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248화 (248/358)

〈 248화 〉 244. 부모님에게 여자친구들 소개하기

* * *

그 이후로 평온한 나날이 흘렀다. 영상을 올리고 매일 섹스하고 또 영상을 올리는 일상. 특히 미카엘과 가벼운 데이트를 하고 펠라를 시키는 영상이 마음에 들었다.

샤를이 북한산 자락의 집 계약도 마치고, 예림이도 언니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경계심을 서서히 내려놓을 즈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강민아. 이번 추석때 내려올거니?”

엄마의 말에 달력을 확인했다. 벌써 10월 초. 추석이 내일모레다. 영상 편집하느라 바빠서 확인도 못했네.

내려간다고 대답하는데 머릿속에 여자친구들 생각이 났다. 황급히 덧붙였다.

“친구들도 같이 가도 괜찮아?”

“친구들? 그 친구들은 추석때 안 내려간대?”

샤를에게 친척이 어디 있겠어. 유다 누나도 고향 갈 일은 죽어도 없을거고. 추석때 둘이 쓸쓸하게 보낼 생각을 하니 같이 내려가고 싶었다. 설명하자 엄마가 반겼다.

“아휴. 그럼 당연히 데려와야지. 할머니 집 넓은거 알잖니. 안 그래도 조용하니 쓸쓸한데 잘 됐네.”

“알았어. 그럼 그때 봐.”

샤를과 유다 누나는 추석때 같이 내려가자는 제안에 엄청 좋아했다. 한복 입어볼까? 재잘거리며 신나서 떠들고, 유다 누나는 한국 전통 문화를 여러가지 알려줬다.

“쥐불놀이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집에 불을 지르는 거야.”

“진짜요? 한국의 전통 문화는 과감하네요.”

유다 누나,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세요!

***

그렇게 평온하게 셋이서 갔다 올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영선누나가 찾아오며 일이 커졌다. 같이 강원도로 가고 싶다고 졸랐다.

“강민아. 나도 갈래. 데려가줘.”

“아, 누난 본가 가야죠! 추석때 남자친구 집에 간다고 하면 부모님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영선 누나 아버님이 분노하는 상상만 해도 엄청 무섭다고! 저번에 스타렉스를 밀어서 뒤집어 엎어버리질 않나!

가급적 그쪽 아버님과는 척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물론 영선 누나의 배에 문신을 박아버렸다는 사실은 가급적 들키지 말아야겠지), 영선 누나는 완강하게 주장했다.

“우리가 큰집이라 사람 엄청 많이 모이거든? 나 빠져도 티 안나! 데려가! 데려가 달라고!!”

“미안해, 강민아...”

유다 누나는 내 옆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유다 누나가 단톡방에서 저지른 짓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 유다: 이번에 샤를이랑 같이 강민이 본가 내려간다 ~ㅇㅅㅇ~]

[ 유다: 닭강정도 먹고~ 회도 먹고~ ]

[ 유다: 강민이 어머님 뵈어야 하는데 문신 가리는 게 좋겠지? ]

[ 영선: ????? ]

[ 예림: ????? ]

입단속 안 시킨 내 잘못이지. 유다 누나를 괜찮다고 달랠 동안 영선 누나는 대놓고 바닥에 누워서 팔다리를 휘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귀여워 보였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귀엽지 않다.

“나 안 데려가면 가족들한테 배에 있는 문신 슬쩍 보여줄거야!”

아, 젠장!!!! 알았어요! 데려갈테니까, 데려간다고!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예림이까지 찾아와 부루퉁해서 내 팔을 꽉 붙잡았다.

“...저도 갈 거예요.”

“...가족은?”

“부모님은 원래 이때면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요. 전 일 있으면 안 가고 그랬으니까, 이번엔 빠져도 괜찮아요.”

머리가 띵해진다. 여기서 예림이를 빼놓고 가면 그야말로 폭발하겠지. 데려가야 할 사람의 목록은­ 예림. 유다. 샤를. 영선.

