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화 〉 311. 언니를 부르자(3)
* * *
"...어제 이야기는 잘 나누셨나요?"
"그래. 잘 끝났지."
몰골을 보니 잘 끝난 게 아닌 것 같은데. 성연은 하루 만에 피골이 상접했다. 퀭하게 들어간 눈과 덥수룩하게 변한 수염. 그리고 몸 곳곳에 남아있는 붉은 색 키스 자국들. 아마 니모나가 밤새도록 성연을 괴롭혔나보다. 니모나의 눈도 퉁퉁 부어있는 걸 보니 남편을 엄청 원망했나 본데?
'당신. 당신도 내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을 거야. 내가 강민 씨에게 봉사하는 걸 보면서 괴로워하게 될 거라고. 당신이 괴로워하는 만큼 사랑의 크기를 짐작할게. 당신이 좋아하는 NTR 플레이 마음껏 즐겨.'
보지 않았어도 니모나의 대사가 짐작이 간다. 그리고 예전에 니모나가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었지. 사정은 불가능하지만 다른 여러 곳으로 오르가즘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귀 안쪽이라던가, 겨드랑이, 다른 여러 부분까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
머리를 흔들고 샤를에게 향했다. 샤를은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중이었다.
"샤를. 괜찮아?"
"으으, 아뇨. 좀 떨리네요."
"너무 긴장하지 마. 그냥 언니 곧 본다고 생각하고. 자."
내가 내민 손을 잡은 샤를의 얼굴이 그나마 좀 풀어졌다.
"고마워요, 오빠. 한번 잘 해볼게요."
자신의 발 밑에 있는 마법진을 내려다봤다. 동심원과 별, 여러 기호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끝없이 그려져 있었다. 성연과 니모나, 아나이스와 미카엘까지 모두 도운 10M에 달하는 대규모 마법진. 밤새 준비는 모두 끝났고, 시간에 맞춰 마력을 흘려넣으면 되는 상태.
"일몰 시각이 6시 30분이니까. 앞으로 10분이면 시작이야."
"넷, 네에에"
다시 긴장이 몰려오는지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마디가 새하얘질 정도. 어떻게 하면 긴장을 좀 풀어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 샤를의 머리에 있는 뿔이 눈에 들어왔다. 금색 피어싱이 뚫고 지나가 있는데, 처음에 뚫었을 때보다 커졌다. 사실 주변부를 갈아내고 피어싱을 교체하는 플레이를 한 번 했었거든.
"그러고 보니 샤를. 언니가 이 뿔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아?"
샤를은 후다닥 뿔을 움켜쥐었다. 얼굴이 금세 새빨개지고,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으으, 으으으 안 돼요 진짜 화 낼지도 부끄럼도 모르는 천박한 서큐버스라고 매도해도 할 말 없다구요."
"왜 안 가리고?"
마법으로 가리는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샤를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여기서 마법 잘못 썼다가 게이트 열렸을 때 사고 생기면 어떻게 해요!"
"흐음"
나는 묘하게 두근거렸다. 마치 영선 누나의 화장실 타투가 남들에게 들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상상만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샤를의 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래도 난 좀 답 없는 변태인가봐. 그런 반응을 실제로 보고싶어하다니.
"그리고... 이건 진짜로 말하면 안 되겠지?"
샤를의 배를 살살 쓰다듬는다. 배에 있는 마력 문신은 지금은 사라져 있지만, 5분 전까지만 해도 임신 1주차 라는 글자가 빤히 떠 있었다. 샤를은 입을 꼭 다물고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절대 말하지 마요. 진짜로. 오빠 죽이겠다고 달려들 수도 있어요."
"알았어. 여자친구 과부 만들 순 없으니까 입조심할게."
"으으, 걱정된다..."
샤를의 걱정은 이제 게이트가 안 열리면 어떻게 하지 에서 언니를 만나면 어떻게 하지로 옮겨가 있었다. 임신, 하렘, 뿔 뚫기 등.
초점이 옮겨 가서 다행이다! 게이트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으니 이제 마음 편하게 문을 열 수 있겠지. 웃으며 긴장을 더 풀어줄 요량으로 물어봤다.
"맞다. 샤를. 언니 만나면 무슨 말 해줄거야?"
갑자기 샤를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드물게 풀이 죽었다.
"으음. 모르겠어요."
사실 마계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지도 아리송하네요."
어라?
"사실 게이트를 열어보는 건 처음이라.
아무리 시간축 보정을 했다고 해도 몇 년이 흘러 있을 지 게다가 언니가 건강해야 할 텐데... 좌표가 잡히는 걸 보면 살아 있는 건 맞지만 괜찮겠죠?"
샤를은 엄청나게 불안해 보였다. 내가 뚜껑을 잘못 연 듯 했다.
하긴, 설화에 그런 이야기들은 흔하지. 바둑을 두고 왔더니 도끼자루가 다 썩어 있었다던가, 여우에게 홀려 몇십 년 만에 집에 들어갔다던가.
이런 설화들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선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흐른다고.
하지만 이럴 땐 남자친구가 안심시켜 줘야겠지. 그리고 나도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 봤다고.
"샤를. 다 잘 될거야. 이런 문제들 많이 검토해서 잡은 거라구."
"진, 진짜요?"
"응. 특히 시간축 문제는 우리도 많이 인지하고 있어서 얼마나 고민했는데."
