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화 〉 324. 샤를과 강민의 결혼
챠르가 굶든 말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눈코뜰 새 없는 시간이 휙휙 지나갔고 2주는 눈 깜짝할 새였다. 추위 때문에 야외결혼식이 멈추기 직전의 막바지 시기였다.
"신랑 분은 참 운이 좋으시네요."
머리에 왁스를 좀 더 바르며 직원이 재잘거렸다.
"비 온다고 했는데. 11월에 이렇게 화창하고 따뜻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어제 결혼하신 분은 결국 너무 추워서 실내에서 하셔야 했는데."
옆에서 기다리는 미카엘을 슬쩍 보자, 미카엘이 웃으며 검지를 입가에 올렸다. 아무래도 미카엘이 뭔가 해 준 것 같은데. 고마워라.
"어떠신가요?"
스타리일리스트가 짠 하고 양손을 펼쳤다. 대기실에 앉아있던 여자친구들이 눈을 크게 뜨고 탄성을 질렀다.
"오빠, 진짜 잘생겼다! 전문가가 만져주니까 다르긴 다르네!"
"샤를 부럽다... 나도 드레스 입고 싶어..."
"...평소에도 이렇게 하고 다니는 것도 괜찮겠어."
스타일리스트가 대기실에 있는 여자들을 훑는 게 느껴졌다. 예림, 영선, 미카엘, 아나이스- 보나마나 '여자친구들이 참...많네요? 신부 분이 싫어하시겠는데?'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내가 봐도 신부측이 싫어할 것 같은 여자들밖에 없다. 지금 당장 걸그룹 센터에 세워놔도 될 여자들 뿐이니까. 지금도 내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는 게 느껴진다.
'그보다, 샤를은 잘 하고 있으려나?'
***
"아으, 드레스가 왜 이 모양이야!"
챠르는 여동생의 드레스를 보며 펄쩍펄쩍 뛰었다. 아래로는 허벅지 위로 올라와서 샤를의 가터벨트 타투를 다 드러내고, 위로는 쇄골의 생년월일에 가슴골까지 다 보인다. 서큐버스 기준으론 평범하지만 여긴 인간계 아냐!
하지만 샤를은 눈 메이크업을 받으며 태평하게 말했다.
"뭐 어때. 내가 이거 입고 나왔을 때 강민 오빠 눈 완전 커졌거든."
"맞아요. 들러리 분도 아시겠지만 요새 이런 디자인 꽤... 음..."
스타일리스트는 거들어주려고 했지만 내려다보이는 가슴 사이의 거대한 골에 입을 다물었다. 이 정도 노출은 결혼식장에서보단 수영장에 어울린다. 필사적으로 말을 돌렸다.
"그래도 신부분이 좋아하시잖아요?
아, 쇄골 쪽 타투는 안 지워도 괜찮으시겠어요?"
스타일리스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허벅지는 좀 어렵겠지만 쇄골의 타투는 충분히 분장으로 가릴 수 있다. 하지만 샤를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괜찮아요."
'오빠가 새겨준 거니까.'
샤를은 가만히 앉아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자기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순백색으로 반짝이는 예쁜 웨딩 드레스. 강민의 취향에 맞춘 거유. 머리 위에 올라앉은 티아라. 귀걸이, 완벽한 화장-
'행복해...'
샤를은 쇄골의 문신을 만졌다. 이제 오늘로 강민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어쩌면, 결혼 기념일도 어딘가에 타투로 남길까? 강민 오빠가 좋아할 텐데.
"샤를, 너 또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아니, 피부가 무슨 도화지도 아니고!"
"챠르?"
자신의 직업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유다가 찌릿 노려보고, 챠르는 입을 다물었다. 경솔한 발언이었다. 샤를이 꺄르르 웃었다.
"괜찮아. 언니.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데.
언니 불러서 같이 살게 된 것도 그렇고, 오빠랑 결혼하는 것도 그렇고-"
샤를의 목소리가 떨렸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굶어 죽을 걱정을 하며 마계의 창관에서 일했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게이트를 건너 강민을 맨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떨렸는지. 게이트와 한 약속에 따라- 이 남자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줬어야 했다.
덜덜 떠는 마음을 감추며 예림의 얼굴을 훔쳤었다. 좋아하는 여자의 얼굴이라면 심한 걸 요구하진 않겠지. 그리고 계약하기도 편할 거야-
그 전략은 잘 통했다. 망설이긴 했었지만. 덧붙여 마법으로 크기를 키워주자 낼름 수락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림이로 변신할 필요도 없었을텐데.'
남자를 잘 몰랐기에 거짓말을 더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성당 기사단의 등장, 그리고 예림이의 부모님까지 사고에 휘말렸었다.
'만약 강민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과 계약했다면 어떻게 됐었을까?'
병원 계단을 달려올라 박수무당을 제압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예림의 부모님에게서 눈을 돌리는 비열한 인간이었다면.
자신이 저지른 일을 해결하지 않고, 샤를에게 다 떠넘기는 인간이었다면.
