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화 〉 280. 예림이와의 100일 기념일 &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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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불공평해요."
내가 옷을 고르는 동안 샤를은 시무룩하게 입을 내밀었다.
"나도 오빠랑 사귄지 100일 넘었는데 기념일때 아무것도 안 해줬으면서.
예림이한테만 100일 챙겨주고. 나빴어요!"
샤를 너도 100일 챙길 생각 못했잖아! 프랑스에 갇혀있지 않았니?
하지만 샤를만 불만이 있는게 아니었다. 영선과 유다도 아기새처럼 줄줄이 앉아 내가 옷 입는 과정을 빤히 지켜봤다.
"흐응... 나한텐 문신까지 해놓고, 100일 챙겨주는 건 예림이뿐이다..."
영선 누나는 자신의 문신을 만지며 유달리 풀죽은 모습을 보였다. 평소처럼 기운차게 왜 난 안 챙겨줘! 이런 반응이 아니다. 정말로 시무룩해보이니 양심이 따끔거린다.
거기에 유다 누나까지 슬픈 눈으로 앉아 있으니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선물이나 같이 놀러가는 거나, 해달라는 거 뭐든 다 해줄게!
그러니까 오늘은 제발!"
예림이하고 약속한 걸 망칠순 없잖아! 셋을 달래줄 당근을 던지자 침대에 쪼르르 앉아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묶어놓고 약올리는 건 어때? 아니면 하루 종일 애태우고 섹스 안해주는건?
그거 좋네요. 오빠 진짜 괘씸해요. 우리랑 먼저 사귀었으면서 예림언니 기념일만 챙기고.
이래서 아빠가 남자 믿지 말라고 했나봐. 아빠한테 다 말해버릴까보다.
셋이서 열심히 토론을 하는 중이다. 하렘이란 거 진짜로 유지하기 빡세구나.
나한테 도대체 뭘 시킬지 두려워지긴 하지만 다 자업자득이겠지.
마음속으로 오들오들 떨며 외출 준비를 했다.
"오빠!"
걱정을 뒤로 하고 1층으로 내려가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예림이 화사하게 나를 맞았다.
어깨를 훤히 드러낸 오프숄더 티. 가슴쪽에 셔링이 들어가 있어서 큰 가슴이 더욱 부각되고, 아래쪽은 허벅지를 드러내는 미니 튤립스커트다.
남들이 쳐다보는 여친룩의 정석이라고 해야할까? 게다가 오늘 데이트를 위해 화장도 평소보다 훨씬 예쁘게 했다. 섹시해보이는 붉은 빛 립스틱. 낙타처럼 긴 속눈썹 위에 올라간 마스카라까지. 눈꼬리를 빼고 볼터치를 살짝 진하게 해서 남자의 마음을 뭉클뭉클하게 끓어오르게 만드는 화장이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예림이 배실배실 웃으며 팔짱을 꼈다.
"오빠. 내가 그렇게 예뻐?
엄청 뚫어지게 쳐다보네?"
나도 내 옷을 점검해봤다. 예림이랑 급은 맞춰야지!
깔끔하게 맞춘 스웨터 조끼와 팔목까지 걷은 와이셔츠, 슬랙스.
카페 안쪽에서 바리스타를 하고 있어도 될 정도로 단정. 깔끔!
예림이는 내 패션이 마음에 드는지 볼에 쪽쪽 키스해주며 칭찬했다. 비비안 향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카페 알바할 때처럼 엄청 단정하고 예쁘다.
유다 언니는 머리 넘긴 양아치 스타일이 어울린다고 하는데.
내 생각엔 오빠 머리 내리고 있는 게 좋아.
알바할 때 생각도 나고."
확실히 여자들마다 좋아하는 내 패션이 다르군. 샤를은 깐머리, 유다는 포마드 발라 넘긴 머리. 예림은 단정한 것.
나중에 욕 먹지 않게 잘 기억해 둬야지. 다른 여자 취향대로 옷입고 머리손질했다간 죽을지도 몰라.
"그럼 갈까?"
