 꺼내다니. 그건 좀 심했어.
독자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당연히.
심지어 주인공이랑 평생 백년해로 할 것처럼 썼잖아?
소설 속의 소설이라고 내용을 섞어도 사람들은 불쾌해한다고.'
미우도 그걸 생각하고 있는지 손부채를 부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지금 생각해도 화나네.
아니, 대체 그딴 이야기를 왜 쓰는거야?"
여기서 말을 더 얹었다간 이야기가 길어지는 걸 알기에 아진은 조용히 모른척했다.
다행히 미우는 맞장구나 반박이 없자 금세 가라앉았다.
"어쨌든, 나는- 안 믿어.
성당기사단 놈들은 아주 무서운 놈들이라고!
서큐버스를 불태우거나 목매다는 고문을 하는 놈들이야.
오히려 내 생각엔 마지막 외전이 진실에 가까울지도.
마법사들이 서큐버스에게 최면을 걸어서 성노예로 부리는 거라고!!"
아진은 작가가 욕을 쳐먹고 외전을 아예 삭제했다는 사실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마계로 건너온 소설 외전은 무슨 마법적인 조치를 썼는지 전부다 불타버렸다.
작가도 그 정도로 흑역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뭐... 자기가 쓴 이야기를 내놓고 싶은 욕망은 이해하지만.
단테도 신곡 뒷부분을 결코 내놓지 않았잖아.
세상엔 해야 될 이야기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만 아진은 분별 있는 서큐버스였기에 쓸데없이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저녁에 몇시에 출근하는지 물어볼 뿐이었다.
"오늘 야간조로 나올거야? 고블린 단체 손님 있어."
"아, 젠장- 우린 왜 또 고블린이야!"
미우는 울상을 지었다. 욕망의 질도, 꾸는 꿈의 내용도 단순하기 그지없는 고블린들.
단체 손님이라고 해도 꿈 속에서 추출할 수 있는 정기는 하루 할당량도 안 될 터였다.
"혹시 저번에 통조림 주운 것 중에 남은 거 있어?"
"햄 통조림 몇 개. 갖다줄까?"
아진의 말에 미우가 껴안고 뺨에 쪽 키스했다. 아진은 아주 미미하게 얼굴을 붉히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미우는 눈치채지 못하고 소리쳤다.
"고마워, 아진! 나 진짜, 햄 너무 좋아- 좀 짜긴 하지만. 빵이랑 먹으면 진짜 맛있어.
그런데 그- 소설에서. 쌀밥이랑 먹으면 진짜 맛있다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냥 건너 가라. 건너가.
게이트가 보이면 뛰어들어. 괜히 마계에서 살지 말고.
소설처럼 지옥의 대공 못지않게 부유하게 살게 될지도 모르잖아?"
아진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실제로 미우의 팔다리는 너무 가늘었다.
예쁘다기보다, 못 먹어서 마른 거다.
미우처럼 천애 고아로 사는 서큐버스는 힘들었다.
그나마 자신이 가끔 돌봐줘서 다행이지.
"아, 몰라. 몰라. 난 안 넘어가.
성당기사단이 얼마나 무서운데-"
"알았어. 저녁에 봐. 통조림은 그때 줄게."
"응, 고마워!"
미우는 손으로 키스를 날리며 골목길 너머로 사라져갔다.
아진은 한숨을 쉬었다. 꿈만으로 정기를 벌긴 어려웠다.
미우는 곧 실제로 몸을 팔게 될 것이다.
성당기사단이 언제 게이트를 열게 될진 모르지만.
미우가 험한 꼴을 겪기 전에, 그 전에 열어 줬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랬다.
***
"으으으..."
미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게 앞에서 서성거렸다.
양념 발라서 구운 돼지고기 냄새가 코에 솔솔 스며들었다.
"안 살거면 가라."
오크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미우를 흘겨봤다.
얼굴은 예쁘긴 하지만, 깡마른 서큐버스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풍만하면 모를까. 저런 꼬맹이같은 여자라니.
"아, 안 사요, 그냥 구경한 것 뿐이예요.
무슨 고기인지도 모를 고기 팔면서..."
"야, 너 지금 뭐라고-"
미우는 혀를 내밀곤 잽싸게 도망쳤다.
고기에서 눈길을 떼는 덴 많은 심력을 소모했다.
골목을 돌아가자마자 계단에 주저앉았다.
"하으, 배고파..."
최근엔 꿈 말고 실제로 몸을 팔라는 제안도 하나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리 볼품없는 돼지 껍데기같은 요리라도 맨 첫입은 가치가 있다는 거겠지.
"그냥... 눈 딱 감고 천장 얼룩만 세고 있을까?"
