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310. 언니를 부르자 (2)
* * *
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항변했다.
"니모나. 그게 아니야.
그냥 물어본 것 뿐이야! 내가 억지로 계약 취소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날 못 믿어?"
불륜 현장을 들킨 범죄자처럼 택도 없는 변명이다.
자신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인 걸 알고 땀을 흘린다.
니모나는 그런 남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뭘 하고 싶은 건지 말해봐. 들어줄게."
여기서 좋다고 말했다가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란 말을 들을까봐 찔리기도 했지만, 만약 니모나가 진짜로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라면?
성연은 한참 망설이다가 계약서 두 장을 꺼냈다.
결혼계약서, 그리고 강민과 니모나의 계약서였다.
"...그래. 이렇게 된 김에 이야기를 해 보자고.
강민과 한 계약보다 나와 한 결혼이 먼저였고. 이걸 더 상위 계약으로 취급해.
여기 있는 권리를 행사한다면 강민과의 계약은 무효야!"
"진짜로. 계약 없던 걸로 돌릴거야?"
니모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연은 니모나의 눈꼬리에 맺힌 이슬을 보며 가슴이 찌르르해지는 걸 느꼈다.
싫다고 저항하는 아내를 설득해 억지로 다른 남자에게 보내고.
결국엔 자신에게 돌아오는 걸 보는 건 성연의 뇌를 활활 태울 정도의 쾌감을 줬다.
하지만
"나도 그렇게까지 짐승은 아니야."
성연은 니모나와 협상을 시도했다.
지금 성연이 가장 가지고 싶은 건 NTR 플레이의 주도권이다.
강민이 소유한 채 베풀어주는 NTR플레이도 흥분되긴 했지만
자신의 아내가 강민의 소유가 되는 건 싫었다.
아내가 간신히 받아들일 정도의 아슬아슬한 선까지 협상안을 제시했다.
"계약을 깨진 않을게. 다만, 나랑 강민이 같은 협상 자격은 가져야 하지 않겠어?
나와 강민이 공동 주인님이 되는 건 어때? 그 정도면 괜찮지 않아?"
주식회사에서 50대 50의 의결권을 가져야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 것처럼.
니모나의 공동 소유를 제안한다.
강민은 나중에 어떻게든 구워삶아서, 강민 말고 다른 남자에게도 빌려주며 NTR 플레이를 즐겨 볼 생각이지만
"아직도 그럴 생각이구나."
니모나는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겐 공동 소유조차 말이 안 되는 제안이었다.
이럴 것 같아서 준비를 했었다.
눈물을 닦으며 휠체어 옆으로 다가가 폭탄같은 발언을 던졌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이렇게나 빠르게 말해야 할 지 몰랐지만.
샤를처럼 축복 속에서 발표하고 싶었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한다.
"나. 임신했어."
박성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강민도.
임신이라고?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박성연은 지금 하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인데. 결혼한 리림이 배우자 말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잠깐, 잠깐, 잠깐. 임신했다구요? 아이를?"
"니모나. 그게 무슨 소리야?"
둘 모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니모나에게 다가왔다.
니모나는 자신의 배를 서글프게 쓰다듬었다.
"성연 씨가 결혼 서약을 이야기 할 것 같았어.
만약 정말로 계약을 취소하고 싶다면.
결혼한 거, 무효로 돌릴 생각이야..."
니모나는 눈가를 훔치며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상대방에게 서로 신실할 것이라는 조항을 임신으로 대차게 깨버렸다.
정말 싫었지만, 그랬지만
성연이 다른 남자에게 자신을 보낼 생각이라면 헤어지는 게 나았다.
사랑하지만 NTR플레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잠, 잠깐만요. 니모나.
뱃속에 아이가 있다구요? 제 아이가?"
물론 강민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이야기를 듣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영선과 샤를의 임신은 계획한 거니까 상관없지만. 갑자기 니모나가?
차라리 자신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났길 바랬지만 니모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강민 씨...
허락 안 해줄 것 같아서, 몰래 임신했어.
우리 반지 빼고 섹스한 그 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배 위에 양손을 댄 니모나의 모습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몸에 착 달라붙는 골지 원피스 아래로는 평소와 똑같은 복근이 보이는데.
저 뱃 속에 내 아이가 있다고?
난데없는 말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니, 니모나..."
그리고 성연도 마찬가지였다.
리림 종족의 혼외 임신이라니.
니모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몰아붙였다는 사실에 손이 덜덜 떨렸다.
"니, 니모나.
나, 나는 그럴 생각까진 아니었는데
이럴 줄은, 몰랐는데"
니모나는 자신에게 손을 뻗는 성연에게서 뒤로 물러나며 노려봤다.
얼굴은 우느라 엉망이었다.
"인간끼리도 NTR 플레이는 안 하는데!
리림이랑 이런 짓을 하는 게 용서될 것 같아?
정말 싫어, 미워, 미워, 밉다구..."
니모나의 어깨가 들썩였고, 성연은 황망하게 입을 벌리고 덜덜 떨었다.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니모나를 붙잡기 위해 앞으로 몸을 기울이다 균형을 잃고 휠체어에서 쿠당탕 떨어졌다.
하지만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앙상한 하체를 질질 끌며 니모나에게 다가갔다. 뼈밖에 안 남은 무릎은 바닥에 쓸려 피를 뿜어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랑하는 니모나가 강민의 아이를 임신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었단 건, 박성연에게도 충격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사정했다.