아나이스도... 데려가야지. 혼자 모텔방에서 추석을 보내게 만드는 건 좀 미안하다.

강제로 섹스하는 건 별로 안 미안하지만 혼자 따돌리긴 싫으니까. 이번엔 끼워주도록 할까.

문제는 저 다섯명에 미카엘까지 더해 여섯명. 그리고...

“니모나. 넌?”

“난 남편이랑 추석 보낼 건데?”

다행이다!!! 나는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왼손에 반지 있는 유부녀까지 데리고 갔다간 엄마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데리고 부모님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속이 답답해진다. 여자 여섯 명, 나까지 합해 일곱명. 그냥 친구일 뿐이라는 내 변명을 엄마가 믿을까...?

한참 생각하던 나는 그냥 현실에서 눈을 돌리기로 했다. 엄마한테 간단하게, 친구의 친구까지 데려가기로 해서 여섯명이라고 말만 했다(전원 여자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들을 지 무서우니까).

[ 아니, 무슨 친구들을 그렇게 많이 데려와? ]

[ 그냥, 강원도 간다니까 따라오고 싶은가봐. ]

[ 아휴, 참. 추석 음식 많이 해야겠네. 방도 치워놓고, 할 일 많겠다. ]

그런데 의외로 엄마는 기뻐 보였다. 생각해 보니 아빠랑 이혼하고 우리 가족의 명절은 할머니, 나, 그리고 엄마까지. 겨우 세명 뿐이었다. 가끔 찾아오는 삼촌이라던가, 호칭도 모를 먼 가족 빼곤.

‘잘 넘어갈 수도 있겠는데?’

가장 큰 난관을 넘었으니 이젠 어떻게 갈 지 방법을 짜 보자. 버스로는 할머니집까지 갈 수 없으니 차량 렌트하면 되겠지. 유다 누나와 머리를 맞대고 차를 골랐다.

“음... 강민아. 스타렉스 빌리면 될까?”

“제가 운전할게요.”

“아냐, 내가 할게.”

유다누나는 기필코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우겼지만 다인승 승합차를 몰아본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긴 불안하다고! 겨우 쿠페나 몰았으면서!

물론 뒷좌석에서 편하게 가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그래도 여자친구한테 운전을 시킬 순 없지.

그리고 나는 귀성 당일, 운전대를 잡았다가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아, 제발!!! 왜 분위기 왜 이래!!!’

집으로 내려가는 스타렉스 안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귀성 당일 싸우는 가족들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네.

스타렉스 안의 자리 차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조수석을 차지하겠다고 예림이와 샤를이 먼저 투닥거렸고, 그 틈을 노려 유다 누나가 은근슬쩍 기어봉 뒷쪽의 작은 의자를 펴다 제지당했다.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샤를이 ‘그러니까 왜 카톡방에 자랑을 해서... 다 언니 때문이에요’ 라는 말을 꺼냈고, 충격을 받은 유다 누나는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라고 소리쳤다.

결국 조수석은 텅 비워둔 채 샤를­예림, 유다­영선, 이렇게 줄줄이 앉아 운행 중이다. 서로 이야기가 다 들리니 옆에 앉은 사람이 달래주지도 못하고 모두 가시방석에 앉아있다.

아나이스와 미카엘이 얌전히 맨 뒷자리에 앉아있어 주는 게 고마워질 정도다. 물론 아나이스는 쌤통이네, 이런 표정을 지으며 창 밖을 바라보는 중.

나중에 두고 보자. 다짐하며 네 명의 여자친구를 화해하게 만들려고 설득했다. 다행히 차는 거북이처럼 고속도로를 기어가는 중이라 위험할 일은 없었다.

“왜 그래. 좋은 날에.”

운을 띄워봤지만 둘은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없었다. 영선 누나도 쾌활하게 ‘맞아. 싸우지 말자...’라고 말했지만 침묵이 차 안을 지배했다.