예림은 하이힐에 올라서며 내 팔을 잡았다. 오늘 예림이 진짜 풀메이크업 풀세팅이구나. 실망하지 않게 잘 에스코트해야지, 마음먹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운전하는 동안 예림이는 옆 좌석에서 내가 다 행복해질 정도로 날 쳐다봤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동자다. 방긋방긋 웃으며 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오늘 왜 이렇게 귀엽고 잘생겼지?
톰 하디랑도 닮았고, 톰 홀랜드랑도 닮았어. 아휴, 귀여워!"
둘다 성이 톰이란 거 말곤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은데.
그래도 칭찬을 받으니 어깨가 으쓱거렸다.
"오빠. 그래서 우리 오늘은 어디 가는거야?"
오늘? 기대하라고.
발렛파킹을 맡기고 압구정 현백 안으로 들어가자 예림이의 눈이 커졌다. Tiffany & co 까지 가니 혹시, 혹시? 하면서 내 손을 긁었다. 가슴이 뛰고 있다는 게 나한테까지 느껴졌다.
"설마, 오빠?"
사슴처럼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본다.
나도 두근거려질 정도네.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점원에게 민트색 상자를 받았다.
딸깍. 상자가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손이 떨리는 걸 참으며 조심스레 반지를 꺼냈다. 로즈골드와 화이트골드가 섞여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린다
"청혼하는 건 아니지만...
요새 커플링 맞추고 싶어하길래."
예림이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조그맣게 떨리는 중이었다. 심장의 박동에 맞춰 두근, 두근. 얼마나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느다란 약지손가락에 반지를 밀어넣었다. 예림이와의 첫 잠자리보다 더 떨렸다.
한번도 반지를 끼워본 적이 없는 곳에 반지를 끼워준다는 감각.
첫 남자친구도, 마지막 남자친구도 내가 되고 싶었다.
"잘 어울린다."
진심이었다. 희고 긴 손가락에 정말 딱 들어맞았다.
예림이는 눈 앞에서 손을 이리저리 돌리고, 반지를 쓰다듬으며 얼굴을 붉혔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나를 꽉 껴안고 기쁨에 겨워 속삭였다.
"오빠, 고마워...!
내가 커플링 하고 싶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야 한참 전부터 악세사리 보고있으니까 알았지!
맨날 약지 쓰다듬고 있고. 자기가 여자친구인 게 실감 안난다고 그러고!
보통은 1주년에 맞추는 거라지만 우리 상황이 특수하니까 어쩔 수 없지.
100일밖에 안 됐어도 맞춰야겠어.
"오빠도 손가락 줘봐."
이번엔 예림이가 내게 반지를 끼워줬다. 좀 더 투박한 남성용 반지다. 예림은 우리 둘의 손을 겹친 다음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헤헤, 진짜 남자친구다아"
배실배실 웃으며 인스타에다 업로드한다. 하트와 댓글들로 웅웅, 폰이 울리지만 가볍게 알림을 꺼버리곤 행복한 얼굴로 내 손을 잡았다.
예림이의 손가락에 자리한 반지를 보자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절벽 위의 꽃 같았던 예림이와 확고한 연인이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댜른 여자친구들과는 어쩌다 사귄 거지만, 예림이는 내가 먼저 좋아했었으니까.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
"저, 손님. 결제는"
점원에게 카드를 건네주자 예림도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아, 오빠 건 내가 결제할래!"
"됐어. 집어넣어. 여기 비싸."
내 반지만 해도 170만원이다. 거기에 지금 폰으로 날아온 결제 금액은 약 800만원 언저리. 여러가지 악세사리도 많이 샀으니까.
예림이는 볼을 부풀리고 날 쳐다봤지만 뭐 어때.
여친한테 돈 쓰게 만들고 싶진 않다. 하렘때문에 가뜩이나 마음고생하는 여친들이니까 이정도는 해야지.
티파니의 특징인 민트색 쇼핑백에 물건을 가득 채워 차에 싣고,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예림이가 좋아하던 진나비의 공연 티켓을 내밀자 입을 떡 벌린다.
"3, 3열? 오빠, 이거 어떻게 구했어?"
