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 245. 추석엔 송편을 빚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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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둘러댔다.
“아, 엄마. 원래 알바하던 곳 친구들이야. 어쩌다 보니 여자애들이랑 친해지게 돼서.”
예림이랑 영선 누나, 유다 누나(남친 알바)의 경우에는 맞는 말 아냐? 거짓말을 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어머니는 미심쩍은 눈으로 날 쳐다봤다.
“...네가 여자들만 골라 사귄 거 아니고?”
“아냐!”
너무 날카로우시네!
정보를 최소화해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알바 친구들일 뿐이예요!
전부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모든 문제는 덮어놓으면 언젠가 해결된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잖아?
좋은 명절에 ‘엄마. 네 명의 여자친구와 섹스 파트너예요' 라고 설명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엄마는 만만치 않았다. 아나이스와 미카엘을 보며 이 친구들도 알바에서 만난 건지 물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아니. 어학당 친구들이야. 한국 문화 체험해보고 싶대서.”
졸지에 어학당 친구들이 되버린 아나이스와 미카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한국의 전통 문화가 궁금해서요. 강민 씨가 초대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예요. 감사합니다.”
“한국에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집에 쥐불놀이를 한다죠? 기대가 되네요.”
그런 문화는 없다니까!
어학당 사람치고는 한국말을 너무 유창하게 하는 둘 덕분에 의심이 깊어진다. 이럴 땐...
예림이를 살짝 불렀다. 예림이가 앞으로 나서 인사했다.
“어머님, 오랜만에 뵈어요! 잘 지내셨어요?”
“아이구. 샤를! 잘 지냈어? 여전히 예쁘네!!! 강민이랑은 잘 사귀고 있구?”
샤를과 예림이의 표정이 잠깐 안좋아졌다.
예전에 예림이의 얼굴을 한 샤를을 데리고 와서, 엄마는 예림이를 샤를로 알고 계신다.
둘 다 기분 좋진 않겠지. 미안해. 나도 이럴 줄은 몰랐어... 샤를이 평생 예림이 얼굴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야.
예림은 날 잠깐 째려보다가 미리 입을 맞춰놓은 대로 행동했다.
“강민 오빠랑 잘 지내죠! 강민 오빠가 얼마나 잘 해주는지 몰라요.”
예림이는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를 포옹하고 과일 세트를 건넸다. 엄마의 관심은 순식간에 예림이에게 쏠렸다. 그래. 예쁜 며느리감이니까 그럴 수 있지. 엄마가 예림이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이야기를 쓰윽 진행시켰다.
“엄마. 우리 이렇게 세워놓을 거예요?”
“아이구. 내 정신좀 봐. 일단 들어가자꾸나.”
엄마는 예림이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예림이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표정이었다. 미안하다. 예림아. 내가 다 잘못했어.
“너흰 이 방 쓰면 된단다!”
여자 여섯 명을 큰 방으로 안내했다. 스무 명쯤 자도 남는 커다란 방.
“강민이 너는 잠깐 엄마좀 보자.”
여자들이 인사하고 들어가자 엄마가 날 끌고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가 눈에 쌍심지를 키고 날 노려봤다.
“강민아. 여자애들이 널 보는 눈이 심상치 않은데. 너 이상한 짓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이상한 짓이라뇨. 그럴리가요.”
동그란 모양이 된 양심은 거리낌없이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팔짱 끼고 한참을 서 있다가 한숨을 푸욱 뱉었다.
“그래, 엄마는 너 믿는다... 너는 느그 아빠처럼 결혼해놓고 몰래 바람피면 안 된다. 엄마는 믿는다. 우리 착한 강민이가 그럴 리가 없지.”
동그란 양심마저 따끔거렸다. 바람은 안 피고 오픈한 채로 만나는 건 괜찮은 거겠죠? 그렇다고 해 줘요!
솔직하게 말은 하지 못하고 입을 꽉 닫았다. 이렇게 묻어두면 괜찮을 거야...!