어르고 달래봐도 소용이 없었다. 둘 모두 잔뜩 삐져서 볼이 퉁퉁 부었다. 말조차 안 하고 있으니 답이 없다. 나조차도 답답해져서 인상을 찌푸렸다.

짜증이 서서히 올라오려고 할 무렵 느림보처럼 지나가는 차량의 행렬이 휴게소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래. 저기서 풀고 와야겠네.

간신히 난 주차자리에 차를 세우고 예림이에게 지갑을 건넸다.

“이걸로 다 같이 밥 먹고 와. 둘이 화해시키고 갈 테니까.”

예림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사람들을 인솔해 식당가로 향했다. 카페 알바할 때 분위기 메이커답게 능숙하게 사람들을 챙긴다. 차 안에 샤를과 유다 둘만 남자 둘은 흘끔흘끔 내 눈치를 봤다.

“샤를. 왜 그런 말 했어?”

한참 망설이던 샤를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저랑, 예림 언니랑 조수석 가지구 다투고 있는데 언니 혼자 좋은 자리 쏙 차지하는 게 미워서...”

아이고. 영락없는 자매 다툼이다. 볼을 살살 꼬집어주며 타박했다.

“그렇다고 심한 말을 하면 안 돼지! 누나는 왜 그렇게 소리쳤어요?”

유다 누나도 겁먹은 듯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나, 나는... 샤를하고. 엄청 친해진 줄 알았는데. 샤를이 갑자기 여행 다 같이 따라온 거 내 잘못이라고 하, 하니까­ 엄청 배신감 느껴서...나도, 내가 잘못한 건 알지만, 그래도...”

이야기하다 훌쩍훌쩍 눈물을 흘린다. 여동생 같았던 샤를의 말에 엄청 서운했나보네. 소심한 유다 누나의 울음에 샤를의 죄책감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자신이 미안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닿고는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어, 오빠,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사과해야지. 둘이 손 잡고. 샤를 먼저.”

“언니, 미안해요­ 제가 화나서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나봐요­”

“괜, 괜찮아­. 나도 그렇게 소리 지를 일이 아니었는데 소리질러서 미안해.”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고, 손을 맞잡고 화해했다. 그나마 빨리 해결되서 다행이구만!

“다음부턴 싸우지 말고.”

““네에...””

둘은 손을 잡고 나란히 끄덕거렸다. 젠장. 이제 더 싸우지만 말자!

다행히도 그 이후의 분위기는 화목했다. 다 같이 아점을 먹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잘 됐네!

날 빼놓고 자기들끼리 뒤에서 감자싹이라던가 제로 등을 하며 노는 것만 빼면 말이지.

내가 자처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사온 버터 통감자를 내 입에 넣어주거나 귤을 까 주는 등 날 완전히 잊진 않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꾸물꾸물, 고속도로를 한참을 기어­ 국도로 나와 씽씽 달리다가­

“엄청 깊은 데에 있네요.”

“할머니가 번잡스러운 걸 싫어하셔서.”

꽤 큰 시골 벽돌집 앞에 섰다. 슈퍼라도 갈라치면 차타고 10분은 가야 하는 산골.

“강민이 왔니!”

차 엔진 소리에 엄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후다닥 튀어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놈을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도 엄마를 껴안으며 떼 온 한우 20KG, 잡다한 과일들을 내렸다.

“뭘 이런걸 가져왔어!”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좋아하시는데요.

“그래서. 온다던 친구들은?”

“저기요.”

스타렉스의 문이 열리고 샤를이 날씬한 각선미를 뽐내며 내린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인사를 하고. 그 뒤로 줄지어 내 여자친구와­ 파트너들이 내려온다.

“반가워라! 강민이 친구들이구나! 다들 예쁘...구나...?”

인사를 받는 엄마의 말이 서서히 작아진다.

음. 네. 엄마. 좀 곤란하겠죠. 아들놈이 친구라고 아이돌같은 여자 여섯명을 데려오면...?

전부 내리자 엄마의 눈이 해명을 요구하며 날 쳐다봤다.

아. 젠장.

* * *

1