매크로 만들어서 돌렸지... 다 구하는 방법이 있다고 둘러댔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 중 유일하게 도움됐네.
그리고 두 시간동안 콘서트를 보며 귀가 녹아버리는 줄 알았다.
이런 문화생활은 처음인데, 왜 부자들이 매일 공연보고 다니는지 알 것 같다.
보컬의 모공까지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서 듣는 노래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삶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유튜브로 듣는 거랑 현장에서 듣는 거랑은 천지차이였다. 스시 밀키트와 오마카세 식당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우리 둘은 나와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떠들었다.
"오빠, 봤어? 노래 진짜 잘하지! 분위기도 대박이야!"
"어. 최장훈도 진짜 잘생겼더라."
"음. 근데 잘생긴 건 오빠가 더 잘생긴 것 같은데?"
예림이는 내 볼을 만지작거리며 히히 웃었다. 아, 정말이지 귀여운 여자친구네.
"저녁도 예약했어?"
오늘 하루를 마감할 곳은 안다즈 강남 호텔. 여기 저녁 식사가 괜찮다고 해서 예약해봤는데 진짜 화려했다. 프렌치 퀴진이라는데 입 안에서 녹아서 사라지는 줄 알았다.
100일이 아니어도 가끔 오면 좋겠네.
"오빠. 나 화장실좀 갔다올게."
"가방 들고가게? 내가 맡아줄게!"
"아냐, 아냐! 그냥 기다리고 있어!"
예림이는 내가 가방 들어주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나한테 줄 선물이라도 들어있나? 뭐. 그럼 이따가 건네주겠지?
자리에 앉아 남은 레몬 샤베트를 먹으며 오늘 하루를 점검했다. 예림이가 좋아해서 다행이다.
이대로면 아주 멋진 100일이 되겠네.
예림이 오기 전에 계산하고 나가야지. 웨이터?
그런데 웨이터가 와서는 부드럽게 웃었다.
"저. 이미 일행분이 계산하셨습니다."
"예?"
입구를 보자 예림이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럴 필요 없는데. 그래도 좋긴 하네. 다가가자 팔짱을 끼며 아양을 부렸다.
"너무 오빠한테 얻어먹기만 하면 미안하잖아."
역시 예림이는 씀씀이도 고왔다. 천사같아!
돈이 많아도 상대방이 내주는 의사가 있냐 없냐는 아예 다른 문제구만.
기특함에 웃음이 실실 나왔다.
식당을 걸어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런데 예림이가 바닥을 하이힐로 문지르며 내게 달라붙었다.
뭔가 원하는 게 있는지 나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음, 오빠. 혹시 있잖아.
이대로 집에 가는 거... 아니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귓가에 바람을 훅, 불어넣어주며 속삭였다.
"갈 리가 있겠어?
오늘 100일인데?"
"그치, 그치이?"
예림이는 얼굴을 붉히며 내게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엔 아무도 없었다. 예림이를 껴안으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혀를 질척하게 섞는 딥키스를 했다.
예림이도 맨 처음의 서툴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이런 공공장소에서도 내가 좋아하니 아무렇지 않게 키스한다.
변한 예림이가 참 마음에 들었다. 튤립 스커트 위로 엉덩이를 주물러주자 비음을 내며 엉덩이를 이리저리 튼다.
흥분에 휩싸여 예약한 스위트룸으로 향했다.
"예림아, 먼저 씻을래?"
그런데 예림이는 씻는 대신, 얼굴을 붉히고 내 쪽을 바라봤다.
뭔가 할 말이 있는듯 입술을 씹으며 주저한다.
"뭐야?"
예림이는 들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아, 선물 주려나 본데
뭘 준비했으려나?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나오는 물품들을 보자, 난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오빠한테 100일 선물로 줄 게 뭐 있는지 생각해 봤어."
예림은 정말 부끄러운지 손을 덜덜 떠는 중이었다.
가방 안에 든 것을 하나하나 꺼낼 때마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관장용 주사기.
아스트로글라이드 러브젤.
음탕한 분홍색의 애널 비즈.
매직펜.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100일 기념으로. 예림이는 자신의 애널 처녀를 선물로 주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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