다행히 엄마의 관심은 여자 성비에서 멀어져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갈비찜으로 옮겨갔다. 엄마가 요리하는 동안, 부엌에 계시던 할머니가 손짓으로 날 불렀다.
“강민아. 아주 시끌벅적 하드라.”
청국장을 끓이시며 한마디 툭 던진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많이 데려온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죄송할 것이 뭣이 있냐. 그보다, 여자들 눈에서 눈물 안 나게 혀라. 여자들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것이여.”
뭔가를 눈치채신 듯, 국물을 후룩 맛보시며 조언을 해 주셨다. 뼈에 새기겠습니다.
“강민아. 와서 갈비찜 간좀 봐라!”
어머님의 말에 후다닥 달려갔다. 산처럼 쌓인 돼지갈비찜을 맛봤다. 소는 비싸서 못 사던 우리 집에서 특기로 하던 명절 음식이다. 돼지갈비 주제에 소갈비보다 맛있단 말이지. 간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맛있어? 그럼 가서 상 펴고, 수저 놔라.”
준비를 다 하고 기다리는데 방에서 여자친구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근데, 어. 뭐지.
왜 전부 한복을 입고 있는 거지?
맨 먼저 나온 건 예림이었다. 단아하게 땋은 머리. 푸른색 계열의 깔끔한 한복. 터질 듯한 미드는 한복으로도 감출 수 없었다. 연하늘색 저고리가 자기주장을 펼쳤다.
솔직히 너무 귀엽고. 섹시하다. 깜짝 놀라 눈을 돌리며 물었다.
“뭐, 뭐야?”
“그냥 다 같이 한복 맞춰입고 오면 좋을 것 같아서. 어때? 오빠. 예뻐?”
예림이는 방긋 웃으며 치마를 펴고 휙 돌았다. 겨울왕국의 엘사 공주를 생각나게 할 만큼 생기넘치고 귀여웠다. 엘사가 검정색으로 염색하고 H컵이 된다면 이런 분위기겠지.
음, 최고네요. 폰허브 SFM에 올라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외모였다.
다음에 나온 건 유다 누나.
“강, 강민아. 어때...?”
유다 누나는 말할때 입을 작게 오물거렸다. 스플릿 텅을 들키기 싫어서 그런다. 게다가 맨헤라 계열임을 증명하듯 핑크색 계열의 한복이다.
정병녀들이 좋아하는 핑크핑크. 하지만... 얼굴이 예쁘면 뭐든 어울린다. 확실히 저번에 로리타 계열 드레스가 제일 잘 맞을 사람으로는 유다 누나를 꼽았는데 내 생각이 맞았다.
“한복도 잘 어울리는데요?”
풍만한 몸매는 가려지지만 문신도 가려줘서 평소와 달리 얌전해 보였다. 뺄 수 있는 피어싱은 모조리 뺐지만, 귀에 남은 제거 불가능 피어싱이 백미다.
음란해 보이지 않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 당장이라도 치마를 걷어올리고 공주님이라고 치켜세워주며 희롱하고 싶군.
그에 비해 영선 누나는... 성적 욕망을 다 숨기지 못했다. 돌잔치때 미시 어머님들이 입을만한 흰색 레이스 한복. 감색 치마. 특히 윗저고리가 짧아서 팔을 들 때마다 갈비뼈와 아랫가슴이 보일듯 말듯.
남의 집에서 뭘 입고 있는 거야! 속저고리를 입고 있어서 다행이지! 그래도 좋긴 한데 때와 장소는 좀 가립시다.
아나이스와 미카엘은 샤를이 마법으로 의복 변환을 해 준 모양이었다. 수녀복을 변환시킨 듯한 검정색 소복. 미망인같은 분위기를 더해서 아나이스의 매력을 뽐낸다.
당장이라도 남편따윈 잊어버리라고! 하면서 범해주고 싶은 외양이다.
