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 253. 미카엘 완전제압목줄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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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강민은 미카엘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손을 꽉 잡고 고해성사하듯 속삭인다.
"아나이스한테 심하게 대하는 건 다 미카엘 때문이예요."
"뭐, 뭐라구요?"
귓가에서 속삭이는 숨결이 간지럽다.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워, 강민의 억지 주장을 들으면서도 쉽사리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저는 미카엘을 엄청 괴롭히고 싶어요.
키스와 펠라치오 이상으로. 하지만 미움받기 싫어서 참고 있거든요.
참다 보니 아나이스를 자꾸 괴롭히게 되지 뭐예요."
미카엘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미카엘에게 미움받기 싫어요' 란 말만 귀에 들어온다.
다른 말들은 자기 멋대로 필터링된다. 미카엘이 연애 경험이라도 좀 있었다면 남자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내성이 있었겠지만, 순진무구 그 자체인 미카엘에게는 바라기 어려운 일이다.
강민은 귀에 속삭이며 손을 더 꽉 잡는다. 그러며 물었다. 투명한 눈이 미카엘을 응시했다.
"미움받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몰라요,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강민 씨 마음대로 하면 되잖아요..."
미카엘은 고개를 돌리며 투정을 부렸다. 자꾸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싫다.
강민은 아나이스를 괴롭히는 나쁜 악마 부역자니까 미워해야 하는데.
세상 상냥한 남친처럼 대해주는 게 너무 좋다.
사람의 포옹이 얼마나 따뜻한지 기억하게 만드는 강민이 좋다.
그래서 강민을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한다.
차라리 자신도 억지로 범하듯 여친 삼는다면.
그럼 못이기는 척 받아들일텐데.
강민도 미카엘이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미카엘 함락의 최종장을 위해 속삭였다.
"사실 미카엘 만난 후로는 아나이스 괴롭힐 때마다 죄책감이 느껴지거든요.
우는 걸 보면 가슴이 좀 아프기도 하고.
이렇게 괴롭히다가 언젠가 벌 받는거 아닌가 싶고.
그리고 미카엘이 절 미워할까봐 무서워요."
미카엘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거렸다.
강민이 아나이스를 용서해준다면, 자신도 아무 죄책감 없이 강민을 좋아할 수 있다.
그럼 해피엔딩이 아닐까?
미카엘은 격렬하게 동의를 표하며 강민의 행동을 지적했다.
"맞아요. 하느님은 다 보고 계신다구요.
아무리 천칭의 판결이라고 해도 아나이스에게 너무 심하지 않나요?
벌 받을지도 몰라요."
미카엘은 강민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강민은 미카엘의 말에 웃으며 끄덕이다, 갑자기 정색하며 말을 던졌다.
"그렇죠? 엄청 심한 일이죠?
...그런데 미카엘이랑 아나이스는 그 때 왜 그랬어요?"
미카엘은 망치로 머리를 맞는듯한 충격을 느꼈다.
강민은 자신을 원망하며 묻는 중이었다.
왜 샤를을 고문하고, 아나이스를 말리지 않고, 억지로 데려와 해외에 가뒀냐고.
뭐라고 답하겠는가? 입이 백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악마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으니까.
재판장에서 이따위 변명을 한다면 괘씸죄로 형량을 두 배 받을 정도.
미카엘이 말을 못하고 있자 강민은 더 쏘아붙였다.
"왜 제가 미카엘을 마음놓고 좋아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왜 그때 그렇게 잔인하게 굴었냐구요.
미카엘, 아나이스. 둘을 볼 때마다 얼마나 미칠 것 같은지 알아요?
만약 내가 평생 샤를을 볼 수 없게 됐다면.
아니면 예림이가 병원에서 타 죽었더라면.
가정만으로도 돌아버릴 것 같아요.
미카엘. 대답해 봐요. 왜 그랬어요?"
그제서야 미카엘은 깨달았다.
강민도 자신과 똑같다.
아나이스를 괴롭히는 강민을 미워하면서 좋아하듯, 샤를을 괴롭힌 자신도 미움과 증오가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에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그, 그건..."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강민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빤히 미카엘을 바라보기만 했다.
침묵은 때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침묵은 미카엘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미카엘이 먼저 저지른 일이었기에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난, 난...그러니까..."
과거의 일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걸. 다짜고짜 천칭을 쓰는 대신 말이나 좀 해볼걸.
그땐 왜 그랬을까? 왜 아무 잘못 없는 무고한 서큐버스에게 그렇게 심하게 굴었을까.
"잘, 잘못했어요..."
미카엘은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가 얼마나 자격이 없었는지도.
아나이스 대신 속죄하겠다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미카엘은 강민에 대한 분노밖에 없었다.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하지 못하고, 강민이 얼마나 아나이스에게 잔인하게 굴었는지만 곱씹으며 화를 냈다.
하지만 강민은 되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동안 분노는 겨울에 쌓인 눈이 봄에 사라지듯 녹았다. 그 자리를 설렘과 두근거림이 대신하자, 자신의 과오를 깨닫는다.