혼자 중얼거려봤지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미우는 길게 한숨을 쉬며 골목길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고 눈가를 비볐다.
"어, 어어?"
골목길 한 가운데에 게이트가 떠올라 있었다.
지직, 지직거리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모습과 함께.
"잠, 잠깐만..."
미우는 중얼거리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게이트다.
게이트. 정말로.
하지만 금방이라도 곧 닫힐 것 같았다. 최근 성당 기사단이 물품을 떨어뜨리기 위해 여는 게이트일까? 아니면 성당기사단이 열어대는 여파로 발생하는 국소적인 게이트?
미우는 눈물을 글썽였다. 뛰어드려면 골목 뒤까지 물러났다가, 전속력으로 도움닫기를 해야 할 정도였다.
"으으, 으으-"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소설에서 읽었던 화려한 현대 생활.
돼지고기 구이조차 제대로 살 수 없는 한심한 자신.
여기 있는 친구와. 저 너머에 있을 황금빛 땅.
모든 걸 머릿속에 그려보던 미우는 이빨을 꽉 깨물고, 전속력으로 뛰었다.
만약 제대로 저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목이 부러져 뒷골목에 굴러다니는 시체 신세가 되겠지만-
"굶어 죽나, 목 부러져 죽나, 그게 그거야!!!"
시속 130km로 나는 빗자루처럼. 미우는 전속력을 다해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한 발, 두 발, 도움닫기 후- 전 속력으로!!!
그리고. 눈 앞이 깜깜해졌다가-
"아으, 아아아아아!!!"
미우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방금, 누구야, 누구!!"
입에선 한번도 못 써봤던 한국말이 능숙하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몸 안의 마력은-
"으앙, 어떻게 해, 내가, 평생 모은 마력, 다 써버렸어-"
정말 바닥까지 박박 긁어 썼다.
게이트 안의 존재가 자신을 비웃으며 어떻게든 추가 계약을 얻어내려 했지만.
'처음 보는 남자한테 모든 걸 바치는 계약을 맺으라고?
미쳤어? 난 마력 많이 뽑아내줄 수 있는 남자랑 계약 맺을거야-'
미우는 성당 기사단에 들킬 생각도 없고.
샤를처럼 바보같은 약속을 할 생각도 없었다.
미우는 마력이 탈탈 털려 어지러운 몸을 이끌고 하늘에 떠있는 마력 선을 눈으로 쫒았다.
분명히 샤를이라는 여자로 흘러들어가는 마력선일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남자들 중.
가장 많은 마력을 샤를에게 보내고 있는 남자는-
***
폰허브를 뒤지던 장봉은 한숨을 푹 쉬었다.
강민이 결혼하고 나서는 영상이 드문드문 올라왔다.
내용도 덜 하드해지고.
'NTR 컨셉으로 야동 찍는 건 어떠냐고 물어봤지.'
스틸샷과 예고편 개념으로 짤막한 영상이 올라왔지만 커뮤니티에서 욕만 더럽게 쳐먹고 내려갔다.
하드한 걸 원한거지 다른 남자와 뒹구는 걸 원한게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독약같았다.
'본인도 그걸 알았는지 커뮤니티에 죄송하다고 사과문 게시하긴 했지만...'
구독자들은 하드한 걸 좋아하긴 했지만 강민과 엮이는 걸 보고 싶었다.
그 사태 이후로 구독자수가 빠져나가고.
장봉도 그 이후 좀 마음이 떠서 보는 빈도가 줄었다.
'그리고 야동 보면 볼수록 허무하기만 했지.'
장봉은 바지를 올리고 턱을 괴었다.
강민과 샤를 커플처럼 애정 넘치는 가정을 이루고 싶다.
그 때 갑자기 딩동. 누군가가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택배 기사인가? 장봉은 눈썹을 들어올렸다. 문 앞에 놔두고 가면 될 텐데.
하지만 인터폰엔 아무것도 없고, 문 앞에도 택배따윈 없었다.
"뭐지..."
장봉은 머리를 긁고 들어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 누구세요!!!"
빨간 머리카락.
머리에 자그맣게 보이는 뿔.
그리고 슬렌더한 몸매와 아름다운 눈동자.
연예인처럼 귀여운 여자가 침대에 앉아있었다.
장봉이 벌벌 떨고있자 침대에 앉아있던 여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 샤를의 영상 자주 보시죠?
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서큐버스라고... 들어보셨나요?
당신이 원하는 섹스라면- 뭐든지 해 줄 수 있는데-
다른 사람으로 변해줄 수도 있고. 펠라부터 노콘 질내사정까지. 애널 섹스도 그렇고.
여기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신다면-"
장봉은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샤를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정말로?
"당, 당장 계약하죠!"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