자신은 아직도 성당기사단에게 잡혀 고통받고 있었겠지. 하지만 강민은 모든 걸 해결하고 자신을 만나러 왔다. 그리고- 용서해줬다.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강민이 문으로 들어오는 순간 찬란한 천 개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모든 걸 용서한다고, 그리고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손을 내밀어 줬었지-
'강민 오빠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
"어머, 신부님, 우시면 안돼요!"
"죄, 죄송합니다-"
샤를은 화들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 모양이었다. 스타일리스트가 다시 화장을 해주고 마스카라를 닫았다.
"자. 신부님. 다 끝났어요. 이제 곧 시작할 거예요. 저쪽 문으로 나가면 신랑 분이 기다린답니다!"
샤를은 콩콩 뛰는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정말로, 오늘 결혼하는구나- 강민 오빠랑 영원히 맺어질 수 있구나.
"언니, 나 좀 일으켜줄래?"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내민 손을 챠르가 꽉 잡아 줬다. 행복함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또 울면 화장이 엉망으로 망가질거란 생각으로 꾹 참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좋아?"
"응, 언니- 행복해-"
챠르도 훌쩍훌쩍 울었다. 동생이 행복한 걸 보자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전염병 이후 둘이서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었는가. 하지만 이젠 정말 행복한 일만 가득할 거야. 마음 속으로 동생이 행복하길 바랐다.
"신부, 입장합니다."
사회를 맡은 예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맨 처음 자신의 얼굴을 훔치고, 거짓말 한 것도 모두 용서해 주겠다며 사회를 자청했다. 강민과 샤를 모두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했지만, 맨 처음 둘이 엮이기 시작한 것도 예림이 덕분 아니겠는가.
"오늘. 11월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정말 화창하네요. 이 커플의 행복한 미래를 알리는 듯 합니다."
가을의 하늘은 정말이지 높고 푸르렀고. 날씨도 오월의 화창한 날을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객으로 참여한 강민의 여자친구들은 햇살을 받으며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쳤다.
"버진 로드를 걸어서, 지금 신부가 다다랐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중 버진은 아무도 없었지만. 바닥에 끌리지 않는 형태의 드레스였기에, 챠르가 옆에서 샤를의 손을 끌었다.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고 신랑에게 보내듯, 강민에게 샤를을 보낸다.
너무나 행복하면 눈물이 난다. 챠르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울었고, 샤를도 펑펑 울었다. 강민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샤를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샤를. 울어도 괜찮아."
"미안, 미안해요, 오빠- 울면 안 되는데, 너무, 너무 행복해서-"
샤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여자친구들은 괜찮다고 연호했고, 샤를은 결국 다들 너무 고맙다며 더 크게 울고 말았다. 간신히 진정되고 나서야 다시 식이 진행됐다. 행복하라는 예림의 말과 영선의 축가, 챠르에게 인사-
유다가 속삭였다.
'강민이 어머님은 왜 안 오셨대?'
'내 결혼식때 부르기로 했어.'
영선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어머님에게 기억조작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혼식에 어머님을 세 번 불렀다간 강민이 들을 쌍소리가 예상이 갔다. 니 아비도 여자랑 바람나서 나갔는데~ 어쩌고 저쩌고~
결국 결혼식에 부르는 건 한 번 뿐. 나중에 추석때 찾아뵐 때 한 번에 이야기하기로 서로 합의가 된 상황이었다. 유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난 결혼식은 안 하고... 혼인신고서만 낼 거니까...'
하객과 부모 아무도 없는 결혼식이라니. 상상도 하기 싫었다. 샤를은 핑계라도 있었지만 유다에겐 핑계도 없다. 그래서 결혼식 관련은 알아서 하라고 넘기고 빠졌는데 그렇게 결정이 됐었구나.
'잘 됐네.'
유다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앞을 봤다. 예림이 클라이막스를 말하는 중이었다.
"신랑 강민은, 신부 샤를을 아내로 맞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강민은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평소의 모습과 달랐기에 다들 킥킥 웃었다.
"신부 샤를은, 신랑 강민을 남편으로 맞아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훌쩍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강민이 반지를 꺼냈다. 샤를이 손을 내밀고, 눈물을 훔치면서도 활짝 웃었다.
"이 둘은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기를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예림의 말이 끝나고, 다들 모여들었다. 축하한다는 말이 빗발처럼 쏟아졌고, 결혼 사진은 퉁퉁 부은 눈으로 찍혔다. 정말 화창한 11월의 결혼식이었다.
***
"아아- 신행 이야기 다시 들으니까 나도 몰디브 가고싶다."
"엄청, 엄청, 엄청 천국이었어. 아직도 생각나네."
챠르와 샤를은 거실에서 꼴사나운 결혼식 사진을 보며 킥킥 웃었다.
"포토샵좀 해 주지. 저게 뭐야."
"나름대로 귀여운 면도 있는걸?"
샤를은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5개월 정도 됐고, 임신 7개월에 가까워진 배는 누가 봐도 임산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끙차..."
샤를은 입으로 소리를 내며, 결혼식 사진 액자를 만졌다. 45도정도 기울어지게. 그리고 그걸 본 챠르는 입을 딱 다물었다.
저건 부부끼리의 신호였다. 오늘 저녁에 들어오면, 씻고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챠르는 바싹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