강민의 복수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그리고 자신은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했었다고.
"잘못,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강민 씨, 용서해 주세요..."
미카엘은 훌쩍이며 강민의 손을 잡고 빌었다. 가슴이 타 버릴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강민은 무덤덤하게 미카엘을 바라봤다.
사실 강민이 미카엘에게 한 말의 진실도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거짓말 70%와 진실 22%, 애정 1%, 새로운 방식으로 괴롭히고 싶다는 마음 40%.
총 140%! 말하고 있는 강민조차 뭐가 진실인지 모르는 악독한 프로파간다!
괴벨스도 울고 갈 정도의 선동력이다.
그리고 강민이 바라는 것은?
"제가 뭐든 할게요. 강민 씨. 계약서 쓸게요. 아니, 쓰게 해 주세요."
바로 이거다. 미카엘의 뭐든 하겠다는 약속. 그것도 자발적으로.
강민은 흥분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간신히 참았다.
"무서우시다면서요."
"아니요. 이젠 안 무서워요."
미카엘의 마음가짐은 변해 있었다.
맨 처음에 강민에게 뭐든 하겠다고 말할 땐 정말 마지못해 하는 것이었다.
사형수가 간수의 말에 네,네. 성의없이 대답하듯.
하지만 강민은 미카엘을 상냥하게 대했다.
그 안에 애정이 얼마나 담겨있을진 강민 본인만 알겠지만, 결국 미카엘은 거기에 푹 빠졌고.
그러다가 자신의 잘못도 깨닫게 됐다.
그리고 미카엘은 이제 강민에게 마음 속 깊은 곳의 열쇠를 내줬다.
강민이 어떤 일을 해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해 주고 싶었다. 강민이 뭘 원하든 사랑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진짜로 계약서 쓸 수 있겠어요?
아나이스가 했던 플레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요?"
미카엘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폰허브를 보다 보니 그렇게 무서워 보이진 않는다.
물론 촛불로 그슬리는 플레이같은 건 무섭긴 하지만, 여자친구들이 하는 플레이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전 성교, 항문 성교는 죄악이지만 강민이 원한다면 해 주고 싶다.
강민은 험한 꼴을 당하고도 자신에게 친절했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도 이보다 착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도 보답할 수밖에.
"할 수 있어요. 하고 싶어요. 강민 씨."
강민은 웃음지었다.
이번엔 방법을 바꿔봤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범하는 것보다 미카엘에게 '하고싶다'는 말이 나올때까지 기다린 것.
그리고... 그 결과다. 계약서를 쓰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미카엘.
흥분이 온 몸을 감쌌다.
"그럼. 갈까요?"
둘은 호텔로 돌아왔다. 미카엘은 얼굴을 붉히며 욕실로 들어갔다.
"먼저 씻을게요..."
그리고 강민도 씻고 나왔다. 미카엘은 마음의 준비를 다 한 듯, 샤워 가운만 걸치고 침대 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은빛 머리칼이 찰랑거리고 갸냘픈 몸은 이후에 벌어질 일을 짐작하듯 조금씩 떨린다.
비스크돌같은 외모에 강민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미카엘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강민 씨. 뭐든 한다는 계약서예요.
여기 싸인하시면 돼요."
강민은 계약서를 받아들고 살폈다. 아나이스는 처녀를 지켜달라는 계약이라도 걸었지, 미카엘은 그런 부분도 없는 백지 계약이다. 5년간 목숨만 살아 있다면 괜찮다고 말하는 계약서.
강민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미카엘의 어깨가 희미하게 들썩거린다.
사랑하고, 뭐든 다 해줄 수 있다고 해도 무서운 건 무서운 법이다.
어떤 성교를 해야 할까? 폰허브에 나오는 영상 중 누구처럼 섹스하게 될까? 두려움에 피부가 더욱 새하얘졌다.
강민은 그걸 빤히 보다가
계약서를 박박 찢어버렸다.
"강, 강민 씨?"
미카엘의 눈이 놀라 커졌다. 하지만 강민은 태연하게 말했다.
"미카엘. 믿을게요. 계약서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종이가 바닥에 눈 내리듯 흩날렸다. 미카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가렸다. 강민이 이렇게 행동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감, 감사해요 강민씨"
마음 속이 애정으로 차올랐다. 따뜻한 강물이 온 몸을 휘감듯, 무서워하던 마음을 씻어낸다. 강민의 웃음이 마음을 파고든다.
강민이 자신을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가슴이 쿵쿵 떨리고 얼굴이 빨개진다.
"미카엘. 평소 하던 것처럼. 키스부터 먼저?"
"넷, 네에"
입술이 미카엘을 부드럽게 덮친다. 미카엘은 짜릿한 감각을 느끼며 강민을 마주 껴안았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미카엘은 알까? 계약서보다 사랑으로 묶여 있는 목줄이 훨씬 견고하고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강민이 어디까지 생각했을까?
알 수 없지만.
지금 알 수 있는 건, 오늘 미카엘이 처녀를 잃는 날이라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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