옛날 판타지 소설 이드에서도, 현실로 돌아갈 때 몇 년이나 어긋난 시간에 게이트를 열어서 문제가 됐던 적이 있었지. 나도 혹시나 그런 일이 있을까봐 성연씨에게 몇 번이고 이야기하며 문제 생길 만한 건 모두 수정했다고! 의외로 판타지 소설들이 그런 문제점을 짚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다. 그리고 미생물 검역이라던가, 공기 살균도 모조리 검토했고!
하지만 아직도 샤를은 불안해했기에, 허리를 꼭 껴안아 주며 속삭였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옆에서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영원히 도와줄게.
샤를은 내 아내잖아. 난 샤를 남편이고."
손가락의 반지를 보여주며 씩 웃었고, 샤를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헤헤, 남편
맞아요, 그랬지.
헤헤. 진짜 결혼한 거니까. 맞아아."
샤를이 쑥스러워했다. 그러다
삑삑. 삑삑. 삑삑.
손목에서 시계가 울렸다. 곁눈질로 하늘을 확인했다. 태양은 지평선에 걸쳐져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성연의 말에 따르면 밤과 낮이 뒤바뀌고 이곳과 저곳의 경계가 흐려지고, 저 너머에서 오는 동물이 늑대인지 개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 문을 열기에 제일 알맞은 시간.
"샤를. 이제 시작하자."
"네."
샤를은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 손목을 들어올리자 문신이 반짝거렸다. 형광 도료가 반딧불이처럼 하나둘 빛을 올린다. 내 이름과 샤를의 이름, 다른 여자들의 이름이 서서히 떠오르고 내 팔에서도 마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우리 둘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손목에서 떠나간 빛덩이들은 바닥에 스며들었다. 마치 지브리의 영화처럼 반짝, 반짝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땅엔 빛, 하늘엔 보라색과 어두운 하늘색, 붉은 빛이 뒤섞여 온갖 휘황찬란한 물감을 바르는데
"저, 저것 좀 보게!"
성연은 지평선을 가리키며 흥분으로 소리질렀다. 저 너머 태양에 까만 점이 보인다. 보통 흑점이라고 하는 것들은 맨 눈으론 관찰할 수 없을텐데.
"어?"
하지만 검은 점이 점점 커진다. 마치 태양을 잡아먹는 것처럼. 그리고 지평선에서 서서히 몸집을 불린다. 일식이 일어나는 것을 몇십배로 빠르게, 거대하게 재생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내 손목에서도 빛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는데 기괴한 감각이 흘렀다. 손목을 긋고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 생명이 흘러나가는 감각에 깜짝 놀라 외쳤다.
"성, 성연 씨! 이거 괜찮은 거예요?"
하지만 성연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태연하게 손을 흔들었다.
"이 정도면 양호한 거야! 난 그 때 진짜로 죽을 뻔 했다고!
그리고 지금 다 열렸어! 샤를! 언니에게 말해 보게! 아마 듣고 있을 거야!"
샤를은 '벌써 열렸어?'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저 샤를이에요! 언니 여동생! 지금 저 사라지고 몇 년이나 흘렀어요?"
언니가 대답을 했는지 샤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네? 네! 2 년? 다행이다! 언니! 이제 건너오시면 돼요!
제가 마력 다 모았어요! 불러올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지만 갑자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건너간지요? 5개월? 6개월 됐나?"
"아니, 뭘 못 믿어요! 설명하긴 긴데, 그, 인터넷이란 걸 이용해서"
샤를은 한참 동안 너머의 사람에게 말을 했지만 갈수록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당황해서 물었다.
"샤를. 무슨 일이야?"
샤를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말했다.
"오, 오빠 언니가, 안 믿어요
제가 게이트를 열었다니까 거짓말 취급하고. 다른 악마가 자길 잡아먹으려는 수작이라고 믿는데?
6개월만에, 마력을 얻었다니까 안 믿어요!"
뭐?
당황하고 있는데 어느 새 태양에서 시작된 검은 구멍은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어둡고 깊었다. 저 게이트가 서서히 커지는 게 느껴졌다. 성연도 당황했다.
"이런, 이거 왜 이래?
뭔가 뭔가 잘못됐나? 이봐, 언니 불러와! 빨리 닫아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샤를은 아직도 옥신각신하는 중이었다.
어쩐다, 어쩐다? 순간 머릿속에서 반짝 전구가 들어왔다.
"젠장, 젠장
샤를. 그, 휴대폰 줘봐!"
샤를의 휴대폰을 빼앗아서, 폰에 저장되어 있는 영상을 골랐다.
가장 충격적일 만한 것 언니가 가짜든 아니든, 이 쪽으로 넘어오지 않고는 못 배길만한 것.
그건 당연히
[ 샤를의 혼전임신 영상 ]
배 위에서 꿈틀거리는 문신과 난자 이동, 스페이드 모양 자지가 라이브로 쑤컹쑤컹 보지를 쑤시는 영상.
이거라면 일단 넘어오고 생각하겠지! 하며 게이트 안으로 힘껏 던져넣었다.
그리고 반응이 즉각적으로 왔다.
"오, 오빠! 뭐 넣은 거예요?
언니가 제정신이냐고 화내는데? 뭐야, 뭐야?
어, 어? 아니, 언니! 그! 설명하자면 긴데! 언니, 잠깐"
그리고.
출렁, 출렁.
게이트의 안에서 동심원이 퍼져나오고 검은 석유 아래에서 괴물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두근, 두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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