의외로 둘은 한복에 불만이 없었다. 옷 자락을 이리저리 들어보며 노출이 없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럼 남은 건...’
“오빠. 어때요?”
마지막으로 나온 건 샤를이였다. 샤를은 보라색 비단 치마를 입었다.
거기서 내 사고가 멈췄다. 대담하게도 속치마를 입지 않았다. 밝은 빛에 비춰보면 엉덩이 라인과 속옷 색깔까지 다 드러날 정도.
겉으로 봐선 야해보이진 않지만 뜯어보면 음탕하기 그지없는 복장.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치마를 눌러 몸에 붙이며 사타구니 사이의 삼각주를 슬쩍 강조했다.
아, 정말...미치겠군.
여섯명이 공작처럼 빵빵하게 차려입고 나오니 볼만했다. 아니 절경이었다. 우리 집 식탁 앞에서 미스춘향 선발전이 열린듯한 광경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엄마도 말을 잊을 정도였다. 두 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웜맘마...”
“아이고메. 아이고메.”
두 분은 여자친구들을 쳐다보다, 나를 지그시 쳐다보길 반복했다.
시선을 피했다. 밥을 두고 긴 시간을 끌진 못하겠지! 다행히 두 분은 김치와 갈비찜을 올리며 우리에게 밥을 챙겨주는 쪽을 택했다.
식탁에 둘러앉아 잘 먹겠다고 인사하고 갈비찜으로 손을 뻗었다. 맨 먼저 탄성을 내지른 건 미카엘이었다.
“음, 이거 맛있네요? boeuf bourguignon 같은데?”
비프 부르기뇽... 소고기를 와인으로 푹푹 졸여낸 음식이었나? 아무래도 비슷한 맛인가 보네.
아나이스도 눈을 크게 뜨고는 열심히 입으로 갈비를 옮겼다.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힘들었던 듯, 눈을 감고 고기를 음미했다.
묘하게 미안하네.
다른 여자친구들도 부모님의 요리 솜씨에 감탄하며 연신 칭찬을 날렸다. 오랜만의 칭찬에 기분이 좋으신지 엄마와 할머니는 잘 드시지도 않고 여자친구들의 그릇에 연신 고기를 날라줬다.
“좀 드시면서 하시지.”
“요리하면서 맛 봤다.”
그러며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강민이는 어디서 만났느냐. 학교 생활은 잘 하느냐. 일은 뺀질거리지 않느냐. 다행히도 여자친구들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잘 한다고. 잘생기고 사근사근해서 좋다고.
...고맙네.
다행히 즐거운 저녁식사였다. 갈비에 김치, 산적, 동그랑땡, 고사리무침, 시금치, 잡채, 온갖 나물에 청국장까지 더는 못 먹을 때쯤에서야 간신히 식사가 멈췄다.
“치우고 나면 송편 빚을거다.”
할머니의 말에 영선 누나가 눈을 반짝거렸다.
“송편이요? 재밌겠다!”
영선 누나 혼자 좋아하고 다른 다섯은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알려주는 수밖에.
여자친구들이 서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나도 같이 정리를 하고 나자 엄마가 방 중앙에 모싯잎송편의 재료들을 갖다놨다.
“어머님. 이거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예림이의 질문에 엄마가 반죽을 살짝 떼어 동글동글 말고, 가운데를 꾹꾹 눌러주며 절구 모양으로 만든다. 설탕과 깨를 섞은 속을 채워 예쁘게 마무리하는 걸 보여준다.
“우, 어렵다”
그러자 엄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이쿠. 어려우면 안 되는데.
송편 예쁘게 빚어야 시집가서 예쁜 딸 낳는단다.”
그 순간. 다섯 명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아나이스 혼자 별 관심 없고. 미카엘은 적당한 흥미로.
그런데, 나머지 넷의 눈빛이.
날 잡아먹을 듯이 이글거리는 건 내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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