"들어가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난, 난 그럴 줄은 몰랐어, 미안해 니모나, 미안해"
니모나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남편을 보며 이를 꽉 깨물고 내뱉었다.
"바보같은 당신. 이렇게 되서야 겨우 깨닿다니.
내가 다른 남자의 소유물이 되고, 아이까지 임신하고 나서야 알았다니."
서서히 목소리가 커진다.
"이제야 짐작이 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냐고!
밤마다 얼마나 울었는데! 그만하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당신 다리 치료해 주겠다고 폰허브에 내 얼굴 전시하는 것도 죽도록 싫었지만 다 해줬어!
그런데, 계속 하자고? 이걸?
난 더는 못해!"
마지막은 숫제 비명에 가까운 절규였다.
성연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할 정도로 힘들었다니.
그렇게 해서라도 도망치고 싶었다다니.
기어서 니모나의 발을 붙잡고 사정했다.
"미안해, 미안해. 니모나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 잘못했어"
니모나는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애처롭게 애원하는 표정.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입술.
절박하게 내미는 손.
'성연 씨, 성연 씨'
자신에게 매달리는 어찌할 줄 모르는 눈빛이.
애절하게 쳐다보는 표정이.
자신에게 떠나지 말아달라고 하는 말이.
좋다.
니모나도 뼛속까지 NTR의 쾌감에 절여졌다.
그래서 제발 그만하고 싶다고 했는데.
자신이 강민에게 넘어가서, 어쩔 줄 몰라하고 애타하는 남편이 표정이 좋다.
여기까지 와 버렸다. 어쩔 수 없다.
니모나는 훌쩍거리며 무릎을 천천히 꿇었다.
부드럽게 성연의 뺨을 감쌌다.
"알았어.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니모나는 성연을 안으려고 했다.
"제가, 제가 올려드릴게요."
강민은 후다닥 달려와 성연의 목과 허리에 손을 받치고 끙 들어올렸다.
70kg은 넘어갈 무게를 임산부가 들다니, 말도 안 될 소리다.
그것도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박성연을 휠체어에 태워주자 니모나가 밀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들, 들어가서 영선 누나한테 부탁하면 도와줄 거예요."
"응. 알았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니모나는 살짝 인사하고 집 안으로 사라졌다.
언뜻 본 박성연의 얼굴은 혼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당연히 저럴 수밖에 없지?
이게...대체 무슨 일이야...?"
강민은 자리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니모나가 가장 먼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남편이 NTR 플레이하는 게 얼마나 싫었으면...'
얼마나 절박한 마음이었는지 짐작할 뿐이었다.
"내일 소환 의식은 어떻게 하냐...
챠르 씨가... 날 가민히 둘까?"
서큐버스와 리림을 나란히 임신시켰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되지?
NTR 플레이를 즐기는 박성연이 기겁할 정도라.
자신의 아내가 임신해서 놀란 것도 있겠지만 리림이 혼외 임신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정말 미안한 것 같았다.
'...처형에겐 절대 들키지 말자...'
강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
"자기야. 물 온도 괜찮아?"
니모나는 땀에 흠뻑 젖은 성연을 씻겨주며 물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다 가라앉은 목소리다.
"괜찮아. 딱 좋네."
"물 안에 있으면 더 편할거야."
깊은 수영장같은 욕조로 성연을 데려간다.
물 안에 떠 있는 동안은 하체의 무게가 사라지기에, 항상 자신의 몸무게에 시달리는 성연에게는 최적의 장소.
성연은 물에 떠 니모나를 꼭 껴안으며 속삭였다.
"미안해. 니모나.
당신이 그정도로 힘들어 할 줄은 몰랐었어."
"아냐. 괜찮아."
성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가 이렇게나 힘들어 할 줄은 몰랐다.
전처가 당연하게 플레이하던 것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마력만 다 받으면.
우리끼리 알콩달콩하게 살자.
미안해 니모나."
하지만 니모나의 눈빛이 이상하다.
눈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불꽃.
"음. 그렇지만 난 강민 씨 소유잖아?"
"니, 니모나?"
"있잖아.
당신한텐 이것도 NTR 플레이의 일종이겠지?
내가 강민 씨 아이 키우는 것도.
기뻐해. 이제부턴 내가 주도적으로 NTR 플레이 해 줄게.
주말마다 이 집에 와서, 이 욕조에서 강민이랑 뒹굴 거야."
"잠, 잠깐만 니모나."
니모나가 성연의 몸을 더욱 껴안으며 귀를 깨물었다.
"상상해 봐.
내가 강민씨한테, 서방님 서방님 하고 부르면서.
앞뒤로 끈적끈적하게 봉사하는 걸."
"니모나, 니모나"
성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제서야 깨닿는다.
니모나도 성연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성연이 몸을 빌려주는 니모나를 보며 사랑을 느꼈듯.
니모나도 괴로워하는 성연을 보며 사랑을 느낀다..
'사랑해. 당신.
당신이 괴로워할수록 당신 사랑의 크기를 확인하게 돼.
앞으로도 영원히 '
"아앗, 아아"
성연은 괴로움에 가슴을 쥐어뜯었지만 이미 끝났다.
성연도 니모나가 괴로웠던만큼.
아니, 그보다 더욱 오래도록 강민에게 몸을 바치는 니모나를 보며 괴로워해야하는 운명인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